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28)
제 222화
74화. 흑룡의 힘(2)
퀴칸텔은 무라칸에 대해 더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미샤가 이렇게까지 무신경하게 말하는 걸 보면, 무라칸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근황이라기엔 너무 오래된 것 같은데요, 미샤 님. 우리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오백 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이백 년 전에 밀라 왕국에서 한 번 보지 않았나?”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꽤 오래되긴 했죠. 저는 뭐, 보시다시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 녀석 덕분에 올타 님의 계약자와 함께 이곳에 자리 잡고 지내는 중이죠.”
퀴칸텔이 눈짓으로 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샤의 시선도 진을 향했다.
“똘똘하고 강인한 아이더군. 미트라 대사막에서 저 아이가 시험을 치르는 걸 좀 지켜봤거든. 끝내 테마르에게 닿아 검을 휘두를 때는 상당히 놀랍더구나.”
티칸의 동료들도 진에게 들어서 아는 내용이었다.
미샤가 그때를 다시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뜻 없어 보이는 그 미소 속엔 오랜 슬픔이 감춰져 있었다.
테마르 룬칸델.
‘저번에도 느꼈지만, 어딘지 테마르와 비슷한 분위기가 있단 말이지.’
룬칸델의 초대 가주이자 그녀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
테마르를 잃은 후, 미샤의 삶엔 사명과 의무밖에 남지 않았다.
솔더렛의 대리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막아야 할 일을 처리하고, 솔더렛이 빚을 졌던 이들과 그들의 후손을 보살펴주는 게 미샤의 역할이었다.
“그때 절 지켜보신 줄은 몰랐습니다. 시험이 험했다보니 모양새가 썩 좋지 않던 순간이 많았는데, 괜히 부끄럽군요.”
“괜찮아, 멋있었어. 생전갈 씹어 먹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더구나.”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긴 어떻게 찾아왔냐고?”
“예.”
“무라칸. 그 머저리가 내 손바닥을 못 벗어났거든. 어릴 때 그놈 몸에 추적 마법을 하나 걸어놨었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모르더라고. 멍청해가지고는…….”
“추적…… 마법이요?”
“그래서 굳이 인세를 날마다 뒤져볼 필요도 없이, 너희 이동 경로는 다 꿰고 있었다.”
무라칸의 어린 시절이라면 최소 수천 년은 이어져온 추적 마법이라는 뜻.
소름이 돋으려는 찰나, 퀴칸텔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하시네요, 미샤 님. 저 녀석이 누군가한테 속는 건 꽤나 오랜만에 봅니다.”
“하여간, 누구든 내가 말하면 헛소리여도 일단은 곧이곧대로 믿는다니까.”
“하하, 하긴 그런 말도 안 되는 추적 마법이 있을 리 없군요.”
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무라칸은 영기로 고작 싸움박질밖에 할 줄 모르는데, 나는 조금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단다. 가령, 이렇게.”
미샤가 오른손으로 테이블에 비친 제 왼손의 그림자를 매만졌다. 다음 순간, 진은 마술을 처음 본 어린애라도 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게 대체?’
그녀는 자신의 왼손 그림자를 오른손으로 ‘떠내고’ 있었다. 마치 스푼으로 푸딩을 떠내듯이 말이다.
떠낸 만큼 왼손의 그림자가 지워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샤의 오른손에 둥글게 뭉쳐진 그림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퀴칸텔만이 오랜만에 본다는 눈치.
“와!”
유리아가 감탄을 내뱉었다. 어린애답게 손을 뻗어 만져보기도 했는데, 미샤는 잠시 그 모습을 귀여워하다가 후, 손에 모인 그림자에 숨결을 내뱉었다.
숨결에 흩어진 그림자가 진을 향해 수천 개의 점이 되어 날아갔다.
‘꼭 손바닥만 한 은하가 흐르는 것 같군.’
진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미샤의 그림자를 피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진에게 닿자마자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림자가 몸속에 스며들었다고 해서 진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없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미샤의 왼팔 그림자가 조금 옅어진 느낌이 드는 정도.
“그래, 네 말대로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권능이라면 가능하지. 내 그림자가 묻은 존재는, 언제나 내가 위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무라칸 녀석에겐 어릴 때 그림자를 묻혀놓았고. 그걸 쫓아 너흴 찾아온 것이다.”
이어 미샤가 자연스레 유리아를 내려두었다. 그러고는 제 몸을 영기로 흩어서 일행들의 머리 위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택엔 이렇게 들어왔으니 아무도 알아보질 못했지.]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미샤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은 의지대로 밀집되거나 흩어질 수 있었고, 완전히 흩어졌을 땐 그저 주변에 검은 가루가 조금 떠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후우웅…….
허공을 유영하던 영기가 뭉치며 진과 퀴칸텔의 가운데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을 빚어지며 색이 돌아오자, 다시금 미샤의 모습이 드러났다.
“자,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나?”
진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이런, 무인이 등을 이토록 쉽게 보이면 안 되지.”
바로 뒤에서 미샤와 똑같은 목소리가 하나 더 들려왔다.
황급히 돌아보자 그곳에도 미샤가 서 있었다. 옆에도, 뒤에도 미샤가 서 있는 것이다. 심지어 원래 있던 자리에도 미샤의 몸이 하나 더 앉아 있어서, 유리아를 다시 안아주는 모습까지 보였다.
퀴칸텔은 미샤의 이런 능력이 익숙했지만, 나머지 동료들은 입이 떡 벌어진 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모두 그런 표정이었다.
특히 라트리는 어린 시절의 막연한 공포로 남아 있던 존재를 직접 마주한 데다, 이런 능력까지 보게 되었으니 금방이라도 졸도할 기세였다.
“네 수호룡은 겁쟁이구나, 유리아.”
“하지만 착하고 귀여워요.”
“그런 편인 것 같긴 하군. 쿠키도 잘 만들고.”
오독, 오독오독…….
세 명의 미샤가 동시에 쿠키를 집어먹었다. 하나하나 환상이 아니라 진짜인 것이다.
‘확실히, 미샤 님은 무라칸이나 나와는 영기를 운용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나도 할 수 있는 건가?’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어!?”
“맙소사……! 지, 진 공자!?”
“도련님!?”
율리안과 카시미르, 그리고 길리가 동시에 한곳을 바라보며 입을 가렸다. 뒤따라 그곳을 쳐다본 진도, 이번만큼은 잠시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엔, 또 다른 ‘진 룬칸델’이 서 있었다.
진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복장, 똑같은 눈빛을 한 채. 퀴칸텔조차 이런 건 처음 본 듯 미샤와 새로운 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씨익.
새로 생긴 진이 접시를 들고 진짜 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하나 먹어보지 그래.”
억양이며 말투가 영락없이 진짜와 똑같아서, 방금까지 이 모든 걸 지켜보던 동료들조차 혼란에 빠질 지경이었다. 누가 진짜 진인지 말이다.
“흔치 않은 경험일 테지. 거울이 없는데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정작 새 진을 빚은 미샤는 별일 아니라는 태도였다. 그래서 더 소름끼쳤지만 말이다.
‘미친, 이건…… 계약자나 그로부터 탄생한 용이 아니라, 신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로군.’
만약 미샤가 아군이 아니라 적이라면…….
문득 그런 상상이 뇌리를 스치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스르륵…….
유리아를 안고 있는 미샤 하나만 남고, 두 미샤와 접시를 들고 있던 진이 영기로 흩어졌다.
진과 동료들은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슈아에게도…… 이런 능력을 지닌 존재가 붙어 있는 건가?’
놈의 ‘신체 복제’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새삼 떠올랐다.
“그 머저리가 영기로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건 알려준 적이 없을 테지?”
“그렇습니다.”
그러자 미샤가 왜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로군. 알려줬다면 그 녀석의 머리통을 부숴버렸을 것이다. 넌 그걸 다 잊을 때까지 내게 고문당했을 거고.”
“예?”
“섭리를 한참 벗어난 현상들을 본 소감이 어떻더냐?”
진은 미샤의 진중한 눈빛을 살펴보다 이렇게 답했다.
“……끔찍했습니다. 만약 아까 제게 쿠키를 준 그 진 룬칸델이 어디선가 멀쩡히 활동할 수 있다면, 저는 별것 아닌 존재가 되는 셈이지 않습니까? 또한 제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일들이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요.”
세상에 누구든, 자기 자신이 ‘하나’를 넘어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진짜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나’라면 더더욱.
딱히 계산해서 한 말이 아니라 그저 진심이었다.
그러나 무척 만족스러운 대답인 듯, 미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진이 충격을 받도록, 일부러 이런 권능을 펼친 것이다. 앞으로 그가 겪게 될 수많은 싸움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다.
미샤가 생각하기에 ‘영기’는 인간은 물론이고 용, 수인, 마족, 그리고 신까지 가릴 것 없이 필멸자가 다루기엔 위험한 힘이었다.
천년의 계약자. 그리고 분명히 마지막이 될 그림자들의 희망.
‘널 테마르와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두진 않을 것이다. 다행히, 무라칸이 아직까지는 잘 인도하고 있는 것 같군…….’
앞으로도 이런 권능엔 관심을 갖지 말거라. 내가 늘 너를 감시할 것이다…….
미샤가 그렇게 뒷말을 이으려는 순간, 유리아가 그녀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저씨는 안 그래.”
진도, 다른 동료들도 유리아가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진은 유리아의 진지한 얼굴이 귀여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날 아저씨라고 부른 건 오랜만이네, 유리아. 갑자기 뭘 안 그런다는 거야?”
“아무튼 안 그래.”
그 대화에 사색이 된 것은 미샤 하나뿐이었다.
‘아저씨라고……? 게다가, 내 속마음을 통찰하기까지. 예상은 했지만 이 아이, 결코 우연히 진의 곁에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아저씨.
그 한마디에 미샤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온갖 의문들이 스쳐지나갔다.
솔더렛, 자신들의 신이 왜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지, 왜 계약자와 소통 한 번을 하지 않는지, 왜 자신들에게도 목소리 한 번을 들려주지 않는지.
‘어쩌면 진은 테마르의 환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유리아가 일순 테마르의 모습을 본 것일 가능성이 높…… 아니, 어쩌면.’
진에게서 솔더렛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아즈 밀, 눈동자의 계약자. 그중에서도 유리아처럼 뛰어난 계약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은 속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미샤가 표정을 감추며 유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쨌든, 가끔은 이렇게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군. 음, 자네. 길리라고 했나?”
“예, 미샤 님.”
“동생 놈을 고치려면 며칠 시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내가 쓸 방을 좀 골라주면 좋겠군.”
“가장 좋은 방으로 골라보겠습니다.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다 적어서 주십시오.”
“고맙다. 방에 가서 퀴칸텔이랑 오랜만에 한잔하고 싶으니, 좋은 술이나 몇 병 부탁하지. 이왕이면 밀라 산, 100년 이상 묵은 친구들로.”
“알겠습니다.”
“진, 너는 내일 더 이야기하도록 하지.”
돌아선 미샤가 뭔가 떠오른 듯, 다시 길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네는…… 조심하는 게 좋겠어.”
“예?”
“지나치게 그놈 취향이야. 혹시 개수작을 부리거든, 단칼에 잘라버려.”
길리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흠흠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