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39)
제 222화
76화. 쪽박과 독박(5)
중압의 불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나운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기분 더럽군.’
불길에 휩싸인 생체 골렘들은 얼마 전까지 양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명왕족 형제들이 능멸 당했다는 사실.
그것들이 아까부터 줄곧 진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들을 방패삼아 시간을 벌려는 네놈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대마법사라는 놈이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냐? 튀어나와라. 조! 생포하고 싶은 마음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니.”
“그만, 그만! 내 자네를 따라갈 테니, 일단 멈추시게!”
조가 양손으로 지팡이를 번쩍 들어 항복을 표하자, 추콘과 수잔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들로서는 필사적으로 무라칸의 공격을 막는 중이건만, 수장인 조가 난데없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심지어 무라칸에게 ‘과연 그림자의 용이렷다’라고 말하며 가장 먼저 도발한 것이 조였다. 그런 그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고 있으니 귀가 의심될 지경이었다.
“조 경, 이게 대체 무슨……? 항복하겠다는 겁니까?”
수잔의 물음에 조는 오히려 그녀를 나무랐다.
“하! 이 답답한 사람, 흑룡의 무위를 보고도 모르겠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요. 이대로라면 전멸은 시간문제란 말이외다. 항복이 답이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경들도 어서 항복 의사를 밝히시오. 저자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품위와 자존심, 체면을 미뤄두고 상황만 본다면.
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추콘과 수잔 또한 저 괴물들을 상대로는 답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셋 모두 9성이라는 초인의 경지에 오른 후 실로 오랜만에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헛소리 마시오, 조 경!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오? 항복? 그게 정녕 수장이라는 자가 할 말이오? 순순히 항복하면, 저 악마가 우릴 살려줄 것 같소? 이런 멍청한!”
추콘이 홱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추콘 경, 지금 뭐라고 했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건 흑룡이지, 저 핏덩이가 아니오. 저놈을 잡아 인질로 삼으면 흑룡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단 말이오. 계약자를 죽게 내버려두는 수호룡은 없으니!”
추콘은 이들 중 유일하게 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진이 등장했을 때 추콘만이 묘한 위기감을 느꼈다. 나이에 비해 실력이 엄청난 건 둘째치더라도, 그때처럼 또 ‘수 싸움’에서 밀려 상황이 진의 뜻대로만 흘러갈 것 같다는 불길한 직감이 컸다.
벨라도 제후국의 버려진 섬에서 마주쳤을 땐 그저 마검사인 줄 알았다. 진이 솔더렛이나 흑룡과 관련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7성 이상의 마법과 8성 이상의 검술, 끔찍한 뇌기에 이어 영기까지 갖고 있다니.
9성 마법사라 한들, 웬만해서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일 수밖에.
‘지금 조 경이 항복하면 미래는 없다. 반드시 저놈을 붙잡아 흑룡과 거래를 해야 한다……!’
추콘은 진이 계약자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사기적인 핏덩이만 붙잡는다면, 이 싸움은 자신들의 승리라고 말이다.
“조 경,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놈을 붙잡으시오!”
“추콘 경의 말이 옳습니다, 조 경. 저놈이 대단하다한들 덜 자란 괴물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아니, 조 경 혼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잔까지 가세하자 조는 잠시 수치심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이 구구절절 옳기 때문이었다.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그 간단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단장께 기댈 생각만 했다니!’
조가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추콘의 말대로 위험한 놈이다. 저 애송이의 기세에 눌려 이 몸이 괜히 겁을 집어먹고 있던 것이야.’
추콘이나 수잔보다 본능적인 공포에 조금 더 충실했다가 벌어진 수치스러운 해프닝일 뿐.
“내 잠시 이성을 잃었었소. 그래, 흑룡이 날고 기어도 계약자를 붙잡으면 어쩔 수 없을 테지.”
“흑룡은 우리가 최대한 묶어두고 있겠습니다. 오래 버틸 순 없을 테니, 어서 붙잡아 오십시오.”
크아아악-! 크악!
생체 골렘과 수인, 마법사들의 비명 소리가 전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소음 때문에 진과 무라칸은 9성 마법사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만 진은 그들 사이에 뭔가 대화가 오갔고, 그 결과 방금 전 항복 의사를 보인 조의 태도가 다시 변한 걸 알 수 있었다.
조의 지팡이가 마력으로 물들어갔다.
특유의 비열하고 잔인하며 가벼운 괴팍한 성격에 가려져 있었으나, 그는 오랜 시간 안드레이 지플의 숙적으로 거론된 대마법사였다.
“썩 비켜라! 이 쓸모없는 불량품들아!”
남은 생체 골렘들이 조의 명령을 따라 양옆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길이 열리자마자 테스가 조를 향해 숨결을 토했다. 그리고 조는 ‘차가운’이라는 자신의 칭호에 어울리는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키리리릭-!
테스의 숨결이 쇄도하는 궤적, 그 아래의 지면이 터지며 얼음의 기둥들이 솟구쳤다. 일반적인 빙결계 마법과 달리 그 얼음은 불길한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쩌억-!
기둥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얼음으로 이뤄진 주둥이였다.
그가 직접 만든 또 다른 골렘의 주둥이. 벌어진 주둥이가 길게 뻗은 테스의 숨결을 물어뜯었고, 이내 지면이 한 번 더 갈라지며 골렘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어어억-!]무라칸보다 조금 작은 크기. 열 개의 상아를 지녔고, 보랏빛 얼음으로 빚어진 코끼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상아처럼 보이는 것이 테스의 숨결을 물어뜯은 주둥이였다. 놈은 마치 짐승이 뱀을 끊어먹듯 숨결을 조각낸 뒤, 불쾌한 저음으로 괴성을 토하고 있었다.
“허.”
난데없이 땅에서 골렘이 치솟자 황당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테스의 불꽃을 씹어 먹으면서 등장했으니, 진이라 할지라도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게 대체 뭐야? 저딴 터무니없는 게 땅속에 있었다고?’
진은 물론이고 무라칸조차 놀라는 기색이었다.
“폴룩, 테스의 불길을 잡아라, 그리고 날 보호해라!”
단장의 지혜와 기억을 빌려 최근 제작하기 시작한 미완의 생체 골렘, ‘명인’과 달리 이 폴룩이라는 골렘은 완성품이었다.
불에 내성을 갖춘 얼음 골렘.
폴룩을 만들기 위해 고대의 빙하를 들춰 백코끼리를 찾았고, 어린 마족들을 납치했으며, 다섯 개의 불사조 심장과 날개를 사용했다.
한때 안드레이를 넘어 켈리악을 꺾겠다는 헛된 꿈이 있던 시절부터 완성까지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대마법사 차가운 조의 역작이자 걸작. 추콘과 수잔이 같은 9성임에도 조를 한 수 위로 보는 이유.
폴룩이 등장하자마자 전장에 퍼진 푸른 불꽃들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조는 스스로 고안하고 ‘냉한계’라 이름 붙인, 전용 마법을 영창하는 모습. 그의 지팡이를 타고 퍼져 나온 보랏빛 얼음 조각들이 순식간에 진을 포위했다.
수백 명의 궁수가 전신을 조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안드레이 지플의 숙적이었던 건 아니다, 이건가.’
진은 침착하게 자세를 잡고 얼음을 쳐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조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추콘과 수잔이 있는 쪽을 살폈다.
테스의 불꽃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런 괴수까지 혼자 상대하는 건 지나친 모험이었다.
게다가 조는 그간 생체 골렘을 방패막이 삼아 마력을 대부분 지킨 반면, 진은 투신기와 테스 소환으로 인해 체력적 부담이 훨씬 큰 상황이었다.
‘극방계, 괜히 그 이름을 붙인 게 아니군. 방어 능력 하나는 충격적이야.’
9성 마법사 둘, 그중 하나는 방어의 대가로 정평이 난 만큼 4할 힘을 되찾은 무라칸이라 할지라도 보호막을 마냥 쉽게만 뚫을 수는 없었다.
무라칸이 진이 있는 쪽에 함부로 전력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라칸이 놈들을 정리할 때까지 몸을 사려야겠어. 조의 전용 마법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도 아는 바가 거의 없으니.’
이제는 조금 영리한 싸움을 해야겠다고 판단한 그 순간.
[쯧,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뭘 모르니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겠지만, 이 버러지 같은 놈이.]무라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용 특유의 그 장엄한 목소리를 전장의 모두가 똑똑히 듣고 있었다.
[화염계의 주인 앞에서 불사조의 신체를 훼손해서 만든 골렘을 꺼내? 명왕족을 복원하려고 했던 것도 그렇고, 네놈들은 재앙을 부르는 재주가 있구나…….]슈우욱!
무라칸이 공격을 멈추며 진에게로 하강했다. 그러곤 인간으로 변신하더니, 영기로 보호막을 펼쳐 진과 자신을 감쌌다.
‘저 양반 꼭지 돌았다. 섣불리 말려선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야. 지금부터 저 양반은, 잠시 너와의 계약을 무시하고 강제로 네 모든 힘을 사용할 거다. 널 아무리 아껴도 이건 참을 수 없는 거거든.’
소곤소곤한 목소리.
“어?”
털썩.
진이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라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널 엄청나게 아끼니까 수명까지 끌어다 쓰지는 않겠지만…… 아, 수명은 안 쓰겠지? 안 쓸 거야. 젠장,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주마.’
스르르 눈이 감겼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거대한 졸음이 진의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무라칸은 짜증나는 듯 제 이마를 짚었고.
다음 순간, 테스가 포효를 시작하자 전장은 푸른 지옥이 되었다.
가아아아악-!
포효가 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청화가 번지고 있었다.
남아 있던 수백 마리의 생체 골렘이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지기까진 채 30초가 필요하지 않았고, 수인과 중, 하급 마법사들도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9성 마법사 셋을 남기고, 암흑마법회의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가까스로 불길을 피한 조가 추콘의 보호막으로 달려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폴룩, 그의 역작이 테스의 불꽃에 삼켜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길이 붙거나, 화염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삼켜지고’ 있었다. 처음 폴룩이 테스의 숨결을 씹어 삼킨 바로 그 모습처럼 말이다.
조도, 추콘도, 수잔도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테스가 최고의 불사조 중 하나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으나, 이건 그들이 가진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반면 무라칸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케 성질머리를 죽였군. 꼬마 녀석 수명까지 싹 끌어다 이 일대를 완전히 소멸시켜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꽤나 이성적이잖아?’
폴룩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발자국조차 하나 남지 않고, 그저 푸른빛을 내는 재가 되었다가 어디론가 흩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테스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듯 9성 마법사들을 노렸고, 무라칸은 테스가 행여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사고를 칠까 걱정이 되었다.
“저, 이만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여기 봐봐, 꼬마 녀석 기절했잖아. 이러다 큰일 나요, 큰일. 저놈은 내가 제대로 고통 받게 해줄 테니까 심호흡 하고…… 음? 잠깐만, 저건 또 뭐야……?”
무라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무너진 외성벽이었다.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인간을 닮은 형상이 외성벽의 잔해 위에 있었다.
“가기 전에 저거나 한 번 확인해줘요, 뭔지 알겠습니까? 어째 영 느낌이 불쾌한데. 모른다고? 간다고? 꼬마를 잘 부탁한다고? 아아, 그래그래. 잘 생각했어. 나 믿고 얼른 들어가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