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36)
제 222화
76화. 쪽박과 독박(2)
‘지플은 아마 누명을 쓰기로 결정할 것이다.’
세도가, 그것도 일국이 아닌 전 세계에 권세를 휘두르는 가문인 지플이 위상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정의와 선을 수호하는 가문’이라는 이미지에 크나큰 타격을 입더라도, 도마뱀 꼬리가 될 인물 몇을 앞세워 누명을 쓰는 게 나았다.
이미지는 다시 회복하면 그만이지만 한 번 떨어진 위신은 쉽사리 되돌리기 어렵다.
룬칸델이라는 버거운 경쟁자가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지플의 4마탑주는 현재 킨젤로에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제가 직접 킨젤로의 마법사 추콘 톨더러를 종용해서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죠.”
진이 나침반을 탈환했던 당시 상황을 짤막히 덧붙여 설명해주자(물론 나침반에 대해선 함구했다) 비투라가 입을 벌렸다.
비투라로서는 충격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칼 지플, 지플의 4마탑주를 이용할 계획을 세운 것이군. 이제 좀 공자의 의도를 알겠소. 공자의 말대로라면 지플은 킨젤로를 대신해 누명을 쓰는 선택을 할 테지.”
“물론 모든 게 제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좋은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성국의 현 상태를 수면 위로 올리고, 놈들이 물러나도록 판을 만들기에 말이죠.”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비투라.
본래 비투라는 얼마 남지 않은 충신들을 이끌고 곧 마지막 항전을 펼치려고 했었다.
그 과정에 어떻게든 라니만 살려서 룬칸델이나 비궁, 혹은 무명에 보호 요청을 하는 게 마지막 목표였던 것이다.
이후 라니가 실낱같은 희망을 쥐고 훗날을 도모하든, 숨어서 여생을 마치든 그건 라니의 선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진이 찾아왔다.
‘어쩌면 이 소년은 아율라께서 보내주신 것일지도 모르겠군.’
룬칸델이라곤 하나,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예비 기수. 평소의 비투라였다면 진이 얼마나 비범하든, 결코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을 맡기기엔 너무 어리다고만 생각했을 테니까.
“진 공자.”
“말씀하십시오, 비투라 경.”
“나와 라니가 맡아서 해야 할 것을 이야기해주시오.”
“저는 지금 즉시 옛 오테리엄으로 향할 겁니다. 경께선 제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지플의 하수인인 척 연기를 하며 라니를 보호해주십시오. 라니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선 안 됩니다. 약을 쓰거나, 고문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플과 킨젤로는 여전히 라니가 가짜 성왕의 옆에서 강림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길 바라고 있을 터. 그러니 도망친 라니를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해 수작을 부릴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킨젤로, 지플에 붙어먹은 자들을 분류해서 명단을 작성해주십시오. 제가 돌아왔을 때 즉시 공개할 수 있도록. 또한 남은 충신들을 규합해주십시오.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알겠소.”
“진 공자.”
라니가 진에게 다가왔다.
“잠깐의 인연이 반켈라의 국운에 닿았군요. 지금은 그저 가만히 앉아 공자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봐, 종교쟁이. 감사 인사는 우리가 성국 신민들을 데려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기도나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라고. 그리고 비투라라고 했나, 너는 이제 좀 다친 척을 해라. 우리 떠나게.”
스걱!
진이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돌연 비투라가 제 팔을 잘라냈다.
“큭!”
라니가 기겁을 하며 즉시 신성력을 일으켰으나, 비투라가 그녀를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부상을 입은 상태여야 황금방패회 성기사들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었다.
“비투라 경, 그렇다고 팔을 자르실 것까진…….”
비투라가 자신의 검을 진에게 내밀었다.
“내 검을 그대로 가져가서 탈출하시오. 그대의 검은 1층 중앙의 목함에 보관되어 있을 거요. 나는 그대가 문을 나서자마자 추격대를 보낼 것이오.”
“강림제가 끝나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소.”
* * *
무사히 검을 회수하고 추격대를 따돌린 후 성국을 탈출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곧장 수배자가 되어 이동관문을 이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림제가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닷새.
진은 그 안에 신민들을 구출해 다시 성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정이 좀 빡빡하긴 하군.’
휘이이잉-!
무라칸의 거대한 날개가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오테리엄은 루테로 마법 연방에 속하지 않으므로 무라칸의 비행에 제약이 없었다.
성국 수호전 이후 황폐화되어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판단된 땅, 오테리엄은 현재 마물들이 득시글대는 미보호 구역이자 암흑마법회의 본진이었다.
영검과 명왕검을 익히고 진짜 강자의 반열에 들어섰다 한들, 진 혼자서 그곳에 쳐들어가는 건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드레이 지플의 숙적이자 진이 벤 롤트 조의 형, 차가운 조.
비먼트 아카데미의 대원로 훼지론 헨서크, 안즈의 대마도사 추콘 톨더러, 릴리스타가의 가주 수잔 릴리스타.
그렇게 네 사람이 암흑마법회 소속으로 확인된 9성급 마법사였다. 그 외에도 7, 8성급 마법사는 몇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고, 어떤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긴장 되냐, 꼬마?]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이 있는데 무슨.”
[크하하! 그렇지. 이 몸이 있는데 그딴 마법사가 몇이든 겁내서는 안 되지.]4할.
미샤가 되찾아준 무라칸의 힘.
‘만약 9성급 마법사가 전원 대기하고 있어도, 무라칸이 혼자 제압하는 게 가능할까?’
물론 9성급 마법사가 전원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 차가운 조를 제외한 나머지는 각자 단체나 가문을 이끄는 수장격 인물들이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암흑마법회의 본진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뭐, 부딪혀보면 알겠지. 이놈 자신감을 보아하니 안 될 것 같진 않군.’
달빛조차 없는 밤이었다.
지상을 내려다보아도 그저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 불빛 한 점 없는 이 버려진 땅 한가운데, 암흑마법회의 본진이 있다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디선가 이름 모를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무라칸은 점점 비행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꼬마, 근처에 다 왔나보군. 크크, 인간 마법사 놈들, 귀여운 짓을 해놨어.]“귀여운 짓?”
[결계를 펼쳐놓았다. 환영 효과와 경보 효과를 동시에 가진.]“그래? 당연히 결계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았지. 해제할 수 있겠어?”
그러자 무라칸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뚫고 지나쳤다. 크하하하, 몰랐냐?]거짓말.
그렇게 말하려다, 뒤를 돌아보곤 헛숨을 삼키는 진.
방금 지나쳐온 허공에 결계가 있던 흔적이 보였다. 감춰져 있던 마법진들이 망가진 채 허공을 떠돌았는데, 얼른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대체 마법진이 몇 개나 되는 거야? 방금 이걸…… 소리도 없이 지나쳐왔다고!?’
별처럼 빛나는 마법진들 사이로, 시커먼 기운 하나가 위화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라칸이 결계를 무너뜨리며 펼친 영기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영기 덩어리는 근처의 마법진을 빨아들이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테리엄에 암흑마법회의 마법사들이 자리를 잡은 건 50년 전이다.
암흑마법회는 그 50년 동안 수많은 마법사들의 마력을 갈아 넣어 이 대결계를 유지해왔으나, 무라칸에겐 평범한 성벽만도 못한 방책이었다.
“……저만한 영기를 준비 시간도 없이 펼친 거냐? 게다가 미친, 저게 뭐야. 한 덩어리가 아니라고?”
방금 그들이 지나쳐온 자리뿐만이 아니었다.
대체 언제 펼친 것인지, 하늘 곳곳에 방금 본 것과 똑같은 영기 덩어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 영기에 마치 곰팡이가 닦여나가듯, 대결계가 통째로 지워져가는 모습.
진은 잠시 입을 떡 벌린 채 무라칸의 뒤통수와 하늘을 번갈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뭘 이런 잡기에 놀라고 그러냐, 천년의 계약자라는 녀석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그……렇지.”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대결계 한쪽에 균열을 일으키는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뒷말은 삼켰다.
암흑마법회의 대결계는 그사이 완전히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아아, 저기 보이네. 저 성이 그 잡것들의 본진인가보군.]결계가 사라지자 시커먼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성채가 드러났다.
그 속에 있는 마법사들은, 지금 대결계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꼬마.]“어.”
[바로 치자. 외성벽엔 아마 실험 피해자들이 없을 거다. 외성벽을 허물 테니, 넌 곧장 내부로 진입해서 신민들 위치만 파악해. 그리고 발견하면 즉시 신호탄을 쏴.]“알겠다. 만약 전투 도중 신민들 외에 다른 양민들이 더 발견된다면, 그들도 구출해야 해. 지플의 실체를 까발려줄 중요한 증인들이다.”
[걱정 말라고. 꽉 붙잡아라, 숨결을 쏜 다음 곧바로 전속 하강할 거니까.]흐으으읍……!
무라칸이 상공에 자리를 잡으며 숨을 들이마시자, 결계를 허문 영기들이 그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암흑마법회의 성채까지는 대략 300미터, 숨결을 쏘기엔 다소 먼 거리다.
그러나 지금의 무라칸에겐 충분한 거리였다. 성내에 신민들이 없다고 가정하면, 그는 단 한 번의 숨결로 성을 통째로 무너뜨릴 자신도 있었다.
파아아아-!
하늘을 찢으며 성채로 쇄도하는 한 줄기의 검은 숨결은, 꼭 시커먼 유성처럼 보였다.
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숨결의 뒤꽁무니를 쳐다보았다.
자연스레 타격점을 쫓아 초점을 올리자, 이미 무라칸의 숨결은 외벽을 강타하고 있었다. 성채를 감싸고 있던 겹겹의 또 다른 결계들을 처참하게 찢어놓은 채.
쿠르르르……!
외벽이 허물어지며 지진이 일었고, 순식간에 번진 먼지구름이 성채 아랫부분을 휘감았다.
감탄할 새가 없었다.
숨결이 외벽에 닿자마자 하강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뺨을 덮은 살이 밀려나갈 정도로 빠른 하강, 무라칸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무너진 외벽을 지나치고 있었다.
“크아아악!”
“어어억!”
비명 소리가 들렸다. 외성을 지키고 있던 암흑마법회의 마법사들과, 킨젤로의 수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그들은 지상으로 추락하거나, 무너진 잔해를 겨우 붙잡고 있거나, 갑작스런 난리통에 정신이 나간 채 주저앉은 상태였다.
후우욱-!
그리고 무라칸의 양 날개에서 창처럼, 수백 갈래의 영기가 뻗어졌다.
영기는 숨결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의 목이나 가슴팍을 꿰뚫었고, 이미 숨이 끊어진 이들의 몸을 한 번씩 더 찔러 죽음을 확인했다.
무라칸의 공격이 시작되고 채 10초가 흐르지 않았건만.
벌써 이백이 넘는 마법사와 수인이 죽음을 맞이했으며, 성채는 반쯤 허물어진 채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된 것이다.
4할 힘을 되찾은 무라칸의 무위가 이 정도일 줄은, 진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산 자는 모두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그 누구도 내게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무라칸이 그렇게 소리친 사이, 진은 그의 등에서 뛰어내려 혼란 속에 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