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20)
제 222화
72화. 들려온 소식, 찾아야 할 소식(2)
라이카 왕자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과거 그가 진을 치료했던 별장은 검증됐거나, 라이카와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만 공개된 공간이었다.
문지기들은 두말하지 않고 대문을 열었다.
마침 라이카 왕자는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최소 몇 시간은 기다리리라 예상했던 진으로서는 무척 다행인 일이었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공자.”
라이카는 진 일행을 만나자마자 호위를 물렸다. 휴페스터에서 ‘룬칸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에게 신뢰를 보이는 건 이런 것이었다.
“라이카 왕자, 오랜만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은, 저번에 델키 동부에서 공자를 찾던 그분들인 것 같군요.”
“그때는 폐를 끼쳤습니다.”
카시미르가 목례하자 라이카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크게 피해 입은 백성이 없었으니. 그나저나, 기별도 없이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꽤나 위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공자.”
“예, 사람을 하나 찾아야 합니다. 아주 급히.”
“말씀해주십시오.”
“최근 델키 용병들 사이에 맹독을 유통하는 자. 그자의 신변을 확보해야 합니다.”
라이카가 눈동자를 빛냈다.
진은 그 눈빛을 보고 당연히 라이카가 ‘거래’를 시도하리라 예상했다. 과거 진의 목숨을 구해주고 금광 소유권과 수호기사 배정을 따냈던 것처럼.
응해줄 의향이 있었다. 조슈아보다 쿠잔을 먼저 찾아내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수호기사 몇 명쯤은 더 파견해줘도 괜…….’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라이카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로군요.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저도 예의주시하고 있던 인물이라, 은거지를 파악해둔 상태입니다.”
의외로 라이카는 진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즉시 약도를 그려주기까지 했다.
라이카는 진이라는 황금 동아줄을 잘 붙드는 법을 아는 인물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공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돕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혹시 모르니 챙겨 가시는 게 어떨지요.”
라이카가 내민 것은 델키 왕가를 상징하는 징표였다.
‘룬칸델’의 흑검 문양에 빗댈 것은 못 되지만, 라이카는 진의 현재 신분이 예비 기수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행여 델키 내에서 곤란한 일에 처했을 때, 이 징표를 내밀어 무마하라는 의미로 준 것이다. 무척 세심한 배려였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즉시 별장을 빠져나왔다.
‘이놈의 델키는 올 때마다 촌각을 다투는군.’
마리우스들을 찾으러 왔을 때도 그랬다. 쿠잔과 베리스에게 실시간으로 살해당하던 다른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던 것이다.
약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델키 남부의 한 소도시였다. 일행은 남부로 향하는 이동관문에 탑승한 뒤, 즉시 말을 구해 소도시로 달렸다.
* * *
진 일행이 막 남부에 도착해 말을 구한 그 시각.
또 다른 이들이 라이카 왕자의 별장을 찾았다. 룬칸델의 집행기사들이었다.
“라이카 왕자, 급히 찾아야 할 사람이 있소.”
“누굴 말이오?”
“최근 용병들에게 맹독이 유포되고 있을 거요. 그 범인들을 데려오라는 룬칸델 2기수의 명이 있었소.”
“아, 그자라면 최근 나도 수배령을 내렸소. 아마 하루 이틀 내로 위치가 확인될 테니, 기다려보시오.”
* * *
독 판매자가 쿠잔이라면, 분명 위급한 상황일 것이다.
가는 내내 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사냥개로서 각종 훈련을 받은 것치고는 너무 허술하게 본인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기 좀 찾아주라는 듯이 말이다.
‘피 냄새?’
약도를 따라 도착한 집은, 입구에서부터 진한 피 냄새가 났다.
“……쿠잔 마리우스?”
일행은 문을 열자마자 쿠잔을 만날 수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수척한 얼굴을 가득 뒤덮은 수염. 변장은 하나도 안 했건만 한눈에 알아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는 진이 찾아올 걸 예상한 듯 그리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꽤나 초췌한 꼴이로군. 독 팔아서 돈 좀 만지고 있는 것 아닌가? 네놈이 반가운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쿠잔은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진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나 진은 그 담담한 듯 보이는 눈빛 속에 묘한 절박함이 스며있는 걸 느꼈다.
“이렇게 허술하게 위치를 노출했다는 건,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보아하니 조슈아보다 내가 먼저 찾아오길 바랐던 것 같은데. 아닌가?”
“……맞다.”
“베리스는 어디에 있지?”
“뒤쪽 방에.”
방으로 가자마자 입구에서 맡은 피 냄새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베리스가 흘린 피였다. 그녀는 침대에 묶여 있었는데, 계속 발작을 일으켜 쿠잔이 조치해둔 것이었다.
베리스는 의식을 잃은 채 간헐적으로 각혈을 하고 있었다. 진은 그것이 역류의 마지막 증상이라는 걸 잘 알았다.
즉시 치료하지 못하면 베리스는 사망할 것이다.
“알만하군. 베리스를 살릴 방법이 없으니 위치를 노출한 것이었나.”
돈이 있다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특히 휴페스터 연합국엔 마력 역류의 최후 증상을 다룰 수 있는 치유사가 다섯 이내였다. 사실상 수배자나 다름없는 쿠잔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휴페스터를 벗어나 루테로 마법 연방으로 갈 수도 없었다. 쿠잔과 베리스가 갖고 있는 통행증은 수십 개가 넘지만, 모두 조슈아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걸로 휴페스터의 이동관문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밀출국 역시 믿을만한 조력자의 도움 없이는 실행할 수 없었다.
하물며 베리스가 죽어가는 상황이다.
쿠잔으로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위치를 노출하고, 자신을 찾을 만한 두 사람 중 진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게 그의 마지막 수였다.
베리스가 이런 상태만 아니었다면, 쿠잔은 몇 년이고 숨어 진을 만날 수 있는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털썩!
대답 대신, 무릎을 꿇는 쿠잔.
“……살려다오. 아니, 살려만 주십시오.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 지난 실수들은 평생 속죄하겠습니다.”
지켜보던 카시미르와 알리사가 의외라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쿠잔과 베리스가 의리 따윈 없는 악당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 퀴칸텔은 계속 냉담한 얼굴이었다.
“너흴 거두는 건 차후 가치가 증명된 다음에 결정하겠다. 그래도 일단은 네 친구를 살려놓은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진이 그렇게 말하며 베리스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더 심각하군. 반켈라의 성자들이 아니면 어렵겠는데.’
베리스의 현재 상태는 산산조각 부서진 유리와 같았다.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순간은 지나간 지 오래였고,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문제는 베리스를 옮기는 일도 쉽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넌 마법사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마차만 태워도 온몸이 부서질 거다.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뼈와 장기가 더 상할 정도라고. 늦어도 너무 늦었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는 쿠잔. 그 모습이 진에게도 조금은 안타깝게 다가왔다.
처음 마주쳤을 땐 델키에서 이들에게 살해당할 뻔했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쿠잔과 베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룬칸델과 관련된 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상처받기만 한 셈이었다.
걸음마를 제대로 떼기도 전에 달의 희생에 입소했고.
타이뮨 마리우스를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로 여기며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을 겪은 뒤엔 조슈아가 진짜 원수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 그의 사냥개가 되었으며, 진을 만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타이뮨 마리우스는 이들에게 짤막한 유언조차 남기지 않았다. 타이뮨이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걱정했던 건 오직 루나 룬칸델, 진의 누이뿐이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베리스는 죽을 위기에 처했고, 쿠잔은 숙적이라 믿었던 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진이 외면하면, 이들에게 남은 미래는 조슈아에게 ‘처리’되는 것밖에 없었다.
“옮겨보기는 하겠다. 하지만 만일 그 과정에 조슈아의 하수인들과 교전이 벌어진다면 우린 베리스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해했나?”
고개를 끄덕이는 쿠잔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진이 결정을 내리자마자 알리사가 제 로브를 벗었다.
그러고는 로브로 베리스를 꽁꽁 싸맨 뒤, 움직이지 못하도록 밧줄로 고정을 시켰다. 그 과정에 팔다리의 뼈가 조금 부러졌으나 진이 보기엔 지금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
“특임대 시절, 마법조와 임무에 나가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마법조장이 알려준 방법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묶어서 옮겨야 한다고.”
진과 퀴칸텔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밧줄의 압박에 뼈가 부러지는 건 피할 수 없으나, 차라리 흐느적대며 장기가 상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로브에 뒤덮인 베리스는 꼭 소각을 기다리는 시체처럼 보였다. 극적으로 소생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이전처럼 멀쩡할 수는 없을 터였다.
진은 베리스를 우선 티칸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치유사를 초빙해 1차 치료를 한 후, 반켈라로 데려가 성자들과 협상을 하는 것이 베리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부 이동관문까지만 가면 돼. 그때까지 네 친구가 버텨주면 좋겠군.”
“저와 베리스의 통행증은 모두 수배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델키 왕가의 징표가 있으니 상관없다. 이동 기록은 남겠지만, 어차피 조슈아는 티칸 땅에 발을 못 붙여.”
상태가 상태인 만큼, 베리스를 말에 태워서 갈 수는 없었다. 일행은 베리스를 안은 채,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어서 이동관문으로 가야했다.
“대충 빠른 걸음으로 세 시간 정도 필요할 것 같군요. 공자, 그런데 가는 길에 보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이동관문은 대개 지역의 중심 기관인 만큼, 당연히 가장 큰 길로 이어진 중앙에 놓여 있었다.
지금은 백주대낮,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핏물 뚝뚝 떨어지는 로브를 안은 채 돌아다닐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수비대나 치안대는 징표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행여 조슈아의 사람에게 소식이 들어갈까 걱정입니다. 워낙 특이한 상황이니.”
조슈아의 하수인들과 마주쳐도, 수호기사나 집행기사 수준만 아니라면 파티가 위험해질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러나 전투 도중 베리스는 높은 확률로 사망하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나서자마자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람이 들어 있는 게 분명한 피 묻은 로브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거나, 제 입을 틀어막는 양민들이 적지 않았다.
수비대와 치안대도 곧장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징표를 보자마자 경례를 남기고 떠나거나, 호위를 자처하기도 했다. 모두 거절했지만 말이다.
“역시, 쉽게 갈 수는 없군. 카시미르 경, 미행이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