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
제 2화
2화. 폭풍성에서의 나날(1)
진이 바리사다를 고르고 6년이 더 흘렀다.
진은 더 이상 유모가 기저귀를 갈아 주는 수치를 겪지 않지만, 어린아이 흉내를 내는 것은 여전히 곤욕이었다.
‘얼른 이 폭풍성을 벗어나고 싶군.’
폭풍성.
룬칸델의 별채. 룬칸델의 아이들은 열 살이 되기 전까진 이 폭풍성 바깥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암살 위협 때문이었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룬칸델의 어린아이를 암살하겠냐고. 지플도 그런 미친 짓은 안 할 텐데.’
약 200년 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긴 했었다.
또 다른 검술명가였던 쿤겐가가 룬칸델을 습격했고, 그 결과 아홉 명의 어린 룬칸델이 죽음을 맞이했다.
쿤겐은 다음 날 가문 전원은 물론, 하인들의 먼 친척들까지도 남김없이 몰살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룬칸델의 아이들이 선택 의식을 치른 후 열 살까지 폭풍성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이후 쭉 전통이자 규칙이 되었다.
무료하다.
폭풍성은 이름에 걸맞은 분위기를 지닌 성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다 알려진 무라칸 산의 정상에 위치했고, 이름처럼 사계절 내내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하여간 애들 정서에 좋은 곳은 아니야. 하긴, 이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내 형제들이 다들 그렇게 살벌했던 거겠지.’
현재 폭풍성에 남아 있는 형제는 둘뿐이었다. 나머지 열은 폭풍성에서 지낼 나이가 아니었다.
진과 형제 둘.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정예 수호기사 다섯과 유모들, 하인 열댓쯤이 이 넓은 폭풍성에서 지내는 전부였다.
“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릴 듣자마자, 확 짜증이 솟구쳤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진을 부른 소년의 이름은 데이토나 룬칸델. 진보다 두 살이 많은 형이다.
“그 대단한 바리사다는 어디에 두고, 혼자 있어? 크하하.”
이어서 비아냥대는 소년은 헤이토나 룬칸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데이토나와 일란성 쌍둥이였다.
룬칸델의 토나 형제.
전생에서 이 형제를 겪어 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악마 새끼들이라고.
‘지긋지긋한 놈들.’
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역시 토나 형제에 대해선 좋은 기억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진은 어릴 적부터 이 형제에게 유독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그때도 이유는 한 살 때 바리사다를 골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봤자 아홉 살 형제가 일곱 살 동생을 괴롭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년 후 폭풍성을 빠져나간 토나 형제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살인이었다. 그만큼 천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형제였다.
진이 대답하지 않자 토나 형제의 시비가 계속 이어졌다.
오늘은 진의 유모, 길리가 폭풍성을 비운 날. 토나 형제는 이날만을 학수고대한 만큼, 진을 곱게 내버려 둘 계획이 없었다.
“야, 묻잖아. 바리사다는 어디에 뒀냐고.”
이번 생에서 토나 형제의 괴롭힘이 시작된 건 1년 전이었다.
처음엔 유모, 길리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은근한 괴롭힘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잠근다든가, 진의 수프에 소금을 왕창 뿌려 놓는다든가.
그다음엔 죽은 새를 진의 방문에 걸어 두거나, 폭풍성 마당에서 잡은 독전갈 같은 걸 몰래 침대에 풀었다. 그런 식으로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진은 그 모든 걸 묵묵히 감내했다.
성큼성큼, 진을 향해 걸어오는 두 형제.
그들을 무심히 쳐다보던 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글쎄, 어디에 뒀더라. 네 뒷구멍에 쑤셔 놨던가?”
우뚝.
걸음을 멈춘 토나 형제가 진과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들이 상상한 진의 반응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뒷구멍이라니…….
토나 형제가 타고난 살인광이라 한들, 아홉 살에 듣기엔 과격한 어휘였다. 다만 몹시 불쾌한 단어라는 건 인지한 듯, 순식간에 형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뭐라고… 진, 미쳤어?”
“정신 차려. 지금 유모 없단 말이야, 응?”
피식.
진이 자그맣게 실소를 터뜨리며 형제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유모가 자리를 비우길 기다린 건, 토나 형제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보다도 진이 더욱 간절하게 기다렸다.
형제라고 부르기도 싫은 이 악마 같은 놈들을 족치기 위해 말이다.
‘전생이었다면 일곱 살의 내가. 토나 형제에게 대드는 일 따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홉 살이 아니라 열아홉의 토나 형제가 눈앞에 있다 할지라도, 한 놈은 죽일 자신이 있었다.
토나 형제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눈을 부라렸다.
“지금이라도 싹싹 빌면 코뼈만 부러뜨리고 끝내 줄게.”
“아니면 어제 네 방에 걸어 둔 새처럼 만들어 줄 거야.”
일곱 살 아이의 걸음으로 다섯 걸음 정도. 현재 폭풍성 복도에서 마주하고 있는 진과 토나 형제 사이의 거리였다.
“아악!”
순간, 헤이토나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화들짝 놀란 데이토나가 고개를 돌려 확인한 풍경은, 어느새 진이 주저앉은 동생의 등을 발로 누른 모습이었다.
진이 눈 깜짝할 새에 거리를 좁혀 헤이토나의 복부에 주먹을 꽂은 것이다.
“어?”
억.
이어서 데이토나도 진의 주먹에 턱을 맞고 풀썩 쓰러졌다. 형제 모두 태어나서 이렇게 맞아 본 건 처음이었고, 일곱 살 진의 주먹은 꼭 얼음덩어리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이, 이게 무슨?’
찰나의 순간, 데이토나는 진의 주먹을 감싸고 있는 시커먼 기운을 보았다.
그 기운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핑글, 눈알이 풀리려는 사이 또 한 번 주먹이 날아들었다.
빡!
“웁!”
목구멍이 막힌 듯 비명이 제대로 터지질 않았다. 그저 고통에 반응한 눈에서 주륵주륵 눈물이 흐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만이 데이토나의 머리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이쪽 복도엔 아무도 없다.
진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골랐건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줄 토나 형제는 상상한 적이 없었다.
“네놈들이 짓밟아 죽인 그 불쌍한 새는 내가 잘 묻어 줬어.”
퍽, 퍽, 빠각.
높낮이 없이 말하는 동안, 진은 계속해서 쓰러진 두 사람의 위를 번갈아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도 애들인데, 너무 심한가?’
잠시 진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얼마 못 가 사라졌다. 전생에서 아홉 살의 토나 형제는 진에게 말똥 같은 걸 먹이기도 했으니까.
오늘 진이 마냥 참기만 했다면 아마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후우.”
움찔, 움찔!
한참 동안 두들겨 맞은 형제가 쓰러진 채 몸을 떨었다. 진은 일어서서 그들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형들은 앞으로 가문에서 내 눈에 띄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아. 살고 싶으면 말이야.”
“도련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가문 수호기사가 복도로 달려왔다.
그는 최고 등급의 수호기사였다. 아무리 룬칸델이라 해도 애들 싸움 따위엔 놀랄 인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수호기사는 쓰러진 토나 형제와, 가만히 서 있는 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일곱 살의 진 도련님이, 아홉 살 도련님 둘을 때려눕혔다고?’
그럴 리가 없다. 일곱 살과 아홉 살은 기본적인 발육에서 심대한 차이가 있었고, 심지어 토나 형제는 룬칸델의 격투술도 익히기 시작한 상태였다.
반면 진은 아직 격투술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 적어도 수호기사가 아는 바로는 그랬다.
“우우윽.”
“진 도련님, 이게 대체…….”
데이토나가 가까스로 신음하자 기사가 물었다.
“갑자기 둘이 싸웠어.”
“예?”
“둘이 싸웠다니까.”
수호기사는 곧장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챘지만 따질 수가 없었다. 씨익, 웃으며 말하는 진은 이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계산을 끝내 놓은 모양이었다.
수호기사는 어디까지나 외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입장이지. 폭풍성 안에서 벌어진 사태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룬칸델은 꼬마들도 살벌하군… 가주께 보고나 해야겠어.’
척.
수호기사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직 일곱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진은 엄연히 순혈 룬칸델이었다.
“예, 그럼 제가 토나 도련님들을 의사에게 데려가겠습니다.”
“아니. 토나 형들은 따로 갈 곳이 있어.”
“갈 곳이 있다고요? 대체 어딜.”
“무덤.”
“무… 덤이라뇨?”
“형들 좀 들어 줘.”
진이 눈빛을 바꾸며 말하자 수호기사는 어쩔 수 없이 토나 형제를 어깨에 올렸다.
“가자.”
수호기사가 엉거주춤 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진이 걸어간 곳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풍성 뒷마당의 한 작은 봉분.
어제 토나 형제가 죽인 새를 묻어 둔 곳이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에도 봉분은 아직 쓸려 나가지 않고 있었다.
“여기 내려놔.”
“하지만 진 도련님. 비바람이…….”
사나운 비바람이 진과 수호기사, 토나 형제를 집어삼킬 듯했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수호기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명령이라는 의미였다. 수호기사는 얼마 안 가 진의 태도를 이해했다. 룬칸델의 일원들이 마땅한 명령을 내릴 때의 태도였다.
설마 일곱 살짜리 꼬마가 이런 제왕적인 태도를 보일 줄은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수호기사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설령 그게 다른 룬칸델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현재 토나 형제는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신세니까.
그렇다면 명령을 내린 룬칸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건 가주와 원로들이 판단할 문제지, 수호기사의 일이 아니다. 토나 형제가 만약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해도 가문은 수호기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터였다.
혈육 간의 투쟁은 룬칸델에서 흔한 일이었다.
“받들겠습니다, 도련님.”
수호기사가 토나 형제를 봉분 앞에 내려놓았다. 형제는 간헐적으로 움찔대기만 할 뿐, 별다른 거부 의사를 표하지 못했다.
두 시간쯤 뒤, 토나 형제는 막 돌아온 길리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며칠간 심한 폐렴을 앓았고, 이후 폭풍성을 떠날 때까지 감히 진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 * *
대륙 동쪽, 미보호 구역. 통칭 흑해黑海.
시론 룬칸델은 마물이 득시글대는 이 마경에 가만히 앉아 며칠째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앉아 있을 뿐이지만, 근처의 집채만 한 마물들이 감히 그의 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시론을 만나고자 수많은 마물을 헤치고 피를 뒤집어쓴 채, 어렵사리 이곳으로 찾아온 남자가 있다.
“가주님. 칸입니다.”
열흘 전, 진의 명령에 따라 토나 형제를 폭풍우 속에 방치한 수호기사였다.
“무슨 일이냐?”
시론이 찬찬히 눈을 뜨며 물었다.
“폭풍성에서 발생한, 도련님들 간의 분쟁에 대해 보고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네가 평범한 애들 싸움 때문에 내 수련을 방해할 리는 없고. 얘기해 봐라.”
칸이 진과 토나 형제의 싸움에 대해 설명하자, 시론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토나 형제는 죽었나?”
“폐병에 걸리긴 했습니다만,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공부가 되었겠군. 알겠다. 물러가도록.”
“예.”
이 몇 마디를 보고하려고 사흘 동안 마물과 사투를 펼쳤다. 그러나 칸은 조금도 원망스러운 기색 없이, 묵묵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막내를 한번 만나 보아야겠군.’
시론이 폭풍성을 찾은 것은 한 달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