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27)
제 222화
74화. 흑룡의 힘(1)
지플의 제1마탑.
흔히 ‘이야기의 탑’이라 불리는 이곳 최상층은 켈리악이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
“무라칸이라…… 미샤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보다 더한 대어를 만났군.”
켈리악이 손끝으로 수정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그의 앞에 앉은 카둔은 인간으로 변신한 채 잔뜩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그럼 뭐해, 빌어먹을. 눈앞에서 녀석을 놓칠 줄이야! 생에 두 번은 없을 절호의 기회였건만.”
“네가 이렇게까지 아쉬워하는 모습은 오랜만인걸.”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내 자신이 용서가 안 될 지경이다. 후, 무라칸을 붙잡았다면 분명 놈의 계약자까지 불러낼 수 있었을 텐데.”
솔더렛의 계약자.
그들이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마신석’의 가장 중요한 재료.
켈리악과 지플의 수뇌부들은 이미 1795년부터 ‘솔더렛의 계약자’가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진이 안드레이 지플을 만나기 전, 예비 기수 생활을 시작한 바로 그해였다.
그때쯤 카둔은 비먼트의 지룡 라부스와 운티엘로부터 그들이 무라칸을 직접 만난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켈리악과 카둔은 그 소식을 접하고도 안드레이 지플과 뷰렛타를 죽인 게 용이라면, 미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예상했었다.
무라칸이 잠에서 깨어났다 한들 힘을 잃은 상태로는 안드레이, 뷰렛타를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뭐, 그건 그렇지만. 비먼트 지룡들이 헛소리를 한 건 아닌 게 증명된 셈이니까, 찬찬히 다시 기회를 잡아보자고. 어차피 옛날 같은 힘은 전혀 없었다면서?”
옛날 같은 힘.
켈리악은 당연하게도 무라칸의 전성기를 직접 겪어본 적이 없었다. 문헌과 다른 용들의 증언으로만 들어봤을 뿐.
반면 카둔은 그 시절 무라칸의 가공할 만한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되찾을지도 모르지.”
“용의 심장을 재생하는 게 가능하다고? 마신석 없이?”
“아직 그런 사례는 본 적이 없지만, 흑룡은 일반적인 용들과 좀 달라. 놈이 산텔 인근에 있던 것도 힘을 되찾기 위한 행동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
켈리악이 흥미로운 듯 눈동자를 빛냈다.
용의 심장을 재생하는 게 가능하든, 아니든. 그는 그것보다도 카둔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더 신기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 시절의 무라칸과 한 번 붙어보고 싶어지는군. 힘을 되찾아서 다시 나타나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그나저나, 나는 오히려 성왕 쪽이 걱정되는군. 말도 없이 교리수호 여명회를 데려다 썼으니, 조만간 또 찾아와서 난리를 칠 텐데…… 그 친구, 만날 때마다 아주 피곤해 죽겠거든. 얼마나 강성인지, 나를 너무 싫어하기도 하고. 흐음, 이를 어쩐다…….”
켈리악이 이마를 짚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과장된 몸짓으로 고민스러운 마음을 드러내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냥 죽일까? 그 친구, 살 만큼 살기도 했고. 아마 죽으면 지옥보다는 천국 쪽으로 갈 테니 미클란에게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닐 거고.”
카둔이 그런 켈리악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미친놈.”
“하하, 좀 너무했나?”
* * *
라니가 경로를 알려준 덕에 일행은 산텔에서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었다.
도중 여명회 성기사 대여섯과 전투가 있었고, 도시를 빠져나온 이후 추격전을 펼치기도 했으나.
일행은 무난하게 그들을 따돌리고 통제령이 떨어지기 전에 숄 제후국의 이동관문에 몸을 실었다.
이제 그들의 도착지가 티칸이라는 것을 여명회가 유추하지 못하도록 경로를 좀 비튼 뒤, 돌아가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진과 동료들은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냐오오……”
무라칸이 진의 품에 안긴 채 힘겨운 듯 낮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조막만한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고양이로 변신된 상태임에도 카둔에게 입은 피해가 남아 있는 것이다.
강제 변신.
현재 무라칸은 평소와 달리 제 의지로 변신한 것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무의식적인 변신이 이뤄진 상태.
이런 강제 변신은 용 중에서도 특별히 강인한 존재들이 드물게 겪는 현상이었다.
“옛 힘을 잃었어도 이만한 방어기제가 남아 있던 게 천만다행이지.”
카둔에게 붙잡힐 뻔한 위기를 벗어나고, 생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지금으로서는 평범한 고양이로 전락한 상태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진, 얘 물 좀 더 먹여야겠다. 열은 라니 말대로 조금씩이라도 계속 내리고 있는 것 같은데.”
용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로 변신할 때엔 여러 치명적인 제약이 존재했고,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지금 같은 경우였다.
‘돌아가야 할 때’를 놓치면 용은 자력으로는 두 번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엇으로 변신했든, 그 생물로 전락한 채 용으로서의 자아를 잃어가는 것이다.
“냐아아-.”
진이 손바닥에 물을 받아주자 무라칸이 혀를 할짝거렸다.
당장은 무라칸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흑룡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흑룡을 제외한 다른 용들은 돌아올 때를 놓쳤을 때, 어느 용의 도움을 받든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흑룡은 반드시 같은 속성을 지닌 용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현재 활동하는 흑룡은 둘밖에 없으니, 일행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무라칸이 찾아 떠났던 제 누이, 미샤를 찾는 것.
“이 녀석이 흑룡이라는 게 오늘처럼 원망스러운 날이 없던 것 같군요. 돌아가서 무라칸이 짜뒀던 이동 경로를 다시 확인해보고, 곧장 그곳들 위주로 수색 시작해야겠습니다.”
“공자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살아계시니 금방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군, 쿠잔.”
“쿠잔 말대로 살아있고, 또 원래대로 돌릴 방법도 알고는 있으니 일단 돌아가자고.”
일행은 다음날 이른 아침까지 이동 경로를 비틀고 티칸으로 복귀했다.
무라칸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더 빨리 복귀하고 싶었으나, 그러다 꼬리라도 잡히면 여명회 성기사가 아니라 카둔과 지플의 마법사들이 티칸을 찾아올 수도 있었다.
다행히 무라칸은 밤사이 열이 좀 내렸다. 여전히 힘없는 울음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으리, 오셨습니까! 산텔의 마물은 역시 무라칸 님이 맞았던 모양이군요. 엥, 어째 무라칸 님의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그 화룡한테 좀 당한 겁니까요!?”
“다들 집무실로 모이라고 전해줘. 저택 내 치유사 중 동물 잘 다루는 친구들도 전부 소집하고.”
“동물요?”
“빨리.”
“알겠습니다. 당장 치유사들 소집하겠습니다요! 그런데 나리, 동료분들은 당장 집무실로 가기 어려울 겁니다. 나리께서 응접실로 가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만.”
“왜? 무슨 일 있나?”
제트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행여 다른 누가 듣는 게 걱정된다는 듯, 주변을 한 번 두리번대더니 이렇게 속삭였다.
‘그게, 그 무라칸 님의 누이분 있지 않습니까? 미샤 님이라고…….’
“미샤 님에 대한 소식이 있는 것이냐?”
“미샤가 왜!”
진과 퀴칸텔이 동시에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제트는 하마터면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그분 진짜 깡패가 따로 없습니다요. 완전 무라칸 님 누이 맞습니다요! 한 5분 전에 갑자기 저택을 찾아오셨는데, 오자마자 막 폭력을 휘두르시고……!’
“뭐……?”
진과 퀴칸텔이 반사적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베리스가 제일 처음 본 모양인데. 무슨 수를 쓴 건지 저택 응접실 한가운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리스가 깜짝 놀라서 넌 뭐야, 도둑년이냐? 라고 한마디 했다가…….’
“베리스가 어떻게 됐다는 말입니까?”
이번엔 쿠잔이 제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이, 이 사람아! 간 떨어지겠다. 그게, 그 흠흠. 너무 놀라지 말고 차분히 들어. 베리스는 그분 주먹에 턱이 조금 돌아갔어. 치유사들이 지금 돌려놓고 있으니까 아무런 문제는 없을…….’
투다다다다!
제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친 듯이 달려가는 쿠잔.
“흐미, 일 났네. 제 생각엔 저 친구도 턱이 돌아가겠는데요.”
일순 굳어 있던 진과 퀴칸텔도 응접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어, 나리. 같이 가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미샤가 여기에 왜 있으며, 어떻게 찾아온 것이지? 게다가 폭력이라니, 설마 티칸에 있는 이들에게 악의가 있는 건가?
무라칸을 되돌려줄까? 만약 못한다고 하거나, 싫다고 하면 어쩌지?
달리는 동안 온갖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잠시 후 진과 퀴칸텔이 마주한 것은, 젖은 빨래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쿠잔.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다소 기묘한 구도였다.
우선 달려든 쿠잔의 턱을 돌려놓고, 테이블에 막 다시 앉아 다리를 꼰 날카로운 인상의 흑발 여인이 보였다.
미샤였다.
“진 오빠다!”
“공자, 오셨습니까? 하하.”
놀랍게도 유리아는 미샤의 품에 안겨 있었고, 그 옆엔 쿠키와 차를 접시에 담고 있는 라트리가 있었다. 덜덜덜덜, 달그락달그락, 덜덜덜. 접시를 쥔 라트리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모습.
카시미르와 율리안, 엔야, 그리고 길리도 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알리사는 수비대 임무를 수행하느라 자리에 없었다).
카시미르는 공손한 사업용 미소를 짓고 있었고, 율리안은 덤덤한 얼굴이나 라트리와 똑같이 손을 떨어댔다.
엔야는 그나마 좀 나았으나, 순식간에 두 명이 실신하는 걸 지켜보았으니 다소 경직된 표정이었다. 길리만이 침착한 몸짓으로 미샤의 접시에 쿠키를 덜어주고 있었다.
진과 퀴칸텔은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이게 무슨. 어, 그런데. 이 여자가 미샤였다고?’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미트라 대사막의 세 번째 신기루, 테마르의 기운을 극복한 직후에.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미샤가 오자마자 왜 이 난리를 쳐놨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황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뵌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구면이었군요. 위대한 흑룡, 미샤 님. 진 룬칸델입니다.”
미샤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사막에선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으니 사실상 첫 만남이로군. 반갑구나, 천년의 계약자. 품에 안고 있는 건 혹시 내 머저리 같은 동생인가?”
“그렇습니다. 실은, 안 그래도 무라칸 때문에 미샤 님을 찾아뵐 궁리를 하고 있던 참입니다. 보시다시피…….”
“그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대충 아무 데나 던져두고, 일단 여기 좀 앉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구나.”
제트가 눈치 있게 무라칸을 받아 치유사들에게 데려갔다.
“퀴칸텔, 그간 잘 지냈느냐?”
“예, 잘 지냈습니다, 미샤 님. 기별이라도 주지 그러셨습니까.”
“못 본 새에 더 예뻐졌구나. 아무리 봐도 내 동생한테는 아까우니, 저딴 놈은 하루빨리 잊길 바란다.”
퀴칸텔이 난처한 듯 헛기침을 하다 손을 저었다.
“보자마자 갑자기 무슨 소리를…… 미샤 님, 그보다 그 녀석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알고 있다. 카둔한테 당했겠지. 이따가 고쳐줄 테니, 네 근황이나 좀 말해주거라. 인세에 오랜만에 왔더니 이야기가 그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