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0)
제 33화
12화. 투쟁, 쟁취, 향유(1)
“크흐어억. 큽!”
모두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아 팔을 베인 생도의 신음만이 훈련장을 울리고 있었다. 생도들은 도무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아 제 눈과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으아아.”
“무, 무슨 짓이냐!”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의료진 불러!”
토나 형제가 한 박자 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은 그들 앞에 서서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 너 이 자식……! 미친 거냐?”
“다짜고짜 왜 검을 휘둘러!”
항의하듯 말하는 토나 형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설마 우리가 누님들의 파벌을 빌린 걸 벌써 눈치 챈 건가?’
‘어떻게 이렇게 콕 짚어서 벨 수가 있냐고!’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토나 형제의 머릿속엔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큰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누이들이 용병 개념으로 지원해 준 파벌을 첫날부터 다치게 했다는 점. 이는 차후 누이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두 번째로, 지금 당장 진에게 보복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위신이 한순간에 밑바닥까지 추락할 거라는 점.
모든 중급 생도가 보는 앞에서, 막냇동생에게 망신을 당했다. 태연한 진을 보고 있자니 등골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만, 무섭다고 꼬리를 내렸다간 끝장인 것이다.
누이들에겐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정말 죄송합니다, 지원해 주신 생도들을 등에 업고도 막내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을 순 없었다.
스릉!
결국 토나 형제가 동시에 검을 뽑았다.
“죽여주마!”
“어디까지 기어오를 셈이냐!”
“생도.”
진은 토나 형제를 완전히 무시한 채 팔을 부여잡고 있는 생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진의 부름에 생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카진 로메로입니다.”
“내가 널 왜 베었는지 아는가.”
“크윽, 모르겠습니다.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야, 진! 우릴 무시하는 거냐? 이 새끼야, 다시 검을 뽑아라. 오늘 끝장을…….”
“형님들.”
진이 살짝 고개를 돌려 토나 형제와 눈을 맞췄다.
“제가 지금 카진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 뭐라고?”
“조용히 좀 하란 말이었습니다. 저와 결투가 하고 싶다면 나중에 언제든 응해 드리죠.”
“감히 내 생도를 베고도……!”
“내 생도?”
헤이토나는 하마터면 제 입을 틀어막을 뻔했다.
“이 친구가 형님들의 파벌이었습니까? 저를 보는 눈에 묘한 살기가 있어서 베었습니다만.”
다시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토나 형제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반격을 하려다 도리어 진의 페이스에 더욱 말려들게 된 것이다. 방금 대화로 인해 진이 벤 카진 로메로는 ‘토나 형제의 세력’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진이 하고 있는 행동은 단순한 돌발 행위가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룬칸델의 전통.
‘서열 전쟁’이 되는 것이다.
룬칸델의 서열 전쟁은 음유시인들에겐 꾸준히 소비되는 소재, 말하기 좋아하는 세인들에겐 단골 안줏거리였다.
형제들의 막장 혈전보다 자극적인 이야기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의료진이 도착했습니다!”
대열 뒤쪽에 선 생도들이 소리치며 길을 텄다. 의료진은 토나 형제나 생도들과 달리 몹시 일상적인 분위기였는데, 룬칸델에서 매일 피와 부상자를 보는 게 그들의 일이니 당연했다.
의료진의 움직임 때문에 자연스레 토나 형제도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었다. 직계라 할지라도 응급 처치 현장을 방해할 순 없는 것이다.
“카진. 그리고 여기 모인 모든 생도들은 잘 들어라!”
별안간 진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나는 진 룬칸델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방금 내가 카진에게 했던 것처럼. 갑자기 내게 칼을 들이밀어도 좋고, 내가 방심했을 때 뒤에서 기습을 해도 좋다.”
생도들이 입을 벌린 채 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 둬라. 내게 조금이라도 적의를 보이는 자들은 나 또한 망설이지 않고 벨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할 말을 끝낸 진이 유유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곁에 선 생도들은 그가 지나칠 때마다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소란을 일으켰다. 그것도 단상에 제드 룬칸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와중에.
그러나 진은 제드에게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제드의 성격이라면, 오히려 칭찬을 받아 마땅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누구보다도 서열 싸움과 배짱을 좋아하는 양반이니까. 심지어 아버지보다도 더.’
들것에 카진을 실은 의료진이 훈련장을 빠져나갔고, 생도들은 과연 제드가 진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진을 나무랄 것이라 예상했다. 토나 형제는 은근히 숙부가 막내를 호되게 짓밟아 주길 기대했다.
“진 룬칸델. 가주의 열세 번째, 막내.”
“예, 원로님.”
진은 일부러 숙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나, 숙부나. 룬칸델의 연장자들은 언제나 묘한 공사 구분을 좋아했다.
“굉장한 짓을 저질렀군. 감히 내 앞에서…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굳어 있던 토나 형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드 룬칸델, 과연 위대한 숙부님! 숙부님의 일갈이라면 제아무리 막내라 할지라도 찌그러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렇습니다.”
“당돌하구나. 어째서냐?”
“저는 토나 형님들과 싸운 게 아니라, 원로님과 싸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진을 벤 것에 이어 난데없는 폭탄 발언까지.
이쯤 되면 진이 깨지기를 빌고 있는 토나 형제조차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정신이 나간 건가?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토나 형제를 비롯해 모든 생도들이 같은 마음이었다.
“너와, 내가 싸웠다. 아주,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구나.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프스스스……!
제드의 손아귀에 한 자루의 새하얀 검이 형성되었다. 오러만으로 검을 빚는 건 8성 중에서도 빼어난 자들에게만 가능한 경지였다.
“말해라. 대답 여하에 따라 이 자리에서 네 목을 벨 수도 있을 것이다.”
“원로님께선 생도들 사이에 제가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급 훈련반 특유의 신고식을 종용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원로님의 공격이라 인지했습니다.”
휘익, 칫!
제드가 제자리에서 가볍게 검을 휘둘러 진의 왼쪽 뺨을 베었다. 진은 부동자세와 시선을 유지한 채 제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서, 내가 신고식을 종용한 것이 불쾌하기 때문에 이 사달을 벌였다는 것이냐? 내가 널 공격했다고 생각해서?”
“제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원로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직접 칼을 뻗을 것이지, 왜 생도를 베었느냐?”
“제가 아직 원로님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저는 카진이나 토나 형님들이 아니라 원로님을 베었을 겁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아니면 가주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너무 믿고 있거나.”
“상대가 저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건. 룬칸델의 덕목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근처의 생도들은 다리가 다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대체 이제 열다섯 먹은 애송이가, 무슨 배짱으로 혓바닥을 놀리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제드가 말문을 연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목숨이 잊히는 건 한순간이지만, 명예는 영원하다는 것인가. 어리석구나.”
제드의 손아귀에서 형형하게 빛나던 오러가 흩어졌다.
“이 숙부의 기분이 좋아질 만큼 어리석은 배짱이야. 좋다, 인정해 주마. 룬칸델에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녀석이로군.”
크하하핫!
돌연 제드가 거대한 웃음을 터뜨렸다.
“생도들은 오늘을 잊지 마라. 너흰 오늘 룬칸델 그 자체를 본 것이다. 이 애송이가 보여 준 것이야말로 우리 검귀들의 정체성이란 말이다.”
“예!”
“매일 투쟁하라. 이상! 데이토나와 헤이토나만 남고, 나머진 해산하도록. 훈련은 내일부터다.”
생도들이 일사불란하게 훈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토나 형제는 몸속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고, 진은 그들을 지나치며 이렇게 말했다.
“동생으로서 형님들에게 충고 하나 할게.”
토나 형제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미래를 좀 생각해. 지금이야 나보다 다른 형제들이 더 무서울 수 있지만, 나중에도 과연 그럴까?”
토나 형제는 싱긋 웃는 진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 *
“와, 진짜 나는… 그게 대체 무슨 박력이냐? 우리가 본 게 정녕 사실이냐?”
“백랑족 전사를 죽였다는 소문도 진짜 아니야? 파벌이 다르답시고 적으로 돌렸다간 큰일 날 도련님이던데.”
“그래 봐야 열셋 중 열셋째야. 이번 일에 반해서 파벌 잘못 탔다간 인생 한 치 앞도 모르게 되는 수가 있어. 그런 유형은 한 번 삐끗하면 끝장이라고. 다른 형제들이 얼마나 쟁쟁한데…….”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진짜 엄청나긴 하더라. 대체 누가 제드 원로님 앞에서 그럴 수 있겠어?”
“그리고 혹시 아냐? 진 도련님이 패권을 쥐게 될지. 가주께서 조슈아 님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건 공공연한…….”
“쉿! 큰일 날 소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중급반 다 뒤집으려고 작정했어?”
이번 일화는 생도들 사이에서 단연 엄청난 파급이었다. 기숙사에 모인 중급 생도들 중에 진의 이야길 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스컷, 메사, 벨롭 등.
진과 함께 진학한 아홉 명의 생도들은 벌써 ‘막내 사단’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 또한 선배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진이 당부한 대로 뭉쳐서 움직였다.
“진 도련님께서 카진을 베었으니, 오늘 안에 보복이 있을지도 몰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대장 격인 메사가 당부를 하고 한 시간쯤 뒤, 한 무리의 중급 생도가 막내 사단이 모여 있는 방을 찾았다.
막내 사단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언제든 임전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뒤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오늘 도련님이 했던 것처럼, 방문한 생도들이 조금이라도 적의를 보이면 단숨에 주먹을 날릴 요량이었다.
“반가워, 후배님들.”
그러나 찾아온 중급 생도들의 양손엔 담배와 술을 비롯한 각종 기호식품이 들려 있었다.
마치 갑자기 적국의 사신이 친교를 맺으러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막내 사단은 약간 당황스러워져서, 선배들이 내미는 바구니를 멍한 얼굴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은 중급반 신고식 이후, 앞으로 기숙사에서 벌어질 폭력의 나날을 생각하며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선배들에게 두들겨 맞는 게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밤마다 깨지다 보면, 행여 진이 우습게 보일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너희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대충 챙겨 와봤다. 담배는 밀라 산이고, 술은 쿠라노 공국 명주야. 비싼 거다. 뭐 독약 같은 거 안 탔으니까 그냥 편하게 받아 주면 좋겠군.”
“갑자기 저희한테 이런 걸 왜 주시는 거죠?”
“왜라니? 잘 보이려고 그런다. 우린 어느 파벌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니까, 서열 전쟁에 참전하진 못해도 은근히 진 도련님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거든.”
룬칸델에서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건, 곧 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런 어중간한 위치의 생도들이 막내 사단을 찾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토나 형제 때문.
그들은 토나 형제가 중급반에 진학한 후 1년 동안 무수한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도들은 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토나 형제는 진이나 다른 형제들 앞에서나 어린 양이지, 평소에는 그야말로 미친 폭군이었다.
토나 형제가 괜히 진의 전생에서 악질 살인광으로 이름을 떨친 것이 아니다.
“그럼, 간다. 너희들 앞길은 우리보다 창창하길 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