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27)
제 333화
101화. 내가 되어라
텔롯을 만난 이후 한동안은 바깥으로 돌지 않고 임무만 수행했다.
이동 관문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플과 크고 작은 교전을 벌였고, 각종 세력들의 중재를 도맡았으며, 요인을 구출하거나 적을 암살했고, 시설을 파괴하기도 했다.
한 달 사이에 도맡은 임무만 무려 일곱 건.
바르톤 비체나 암살 임무처럼 최고난이도의 임무는 없었으나, 휴식 없이 일곱 건이나 해치우는 일은 진이라 할지라도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임무는 모두 성공했다. 목표 외에 추가적인 성과를 달성한 경우도 다섯 건.
진이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직 외출 금지 3년이라는 징계가 ‘유보’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텔롯이 힘을 쓰고 있긴 하나, 단기간에 징계를 완전히 삭제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조르덴은 그날의 징계가 유보로 끝난 것에 아직까지 뿌득뿌득 이를 갈고 있으니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조르덴은 다시 징계를 거론할 것이다.
냠, 냠, 꿀꺽.
“아카데미 불량 학생이 되어 교내 봉사활동이라도 하는 기분이군. 한 달 만에 이만한 성과를 올렸으니, 원로회도 날 고깝게 보는 시선을 좀 거둘 수밖에 없을 거다.”
진이 씹고 있던 고기를 삼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옛날 생각나는군. 여기서 너랑 네 동기들이랑 같이 밥 먹던 시절이 벌써 거의 10년 전이다. 수호기사 벨롭, 그때 내가 고기 잘 챙겨줬던 걸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거의 10년 전 일로 생색을 내실 줄 알았다면 덜 얻어먹었을 텐데요, 주군.”
진은 텅 빈 생도 초급반 수련장 바닥에 앉아서 벨롭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초급반 시절 먹던 육류 가득한 식단.
식판에 놓인 고기를 보는 벨롭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벨롭 슈미츠가 미텔 왕국 동부 설산지대에서 복귀한 것은 며칠 전이다.
끝내 쿠잔과 율리안이 동부 설산지대로 몰아준 거두들, 반켈라의 파계기사 휘로크와 비먼트 서부의 광견 잭 글로우를 붙잡아 복귀의 명분을 쟁취한 것이다.
당연히 그는 복귀하자마자 진에게 찾아와 충성의 서약을 맺었고, 바로 어제까지 임무를 함께 수행하기도 했다.
“산맥에 갑자기 웬 거두들이 숨어들기에, 처음엔 주군의 적대 세력 중 누군가가 절 죽이려고 사람을 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설마 그 끔찍한 작자들을 주군이 보낸 것일 줄은…….”
벨롭이 설산에서의 전투를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건 현재까지 벨롭의 생에서 가장 길고 치열하며 고독한 싸움이었다. 지원 하나 없이 무릎까지 꺼지는 설산을 몇 개나 뛰어넘으며 추격하고, 도망치고, 기회를 잡고, 습격하고, 습격당하고, 식량은 떨어져 가고…….
“하하, 배신감이 상당했겠군.”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한 단계 성취를 이뤘죠. 검술도,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입니다.”
“많이 강해지긴 한 것 같네.”
벨롭은 본래도 진을 제외하면, 초급반 시절 최고의 잠재력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벨롭이 진의 기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날마다 정진한 데다 생사의 경계까지 수차례 오갔으니 성장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득, 생도 시절 주군을 만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신감과 생색에 치를 떨더니, 갑자기 웬 금칠이야?”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냥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 이야기였죠. 아무튼,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이죠. 주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 삶은 굉장히 불행해졌을 것 같다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초급반 시절, 주군이 제 안의 두려움을 깨주셨습니다. 주군이 예비 기수가 된 이후에도, 지금도. 종종 그날을 생각하곤 하죠.”
-방금도 깨달았겠지만, 넌 나보다 약해. 그리고 나보다 선하지. 나는 네 그런 점이 좋다. 하지만 좋은 것만 해선,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벨롭이 초급반 시절 진이 해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진도 같은 기억을 떠올렸는데, 어쩐지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덕분에 전 룬칸델의 기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군이 아니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건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날 괴로움에 지쳐 스스로 생을 포기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내가 아니었어도 넌 충분히 잘 해냈을 거다.”
전생에선 잘 해내지 못했다.
회귀 전의 벨롭은 룬칸델에서 추방당했고, 하이란으로 가서 훈련을 받은 후 비먼트의 친위대가 되었다.
그리고 황실의 명령에 따라 원치 않는 학살을 반복하다 불행한 삶을 스스로 끝맺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이토록 잘 자라준 벨롭이 더 대견하게 느껴지는 진이었다.
“그날 대련에서 주군이 보여주신 행동에 다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아직까지 동기들 모이면 매번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러냐.”
“하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주군이 혼자 메사를 구해왔을 때였습니다. 주군이 단신으로 수인들의 땅으로 가 메사를 데려온 순간, 모두 마음속으로 맹세했습니다. 우리가 충성을 바칠 대상은 주군밖에 없다고요.”
돌아보면 킨젤로와의 악연은 그때부터였다.
‘그때는 킨젤로가 그저 미친놈들 모인 테러 집단인 줄만 알았지.’
지금은 지플조차 전면전을 꺼릴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다. 게다가 단장의 정체는 아직까지 마족일 가능성이 높다고만 추정될 뿐이고 말이다.
‘하여간 신경 쓰이는 족속들이야, 킨젤로도. 조만간 이블리아노가를 한 번 방문해보든가 해야겠군. 동향을 살펴볼 필요는 있겠어.’
하나 당분간은 도무지 그럴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상 근신 상태로 임무에 치여 사느라 아직 올망고가 알려준 세 번째 무덤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벨롭을 부른 상태였다.
“오랜만에 듣는 아부에 귀가 다 간지러울 지경이로군. 옛날에 그 어리숙한 녀석은 어딜 간 거야? 혀에 기름이라도 바른 거냐.”
“원하시면 더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응, 그만하면 됐어. 그보다 벨롭, 네가 해줄 일이 하나 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오늘부터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는 진 룬칸델이다.”
“예?”
“내일 다음 임무 출발하는 거 알지?”
“주군께서요? 그, 용병들한테 납치된 에칸 왕국 백작을 구출하는 임무 말씀이시죠?”
“맞아. 그런데 이젠 내 임무가 아니라 네 임무지. 네가 진 룬칸델 역할을 좀 해.”
“진심이십니까?”
“어차피 백작은 안대를 쓰고 있을 거야. 누군가 자신을 구해도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다고. 구출해주고, 적당히 나인 척 연기하다가 에칸 쪽 수비대에 넘겨.”
“세상에.”
“설마 구출 임무엔 자신이 없는 거냐?”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주군인 척 연기를 합니까?”
“왜 못 해? 인질은 눈이 가려져 있을 거고, 넌 복면을 쓸 예정인 데다 내가 제작을 맡겨둔 가짜 시그문드도 가져갈 건데. 무엇이든 말씀만 하라며.”
진은 이미 일곱 건의 임무를 하는 도중, 피콘 민체에게 들러 가짜 시그문드 제작을 의뢰해놓았다.
아무런 기능 없이, 그저 겉모습만 똑같은 검으로.
물론 시그문드 특유의 귀기 어린 창백한 빛깔은 완벽히 재현할 수 없으나, 엇비슷한 색상까지는 가능했다.
또한 시그문드의 모조품 역시 대장장이의 신이 만든 물건인 만큼, 그 자체로 명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완성되었을 거다. 그리고 이거 한 번 입어봐.”
진이 기수 코트를 벗어 벨롭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벨롭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훈련장에 둘밖에 없으니 누가 볼 일은 없지만,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도, 도련. 아니, 주군. 진심이십니까? 이건 기수 코트라고요. 룬칸델의 기수가 아니면 그 누구도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그저 옷일 뿐이야. 입어봐, 치수 맞나 보게.”
“주군!”
“명령이다. 벨롭, 머리가 크더니 이제 반항을 하는 거냐.”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벨롭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입어보겠습니다.”
“오, 다행히 잘 맞는군. 염색약을 줄 테니 머리도 검게 물들여라.”
“정말 괜찮겠습니까?”
“행여 네 변장이 발각되고, 그게 가문 내에서 문제가 된다면. 너만큼은 내가 아무 피해 없게 빼줄 테니 염려는 접어둬.”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설마 제가 일신의 안전이 두려워서 주군의 뜻을 가로막으려 하겠습니까?”
“아니면 됐어. 이게 날 돕는 길이다. 네가 최적이야. 가장 믿을 만하고, 나랑 체격도 비슷하고, 내 기사들 중 검술도 최고니까. 잘 모르는 놈들이 보면 널 나라고 착각할 만한 요소가 충분히 많거든. 마음 같아선 메사를 시키고 싶지만, 걘 나랑 성별이 달라서.”
“주군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와 주군의 무위는 격차가 큽니다. 까딱하면 들통 날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센 놈들을 상대해야 할 땐 내가 직접 가야겠지. 네 말대로 그놈들은 알아볼 테니까.”
“설마,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저더러 주군 행세를 시킬 생각이신 건 아니리라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믿음은 틀렸어. 고기 먹은 값 해야지. 내가 말이야, 가문 바깥에서도 할 일이 너무 많거든. 잘 해낼 수 있겠지?”
하아.
벨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부터 틈날 때마다 극단의 배우들을 찾아가서 연기라도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이 또한 주군의 명이니, 제게는 완벽히 해낼 의무가 있으니까요.”
“좋은 자세야. 그리고 혹시라도 흑검회가 뒤에 붙은 것 같으면. 임무를 실패하더라도 절대 발각되지 않도록 도망쳐. 흑검회장한테 걸리면, 너나 나나 끝장이다.”
“불과 1분 전에 발각될 경우, 어떻게든 저만큼은 피해 없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만.”
“내가 그런 말을 했나?”
“예나 지금이나 늘 기행을 일삼으시는군요.”
“늘 결과가 좋았다 보니 바꿀 필요가 없었거든.”
“가끔은 걱정이 되어서 동기들 모두 다들 가슴 졸일 때가 있습니다, 주군.”
귀여운 놈들.
진이 피식 웃으며 벨롭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네 다른 동기들도 수호기사 시험에 모두 합격하면 한 번 모이자. 술도 한 잔하고, 전할 말도 있고.”
“전할 말씀은 무엇이십니까?”
“그건 그때 가서 알려줄게.”
차마 막 시험에 합격해서 들뜬 마음으로 달려올 막내 사단에게, 또 다른 지옥 훈련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말을 벌써 전할 수는 없었다.
막내 사단은 벨롭을 제외하면 대부분 6성 후반, 7성 초반에 머물고 있으니, 당장 제대로 된 전력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련님은 저를 대신 임무에 보내고 어딜 다녀오실 생각이십니까?”
“선조님들을 뵈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