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89)
제 111화
62화. 나침반 탈취 작전(2)
젊은 귀족이나 무인 중에 종종 백랑족의 힘과 문화를 숭상하는 이들이 있었다.
보통은 머저리들이다. 흰 털에 푸른 눈, 강인한 몸과 기운에 반해 함부로 접근했다가, 한 끼 식사가 되는 최후를 맞이하는 게 대개 그런 이들의 말로였다.
백랑족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대부분의 인간은 하등한 존재, 장난감, 간식에 불과했다.
“전부터 백랑족과 이야기해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와, 털이 너무 멋진데요. 한 번 만져 봐도 될까요?”
진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백랑족들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냥 멍청한 놈이었나. 털이 곤두설 만큼 위험한 냄새가 난 것 같았는데……?’
백랑족들이 한동안 헤헤 웃고 있는 진을 내려다보았다.
“손 치워라.”
“아, 제가 실례를 저질렀군요. 미안합니다. 그나저나, 저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뭐든 물어보세요.”
“흠, 아니다. 잘못 본 것 같군.”
“예? 뭘요?”
“알 것 없다.”
다시 백랑족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머쓱한 듯 미소를 짓는 진. 추파를 던졌던 이들이 그런 진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후, 하마터면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피곤해질 뻔했군. 앞으로는 명왕족의 기운을 더 확실히 눌러놔야겠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전 중 킨젤로의 수인들만큼은 반드시 싹 죽여야겠군.’
살려두면 분명 킨젤로로 돌아가 ‘위험한 기운을 가진 놈’에 대해 떠들어댈 것이다.
변장한 용모가 퍼지는 건 괜찮으나, 명왕족 특유의 기운에 대한 이야기가 돌면 어디서든 꼬리를 잡힐 수 있었다.
홀짝판과 주사위판에서 두 시간을 보내며 적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백야는 보이지 않았고, 진을 의심하는 인물도 없었다.
‘슬슬 동료들한테 가볼까.’
동료들이 있는 구슬치기판엔 구경꾼이 가득했다. 알리사는 그 틈에 숨어 있었고, 카시미르와 엔야는 초조한 얼굴로 판돈을 걸고 있었다.
‘다들 변장이 잘됐네.’
유난히 체구가 커 걱정이었던 알리사마저 완벽했다. 그녀는 인면과 더불어 콧수염을 붙이고 남장을 하고 있었다.
“어머, 벌써 내 생각이 났나요? 오실 줄 알았어요, 공자.”
시리스가 자연스레 진의 어깨에 팔을 휘감으며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글씨가 적혀 있었다.
(2층 중앙 카드판에서 물건이 오갈 것)
“이제 공자도 이름을 알려줘요. 그러고 보니 나만 알려줬잖아?”
몸을 밀착시키는 젤리아, 아니 시리스가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도박과 유흥에 미쳤으나 결코 만만하지는 않은 방탕한 영애를 완벽히 구현하는 중이다.
연기라면 진에게도 일가견이 있다.
진이 잔에 남은 물기를 손에 묻히며 시리스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문질러서 글씨를 지워주었다.
“바멀입니다, 영애.”
딱! 딱!
둥근 판 위에서 카시미르와 엔야의 구슬이 부딪치고 있었다.
시리스가 구슬치기를 설명하는 척 미리 동료들이 짜놓은 세부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두 개의 구슬이 판 위에 올라가요.”
“지금 영애와 나처럼?”
“그렇죠.”
먼저 두 명만 2층으로 올라가고, 그건 진과 시리스라는 뜻.
“그 다음 구슬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딜러의 장애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죠. 이건 변수가 너무 많아요, 피해야 하는 장애물도 있고 더 큰 구슬을 투입해 깨야하는 것도 있죠. 난 주로 깨는 걸 선호해요.”
“나도 그쪽이 더 좋을 것 같군요.”
나침반을 탈취할 때, 막아서는 적들은 일단 둘이서 같이 죽이자는 의미.
“장애물을 깨는 구슬과 결승점을 달리는 구슬을 잘 골라야 해요. 장애물을 깨부수는데 구슬을 거의 다 써도, 하나만 남으면 혼자 질주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시리스의 시선이 은근히 엔야를 향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나침반을 들고 도망치는 건 엔야가 적절하다는 뜻이다. 동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엔야가 가장 의심을 덜 살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엔야는 시리스와 완전히 반대되는 느낌이었다. 도박장에 등장하자마자 판돈을 휩쓸고, 절세의 미모를 뽐내온 시리스와 달리 엔야는 그야말로 개미였다.
늘 초조한 얼굴로 작은 금액만을 배팅하는 핫바지의 표본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녀보다 덜떨어져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만하면 대충 설명이 되었나요?”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따로 없습니까?”
“장애물을 제거하는 구슬이 너무 많이 깨진다고 망설이거나 우왕좌왕하다가, 기회를 놓치면 안 돼요. 하수들은 그래서 늘 돈을 잃죠.”
설령 동료가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감상에 빠지면 작전이 실패한다는 의미. 진이 담담한 얼굴로 시리스와 눈을 맞췄다.
“좋은 조언이군요. 쉽게 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런 식으로 진은 밤 열 시 무렵까지 시리스와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시리스와 대결해서 반복적으로 돈을 잃고, 짜증나는 기색을 드러냈다.
“하, 영애는 무슨 구슬치기의 신이라도 되는 겁니까? 어떻게 한 판을 이길 수가 없는지!”
구경꾼들이 쯧쯧 혀를 차댔다.
돈을 한두 푼 때려 넣은 것이 아니다. 진이 시리스에게 잃은 돈이 벌써 금화 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도박장에 두어 시간 만에 금화 천을 날리는 부자 호구는 흔치 않은 유형이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공자는 구슬치기에 재주가 없는 것 같네요. 그러게 그만두고 나가서 술이나 마시자고 했잖아요?”
“흥! 혼자서만 그렇게 이겨놓고 술이나 마시자고요?”
“설마 금화 좀 잃은 게 아까운 거예요? 이 젤리아랑 단둘이, 내일 아침까지 술을 한 잔 마실 수 있는 기회인데?”
“돈은 아깝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도박꾼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군. 구슬치기는 몰라도, 다른 도박은 영애도 절 못 당할 겁니다!”
“오호, 다른 도박엔 자신이 있으시다……?”
아!
구경꾼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또 젤리아의 희생양이 나왔다는 눈치들이었다.
“한 번은 영애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 직성이 풀리겠단 말입니다.”
“혼이 덜 났군요, 좋아요. 어떤 종목으로 하겠어요?”
“카드, 카드라면 영애가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을 거요.”
씨익, 시리스가 사악한 미소를 꾸미자 구경꾼들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카드판은 2층에 있어요. 가시죠, 바멀 공자.”
두 사람이 일어서서 걸음을 떼자 우르르, 구경꾼들이 함께 몰렸다. 그들은 저 잘생긴 호구가 시리스에게 전 재산을 상납하고, 우는 얼굴이 되는 꼴을 다 지켜볼 기세였다.
자연스레 구슬판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2층 카드판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알리사와 엔야, 카시미르는 구슬판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1층에서 교란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플과 킨젤로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중앙 카드판 옆에 자리를 잡았다.
중앙 카드판엔 킨젤로의 대표인 추콘 톨더러와 지플의 대표가 앉아 있었다. 추콘 톨더러는 맨얼굴이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지플의 대표는 변장을 하고 있었다.
‘마탑주쯤 되는 것 같은데, 누군지는 모르겠군.’
바로 옆 테이블에 구경꾼들이 북적이기 시작하자 그들 사이에 무언가 말들이 오갔다. 이제 10시에 도박판 위에 금화와 섞어 물건을 넘겨야하는데, 갑자기 근처에 사람이 많아지니 신경이 쓰이는 기색.
이어 1층에 있던 킨젤로와 지플의 사람들이 올라와 상관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구슬치기판에서부터 신경전이 펼쳐져 올라온, 평범한 도박꾼들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이제 20분 남았다. 지플이 카드판 위에 나침반을 꺼내기까지.’
20분 뒤, 물건이 나오면 진과 시리스는 즉시 기습을 할 예정이다. 정확히 그 시간에 맞춰 진은 모든 판돈을 잃게 되고, 구경꾼들이 물러가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구경꾼들이 돌아갈 때 좌절한 얼굴로 그 틈에 섞이고, 시리스가 먼저 나가는 척을 한다. 그리고 나도 천천히 뒤따르면서 나침반이 오가는 판 위에 섬광포를 터뜨린다…….’
정확히 20분 만에 돈을 다 잃게 만드는 흐름은 시리스가 알아서 조절해줄 터.
하지만 진과 동료들이 이번 작전을 6개월이나 공들여 계획했듯, 적들에게도 온갖 변수에 대한 대비책이 준비되었을 것이다.
‘추콘 톨더러만 사살, 혹은 전투 불능으로 만들면 1층으로 가는 건 무리가 없다. 지플 대표가 추콘보다 성취가 높은 마법사일 가능성은 낮아.’
지플 대표로 보이는 이는 변장을 감안해도 결코 30대를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나이에 추콘보다 강한 마법사는 진이 알기로 없었다.
안즈의 대마도사 추콘.
그는 북대륙 안즈 대평원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인물이다. 키다드 홀과는 달리 한때 지플이 모셔오고자 안달이 났던 인물이기도 했다.
‘극방계’로 유명한 그의 독자적인 방어 마법 때문이었다. 결국 추콘은 암흑마법회 소속이 되었고, 지금 카드판에서 지플의 반대편에 앉아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백 받고, 이백 더.”
“콜.”
진의 판돈이 적당한 속도로 소모되기 시작했다.
‘섬광포가 터지면, 킨젤로와 지플은 일단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순식간에 피아식별을 끝내고 나와 시리스가 범인이라는 걸 파악하겠지. 혼란은 길어야 10초 내외.’
그 안에 최대한 많은 적을 처리해야 했다.
“음.”
중앙 카드판에서 한동안 예리한 눈동자로 진 쪽을 주시하던 추콘이 고개를 저었다.
“나이를 먹으니 별게 다 신경 쓰이는군. 저들이 그쪽에서 준비한 도적놈들은 아닐까 싶었거든.”
“하하,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추콘 경. 우리가 물건을 그냥 가질 생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한 짓을 하겠습니까? 그냥 돌려주지 않으면 될 걸 가지고요. 우리와는 상관없는 도박꾼들입니다.”
“허세부리지 말게, 칼 지플. 자네들도 조심스러우니까 이 섬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식으로 돌려줬다간 자칫하면 룬칸델이 냄새를 맡을 거고, 돌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룬칸델과 비먼트에 정보를 흘렸을 테니까 말이야.”
“말씀이 날카로우십니다, 추콘 경.”
“동맹 조항을 먼저 어겨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뻔뻔하기에 하는 말이야. 자네 부친께선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군.”
“기회가 된다면 직접 여쭤보시죠. 제 아버지를 찾아갈 만한 배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귀여운 소리를 하는군, 시간이 되었네. 물건이나 꺼내보게. 확인해보아야겠으니.”
진과 시리스에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구경꾼들이 웅성거리는 데다 거리가 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전 수행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열 시다. 정확하군.’
판돈이 다 떨어졌다. 진은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렸고, 시리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타깝게 됐네요, 공자. 이젠 나도 흥이 식었어요, 한 잔 마시기로 한 것도 그냥 없던 걸로 하죠.”
또각또각, 시리스가 판을 떠나자 구경꾼들도 자연스레 그녀를 따랐다.
순식간에 휑해진 카드판. 슬쩍 고개를 든 진의 눈에 중앙 카드판 한가운데 올라온 금화 한 자루가 보였다.
나침반이 섞여 있는 금화자루다. 자루를 연 추콘이 금화보다 조금 더 큰 황금빛 나침반을 꺼내드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진이 단숨에 테이블을 밟고 중앙 카드판으로 몸을 던졌다.
손아귀에선 새하얀 섬광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잔뜩 부풀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