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37)
제 222화
76화. 쪽박과 독박(3)
“비, 비상! 살려…… 커헉!”
외벽에 서 있던 한 마법사가 보호막을 치다 몸이 반으로 갈렸다.
공기 중에 떠 있는 영기로 이루어진 칼날에 베인 것이다.
한 개도, 두 개도, 열 개도 아닌 무려 백여 개에 이르는 검은 칼날이 허공에서 무라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칼날이 춤을 출 때마다 비명이 퍼졌다. 누군가는 숨이 끊기고, 육신이 찢기고, 불구가 되었다. 그 용맹한 백랑족 전사들조차 일순 멍하게 학살의 현장에서 눈을 떼지 못할 지경이었다.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였다.]외벽을 뛰쳐나가던 한 무리의 마법사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하는 무라칸.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은 칼날이 그들의 등을 내리찍었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없이 또 몇 명의 마법사가 죽었다.
7성 마법사의 보호막 따윈 종이처럼 찢어버리는 검은 칼날들 속 무라칸의 모습은, 비할 바 없이 사신 그 자체였다.
크아아아……!
포효.
그저 듣기만 해도 뼛속이 차가워지고, 살이 녹아 흘러내릴 것 같이 두려운 소리.
무라칸의 포효에 인간들은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고, 백랑족과 적호족의 전사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맞서기 위해 치켜든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제 몸을 가리고, 막아야 한다는 본능에 치켜들었을 뿐. 적호족과 달리 백랑족은 그나마 두 눈을 부릅뜨고 무라칸을 노려보기라도 했으나, 두 다리가 겁먹은 개처럼 달달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늘의 왕.
한때 다른 용들이 무라칸을 칭했던 말. 과연 무라칸은 그에 어울리는 위엄을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처단’이 목적이었다면, 싸움은 이미 끝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민들을 구해야 하니까 파괴를 멈춘 것일 뿐, 힘이 부족해서 성을 끝장내지 않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미친…….’
진이 황당한 얼굴로 무라칸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저 녀석이 춘화집이나 뒤적이고, 딸기파이를 찾아대던 그 바보 흑룡이란 말인가?
‘전성기, 전성기하며 떠들던 이유가 있었군. 4할이 이런 수준이면, 모든 힘을 되찾았을 땐…… 아버지나 투신 형제와 견줘도 손색이 없겠어.’
오테리엄에 도착하기 전까진 사실 조금은 걱정이 됐었다. 무라칸이 힘을 되찾았다곤 하나 정말 둘이서 놈들을 다 상대하는 게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9성 마법사 4인방이 모두 본진에 있다 한들 자신과 무라칸이 곤경에 빠질 일 따윈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붙잡힌 신민들이 어떤 상태인가, 그것뿐이로군.’
-놈들이 성국에서 실험을 한 건 반년쯤 된 일이오. 매달 100명 이상의 성국 신민과 병사들이 놈들의 근거지로 붙잡혀가서 실험체가 되고 있소.
‘비투라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곳에 끌려온 신민은 최소 600명. 아마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무사한 사람은 몇 되지 않겠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몇 명은 남아 있어야 했다. 모두 완전히 생체 골렘이 된 상태라 죽여서 데려갈 수밖에 없다면, 증언은 불가능했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은 검은 로브에 뮬타의 룬을 발동시키고 있어 얼핏 보기에도 침입자처럼 보였으나, 헐레벌떡 뛰고 있는 마법사들은 진을 붙잡지 않았다.
흑룡의 난데없는 습격에 성이 무너지고 있으니 그저 살기 위해 뛸 뿐이었다.
오히려 진이 자신을 지나치려는 마법사를 하나 붙잡았다. 엎어뜨리고, 목에 칼을 들이밀며 물었다.
“성국 신민들을 수용한 곳이 어디냐?”
“모, 모릅.”
푹.
망설임 없이 찔렀다. 킨젤로의 마법사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이나, 연민 따윌 가질 진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법사 셋을 붙잡고 같은 질문을 던지고 처리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하급 마법사는 모르는 곳에 가둬놨군.’
칫, 이를 악물고 허물어진 외벽을 내려서자 내성 입구를 빠져나오는 인간과 수인들이 보였다.
아는 얼굴이 둘 있었다. 추콘 톨더러와 수잔 릴리스타. 그들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소리를 지르며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1급 이상 마법사들은 연환 마법을 준비해라!”
“도망치는 놈들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어차피 저 흑룡의 눈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방어막을 칠 동안 어떻게든 놈의 주의를 끌어라!”
“조 경이 준비를 끝마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수잔과 추콘 둘 다 진땀을 쏟고 있었다.
외성벽에서 죽어나간 이백여 명의 마법사들보다도, 그들이 더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무라칸의 가공할 힘을.
‘차가운 조. 그자도 성내에 있었나보군.’
조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든 무라칸에게 위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진은 그들의 눈을 피해 그늘의 어둠에 바짝 몸을 붙여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복도로 진입하자마자, 막 뛰쳐나오던 한 무리의 적호족 전사들과 마주쳤다.
‘하나, 둘, 다섯.’
숫자를 헤아리면서 평소 눌러뒀던 명왕족의 기운을 한껏 발산시켰다. 적호족 전사들은 대뜸 무기를 내지르려다 뒷걸음질을 쳤고, 시그문드는 이미 뇌기에 물들어 있었다.
파지직!
내리쳐진 번개에 적호족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안 그래도 바깥의 무라칸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건만, 명왕족의 기운까지 더해지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넷은 태워 죽이고 하나는 팔을 잘라 붙잡았다. 그리고 마법사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 지하 수용소. 그런데 지금 조가 실험체들을 소집하고 있……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당신, 당신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실험체들을…….”
명왕족의 기운.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
킨젤로, 그들은 명왕족을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거부감, 진이 눈을 부라리며 적호족의 멱살을 붙잡았다.
“히익, 살려줘! 살려주세요! 다 말했잖아요!”
“앞장서라. 수용소로.”
“네, 네!”
적호족이 입에 거품을 물며 바닥을 기었다. 진은 주위를 살피며 그를 따라 이동했다.
한 번쯤 누군가에게 가로막힐 법도 하건만, 아무도 진을 붙잡지 않았다. 무라칸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성내 대부분의 병력이 뛰쳐나갔기 때문이었다.
“여, 여깁니다! 제, 제가 놈들을 관리했어요. 그, 어,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지하 수용소로 이어지는 복도 앞에 발자국이 가득했다. 인간의 발자국, 그것도 수백 명 이상이 한꺼번에 움직인 발자국이었다.
차가운 조가 그들을 빼돌린 흔적이었다.
수용소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스걱! 적호족의 목을 베고, 뛰어 내려가 내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 다음에 발자국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내부는 수용소라는 이름과 달리 마법사들의 연구실에 더 가까운 풍경이었다. 온갖 용액이 든 유리병과 책자가 바닥을 굴러다녔고, 곳곳에 열린 철창이 가득했다.
중앙 홀보다도 규모가 컸다. 조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데려갔다고 판단을 내리려는 찰나,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성왕께서 보내신 사람입니까? 바깥의 흑룡도?”
여인의 눈동자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으나 죽음을 각오한 자들 특유의 의지가 묻어났다.
“질문은 내가 한다. 신민들이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전원 차가운 조가 데려간 거냐?”
새하얀 연구복을 미루어보아, 그녀는 방금까지 이곳에서 신민들을 상대로 실험을 벌이고 있던 모양새였다.
진이 칼을 들이밀고 겁박하려는 찰나 그녀가 두 손을 들어보였다.
“난 새벽마차회 소속 성자입니다. 이름은 머츄얼 실라, 성왕 직속 1급 신관. 폐하의 명을 따라 3년 전 암흑마법회에 잠입했고, 지금은 이곳의 연구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원이 된 이후엔 보안이 너무 심해 본국과 연락하지 못하고 있었고요.”
“그걸 믿으라는 건가?”
그러자 여인이 펜던트를 열어 한 문양을 보여주었다.
휴화산, 성국의 상징 문양. 잠시 휴화산 문양과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는 진.
“나 역시 당신에게 궁금한 게 많지만, 길게 말할 여유가 없어요. 실험동에 폭발 마법이 작동된 상태입니다. 바닥을 보시죠.”
바닥에 막 새하얀 마법진이 형성되고 있었다. 경계 마법의 일종으로, 이럴 때를 대비해 암흑마법회의 마법사들이 장치해둔 것이었다.
“5분 뒤면 실험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남은 신민들을 살려야 합니다.”
“어디에 있지?”
“연구원들만 알고 있는 지하 통로가 있습니다. 실험체로 붙잡혀온 823명의 신민 중, 813명이 현재 전투형 생체 골렘이 되어 조를 따라갔어요.”
“뭐라고?”
“실험동 폐쇄가 시작되면 마력 주입 기구도 사라집니다. 그러면 남은 10명도 살릴 수 없습니다.”
끼이익.
머츄얼이 바닥을 문처럼 열자 비밀 공간이 드러났다.
연구원들만 알고 있다는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그 공간 속에, 넋이 나간 채 침을 흘리고 있는 열 명의 인간이 보였다.
성국의 신민들이었다.
“저들을 살려야 합니다. 성국에 빈손으로 돌아가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게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이 생존자들을 성국으로 데려가지 못하면…….”
머츄얼의 말대로라면 증언이 가능한 신민은 그 열 명이 전부였다.
‘이 여자를 믿어야 하나?’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수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3초쯤 고민하는 사이, 돌연 바깥에서 익숙한 소음이 들려왔다.
쿠르르, 우르르르……!
거리 때문에 무척 멀게 들리긴 했으나 진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건 분명, 뇌기가 일어나는 소리였다. 자연의 천둥이나 벼락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명왕족을 복원한 조의 생체 골렘들.
소음의 근원은 그들이었다.
“조가 생체 골렘들을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바깥에 있는 흑룡이 얼마나 대단하든, 오래 버틸 순 없어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조는 신민들을…….”
“명왕족을 본떠서 생체 골렘화 했다고?”
“그걸 어떻게. 설마 본국에서 그 정보를 파악한 겁니까?”
“후, 빌어먹을. 좋아. 머츄얼 실라, 당신을 믿겠다. 증인 열 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해. 방법이 있나?”
“마력 주입 기구만 비밀 통로로 옮기면 돼요.”
“이것인가?”
진이 투명한 관으로 연결된 강철 통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는 머츄얼.
그녀는 성왕의 첩자가 맞았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습격에 실험동이 파괴되고, 증언 가능한 유일한 신민들이 죽을 위기에 놓이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로서는 이 무거운 기구를 통로로 옮길 재간이 없었다. 어지간한 5성급 무인들의 완력으로도 옮길 수 없는 무게였다.
번쩍!
진이 기구를 들어 단번에 통로로 옮겼다.
“당신도 들어와서 조금만 기다리도록 하세요. 이제 그 안에 흑룡이 당하지 않도록 아율라께 기도를 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 모든 마력을 신민들에게 주입할 테니, 끝나는 즉시 당신은 이들을 데리고 탈출하십시오.”
“아니. 난 바깥에 좀 다녀와야겠으니 책임지고 신민들을 살려놓아라.”
“조가 당신의 존재를 모를 때, 조용히 탈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흑룡은 비행이 가능하니 차후 충분히 도주할 수 있을 겁니다.”
“용 없이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탈출하라는 거냐?”
“그건 암흑마법회가 길들인 마수들을 내어줄 수 있어요.”
무라칸의 안전을 담보로 진에게 도망치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염치없는 일인지는, 머츄얼도 잘 알았다. 다만 그녀로서는 성국에 증인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성국도 중요하지만, 내겐 그 녀석이 우선이야. 무라칸이 잘못될 가능성을 무시하면서까지 성국만 도울 순 없다.”
“……알겠습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이해한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마.”
“아율라의 시선이 당신과 흑룡께 닿기를.”
철컥!
비밀 통로의 입구를 닫고 돌아서는 진.
명왕족의 힘은 그 누구보다도 그가 제일 잘 알았다. 813명의 생체 골렘이 정말 명왕족을 ‘비슷하게’ 복원한 수준이라면, 제아무리 무라칸이라 할지라도 위험했다.
다시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늘을 뒤덮고 있는 수천 갈래의 뇌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