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
제 5화
2화. 폭풍성에서의 나날(4)
진의 셋째 누님, 메리 룬칸델.
이제 19세가 된 그녀를 세상 사람들은 ‘광풍의 메리’라 불렀다.
천 년이 넘는 가문의 역사에서, 열세 살이 지나기 전에 1성 기사가 되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다. 열여섯이면 3성, 그리고 스물이 되기 전엔 5성이 되는 게 순혈 룬칸델의 평균이다.
메리는 전생의 진과는 아주 다른 케이스였다.
그녀는 룬칸델의 평균을 약간 상회했다. 진이 스물다섯에서야 이룬 1성 기사의 영역을 그녀는 열두 살에 이뤘고, 열여섯에 이미 5성에 다다랐다.
현재는 6성.
약관에 이르기도 전에 세상사람 대부분이 우러러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룬칸델의 평균을 상회한다는 건, 곧 세간에서 ‘천재’라 불리는 이들보다도 우수하단 의미였다.
룬칸델은 천재가 평균인 곳이니까.
그리고 그녀는 전생에서 그나마 진에게 오랫동안 호의를 보인 인물 중 하나다.
‘아무래도 누님은 좀 미친 게 확실하지만, 좋은 선물이야. 안 그래도 크는 속도가 더뎌 답답했는데.’
시론이 떠나고 한 달.
그 기간 내내, 폭풍성 내부엔 불사조의 심장을 고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불사조의 심장에서 뿜어지는 특유의 열기 때문에 성내 한쪽 복도가 다 훈훈할 지경이었다.
메리는 별것 아닌 선물인 듯 내놓고 돌아갔지만.
일반적으로 불사조의 심장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비약이나 영약으로 통해, 일국의 왕들도 먹기가 쉽지 않다.
식감은 송아지고기보다도 부드럽고.
송로버섯보다도 풍부한 향을 지니고 있으며.
효력은 감히 일반적인 보약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도련님. 두어 시간만 지나면, 드디어 아가씨의 선물을 맛보실 수 있겠군요. 오래 기다리셨죠, 축하드립니다.”
진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가 남긴 선물이 고아지기까지, 무려 한 달을 기다렸다. 길리는 그것을 고느라 한 달 동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기쁜 마음뿐이었다. 진에게 좋은 일은, 길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유모들의 삶은 그가 책임진 룬칸델의 자녀가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갈렸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진은 길리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전생에서 진이 추방된 후, 길리의 삶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지경으로 무너졌었다.
“도련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불사조의 심장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영약입니다. 어릴 때 먹어야만 불에 대한 내성을 올려 주거든요. 메리 아가씨께서 너무 귀한 걸 주셨어요.”
“정말?”
길리보다 이만 배는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진은 신기하다는 듯 되물어 준다.
불사조의 심장이라면 마법을 익히던 시절, 수도 없이 공부했다.
‘당시엔 구해서 먹으려고 공부한 게 아니라, 마법사로서 불사조의 특성을 익히기 위해서였지만.’
불사조 소환은 모든 마법사들의 로망 중 하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불사조를 소환할 수 있는 6성 마법사가 되기 직전에 죽었다.
“그럼요! 제가 처음엔 피가 흥건해 도련님 눈을 가렸지만, 비먼트 제국의 황족들도 구하지 못해 안달인…….”
길리가 설명하는 동안, 진은 불사조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생엔 소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룬칸델에선 마법을 배우는 게 엄격히 금지되지만, 진은 마법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안 걸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걸려도 살해당하지 않을 만큼 강해지거나, 영향력을 쥐거나, 명분을 갖추면 되는 문제다.
무예와 마법.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아우르는, 마검사라는 길이 있는데. 그 정도 고난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나라면 절대. 내 불사조를 적들이 포식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거야.’
물론 불사조는 이름처럼 결코 죽지 않는 소환수다. 심장을 잃고 죽는다 한들 백 년쯤 지나면 자연 부활한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백 년이면, 이미 불사조의 주인은 죽어 없어질 텐데.
“메리 아가씨께는 다음에 꼭 감사 인사를 드리도록 하세요.”
“응, 꼭 그럴게.”
불사조의 심장이 다 고아졌다. 진하고 고소한 냄새가 성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식사 준비를 할 테니, 잠시 후 내려오세요, 도련님!”
길리가 콧노래를 부르며 총총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마자, 진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쭈뼛대, 신경 쓰이니까.”
“어, 으응.”
“응…….”
아까부터 근처를 기웃대고 있는 토나 형제였다. 그들은 길리가 나가자 진의 방문에 달싹 붙어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군침을 질질 흘리는 형들을 보며, 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 이 귀여운 새끼들 봐라…….’
진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토나 형제가 호다닥 달려 방으로 들어왔다.
“왜 알짱거리는데?”
불사조의 심장 때문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지만, 진이 일부러 쏘는 목소리로 물었다. 토나 형제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배배 몸을 꼬고 있었다.
불사조의 심장을 나눠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겁이 나는 것이다. 한 달 전, 진에게 맞아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은 일은 앞으로도 그들의 트라우마로 남을 예정이었다.
새삼 이 상황이 우스웠다. 전생에서 토나 형제는 툭하면 진의 물건을 빼앗았다. 이런 식으로 눈치를 보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아마 엠마가 시켰겠지. 나를 설득해 어떻게든 불사조의 심장을 얻어먹으라고.’
엠마 닐트로.
그녀는 길리처럼 폭풍성에서 토나 형제를 돌보는 룬칸델의 유모다. 전생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길리와 달리, 엠마는 잘나가는 토나 형제 덕에 떵떵거리며 살았다.
살인광이 된 토나 형제는 나중에도 유독 엠마를 잊지 않고 잘 챙겼는데, 그건 그녀의 영악함 덕분이었다.
길리가 사랑과 애정으로 아이를 돌보는 타입이라면, 엠마는 오로지 당근과 채찍만으로 육성하는 부류. 그녀는 아이들에게 도덕심이나 이타심 따윌 가르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룬칸델에서 그리 필요하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엠마는 토나 형제의 성격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게… 불사조…….”
“그거… 혼자 먹긴… 많지 않아?”
“뭐라고? 안 들려.”
“불사조의 심장 수프 말이야. 한 접시만 나눠 주면 안 될까? 엠마 유모한테 혼난단 말이야.”
“부탁할게, 막내야.”
이것들이 아직 나보다 엠마가 무서운가 보군.
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싫은데.”
“아, 제발.”
“제발!”
울상이 된 토나 형제. 동정심 따윈 샘솟지 않는다.
진은 토나 형제가 당근과 채찍에 익숙한 아이들이라는 걸 이미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불사조의 심장을 이용해 꽤나 피곤한 일을 시킬 계획이었다.
“형들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조건이 있어.”
“오, 뭔데? 뭔데?”
“그때 내가 만든 무덤 알지?”
무덤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토나 형제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두들겨 맞고 그 비바람 몰아치는 무덤 앞에 버려진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 무덤 뒤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그마한 굴이 하나 있어.”
“굴이 있다고?”
“응. 얕은 굴이야. 거길 더 깊게 파 놔. 오늘 밤까지. 쉬지 말고.”
진이 아홉 살의 형들에게 요구한 것은, 삽질이다.
“거길… 왜 파는데?”
“형들이 죽인 새를 더 깊은 곳에 다시 묻어 주려고.”
일순 다리 힘이 쫙 빠지는 토나 형제.
하지만 단지 이 정도 요구로 이 무서운 동생에게 불사조의 심장을 나눠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얼마나 파면 돼?”
“밤까지 쉬지 말고라고 했잖아.”
“알겠어. 그럼 그거 다 파면, 불사조의 심장 나눠 주는 거다?”
“물론이지. 하지만 열심히 파야 해, 깊이가 마음에 안 들면 없던 일로 할 거거든. 참고로 삽은 지하 창고에 많으니, 거기서 가져가.”
“응!”
“누구 시키지 말고, 반드시 형들이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인 토나 형제는 곧장 삽질을 시작하러 떠났다.
* * *
그렇게 토나 형제가 삽질을 하러 간 사이, 진은 식탁에 앉아 불사조의 심장으로 만든 수프를 먹었다.
“도련님, 그렇게 맛있어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진을 보며 길리가 물었다. 그녀는 진의 기분이 요리 때문에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응, 정말 맛있어.”
“한 사흘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으니,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한 숟갈, 한 숟갈 입에 떠 넣을 때마다 뼈와 살이 튼튼해지는 기분이다. 사흘 내내 먹으면 불에 대한 내성과 친화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이 만면에 웃음 짓고 있는 건,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며칠 내로, 비전서들을 볼 수 있다……!’
토나 형제가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는 곳, 새의 무덤 뒤편 굴.
고작 아홉 살이지만, 그들은 순혈 룬칸델인 만큼 세상의 보편을 한참 뛰어넘는 체력을 보유하고 있다.
룬칸델 특유의 축복받은 신체 덕분에 말이다.
아마 그 체력으로 밤까지 열심히 삽질을 하면, 굴과 이어진 ‘지하 벽’이 드러날 터였다.
‘그 녀석들은 그게 벽인지, 그냥 바위인지 구분하지 못할 테지만.’
폭풍성의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엔 룬칸델이 쌓아 온 ‘악덕’의 일부가 숨겨져 있다.
바로 타 가문의 비전서들.
그간 룬칸델이 굴복시켰거나, 멸망시킨 가문들에게서 빼앗은 비전서였다.
물론 토나 형제가 벽이 나올 때까지 굴을 파 놓는다고 해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의 비밀 장치를 해결해야만 지하실을 열 수 있었다.
당연히 진은 방법을 알고 있다. 하인만 못한 취급이었어도, 어쨌거나 이 룬칸델에서 25년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남았으니까.
‘폭풍성을 떠날 때까지, 그것들이나 공부하며 지내야겠어.’
진이 두 접시의 수프를 깨끗하게 비웠다.
“길리 유모.”
“네, 도련님.”
“밤이 되면 토나 형들에게 불사조 수프를 좀 나눠 줄래?”
“아, 얼마나 나눠 드릴까요?”
“한 숟갈씩.”
“한… 숟갈이요? 그러면 차라리 혼자 다 드시는 게.”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혹시 형들이 그 이상을 요구하면, 엠마와 나. 둘 중 누가 더 무서운지 제대로 알려 주겠다고 전해 줘, 꼭.”
길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진 도련님…… 벌써 이 냉혹한 가문에 물들어 버린 걸까? 그러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데.’
어색한 미소에 씁쓸한 기색이 번지려는 찰나, 진이 길리의 품을 파고들었다.
“메리 누님이 나를 생각해서 줬고, 유모가 나를 위해 한 달이나 불 앞을 지켜 만든 걸. 그 바보들에게 나눠 주고 싶지 않단 말이야.”
“도련님…….”
푹, 푹.
토나 형제의 삽은 잘도 비바람에 젖은 굴을 파내고 있었다.
그들의 삽이 벽에 가로막힌 건, 자정 무렵이었다.
“한 숟갈!?”
“한 숟갈이라고! 좀 너무하잖아, 종일 땅을 팠단 말이야!”
토나 형제는 뒤늦게 약속에 ‘양’이 포함되지 않은 걸 깨닫고 분노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진이 그거라도 감사히 먹으라며 눈을 부라렸기 때문이었다.
‘한나절 삽질하는 정도로 불사조의 심장 수프를 한 숟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세상 별별 인간이 다 뛰어들 거다. 이 꼬마들아.’
그러므로 토나 형제는 한 숟갈이라도 감지덕지하는 게 백번 옳다고.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