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40)
제 222화
76화. 쪽박과 독박(6)
화르륵…….
테스가 화염계로 돌아가자 진이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탈력감에 몸을 가누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어났냐, 꼬마.”
“……난리가 났군. 테스가 한 거냐?”
진이 뮬타의 룬을 다시 발동시키고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의식을 잃은 몇 분 사이 코끼리를 닮은 정체불명의 골렘은 물론이고, 수백 명에 달하는 인간과 수인, 생체 골렘들이 모조리 재가 된 것이다.
테스가 사라졌는데도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푸른 불꽃이 곳곳에 남아 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세 명의 9성 마법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채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뭐, 네가 했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양반은 근본적으로 네 힘을 빌린 것이니까. 단지 신적인 통찰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그 힘을 좀 더 폭발적으로 사용했다고 해야……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저것 좀 봐라.”
진이 고개를 들어 외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인간의 형상이 천천히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9성 마법사들도 두 사람을 따라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흐릿한 형상을 보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살았다’는 표정을 한 채.
“단장님을 뵙습니다!”
“단장님을 뵙습니다!”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치는 마법사들.
진과 무라칸도 그 대목에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게…… 킨젤로의 단장이라고?’
갑작스레 정체불명의 거물을 맞닥뜨렸다.
그의 모습을 자주 상상해보진 않았으나, 킨젤로 같은 테러 단체에 썩 어울리는 외형은 아니었다.
빛이 나기 때문이었다.
마치 신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킨젤로 단장의 흐릿한 몸엔 찬란한 광휘가 흐르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흐리면서 빛나? 커다란 반딧불이라도 보는 기분이군.”
무라칸이 시큰둥한 감상을 표하자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느낌이긴 하네.”
말은 그렇게 해도 두 사람 다 긴장하고 있었다. 지플도 전면전을 피하는 세력의 수장이라면, 분명 그만한 실력을 갖췄을 터였다.
“언제 접근했는지 전혀 느끼질 못했다. 흠, 위험한 놈인 건 확실한데…… 어째 실체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혼이나 유령처럼 무게감이 전혀 없잖아.”
단장은 대치하고 있는 그들의 정중앙에 착지한 채 한동안 미동이 없었다. 마법사들에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다.
진, 무라칸과의 거리는 대략 서른 걸음. 실력자라면 눈 깜짝할 새에 좁혀서 공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후우웅-.
무라칸이 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영기를 일으켰다. 행여 단장이 공격해오면 즉시 반격할 수 있도록.
[지플과 비먼트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유명인을 이렇게 만나는군. 반갑다, 바멀.]울림이 깊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무라칸, 넌 오랜만이로구나. 깨어났다는 소식은 전에 들었다만…… 아, 네가 비호하는 걸 보니 바멀은 룬칸델 중 한 사람이로군? 어쩐지, 그리 걸출한 인물이 너무 갑자기 튀어나왔다 싶었지.]“뭐야, 너. 나 알아?”
[잘 알지.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인데.]“크하하, 이건 또 처음 보는 유형이네. 생명의 은인? 네깟 게 뭔데? 혹시 웃음 극단에서 나왔냐? 살다 살다 별소리를 다 듣는군.”
[테마르가 폭주한 널 죽이려고 했을 때, 그 친구를 말린 게 바로 나다. 무라칸.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테마르 룬칸델.
그 이름이 나오자 무라칸의 눈이 대번에 살기로 물들었다.
무라칸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사납게 영기를 모으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새끼가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팔아대는 것이냐. 보아하니 나이깨나 먹은 마족 같은데, 테마르가 네깟 것과 어울렸을 리 없다. 게다가 폭주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좀 있는 모양이야? 그날 폭주한 건…….”
[네가 아니라 테마르였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건가?]단장이 차분히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는 미소를 지었다기보다, 흐린 얼굴의 입 부분이 초승달처럼 벌어진 모양새였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그날의 싸움을 테마르의 책임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이 사실을 알면 죽은 그 친구가 얼마나 억울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군.]“……한 번만 더 테마르의 이름을 들먹여봐라. 당장 네놈을 죽이고, 킨젤론지 뭔지 하는 떨거지들도 싹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
무라칸이 당장 달려들지 않는 건 진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진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싸움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건 전성기의 네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군. 진짜로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이냐? 정말로 네가 아니라 테마르가 폭주를 했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죽음을 재촉하는구나.”
[아니면 네게 유리하도록 기억을 재구성한 건가?]“닥쳐라……!”
[반응을 보니 후자인 것 같군.]무라칸이 본모습으로 변신하려는 찰나.
“무라칸.”
진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은 방금 대화를 들으며 단장이 무라칸을 ‘잘 아는’ 인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라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완전히 꿰뚫고 있는 놈이다.’
분노에 젖은 무라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어깨에 닿은 손으로 미친 듯이 떨림이 전해졌고, 진은 무라칸이 단장에게 순식간에 휘말렸다고 판단했다.
“그냥 도발일 뿐이야. 넘어가면 안 돼.”
“저 개자식이 감히…… 지금 무슨 소리를…….”
그렇게 말하는 무라칸의 초점이 흐렸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진정해. 놈은 킨젤로의 단장이다. 이렇게 준비 없이 붙었다간 우리 쪽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 특히 지금처럼 흥분한 상태라면 더더욱.”
평소의 무라칸을 이성적이고 냉정한 성격이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말 몇 마디에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모습은 진도 본 적이 없었다.
[이해한다. 누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기억을 재구성했더라도 테마르, 그 친구를 잃은 슬픔은 진짜일 테니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군.]“크아아아!”
“무라칸!”
빠악!
있는 힘껏 진이 무라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몸에서 힘이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였으나, 그래도 일반인이 망치를 휘두른 정도는 되었다.
그러자 무라칸이 흠칫하며 진을 돌아보았다.
“꼬마? 왜 때려? 미쳤어?”
“정신 차리라고.”
“뭐? 갑자기 무슨…… 아!”
고개를 젓는 무라칸.
“빌어먹을, 저 뱀 같은 놈한테 잠시 홀렸었군. 추태를 보였다.”
킨젤로의 단장이 최면술이나 정신계 마법을 사용한 건 아니다. 그러나 무라칸의 불안정한 기억에 혼란을 주는 건 그보다도 훨씬 효과적이었다.
무라칸이 또 발끈하기 전에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봐, 오자마자 쫑알쫑알 늘어놓는 모양새가 썩 보기 유쾌하진 않거든. 나와 무라칸이 네놈의 부하들을 모두 죽였다. 네가 킨젤로의 지도자라면, 이걸 먼저 따져 묻는 게 맞지 않겠어? 테마르만 생각하지 말고 재가 된 네 부하들의 입장도 헤아려주라고.”
[과연 제왕의 핏줄이라는 건가. 그래, 네 말이 옳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는 마음에 내가 너무 가볍게 행동했군.]“깨달았으면 당장 덤벼서 네 부하들의 원한을 씻겨주는 게 어때? 쓸데없이 혓바닥 놀리지 말고.”
꼬마, 방금 나한테는 함부로 싸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
무라칸이 그런 눈빛으로 진을 쳐다보았다. 물론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장을 보며 퉷, 침을 뱉었다.
손가락을 불쾌하게 까딱이며 덤비라는 불쾌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다.
“안 덤비고 뭐해? 테마르, 룬칸델의 초대 가주를 말릴 수 있을 정도라면 네놈도 어마어마하다는 것 아니야.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우리 같은 건 한칼에 치워버릴 수 있을 테지?”
[재미있는 친구로군.]“재미는 아직까지 가만히 있는 네놈 담당이고. 무라칸 말대로 정말 웃음 극단에서 나온 건가 싶군. 너 테마르 만나보긴 했냐? 난 한 번 봤거든. 네놈 따위가 말렸네, 어쨌네 할 수준은 아니었어. 있는 척 허세는 다 떨더니, 막상 싸우려니 간이 쪼그라지는 기분이냐?”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진의 도발은, 도박이었다.
‘절대강자들은 말이 많지 않다. 대화를 좀 하고 싶을 땐, 상대를 제압한 다음에 한다.’
지금껏 진이 보아온 초월적인 강자들 모두가 그랬다.
시론, 탈라리스, 루나, 오울, 미샤 등. 그들에게 대화란 일단 상대를 반쯤 죽여 놓거나, 완전히 위압한 다음에 이뤄지는 절차였다.
‘반면 도발은 그만한 힘이 없거나, 술수를 부려야 할 때나 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킨젤로 단장의 방식은 결코 절대강자의 것이 아니었다.
단장은 무라칸이 먼저 달려들어야만 싸울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함정을 준비해둔 사람처럼.
“자, 아까 무라칸의 기억을 멋대로 판단한 걸 보니 싸구려 심리상담 시간인 것 같은데. 이번엔 내가 네놈 심리를 맞춰보지. 넌 그 셋을 살리고 싶어서 이곳에 찾아왔고, 모종의 함정을 팠어. 그런데 지금 속이 약간 타들어가. 왜냐하면 우리가 함정에 걸리지 않을 것 같거든.”
[푸흐흐…….]“뭘 웃어, 버러지 같은 게. 내 말이 틀려? 어딜 날로 처먹으려고. 대답해봐.”
이렇게까지 했건만.
단장은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진을 쳐다볼 뿐이었다. 당연히 진은 점점 주도권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얼굴이 흐려서 단장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무척 수치스러운 듯 보이기도 했고, 즐거운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럼 몇 분만 더 기다려봐. 네놈이 준비한 함정이 뭔지 고민을 끝낸 다음, 직접 부숴줄게.”
[방금 내가 거의, 라고 하지 않았나?]키리릭!
돌연 단장의 바로 앞에 빠른 속도로 쇳조각이 모여들었다.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그 쇳조각들은, 곧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오러가 아니라, 진짜 검을 형성했어……?’
스걱!
단장의 검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법사들이 있는 쪽이었다.
“다, 단장…… 컥!”
샤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단장의 검에 수잔 릴리스타의 목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목은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원한 서린 눈동자로 단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다음엔 추콘의 가슴팍을 찌르고 비틀었다. 방어의 대가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 심지어 자신의 주군이 뻗은 칼날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미안, 자네들까지 구할 순 없거든.]추콘이 앞으로 쓰러지며 죽음을 맞이하자.
검이 형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금속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문’을 형성했다.
문이 열리자 시커먼 공간이었는데, 단장은 그 속으로 조와 함께 도망치려는 속셈이었다.
단장에게 조는 아직 잃어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조 역시 그걸 알기에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단장이 자신을 구하리라 생각했던 것이고.
[다음엔 서로에게 조금 더 유쾌한 만남이길 기대하지.]단장이 들어가자 문이 닫히며, 문을 이루고 있던 쇠붙이들이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