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9)
제 33화
11화. 진학, 신고식(3)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진은 이번 임무에서 얻은 수확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우선 생도들의 존경과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생도 하나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룬칸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생도 백 명이 룬칸델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면 모를까.
초급 생도 중엔 잠재력이 높은 아이들이 많았다. 메사와 벨롭은 물론, 이번 임무에 나간 대부분의 생도들이 그랬다.
그들은 이번 구출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꼭 존경과 신뢰를 얻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엄청 잘 풀려 버렸군.’
메사를 구한 건 마냥 계산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전생과 현생을 합치면 도합 43년을 살았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눈앞에서 어린 소녀가 험한 꼴을 당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새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오늘 메사를 구하지 못했다면, 진은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꼴을 보려고 회귀를 한 건 아닐 테니까.
무력함이라면 전생에서 차고 넘치게 느꼈다.
이제는 다른 걸 누려야 할 때였다.
“음.”
우웅!
거품 묻은 손바닥 위로 시커먼 구체가 형성되었다.
‘이게 4성의 영기라는 말이지…….’
3성일 때와 외관상 큰 차이는 없으나, 무게감이 달랐다. 손끝을 저릿하게 울리는 영기의 기운이 한층 더 묵직했다.
4성의 영기는 6성의 오러나 마력과 대등한 파괴력을 지닌다.
평범한 힘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심지어 상성조차 영기가 우위이기 때문에, 순수 파괴력만 계산하면 진은 이미 전생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다만, 아직 검술이 3성이니 영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긴 힘들겠지.’
영기는 검을 통해 사용할 때 가장 큰 효율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브라다만테’나 ‘바리사다’ 같이 영기 전용으로 주조된 특수한 검을 사용할 때 극대화된다.
솔더렛은 그림자의 신이자 검의 신.
당연히 마법과 영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법사들이 솔더렛을 염원하는 건, 영기라는 힘 자체의 우월성 때문이었다.
‘어울리지 않다는 게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효율의 문제.
그리고 진은 언제나 더 효율적인 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5년 내로 검술 6성을 달성해야겠군.’
검술 6성.
흔히들 1성에서 2성을 초보, 3성에서 4성을 평범한 기사, 5성을 뛰어난 기사, 6성을 아주 뛰어난 기사로 분류한다. 마법사들의 등급 또한 이와 비슷했다.
7성부터는 ‘고수’의 반열이었다.
그래도 이 넓은 세상에 고수는 꽤 많다. 대륙 전체 인구가 이십억을 넘으니 당연한 일이다.
7성은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에게나 초월적인 존재로 분류될 뿐, 무인들 사이에서 ‘규격 외’로 분류되는 건 8성 이상부터.
8성부터는 그 경지를 달성한 자가 현저히 줄어든다.
9성은 전 세계의 은거 기인들까지 샅샅이 뒤져도, 백 명을 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일 지경이다. 10성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단 하나.
유일한 경지, 창성. 그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반신의 영역이었다.
‘이번 생엔 거기까지 간다. 아니, 그 이상까지도.’
그러려면 우선 당장 중급반 진학과 동시에 시작될, 형제들의 본격적인 견제부터 성공적으로 받아쳐야 할 것이다.
아까 뮤와 앤, 토나 형제는 진이 없는 곳에서 대화를 나눴지만.
진은 이미 토나 형제가 어떻게 나올지 대충 예상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전생에 룬칸델의 밑바닥을 25년이나 굴렀으니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전생에선 초급반에서 낙오했기 때문에 중급반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곳이 야생의 정글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라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급반은 논리가 필요한 곳이 아니다.
실제의 정글도 마찬가지다. 정글에선 간혹 약삭빠르게 잔머리를 굴리는 짐승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대개 먹이사슬의 중하위쯤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정글을 평정하는 짐승은 무엇인가?
‘중급반은, 힘으로 제패한다.’
압도적인 힘과 야성을 지닌 짐승이었다.
* * *
1795년 2월.
생도 성과 발표가 끝났다.
초급반은 진과 임무를 나간 전원이 중급반으로 승격되었다. 진은 초급반 대표자로서 룬칸델의 원로들에게 상패와 격려를 받았고, 진학한 생도들의 기숙사가 변경되었다.
진도 2등 집사 페트로로부터 방을 옮기라는 권유를 받았다. 로사가 진에게 저택 중심에 있는 큰 방을 내어 준 것이다.
그곳은 진의 큰형님이자 가문의 장남인 ‘조슈아 룬칸델’이 어릴 적 사용한 방이었다. 조슈아 이후로 아무도 사용하지 못한 방이기도 하고.
“페트로, 어머니께 나는 괜찮다고 전해 주게. 그냥 이 방을 그대로 쓰고 싶군.”
“도련님. 조슈아 도련님이 쓰신 방은 검의 정원에서 가장 좋은 축에 속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습니다. 가문의 장자에게만 허락된 방이니까요.”
“그 정도는 나도 알지만 여기가 좋아. 자네가 잘 말씀드려, 속상하시지 않도록. 알겠나?”
페트로는 지난 몇 년 동안, 진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아는 막내 도련님은 단 한 번도 선택을 번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 아쉬웠다.
장자의 상징인 방을 내어 주겠다는데, 어째서 마다하는 것인가? 다른 형제들은 탐이 나도 손가락만 빨던 방인데!
“막내 도련님, 한 번만 더 재고해보심이.”
“날 생각해 주는 건 고맙지만, 분명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까우면 그 방은 자네가 쓰게.”
“도련님!”
“하하, 그래 봐야 방일 뿐이야. 가보게. 난 그렇게까지 넓고 부담스러운 방은 싫기도 하고.”
페트로가 무언가 눈치 챈 듯 고개를 숙였다.
그가 줄곧 지켜본 막내 도련님은, 고작 열다섯이라 믿을 수 없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님께서 방을 내어 주신 걸, 포상이 아니라 시험으로 인지하셨구나!’
페트로는 그길로 로사에게 돌아가 진의 의사를 밝혔다.
“진이 거절했다고?”
“예, 마님.”
턱을 괴고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는 로사. 그녀는 진이 조슈아의 방을 거절한 게 흡족한 모양이었다.
‘진, 우리 막내아들은 가끔 욕심이 없는 건지, 너무 많은 건지 분간이 어렵다니까.’
진이 그 대단한 룬칸델 장자의 방을 거절한 건 다름이 아니다.
조슈아가 이사한 이후 줄곧 비워진 방. 그건 암묵적으로 ‘장차 가문을 책임질’ 아이에게만 허락된 방이라는 뜻이었다. 방으로 들어선 순간 그에 준하는 지원도 함께하겠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진은 그게 달콤한 미끼가 끼워진 낚싯바늘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조슈아의 방으로 이사하는 순간, 그 방을 갖지 못했던 모든 형제들의 표적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짓궂으시군.’
철컥.
진이 브라다만테를 허리춤에 걸고 방을 나섰다.
내일부터 중급반에서 훈련하게 될 생도들을 한 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스컷. 이번에 진학한 생도들을 모두 모아라.”
“예.”
메사와 벨롭을 비롯한 아홉 명의 생도가 즉시 뛰쳐나와 스컷의 방으로 모였다. 꾹 참고 있지만, 모두들 조금씩 긴장한 기색이었다.
“내일부턴 중급반이다. 다들 각오는 되어 있나?”
“예!”
“너희들도 알다시피, 중급반부터는 ‘파벌’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세력이 형성되어 있다. 알고 있겠지?”
생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의 유일한 파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온갖 텃세와 괴롭힘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순혈 룬칸델인 진을 대놓고 공격하는 미친 생도는 없을 테지만, 그의 파벌까지 건드릴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
“예!”
생도들이 결의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진은 참 귀여운 꼬마들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부터 이 꼬마들을 위협할 놈들은 뻔하다.
‘일단 토나 형제.’
그들은 진에게 잔뜩 기가 눌려 있는 상태지만, 분명 뭔가 수를 준비했을 터였다.
‘그리고 나를 견제하기 위해 토나 형제를 돕고 있을 다른 누군가. 아마 뮤나 앤 누님일 확률이 높겠지. 아니면 뷔고 형님일 수도 있고.’
토나 형제의 조력자가 누구건.
진은 초장에 확실하게 기선 제압을 할 계획이었다.
“내일 보자고. 아, 그리고 너흰 훈련 외 시간에도 최소 셋 이상으로 조를 짜서 몰려다녀라. 내가 중급반을 완벽하게 평정하기 전까지 개인행동은 절대 금지다.”
“알겠습니다!”
* * *
중급 훈련반부터는 가론 알테미로처럼 초청된 교관이 아니라, 룬칸델의 원로가 직접 교육을 맡았다.
중급반 훈련은 가주가 되지 못한 기수 중, 8성 이상의 기사로 활동했던 원로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였다.
현재 중급 훈련반은 약 150명으로, 교육을 맡고 있는 원로의 이름은 ‘제드 룬칸델’이다. 과거 8성 기사로 위명을 떨친 그는 시론의 동생이었다.
“주목.”
“주목!”
훈련장에 모인 생도들이 제드의 말을 복창했다.
“올해는 신입이 열 명 들어왔고, 스물일곱 명이 낙오했다.”
단상에 올라선 제드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내려다보았다. 낙오자가 신입보다 많은 게 언짢은 것이다.
“신입들은 선배들에게 중급 생도의 생활을 전부 배워라. 나는 오직 검술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역할만 한다. 살인을 제외한 사건 사고는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선배들에게 묻겠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게 무엇이더냐.”
“룬칸델에 약자는 필요 없다!”
“룬칸델에 약자는 필요 없다!”
돌연 중급 생도들이 한 목소리로 목청을 높였다. 심지어 그들은 일제히 신입들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명백한 악의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진의 생도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짓눌려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운 기색이었다.
누구라도 갑작스레 이런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면 중압감에 숨이 막힐 것이다.
약자는 필요하지 않다고 소리치는 무리 사이엔 토나 형제도 끼어 있었다. 형제의 근처엔 4, 5성 기사가 대여섯쯤 서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뮤와 앤의 파벌이었다.
‘요란하군. 토나 형제는 저기 있고… 곁엔 인상 더러운 놈들이 몇 있고. 앤 누님의 파벌이로군.’
약자는 필요 없다!
약자는 필요 없다!
구호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중급 생도들은 신입들의 고개가 꺾일 때까지 계속 소리를 지를 것 같았고.
별안간 진이 걸음을 옮겨 토나 형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산책이라도 하듯 가볍고 차분한 걸음걸이였다.
‘저, 저거 갑자기 왜 이쪽으로 오는데?’
‘쫄지 마, 오늘부터 막내를 박살 낼 생각만 해!’
토나 형제가 그런 느낌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더욱 악을 썼다. 제드는 진이 걸음이 흥미로운 듯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진은 토나 형제의 코앞까지 다가갈 모양이었고, 신입들에게 몰린 중급 생도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옮겨간 찰나.
스릉!
별안간 진이 브라다만테를 뽑아 무언가를 베었다.
“으아악!”
생도들의 악의 가득한 구호가 한순간에 멈췄다. 그들은 이 경악스러운 상황에 벌어진 입을 차마 다물지 못했다.
토나 형제는 아예 석상처럼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드마저 수염 쓸던 손을 멈추었다.
진이 벤 것은, 토나 형제 옆에 서 있던 생도의 팔뚝.
앤의 파벌인 그는 5성이었고, 그건 곧 중급반 먹이사슬의 최상위라는 걸 뜻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기습엔 대비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룬칸델 순혈이라 할지라도, 진학 첫날. 그것도 제드가 종용한 신고식에서 검을 뽑는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도의 팔에서 철철 피가 흐르고 토나 형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장내의 열기가 싹 가셨다.
150명의 시선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집중되었건만. 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찬찬히 납검했다.
대신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의료진을 불러라.”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신고식을 받아야 할 쪽은, 자신이 아니라 이들이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