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38)
제 222화
76화. 쪽박과 독박(4)
온 하늘이 멍든 듯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과 눈이 따가울 정도의 빛, 그 아래로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 같은 형상을 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813명의 생체 골렘 피해자였다.
그들은 모두 변신을 끝마친 상태였고, 몸이 뇌기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 명왕족이 광심장의 힘을 사용할 때처럼.
쿠르르……!
생체 골렘들의 몸을 휘감은 빛이 강해질 때마다 하늘에 뇌전이 퍼졌다. 무라칸의 모습은 뇌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생체 골렘들의 뇌기는 얼핏 보면 대단한 힘처럼 보였으나.
하늘을 ‘덮었다’는 시각적인 효과가 클 뿐, 머츄얼이 걱정한 만큼 초월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힘을 사용하는 방식은 엇비슷하지만 진짜 명왕족의 뇌기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무라칸이 생체 골렘에 당할 일은 없겠군.’
진이 급히 뛰쳐나온 건, 생체 골렘이 명왕족에 준하는 전투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머츄얼이 ‘흑룡도 당해낼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고.
머츄얼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저 정도 뇌전을 일으키는 생체 골렘이 팔백에 이른다면, 게다가 9성 마법사 셋과 수백 명에 이르는 암흑마법회 마법사들, 백랑족, 적호족까지 있는 상태라면.
어지간한 용이나 이름난 무인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머츄얼은 ‘흑룡 무라칸’의 무위를 알지 못하고, ‘진짜 명왕족’과 진의 힘을 알지 못했다.
‘죄 없는 신민들을 붙잡아 괴물로 만들고, 내 형제들을 욕보여? 이 씹어죽일 놈들……’
프즈즉…….
진이 시그문드를 뽑았다.
암흑마법회.
그들은 오늘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무라칸!
진이 한껏 기운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부르자.
시퍼렇게 빛나는 하늘 한가운데, 검은 소용돌이가 생기며 무라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생체 골렘을 제외한, 암흑마법회의 모든 단원들이 진 쪽을 쳐다보았다.
“저, 저놈! 저놈이 왜 여기에!”
기겁하며 소리를 지른 그는 안즈의 대마도사, 추콘 톨더러였다. 뮬타의 룬, 진이 쓰고 있는 마법 투구를 보자마자 알아본 것이다.
반사적으로 주춤하는 추콘을 보며 나머지 9성 마법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추콘 경, 저자를 알고 있소?”
깡마른 몸에 눈이 움푹 파인 사내, 차가운 조.
“벨라도 제후국에서 나침반을 탈취한 놈이오! 조심하시오, 저놈은 생체 골렘 따위완 비교도 안 되는 뇌기를 다룬단 말이오……!”
조와 수잔이 대답하려는 찰나, 무라칸이 입을 열었다.
[다 확인했냐?]신민들의 위치와 성국으로 가져갈 증거에 대한 질문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진.
[그럼 더 시간 끌 것 없겠군. 어떻게 할까?]“생체 골렘과 떨거지들은 전부 죽이고, 9성 마법사들은 불구로 만들어서 생포해.”
[그건 약간 까다로운 주문인데. 그냥 다 죽이면 안 되냐?]“그럼 생포는 차가운 조, 한 놈만 해.”
씨익!
무라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알았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미친 것이 분명한 놈들이로다. 네깟 놈들이 시론 룬칸델이나 켈리악 지플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쿵!
차가운 조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갑자기 습격당해 성채가 무너지고, 연구실이 폐쇄된 것도 어이가 없어 미칠 지경이건만 웬 핏덩이 같은 놈이 말 같지도 않은 도발을 해대니 그로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수잔 릴리스타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습격에 당했을 뿐, 암흑마법회의 본진이 고작 용 한 마리와 무인 하나에게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진을 직접 겪어본 추콘 톨더러만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진의 무위가 대단한 편이라 한들, 자신들 전부를 상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판단했다.
하늘에 떠 있는 저 흑룡도, 엄청나긴 하지만 조와 자신들이 항전하는 이상 이곳을 초토화시킬 순 없을 터였다. 분명 그럴 터인데…….
‘왜 이리 느낌이 좋지 않단 말인가……!’
추콘이 가슴을 옥죄는 불길한 예감에 심호흡을 하려는 찰나.
후우우웅-!
무라칸의 두 날개에서 해일처럼 영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하늘 곳곳에 자리 잡은 영기들은 곧 소용돌이가 되어 뇌기를 잠식했고, 금세 지상에 어둠이 깔렸다.
여전히 생체 골렘들은 뇌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뇌기는 하늘로 치솟다가도, 영기가 잠식하고 있는 경계에 닿기만 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오호, 과연 그림자의 용이란 말이렷다.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이어지나 지켜보도록 하지! 수인들은 저놈을 잡아와라!”
조가 소리치자 근방에 있는 수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살기등등한 눈빛을 한 채 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프즈즉! 파직!
시그문드의 창백한 칼날을 감싼 뇌기가, 진의 의지를 따라 사납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감이 좋은 수인들은 그때 이미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그게 아닌 수인들은 진의 뇌기와 생체 골렘들의 뇌기가 별다를 것 없다고 느끼며 오러를 끌어올렸다.
시그문드에서 빠져나온 뇌기는 기둥의 형상을 빚으며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크하하하!]동시에 무라칸은 조의 무지를 비웃으며 하늘을 뒤덮은 영기를 모두 해방시켰다.
영기 해방.
영기를 다루는 존재들의 시작이자 끝, 무라칸의 호박색 눈동자가 빛을 발하자 일순 일대가 완전히 어둠에 잠겨들었다.
단지 표현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이들은 진을 제외하면 모두 일순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극히 짧은 시간이긴 했으나, 제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가 어두워지는 건 누구에게나 큰 공포일 수밖에 없다.
방금, 눈이……!?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 암흑마법회의 마법사들과 수인들은 반사적으로 제 눈가를 매만지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너도 방금 눈앞이 캄캄해졌냐, 그런 얼굴들을 한 채 말이다.
다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줄 알았다.
발아래 놓인, 자신들의 그림자가 멋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어, 으억, 이, 이게 무슨!”
“그림자가……!”
그림자가 찢어지고 있었다. 빛을 따라 자연스레 흐느적대는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찢어지고 늘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옆 사람의 그림자와 섞이기도 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고, 상상해본 적 없는 그 괴악한 광경에 급격히 구토감이 치밀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모든 이들의 그림자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남아 있는 약 육백 명의 마법사와 수인들 중, 5할 정도가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멀쩡한 이들도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일단 숫자를 좀 줄일 필요가 있겠단 말이지. 꿈틀대는 게 득시글대는 꼴을 보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잖나.]무라칸이 말을 끝맺자마자.
지상 곳곳에서 비명과, 무언가 터지고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들이 번졌다.
“크, 크억!”
“살려……!”
영기 해방의 권역에 닿은 이들에게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삼백에 달하는 이들의 몸이 꺾이고, 찢어지고, 망치에 얻어맞은 조각상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그림자가 변형됐던 것과 똑같은 꼴을 당하고 있었다.
그림자의 목이 잘린 이들은 실제로 목이 잘렸고, 그림자의 몸이 터진 이들은 실제로 몸이 터져나갔다.
시체들이 맥없이 바닥에 스러지는 와중.
죽은 이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그림자는 하늘 위, 무라칸에게로 빨려 들어가며 흡수되는 모습이 이어졌다.
조도, 수잔도.
그 지경이 되자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수십 년 동안 마법을 익혀 대마법사의 자리에 오른 그들조차, 이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추콘은 아까부터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고, 조와 수잔은 이제 막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기 해방이 펼친 아수라장에 몇 초쯤 시선을 빼앗긴 게, 그들에겐 죽어서도 잊지 못할 한이 될 터였다.
그 사이 진도 이미 준비를 끝냈기 때문이었다.
시그문드가 바닥에 꽂힌 채, 그림자들이 어지러이 떠다니는 대지를 또 한 번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투신기 4검
침식
시그문드를 따라 사방에 부유하고 있던 뇌전 기둥들이 일제히 바닥에 내리꽂혔다.
진한 뇌기가 온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813명의 생체 골렘들이 무라칸이 힘을 쓰기 전까지 하늘을 시퍼렇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같은 뇌기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명왕족의 힘을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9성 마법사들조차, ‘진짜’는 이쪽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쿠르르르!
10성 기사, 바네사 올슨조차 본능적으로 피할 생각부터 한 침식의 뇌전이었다.
평범한 수인 전사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땅에 꽂힌 뇌전의 기둥들이 우레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커먼 하늘 곳곳에 진의 뇌기가 일렁였다.
“피해라!”
조가 진에게 돌진하던 수인들에게 소리치며 지팡이를 뻗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맹렬히 쏟아지기 시작한 우레에 벌써 진의 근처에 있는 수인들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콰드득-!
조와 추콘이 펼친 보호막에 나머지가 가까스로 살아남기는 했다.
하지만 우레를 피한 수인들은 모두 멍한 눈빛을 한 채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이 풍기고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나운 명왕족의 기운에 몸이 마비된 것이다.
스릉!
진의 검은 두 자루였다.
시그문드가 계속 침식을 이어가는 와중, 브라다만테가 검집을 빠져나왔다.
검게 물든 칼날이 보호막 아래 웅크려 있는 수인들의 목으로 쇄도했다. 칼날이 궤적을 그릴 때마다 잘린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신처럼 수인들을 죽이고 있는 진과, 조의 시선이 맞닿았다.
아직 생체 골렘은 오백 정도가 살아남은 상태였다. 저놈을 쳐라! 조가 악을 쓰자, 생체 골렘들이 일제히 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가 4, 5성 정도의 위력을 내는 미완성 생체 골렘 따위가 진을 어쩔 수 있으리라고 판단해서 소리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진이 자신에게 쇄도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을 뿐.
생체 골렘이 몇이나 있든, 진과 무라칸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그도 깨달은 것이다. 진과 무라칸의 무위, 특히 무라칸의 무위는 분명 그의 상식을 한참 벗어나고 있었다.
‘이것들을 모을 게 아니라, 도망을 쳤어야 했다……! 어리석은!’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화르륵-!
진은 테스를 소환한 채, 생체 골렘들 아니, 생체 골렘이 된 불행한 양민들을 밀어내며 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내 형제들을 능멸한 죗값을 치를 때다.”
수잔과 추콘은 무라칸의 추가 공격을 막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는 푸른 불꽃에 무참히 스러져가는 생체 골렘들을 바라보며, 진이 ‘생포’라는 단어를 말한 걸 떠올리고 있었다.
‘투항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기만 하면, 단장님께서 어떻게든 날 구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