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88)
제 111화
62화. 나침반 탈취 작전(1)
돈은 다시 거둬서 물꼬리족에게 넘겨주었다. 적호족 수인들은 부리나케 도망가느라 그 광경을 지켜보지 못했다.
“고맙, 고맙다. 인간!”
유카유카 시장으로 도착하자마자 진과 함께한 물꼬리족 수인들이 동족들에게 그 일을 설명하자, 어둠불꽃과 부락의 대표들이 감사를 전했다.
“하루, 자고, 가라, 인간. 물꼬리족, 파티, 화끈하다.”
“미안, 급해서 바로 가봐야 해. 다음에 또 보자고.”
“이거라도, 먹고, 가라!”
물꼬리족들이 급히 생선을 구워왔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생선 스무 마리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아, 맞다. 어둠불꽃, 혹시 염색 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염색, 웬?”
“필요해서.”
“우린, 못 한다, 잠깐, 기다려, 봐라. 금설족, 염색사, 데려온다.”
잡화점의 금설족이 비밀 통로로 내려왔다.
“아아, 인간. 우리 염색은 기술이 좋아서 좀 비싸거든. 인간 녀석들 허접한 색칠놀이에 비할 바가 아니란 말이지, 가격은 이 정도부터 시작…….”
한창 금설족이 바가지를 씌우려는데 어둠불꽃과 물꼬리족들이 나섰다. 그들이 금설족에게 진이 적호족을 굴복시킨 일을 전해주자, 금설족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공짜로도 해줄 수 있지. 하, 그 쓰레기 같은 놈들 지리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봤다면 좋았을 텐데!”
염색은 금방 끝났다.
진은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올 때처럼 비밀 통로를 이용해 수인들의 땅을 빠져나갔다.
* * *
1797년 5월 마지막 날 오후.
진은 벨라도 제후국 남쪽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동네는 여전하군.’
이 이름 없는 섬은 벨라도 제후국의 영해를 애매하게 벗어나 있어 해적들의 놀이터가 된 땅이다.
진이 코스모스의 각축장을 참가하기 위해 찾았던 바로 그곳. 대낮인데도 거리에는 마약 중독자와 폐인, 도박에 미친 귀족들이 뒤섞여 번잡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후히히히!”
중독자 겸 노숙자로 보이는 한 꾀죄죄한 남자가 기괴한 웃음소릴 내며 진 근처를 서성였다. 항구에는 이런 거지들이 흔했는데, 주로 각축장에 참가했다가 많은 걸 잃게 된 용병들이었다.
그러나 실성한 듯 웃고 있는 이 남자는 진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은 그를 보며 반가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트잖아… 미친.’
제트.
그는 두 달쯤 전에 미리 이곳으로 와 항구의 거지 무리에 섞여들었다.
비밀연락책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의미론 다재다능하다고 해야 할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진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완벽한 거지가 되어 있었다.
“히히후후! 거기 공자, 한 푼 줍쇼! 후흐!”
다른 거지들을 싹 밀치며 다가온 제트가 통을 들어 보였다.
통 속에는 쪽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잘 지냈나, 빌. 새부리 여관 203호 침대 아래 못 3개 박힌 판자)
쪽지를 확인하고 동화 몇 개를 적선하자 제트의 뒤편에 있는 거지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히후! 캬, 복 받을 겁니다아!”
제트가 물러나자 다른 거지들이 아귀처럼 그를 따라 달렸다. 아무래도 인정 많은 왕초 노릇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영입하길 참 잘했어. 전생에선 징글징글한 악연이었는데.’
피식 웃고, 새부리 여관을 찾아갔다.
의자에 기대 한잠 늘어지고 있는 주인은 문이 열리자 손사래를 쳤다.
“방 없소. 다른 곳 가슈.”
“잘 지냈나, 빌.”
그러자 주인이 203호 키를 내어줬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를 밀어내고, 못이 세 개 박힌 판자를 뜯었다. 판자 아래엔 얇은 붉은색 나무판과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리, 오랜만입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한 달에서 2주쯤 전에 도착해 각기 다른 여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두 무사하고, 놈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킨젤로 측 전력은 안즈의 대마도사 추콘 톨더러와 8성급 추정 마법사 다섯, 그리고 돌격대장급 추정 백랑족 전사 다섯입니다.
이 외에도 변장 중인 암살자, 저격수 및 기타 실력자가 다수 포진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플 측 전력은 파악된 바가 없습니다. 작전 당일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킨젤로와 마찬가지로 변장 중인 실력자가 이미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전 개시 시간은 6월 1일 밤 10시로, 변동 사항 없습니다. 장소 역시 섬 북쪽 폐저택의 도박장으로 동일합니다. 동봉된 붉은 나무판은 도박장 입장권입니다.
작전 수행 후 도주 장소 또한 1, 2, 3번 모두 같습니다.
편지 뒷면에 동료들이 묵고 있는 여관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아, 그리고 카시미르 경과 무라칸 님의 동의하에 비궁의 시리스 님이 작전에 참가하기로 하셨습니다. 첩보, 암살, 게릴라 경험이 많은 분이니, 도움이 될 것이라더군요.
저는 나리께 이 쪽지를 전달한 걸 마지막으로, 오늘 미리 티칸으로 복귀합니다. 길리 님께 안부 전하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나리!)
동료들은 전부 서로 다른 여관에 묵고 있었다. 혹시라도 지플과 킨젤로의 물망에 수상한 일당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9성 마법사 하나에 8성 마법사 다섯, 돌격대장급 백랑족 다섯이라…….’
적당한 왕국 하나쯤은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지플 측도 최소한 이 정도는 맞춰서 데려올 거야. 내일 밤이면 더럽고 지저분한 해적들의 놀이터가 별들의 전쟁터가 되겠군.’
6개월 전 동료들이 예상한 전력을 한참 상회했다.
따라서 전면전은 답이 없었다. 진이 강해졌다고 하나, 아직 그들을 전부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이 성장하지 않았다면, 작전을 감행하는 건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작전을 시행하느냐, 접고 철수하느냐는 전부 진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진이 도박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조용히 복귀하도록 6개월 전에 입을 맞춘 것이다.
물론 진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만한 인물들을 데려왔다는 건, 그만큼 나침반이 중요한 물건이라는 뜻이지. 가져가주마.’
어차피 작전은 게릴라식으로 진행될 것이니, 그들과 전면전을 펼칠 일은 없을 터.
설령 전면전이 이어진다 할지라도.
어쩌면 싸워볼 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8, 9성급 마법사나 무인들이 온갖 마법과 기술을 난사하면 이 작은 섬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건 다 같이 죽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박까지 박살이 날 거고, 바다 한가운데 소용돌이가 번질 것이다. 루나가 심검 적월, 단 일격으로 비먼트의 무인도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렸듯.
‘게다가 싸움이 커지면 룬칸델과 비먼트도 냄새를 맡을 거고, 그건 킨젤로와 지플이 가장 염려하는 일.’
룬칸델도, 비먼트도 아직 나침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면 이미 두 거대 세력의 사람들도 이 섬에 쫙 깔려 있었어야 하는 것이다.
브라다만테와 시그문드.
진은 두 자루 검을 조용히 손질할 뿐이었다.
* * *
다음날, 6월 초하루 저녁 여섯 시.
진이 섬 북쪽 폐저택의 도박장을 찾았다. 금설족이 물들여준 진한 황금빛 머리카락에 화려한 복장, 허리춤에 걸린 두 자루의 검을 ‘한껏 허세’로 만들어버리는 진한 화장까지.
돈깨나 있고 멋 부리기 좋아하는 귀족가의 흔한 망나니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귀족 사교장에서 화장이 유행한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이딴 걸 왜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짙게 바른 분과 연지 때문에 모공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거의 여인처럼 보이는데, 근골은 발달했으니 어딘지 기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금설족 특제 화장품의 위력이었다.
-뭔가 변장이 필요한 것 같은데, 친구 같은 경우는 아주 곱상해서 화장품 덕지덕지 바르면 여자처럼 보인다고. 염색만 하지 말고, 아예 여장까지 하는 건 어때? 아무도 몰라볼 걸!
-그것까진 좀.
-아무튼 화장은 꼭 해! 우리 물건은 인간들 허접한 기술하곤 달라서, 대충 퍼서 바르면 그럴싸한 연출이 되거든. 이건 볼에, 이건 입술에, 이건 이마에, 이건 목에 발라.
속으로 제 모습을 어색해하는 진과 달리, 도박장에 모인 이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진을 쳐다보기 바쁜 모습이었다.
저렇게 예쁜 공자는 처음 본다, 오늘밤 같이 놀고 싶다, 돈 잃고 우울해하고 있으면 빌려줘야지 등등…….
노골적인 목소리들이 귓가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얼굴로 주목받아 본 적은 꽤 많았지만, 이토록 시끄러워질 정도는 오랜만이었다. 취향이 자유로운 남자들까지 대놓고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못 보던 얼굴인데, 당신이 들어오니 우중충한 도박장이 확 환해지네요. 반가워요, 난 젤리아라고 해요.”
그러나 한 흑발의 여인이 다가오자 수군거림이 한순간에 멎었다. 젤리아는 2주 전에 등장해 단숨에 도박장의 유명인이 된 여인으로, 본명은 시리스 엔도르마였다.
처음에 진은 그녀를 몰라봤다. 부바르의 조각술만큼은 아니지만, 비궁에서 제작한 인면도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런 식으로 모든 동료들이 비궁의 인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비 룬칸델이 된 채 시리스의 품에 안겨 있는 무라칸을 제외하면 말이다.
“여긴 구슬치기가 가장 잘 나가요, 공자. 특산품 같은 거죠. 룰을 잘 모르실 것 같은데, 내가 좀 알려줄까요?”
진이 부드럽게 그녀를 밀쳐냈다.
“괜찮습니다.”
“뭐, 싫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구슬치기 판으로 가면 홀라당 다 털릴 테니까, 웬만하면 익숙한 쪽으로 가요. 홀짝이라든가, 주사위라든가. 놀다가 내 생각이 나면 구슬치기판으로 오시고요.”
구슬치기판엔 동료들이, 홀짝판과 주사위판엔 위장중인 지플과 킨젤로의 세력들이 모여 있으니 살펴보고 돌아오라는 의미였다.
“그러도록 하죠.”
“너무 늦지 않게 오시길, 곧 밤이니까요.”
도박판에 모인 사람들에겐 젤리아가 진에게 수작을 부리는 대사로 들렸다.
젤리아가 떠나자 진짜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진은 그들을 가볍게 무시한 채, 홀짝판과 주사위판을 서성이며 적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킨젤로는 그렇다 쳐도, 지플 놈들도 어지간히 공을 들였군. 자부심 높기로 하늘을 찌르는 지플의 마법사들이 도박꾼으로 변장해서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겠어.’
지플의 마법사들은 예상대로 모두 특급인 듯 보였다.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보려는 찰나, 로브를 뒤집어쓴 거구 두 명이 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3미터에 육박하는 키. 당연히 보통 거구가 아니다.
백랑족이었다.
그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더니, 이내 의자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진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기, 너.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나.”
명왕족의 기운 때문이었다.
‘최대한 감춘 상태인데, 느낀 건가.’
진은 그들을 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 백랑족 아니십니까? 설마 도박판에서 당신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