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95)
제 111화
63화. 탈출(1)
해적들은 진과 동료들이 몰래 따라가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달렸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우물이었다.
이 버려진 섬의 대부분이 그렇듯, 이미 말라붙어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인 우물. 그곳은 어딘가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해적들이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음.”
동료들이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 속에 뭔가 비밀 공간이 있고, 숨어 있으려는 의도인가?”
“비먼트의 정규 함대를 따돌릴 수 있다는 듯 말했으니, 그렇진 않겠지.”
“하지만 썩 똑똑한 친구들은 아닌 것 같았어. 진짜로 숨어 있기만 할 수도 있잖아. 놈들은 함대가 왜 섬을 포위했는지도 모르는 눈치고.”
“그건 그렇군.”
카시미르와 알리사가 말하자 나머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들어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헤엄을 칠 각오를 해야겠군요. 놈들이 묘수를 갖고 있길 기대해보자고요.”
진과 동료들이 우물로 다가갔다. 우물 아래엔 해적들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내부에 이어져 있는 다른 공간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내 차례대로 우물로 뛰어든 동료들의 눈에 쇠로 된 뚜껑이 바닥을 덮은 모습이 보였다.
일종의 문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데다 단단하게 닫혀 있어 안쪽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개방이 어려울 것 같았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우지끈! 팡!
맨손으로 쇠뚜껑을 우그러뜨려 뜯어내는 진.
“이야, 힘 좋아졌다? 꼬마. 쇠를 무슨 종잇장처럼 뜯네.”
무라칸은 별것 아닌 듯 말했으나, 시리스는 우그러진 뚜껑을 만지며 속으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또 통로를 내려가려는 찰나.
쉬이익!
한 자루 단검이 날아들었다. 3성 정도의 오러가 덧씌워져 있었으나 진이 파리 쳐내듯 손을 흔들자, 단검이 튕기며 바닥을 굴렀다.
단검을 던진 해적이 누구냐, 소리칠 새도 없이.
진이 안광을 희번덕이며 거리를 좁혔다. 해적은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진을 보며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콱! 진이 해적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진 일행이 쫓아온 해적 중 하나였다.
“놀라게 한 건 미안한데, 해치지 않을 테니 같이 좀 가자. 너흰 뭔가 방법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파앗!
진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난데없이 어두운 통로가 등불로 물들어 환해졌다.
처음에 해적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쇠뚜껑을 열어준 또 다른 해적들이 등불을 켠 것이다. 그들을 마주한 진 일행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몇 명이야?’
한두 명이 아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십, 혹은 백 명 이상. 그 많은 해적이 이 우물 아래 통로에 모여 있다는 게 신기할 뿐, 부담스러울 건 없었다.
해적이 백이든 천이든 진 파티에 위협이 되기는 어려웠다.
등불을 밝힌 해적들은 모두 무기를 꺼낸 채, 진과 동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마지막에 온 놈 누구야? 그놈이 꼬리를 밟힌 모양인데.”
“치콜이랑 벨브야. 칠칠맞지 못한 놈들.”
“다행히 따라붙은 놈이 몇 안 되긴 하군. 선장, 어떻게 할까? 일단 저것들 다 죽이는 게 좋겠는데.”
치콜과 벨브는 진 일행이 따라온 해적들의 이름이었다. 진 일행은 해적들이 저마다 상소리를 토하는 동안, 가소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조용!”
해적 무리에서 그렇게 소리친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진이 잘 아는 인물이며, 이 해적단의 우두머리였다. 해적왕 코스모스, 이 비밀 통로를 만든 장본인.
“네가 선장인 것 같군.”
흠칫!
진이 입을 열자마자 코스모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진 그레이……!?”
“뭐?”
“네놈, 진 그레이잖아!”
“그게 누군데? 갑자기 무슨 소리냐, 해적.”
진이 모르는 척 잡아뗐으나 코스모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를 내가 잊을 거라고 생각하나, 네놈 덕분에 아직까지 빚에 시달리고 있다고, 잘 만났다. 이 자식!”
“엥, 선장. 뭔 소리야, 저놈이 그 진 그레이라고?”
“진 그레이? 작년 우승자? 우리 선장 빚쟁이 만든 그놈?”
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금발과 화장 덕에 평소와 전혀 다르지만, 진의 본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은 알아볼 정도였다.
“뭐, 좋아.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 긴말은 필요 없겠지. 코스모스, 바깥 상황은 알겠지? 벨라도 제후국 함대가 쫙 깔렸어. 넌 어떻게 도망칠 셈이냐? 설마 이 통로 속에 숨어 있으려고 다 모인 건 아닐 거고.”
진이 뻔뻔하게 물어보자 코스모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뭐가 됐든, 내가 네놈을 도와줄 것 같나?”
“우리, 딱히 악감정을 가질 만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왜 이렇게 날카롭게 나오지?”
“닥쳐라! 네놈 덕에 우리 해적단은 아직까지 잘난 네놈 친구에게 금화를 갖다 바치고 있단 말이다……!”
“내 친구?”
“베라딘 지플, 그 악마 같은 인간에게!”
“아.”
기억이 났다.
-진 그레이! 가자아아!
그렇게 소리치며 폴 믹(단테 하이란)과 맞선 자신에게 금화 10만을 걸던 베라딘의 모습이. 당시 진의 승리 배당은 3배였다.
그날 진이 승리한 이후 코스모스는 돈이 생기는 족족 베라딘에게 상납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채무는 눈덩이와 같으며, 베라딘은 의외로 금전에 관해 칼 같은 인물이었다. 코스모스는 이미 원금을 다 갚았으나 그보다 더 큰 이자를 아직도 바치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베라딘 ‘지플’의 돈을 떼먹는 건 해적왕이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
“……그건 미안하게 됐군. 아니, 미안한 게 아니지. 그런 지하 무투 대회로 돈을 벌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폴 믹이 이겼으면 돈방석에 앉았을 것 아냐.”
“저놈 말하는 것 좀 보게!”
“선장, 뭘 망설여.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시간 없어, 빨리 처리하고 뜨자고.”
해적들이 눈을 부라리며 아우성을 쳐댔다.
그러나 정작 코스모스 본인은 머릿속으로 온갖 계산을 굴리고 있었다.
‘저놈도 폴 믹, 그 진 룬칸델이나 베라딘 지플에 못지않은 가문의 자제인 건 뻔하다. 혼자라면 모를까, 동료로 보이는 놈들도 심상치가 않아.’
코스모스는 아직도 폴 믹이 진 룬칸델이라 믿고 있었다.
무라칸과 퀴칸텔은 해적들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난 또 뭔가 했네, 꼬마. 그냥 대충 몇 놈 조지고 선장 놈 인질로 잡고 시작하자. 무슨 대화를 하겠다고 가만히 들어주고 있는 거냐?”
“동감. 시간 없으니 짓밟으면서 물어보자고. 확실히 이 섬을 뜰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무라칸이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오자 해적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이봐, 코스모스. 저 친구가 주먹을 뻗기 시작하면, 너흰 진짜로 다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
“개소리!”
“들어나 봐. 너희나 우리나 난리통에 섬을 빠져나가려고 이 지하에 모인 거잖아? 너희가 준비한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탈출시켜주면 네 채무를 모조리 없애주지.”
“뭐라고?”
“말 그대로야. 채무를 없애주고 사례금까지 두둑하게 얹어주마.”
스릉!
코스모스가 검을 뽑은 순간, 진이 기운을 드러냈다. 그 기운에 백여 명에 달하는 해적들이 주춤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동시에 쏜살같이 달려든 무라칸이 코스모스를 제압하고, 그의 검을 부러뜨렸다.
진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다 이렇게 속삭였다. 다른 해적들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혹시 거절이나 흥정을 시도할까봐 미리 말해두는 건데, 내 이름은 진 그레이가 아니라 진 룬칸델이다. 결승에서 나와 붙었던 폴 믹은 단테 하이란이고.’
각축장 결승에서 베라딘이 단테를 살릴 때 드러났듯이.
코스모스는 상황 판단이 매우 좋은 인물이었다.
‘……큭, 폴 믹이 아니라, 네가 진 룬칸델이었다고?’
‘그래. 나와 단테 하이란이 네놈의 각축장에서 만난 게 우연일 리가 없잖아. 베라딘 지플이 그걸 구경하고 있던 것도.’
코스모스는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결승전에서 베라딘 지플이 룬칸델의 예비 기수로 알려진 ‘폴 믹’을 구했는지를. 지금까지는 하늘에 사는 이들의 변덕, 혹은 거래로만 납득하고 있었다.
다른 해적들은 1초 만에 제압당한 코스모스를 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눈치였다.
‘이제 보니, 함대가 뜬 게 우리 때문이 아니라 네놈 때문이었던 모양이군. 조건이 하나 더 있다, 진 룬칸델.’
‘말해라.’
‘섬에서 탈출한 후, 우리 해적단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맹세해라.’
‘벨라도 제후국의 추적을 막아주라는 뜻인가?’
‘아니! 너와 네 동료들, 그리고 네가 기수가 된 후 룬칸델 수호기사들이 우릴 제거할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벨라도 제후국 따윈 문제없어.’
코스모스는 모르고 있으나, 벨라도 제후국뿐만이 아니라 비먼트, 지플, 킨젤로도 그들을 추격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코스모스에게 알려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도움을 받아 탈출한 다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맹세하지. 나와 가문의 명예를 걸고.’
코스모스로서는 어차피 선택지가 없었다. 맹세를 해달라고 말한 것도 공허한 요구에 불과할 뿐, 진 일행이 우물을 찾은 순간 이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칫,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따라와라!”
코스모스가 일어서며 그렇게 소리치자, 부하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선장! 뭔가 협박당한 것 같은데, 무리하게 체면 차리지 마. 그놈들이 괜히 꼴같잖다고 때리면 어떻게 해? 보아하니 우리가 감당할 작자들은 아닌 것 같구만.”
“진 그레이, 그놈도 폴 믹이나 베라딘 지플처럼 거물일 것 같긴 했어. 뭐, 자리는 넉넉하니까.”
“채무는 진짜로 없애주겠대?”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두머리가 굽혔으니 부하들은 알아서 설설 길 수밖에.
“그나저나 코스모스. 대체 방법이 뭐냐? 확실한 건가?”
해적들을 따라가며 진이 묻자, 코스모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룬칸델이라 할지라도, 그걸 보면 놀랄 수밖에 없을 거라는 태도였다.
잠시 후, 통로 끝에 다다르자 절벽이 드러났다.
절벽 아래로 공동이 있었고, 그 가운데엔 한 척의 거대한 범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하 깊은 곳에 난데없이 배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곳엔 함께 몰려온 해적보다도 더 많은 해적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질서 7호다. 우린 이걸 타고 도망칠 거고.”
“이름 한 번 거창하군. 대체 어떻게?”
“일단 타봐. 금방이니까.”
지하엔 질서 7호를 띄울 물이 단 한 방울도 없다. 게다가 사방이 막힌 공동에서 어떻게 배로 탈출을 한다는 말인가.
납득하지 못하는 사이 코스모스의 지시에 따라 해적들이 배로 승선하기 시작했다. 진과 동료들도 얼떨결에 배에 올랐다.
“터뜨려!”
코스모스가 소리친 순간, 공동을 이루는 절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적들이 미리 설치해둔 마법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쏴아아아-!
동시에 파괴된 절벽에서 문자 그대로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절벽이 다 무너지자 곧장 바다가 보였다.
“날아라, 질서 7호오오!”
물줄기에 휩쓸린 질서 7호가 그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