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
제 3화
2화. 폭풍성에서의 나날(2)
시론이 흑해를 빠져나오자, 폭풍성 바깥에서 지내는 룬칸델들의 하루가 바빠졌다. 5년 만에 흑해를 빠져나온 가주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제국의 의뢰를 수행하지 않고 있는 룬칸델의 기수는 전원 폭풍성으로 집합하라.”
흑표범, 로사 룬칸델의 명이 떨어지자 비먼트 제국, 아킨 왕국, 쟌 왕국, 쿠라노 공국 등등, 세계 각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룬칸델의 기수들이 바삐 폭풍성을 찾았다.
“대체 무슨 일이래? 막내 선택 의식은 끝났는데, 아버지께서 또 폭풍성을 찾으신다니.”
시론의 셋째 아들, 란 룬칸델. 그는 대륙 북부의 마물을 소탕하던 와중 달려오는 길이다.
“폭풍성 수호기사들 사이에선 다른 말 없었어?”
시론의 넷째 아들, 뷔고 룬칸델. 그는 쿠라노 공국의 대부호가 맡긴 암살 의뢰를 수행하다 왔다.
그 대부호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룬칸델은 임무 수행 중 가문의 소집으로 인한 피해와 의뢰 미완료에 대해선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다.
“없었어. 아무래도 대외 극비 사항 같은데. 아버지께서 움직일 만한 일이니…….”
시론의 셋째 딸, 메리 룬칸델. 그녀는 남부 대륙의 강자들을 하나씩 격파하다가 달려온 참이다.
이런 식으로 시론의 일곱 자식과, 그들을 보좌하는 이백여 명의 기사와 문사가 폭풍성을 찾았다.
평범한 도시 하나쯤은 30분이면 끝장을, 웬만한 왕국은 하루면 멸망시킬 수 있는 병력 이동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한 시론의 이동 소식을 들은 세상의 여러 강자들 사이에서는 갖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론이 움직인 이유가 뭐지? 그는 향후 10년간 흑해를 나올 일이 없다고 했는데.’
‘드디어 룬칸델이 세계의 패권을 뒤집으려 하는가?’
‘지플가 측은 아직 달리 반응이 없나?’
세계 유일의 창성기사, 시론.
그리고 시론의 뿌리인 룬칸델.
그 두 이름이 지니는 파급력은 아득하기만 했다.
시론의 자녀들과 가문의 수호기사들이 폭풍성을 오르는 계단 양옆에 일렬로 섰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어 그들의 모습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장 전쟁을 한다 할지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주를 뵙습니다!”
“가주를 뵙습니다!”
시론이 폭풍성 초입에 도착하자 그들이 일제히 검례를 올렸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산꼭대기를 울려 금방이라도 산사태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시론.
‘아버지 분위기가 묘해. 역시, 예사롭지 않은 일인가?’
룬칸델의 형제들이 눈빛으로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비장한 얼굴로 시론의 뒤를 따랐다. 가문의 문사들이 그 뒤를 따랐고, 수호기사들은 폭풍성 입구를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시론이 폭풍성을 찾은 건, 단지 늦둥이 막내아들을 보기 위함이라는 것을.
* * *
“데이토나, 헤이토나.”
“예, 아버지.”
시론은 토나 형제를 먼저 찾았다. 방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던 토나 형제는 찔찔 흐르는 콧물을 삼키며 시론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너희의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진은 길리와 함께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토나 형제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시론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하였다.”
“그, 그게…….”
토나 형제가 1년 후, 열 살이 되는 해에 첫 살인을 저지를 예정이든. 좀 자란 다음엔 매년 꼬박꼬박 기분 따라 오십 명 정도의 인간을 죽이는 살인광이 될 예정이든.
아직은 아홉 살 꼬맹이들에 불과했다.
엄한 아버지가 무서울 나이라는 뜻이다. 특히 시론처럼 엄하다는 말로는 차마 설명할 수도 없는 아버지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게다가 잘못이라니?
동생에게 두들겨 맞았다. 죄를 따져 물어야 한다면 막내를 찾아야 하지 않나.
토나 형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을 괴롭힌 본인들의 잘못은 이미 형제의 기억 속에서 휘발된 것이다.
“저흰 잘못한 게 없습니다.”
마침내 용기를 낸 데이토나가 대답했다. 시론이 계속 듣겠다는 듯 턱을 괴자, 데이토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진이 알 수 없는 능력을 이용해서 저랑 헤이토나를 때렸어요.”
“맞아요. 오러가 아닌, 알 수 없는 능력을 이용했어요!”
헤이토나가 거들었다. ‘오러가 아닌, 알 수 없는 능력’이란 걸 강조하며.
세상에 오러가 아닌 힘이라면 한 가지뿐이다. 마력. 일곱 살의 진이 오러를 사용했다면 그건 룬칸델에서 갖은 축복을 받을 일이지만, 후자는 이야기가 달랐다.
룬칸델의 핏줄로 태어나 마력을 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토나 형제는 진의 주먹을 감싼 검은 기운이 마력이라는 것을 열심히 어필하는 중이었다.
“나의 아들들아.”
인자한 목소리.
“예, 아버지!”
토나 형제가 탈출구를 찾은 죄수처럼 밝은 얼굴로 답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없이 인자한 걸 보니, 승기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론은 토나 형제가 강조한 내용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이렇게 말했다. 매우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너희 둘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하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 그런 식으론… 이 룬칸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아…….”
“죄, 죄송해요, 아버지.”
“가서 진을 불러오너라.”
* * *
복도를 걷는 동안, 진은 방금 본 토나 형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은 잔뜩 위축된 채, 어딘가 얹힌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맨몸으로 맹수 우리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온 사람의 그것처럼.
‘전생의 내가 어쩌다 아버지를 마주친 다음이면, 어김없이 짓던 표정이지. 어떻게 된 건지 알 만하군.’
진은 시론과 토나 형제 사이에 있던 대화를 듣지 못했으나, 어떻게 흘러갔을지 짐작이 갔다.
‘아마 아버지는 질문을 던졌을 거고, 토나 형제는 기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대답을 했겠지. 아직 애들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시론의 훈육은 늘 그런 식이었다.
아니, 훈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론은 진까지 13명의 많은 자식을 두고 있지만…… 그중 단 한 명도 직접 길렀다고 볼 수가 없었다.
룬칸델에서 육아를 하는 건 오직 유모들뿐이다.
시론과 로사는 그저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그들 중 누가 가장 룬칸델을 이끌 인물이 되는지를.
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들이 ‘룬칸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일정 이상의 성과를 올리면, 그때서야 조금씩이라도 살펴보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시론이 폭풍성을 찾아온 게 이만한 이슈가 된 것이다.
로비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형제들은 대체 아버지와 꼬마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노릇이었다.
저벅저벅.
진의 시야 저 멀리 폭풍성 왕좌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를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니, 지난 생의 여러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의 아버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냉혹한 사람.’
어머니 로사 룬칸델은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진이 가문에서 쫓겨났을 때, 로사가 이틀 동안 곡기를 끊은 건 당시 세간에도 널리 알려진 일화였다.
물론 이틀 뒤부턴 로사 역시 진이라는 존재를 가슴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론의 경우는 아니다.
화가 나면 눈썹을 꿈틀대거나, 웃길 땐 입술을 씰룩이는 정도의 인간성은 있지만.
또한 젊었을 적엔 때로 좌절하고, 때로 행복해하며 가주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고 들었지만.
창성기사, 반신의 경지에 닿은 이후엔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저 가문에 대한 맹목적인 걱정만이 남아 있을 뿐.
‘웃긴 일이야. 반신의 경지에 들어섰는데, 아직 큰형님이 성에 차지 않아 가문을 지키고 있다니.’
뿌득, 소리가 날 만큼 이를 갈고 싶다.
가문에서 쫓겨나기까지, 얼마나 지독한 삶을 살았던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어도 진은 가문에서 없는 인간 취급이었다.
그러나 이를 갈거나 하는 어설픈 짓거릴 해선 안 된다. 시론은 막내아들이 자신을 보며 뿌득 이를 가는 걸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
‘이번 생엔 아버지라 할지라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들겠어.’
진이 그런 다짐을 하며 시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가주를 뵙습니다.”
마치 폭풍성을 떠난 형제들이나, 다른 가문의 일원들이 하는 것처럼. 막내아들로서 아버지를 만나는 게 아니라 가문의 일원으로서 가주를 마주한 것이다.
시론은 그게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를 아버지가 아니라 가주라 불렀느냐?”
진이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그는 이미 시론의 반응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형님, 누님, 그리고 수호기사들. 가문의 일원이 백 명 넘게 폭풍성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가주의 방문을 가문의 공식 행사라고 생각해,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시론의 눈동자가 커졌다.
“훌륭하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일곱 살의 꼬마가 보이기엔 엄청난 태도였으나, 시론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길리가 진을 잘 가르쳤고, 선택 때 바리사다를 뽑은 진의 통찰력이 타고난 것이라 생각할 뿐.
진이 실은 일곱 살 꼬마가 아니라, 전생의 기억이 있는 청년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반신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물끄러미 진을 쳐다보던 시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방금 네 형들에게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예, 가주님.”
“하나 네게 다시 물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데이토나와 헤이토나. 네 형들이 저지른 잘못은 무엇이냐?”
이번에도 진은 고민하는 척했다. 이 역시 어느 정도는 예상한 흐름이었다.
아니, 확실히 예상한 흐름이다. 시론 룬칸델, 자신의 아버지라면… 코흘리개 아들이라 할지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대하듯 할 테니까.
시론이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복수입니다.”
“음!”
시론의 커진 눈동자가 일순 반짝였다. 몇 초 뜸을 들인 진이 대답을 이어 갔다.
“형님들은 제게 복수를 했어야 합니다. 룬칸델의 일원이라면, 언제나 당한 것을 돌려줘야 하니까요. 그것이 은혜든, 원한이든.”
정적이 흘렀다.
진은 이 정적이 시론의 만족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쯤에서 적당히 아이 같은 면모도 보여야 했다. 아주 살짝, 불안한 눈동자를 연출하며 이렇게 물어야 하는 것이다.
“혹시 제 대답이 틀렸나요?”
“틀리지 않았다. 아주 만족스럽구나.”
“감사합니다, 가주님.”
그러자 시론의 눈동자에 서운한 기색이 서렸다.
“지금은 아버지라 부르거라. 가문의 일원들이 몰려왔으나, 오늘 나는 사적인 이유로 폭풍성을 찾아온 것이다.”
“예, 아버지.”
시론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미소가 지워졌다. 다시 무심한 거목 같은 표정이 된 시론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네가 형들을 꺾을 때 사용한 특수한 힘이란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