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91)
제 111화
62화. 나침반 탈취 작전(4)
일인전승.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초월적인 무공, 투신기. 그 검을 익힐 수 있는 것은 오직 명왕족의 신검 시그문드의 주인뿐이었다.
그리고 시그문드는 이제 투신 반이 아니라 진의 검이다.
-잊지 마라, 진 형제. 그대는 명왕족의 형제이자 후예이며 단 하나뿐인 전승자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도 두려워 마라.
‘단죄’를 마주한 백랑족들의 절망적인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죄의 송곳 속에 투신기를 펼치던 반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일까.
싸움이 한창이건만, 문득 라프라로사에서 반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찬란한 뇌기가 어둑한 실내를 환하게 밝혔다.
“피, 피해!”
듀로카라 불린 백랑족이 소리쳤다. 굵고 거친 목소리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새된 소리였다.
단죄의 뇌기를 본 순간 직감한 것이다.
이건 자신들의 하찮은 망치 따위로 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쿠즈즈즉-!
뇌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송곳은 마치 고래처럼 보였다. 한 자루의 장검에서 튀어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이 강대한 힘.
피하라고 소리쳤지만.
백랑족들은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있는 공간도 없을 뿐더러, 명예와 긍지로도 극복할 수 없는 진한 공포가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단지 명왕족 일반 전사의 기운이었다면, 두려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망치를 뻗었을 것이다.
그러나 투신의 기운이었다. 반만년 전, 아득한 선조들은 감히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투신의 위엄이.
2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인간의 검 속에, 그의 눈동자 속에 잔뜩 배어 있었다.
‘오늘 나는 도둑으로서 네놈들을 찾은 게 아니다.’
크적!
단죄의 송곳이 듀로카의 몸을 꿰뚫었다.
피 한 방울, 살점 한 점조차 튀지 않았다. 극점이 듀로카의 몸을 관통하자마자 단죄의 송곳은 그의 나머지를 집어삼키고, 불태우고, 산화시켰다. 재로 만들었다.
낙뢰가 떨어지는 속도로.
‘정복자로서 온 것이지.’
피하라고 소리친 것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듀로카는 재가 되었고, 그 옆에 서 있던 백랑족은 동족의 죽음을 보고도 분노하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찌르는 찰나, 자신을 덮치는 뇌기의 환한 빛에 눈을 질끈 감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번쩍!
단죄가 한 번 더 섬광을 일으키자 그 역시 재가 되었다. 단죄의 송곳은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다음 먹이를 향해 빛을 번뜩였다.
무려 두 명의 돌격대장급 백랑족이 이토록 허무하게 죽는 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모두가 제 눈을 의심하고, 이 상황을 불신하는 사이.
시그문드가 추콘 쪽을 가리켰다.
추콘을 지키려고 붙어 있던 백랑족들은 아까부터 반사적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살려달라고 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처형대에 직접 선 왕처럼 한없이 단호할 뿐.
“으아아아!”
질끈, 눈을 감은 백랑족은 총 셋.
그들은 앞서 재가 된 둘처럼 곧장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다. 안즈의 절대자가 펼친 보호막이 잠시 단죄의 진행을 막은 덕이었다.
‘추콘의 눈이 벌써 회복된 건가. 아니, 그냥 직감적으로 펼친 것 같군.’
파지직! 프즈즉!
극방계라는 대마도사의 보호막은 과연 이름값을 하는 마법이었다. 눈이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펼친 것이 분명한데, 잠깐이나마 단죄를 막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투신기 3검 단죄를 완성했다고는 하나, 진의 오러는 아직 7성 후반이었다. 8성 초입까지만 들어섰어도 추콘의 보호막은 단죄를 3초도 버티지 못했을 터.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테지, 추콘 톨더러.’
쩌저적!
보호막에 균열이 일었다. 송곳의 뇌기가 균열을 파고들자 백랑족들은 몸을 둥글게 말았다. 포식자를 피해 굴속에 숨어드는 작은 짐승들처럼 말이다.
투신기는 자비로운 검이 아니다. 송곳은 곧 보호막을 완전히 찢어버렸고, 그 속에 숨은 백랑족들은 단말마의 비명만을 남길 뿐이었다.
캬아아악!
비명이 귓가를 찌르기도 전에 모든 백랑족이 목숨을 잃었다.
진은 그제야 단죄를 멈추고 남은 뇌기를 시그문드의 검신으로 불러 모았다.
사납게 울어대는 뇌전들이 회수되자, 투신기 사용으로 인해 불안정해진 광심장의 오러가 잦아들었다.
‘최소 9성은 되어야 무리 없이 사용하겠군.’
의미 없는 제약이나 다름이 없다. 투신기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오러로도 돌격대장급 백랑족 다섯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위력이니.
다시금 장내가 어둑해졌다.
진의 적들은 아무도 이 어둠이 다시 걷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둠이 걷힌다는 건, 곧 저 괴물의 번개가 시작된다는 뜻이니까.
‘시리스 님이 무사히 나침반을 엔야에게 넘겼을까?’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확인하고 싶으나.
추콘에 이어 칼 지플도 눈을 회복한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런 미친……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부하들이 번개, 번개가 떨어지고 있다며 허둥지둥할 때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사방이 검게 그을려 있고 탄내가 진동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백랑족들은 형체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 광경을 다 지켜본 칼의 부하들은 두 다리를 떨고 있었다. 어서 도망쳐야 한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은.
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추콘도, 칼도 떠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만빙을 사용했다면 탈라리스라 추정했을 것이고, 심검을 사용했다면 루나라 추정했을 것이며, 그저 무지막지한 살검을 펼쳤다면 룬칸델의 흑기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진이 사용한 것은 뇌기다. 그들이 아는 한, 뇌전을 사용하는 무인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알 수 없는 검술에 이어, 사라진 고대의 빛 마법까지. 게다가 놈이 펼친 빛 마법은 가문 기밀사록에 남아 있는 첸미의 섬광포…… 그것과 유사해.’
마검사인가.
칼과 추콘이 동시에 결론을 내렸다.
지플도, 킨젤로도.
최근 정체불명의 마검사가 델키에서 실력을 드러냈다는 소문을 확보한 상태였다. 진이 베리스와 쿠잔을 상대한 후부터 퍼진 소문이었다.
특히 지플 측은, 테싱의 극소수 잔당들을 통해 아킨에서 베라딘을 사칭한 자가 마검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태.
‘그렇다면 설마 저자가……?’
칼과 추콘의 머릿속에서 어지러운 추측들이 오가는 사이, 진이 그들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단지 한 걸음 움직인 것이 전부지만, 칼과 추콘의 부하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대는 모습.
“무슨 생각들을 하나, 추콘 톨더러, 칼 지플.”
“……어디서 온 놈이냐.”
추콘이 대답했다.
그도, 칼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나침반에 대한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간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래층에 진의 동료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대체 그들이 나침반을 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룬칸델과 비먼트만 조심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건만, 느닷없이 이만한 인물이 나타날 줄이야.
‘룬칸델은 아니다. 비먼트일 확률이 높아.’
‘설마 비먼트 놈들이 실험하고 있다는 마인의 완성형인가?’
어깨를 으쓱이는 진.
“내가 누구인지 알아봐야 의미가 없을 텐데. 네놈들은 오늘 다 죽어.”
싸늘하게 말했으나, 진은 추콘과 칼을 모두 사살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시간을 끌려고 한 이야기였다. 잠시 광심장을 안정시키고 1층의 동료들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도록.
또한 추콘과 칼의 태도를 확인하기 위한 이야기였다.
“이런 불쾌한 기분은 오랜만이로군. 상대는 나를 아는데, 나는 상대를 모른다라…… 지플에서 살다보면 좀체 그런 걸 겪을 일이 없거든. 정식으로 소개하지, 귀공. 나는 지플의 4마탑주 칼 지플이다.”
“알고 있다.”
4탑주, 켈리악 지플의 셋째 아들.
그에 대해선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소식지에 얼굴을 드러낸 적도 없고, 전생에서 마주친 적도 없는 인물. 다만 지플의 4마탑이 지플 내 궂은일을 도맡아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궂은일을 도맡는다는 건 언뜻 취급이 좋지 않다는 뜻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반대였다. 4마탑은 ‘이야기의 탑’으로 유명한 1마탑 다음으로 많은 인력이 배치된 기관이다.
즉, 지플 내에서 가장 입김이 강한 축에 속했다.
“귀공은 지금 허세를 부리고 있어. 인정해, 어마어마한 강자라는 건. 하지만 나랑 추콘 경을 동시에 상대할 정도는 아닐 것 같단 말이지.”
“과연 그럴까? 아깐 킨젤로의 벌레들을 찢어죽이네 어쩌네 하더니, 이제는 다시 추콘 경이 되었군?”
“오해는 풀면 그만이고, 뛰어난 적은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 편으로 만들자는 주의거든. 그런 의미에서 제안 하나 하지. 지플의 사람이 되게, 귀공이 무엇을 원하든 그 이상을 준다고 약속하겠어.”
“칼 지플! 네노오옴!”
추콘이 눈을 부릅떴다.
“귀 떨어지겠습니다, 추콘 경. 나침반이 저자에게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자는 우리 관계와, 여러 비밀들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싸워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개소리를……!”
“진정하십시오. 일단 저자가 거절한다면, 그때 힘을 합쳐 죽이시지요. 기분이 나쁘시다면 킨젤로 추콘 경도 영입을 제안하시고요. 솔직히 저자를 혼자서 감당할 자신은 없군요. 추콘 경은 가능하겠습니까?”
돌격대장급 백랑족 다섯이 죽고, 수많은 7성 이상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죽었다. 추콘과 칼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이토록 빠르게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플의 사람이 되는 게 어떤가. 나침반을 노린 걸 보니, 귀공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야.”
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속으로 확신했다.
‘근방에 백야의 공중함선, 코젝은 없는 것 같군.’
코젝.
콜론 유적지에서 경험한 적 있는 그 끔찍한 함선.
진은 과연 칼이 코젝을 가져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굳이 쓸데없는 말들을 했다.
‘코젝이 있었다면 이렇게 영입 제안을 할 게 아니라, 그냥 실력 행사를 했을 것이다. 섬이 지도상에서 사라져도 코젝으로 대피하면 그만이니까.’
이미 섬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염두에 둔 문제였다. 도박장에 ‘백야’가 없다는 건 확인했으나 코젝은 공중함선인 만큼 구름 속에도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코젝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코젝’은 지플이 전쟁을 선포할 때만 움직이는 함선, 이런 자리에 대기시킬 만한 것이 아니었다.
킨젤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거대한 전력을 섬 근처에 숨겨놨다면, 자칫 지플의 오해를 사 전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젝은 없군.”
진이 나지막이 말하자 칼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것보다 확실한 반응은 없었다.
“뭣……?”
“그렇다면 내 입장에선 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어, 마법사들. 하던 것 마저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