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
제 4화
2화. 폭풍성에서의 나날(3)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른다?”
시론이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지금까지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 온 막내의 입에서,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네, 아버지. 이 힘은 오러가 아니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건 계산된 수다. 방금 전, 일부러 아이 같은 순수함을 연출한 것처럼.
화르륵.
불꽃이 일어나는 소리가 일며, 진의 손바닥 위에 한 줌의 어두운 기운이 생성되었다. 토나 형제를 두들겨 팰 때 사용한 힘이었다.
그림자의 신, 솔더렛과 계약해서 얻은 힘, 영력. 모른다고 대답했으나, 진은 누구보다도 이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시론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도.
“괜찮다면, 아버지께서 이름을 붙여 주시면 안 될까요?”
진이 초롱초롱한 눈매로 말했다.
시론은, 반신의 경지에 올라 창성기사가 된 후… 처음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말이다.
‘솔더렛이시여…….’
진의 손아귀를 쳐다보던 시론이 침음을 삼켰다.
정녕, 이 아이는 초대 가주의 환생이란 말입니까? 그런 감상적인 질문이 시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솔더렛. 그림자의 신.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이 염원해 마지않는 존재.
그러나 시론과 진은 진실을 알고 있다.
솔더렛은 본래 마법이 아니라, 검의 신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또한 1000년 전, 초대 가주와 계약해 룬칸델을 수호한 신이라는 사실도.
‘초대 가주께서 돌아가신 후, 룬칸델을 버리신 줄 알았건만. 막내에게 관심을 보이신 모양이로군.’
이건 룬칸델이 한 번 더 도약해서 번성할 수 있는 신호탄인가.
아니면 그저 한 번 떠났던 신이 잠시 변덕을 부리는 것뿐인가. 막내아들의 작은 손아귀에서 일렁이는 그림자 덩어리를 보며, 시론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직 계약을 맺은 건 아님이 분명하다. 계약에 의한 힘이라면 막내가 그것을 모를 리 없어.’
진은 시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예상한 상황이 너무 딱딱 들어맞기만 해 불안할 지경이었다. 한 번쯤은 의심에서 비롯된 위기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과연 일곱 살이란 거짓을 꾸미기 좋은 나이였다.
“막내야.”
시론이 생각을 정리했다.
“네, 아버지.”
“그건 솔더렛이라는 신께서 지닌 힘이다. 내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지. 그분은 우리 가문의 오랜 비밀 중 하나다.”
“솔더렛…….”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분이지. 네가 총명하다 할지라도, 아직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분은.”
진이 질문하려 하자, 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더렛이라는 신은, 아버지보다도 강한가요?”
“허허.”
졌다는 듯, 시론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반신의 경지에 오른 후, 이런 헛웃음을 낼 일도 없었다.
근 몇 년간, 수련과 정진으로만 다져진 시론의 단단한 내면에 오랜만에 파문이 일었다.
“글쎄… 이 아비가 감히 신과 겨뤄 볼 생각은 들지 않아 모르겠구나.”
실로 오만한 대답, 겨뤄 보지 않아 모른다.
그러나 그 대답을 말한 건 다름 아닌 시론 룬칸델이다. 진은 아버지의 대답을 듣고 일순 전율에 빠졌다.
과연 지상 최강.
지플가의 가주, 켈리악 지플도 이 남자를 당해낼 순 없을 것이다.
씨익.
시론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막내야. 내 오늘 너를 만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 순진한 질문이 내게 또 하나의 큰 화두가 되었다. 고맙구나. 가까이 오거라.”
신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시론은 그걸 화두라고 표현했다.
진이 가까이 붙자 시론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은 그때까지도 손바닥 위에 몽글몽글한 영기를 올려 두고 있었다.
“너는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더냐?”
“가문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어요, 아버지.”
나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어요.
그런 솔직한 고백은 할 필요가 없다. 이전 생에서, 진은 가문으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당했을 뿐.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따뜻함은 일곱 살 이후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진에게 가문을 위해 한 몸 불사를 의지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이 언젠가 가주가 되는 날이 온다면 모를까. 괴물 같은 형제들을 제치고 말이다.
“크하하하!”
갑작스레 시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폭풍성 전체에 작은 진동이 일어났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론의 자식들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아버지가 이토록 호탕하게 웃은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참 웃던 시론이 표정을 싹 지우며 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재미있는 거짓말이로구나. 이 아비에겐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
이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진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저를.”
“저를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 힘으로 형제들을 때려눕혀 폭우 속에 버려뒀으면서, 가문을 위해라는 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지. 내 앞으로 너를 지켜보겠다.”
시론이 진을 지나쳐 중앙 홀을 빠져나갔다. 아버지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한참 동안, 진은 식은땀이 등줄기에 흐르는 걸 느껴야만 했다.
안도의 식은땀이었다.
“후아!”
진이 크게 숨을 토하며 땀에 들러붙은 옷을 떼어 냈다. 전생 28년의 삶을 다 돌아보아도 오늘처럼 대담하게 아버지와 마주한 적은 없었다.
‘됐어, 해냈다!’
안도감이 지나가자 가슴이 쿵쾅쿵쾅 두방망이질을 치고 있었다.
진은 오늘 대화로 인해 솔더렛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아버지에게 기대감을 심어 주었다.
‘전생에선 계약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아버지가 내게 기대하는 일 따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때는 심지어 가문에서 퇴출된 후였는데도 솔더렛의 힘을 뜻대로 사용할 자유조차 없었다.
룬칸델은 가문을 떠난 이들이 힘을 쥐는 걸 결코 허락하지 않는 곳이니까.
그래서 아킨 왕국에 숨어 수련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아킨은 지플의 영향 아래 놓인 루테로 마법연방 소속의 국가였고, 당시 진의 신분은 마법사였으니까.
가문의 오랜 비밀, 초대 가주와 솔더렛의 계약.
그건 전생에서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시론은 그저 ‘오랜 비밀’이라고만 표현했지만, 진은 시론보다도 그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계약 이후, 솔더렛에게 직접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솔더렛은 계약 이후 한동안 진과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검의 신이었던 그가 룬칸델을 떠나 마법사들의 신이 된 이유는 끝내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 내가 죽을 때도 관여하지 않았고.’
그리고 진이 회귀한 지금, 솔더렛은 아무런 말이 없다.
진은 자신의 회귀가 솔더렛의 권능으로 인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나,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
회귀 후, 계약으로 얻은 힘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한 살 때.
‘선택’에서 바리사다를 고른 직후였다.
그날 밤, 한 9성 마법사의 저주. ‘날붙이의 미망’이 요람에 있는 진을 덮쳤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계약자야, 아주 어릴 적 누군가에게 미움을 산 모양이로구나. 별것 아닌 저주로 인해 그간 힘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군. 그래서 내가 네게 이끌렸는지도 모르겠어.]계약하자마자 솔더렛이 진에게 했던 말.
진은 그 말을 떠올리며 요람을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시뻘건 저주의 주박을 똑똑히 목격했다. 정신은 온전하나, 한 살의 몸으론 도저히 저주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무력한 어린 몸뚱어리가 원망스러운 와중. 저주가 눈앞에서 자신을 덮치는데도 저항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어 미치겠는 와중.
돌연 솔더렛의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저주의 주박은 진의 몸에 닿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에 스며들어 소멸했다.
솔더렛의 계약자에게 저주 따윈 통하지 않는다. 그건 전생 마법 스승의 표현을 빌리면, ‘지나치게 사기적인’ 효과였다.
‘조금만 더 자라 봐라. 반드시 내게 저주를 내린 놈이 누군지 밝혀내, 죽여 줄 테니까.’
그림자를 다룰 수 있는 힘과 전생에서 쌓은 마법적 지식, 늦게나마 깨우치기 시작한 검의 경지가 생생히 남아 있다.
저주로 인해 재능을 잃은 채, 가문에서 쫓겨난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길리 유모.”
돌아보니 길리가 중앙 홀 입구에 서 있었다.
“가주께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인사를 드리시지요.”
“응, 알겠어.”
“그런데…… 괜찮으세요?”
길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진보다 앞서 시론을 만난 토나 형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방으로 돌아간 걸 보았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괜찮아. 형님 누님들도 다 돌아가는 거야?”
“예. 가주를 수행하기 위해 오신 것이니까요. 그리고 메리 아가씨께서 도련님께 선물을 남겼습니다.”
“누님이 남긴 선물은 이따 풀어 볼게. 우선 아버지를 배웅하러 가자.”
찾아온 이백여 명의 수호기사와, 룬칸델의 기수들.
그리고 시론이 폭풍성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면 곧장 성은 다시 쓸쓸하고 휑한 풍경이 될 것이고, 진은 이제 토나 형제를 신경 쓰지 않고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성장의 시간을.
“충!”
“충!”
폭풍성을 나서는 시론을 향해 수호기사들이 검례를 올렸다. 진과 토나 형제도 그들의 옆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아버지를 만날 땐, 폭풍성이 아니라 본가에서겠군.’
시론은 그길로 다시 흑해로 돌아갔다.
시론의 거동이 룬칸델과 지플의 혈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 세인들은 내심 실망할 예정이었고, 룬칸델의 기수들과 수호기사들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시론은 진이 폭풍성을 떠날 때까지 이곳을 찾지 않았다. 대신 수호기사 칸이 가끔씩 진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흑해를 찾았다.
‘메리 누님도 제정신은 아니야. 나 아직 일곱 살이라고…… 흐하하. 이걸 이렇게 얻게 될 줄이야!’
방으로 돌아와 셋째 누님, 메리의 선물을 뜯어본 진이 생각했다. 함께 선물을 확인한 길리는 사색이 되어 진의 눈을 가렸다.
메리가 선물로 남긴 것은, 최근에 그녀가 남부 대륙에서 사살한 지플가 소환수의 심장이었다.
불사조의 심장, 전생에선 받아 본 적 없는 귀한 선물.
잘 달여 먹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