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28)
제 333화
102화. 테마르의 세 번째 무덤(1)
1799년 6월 5일.
진은 갈색 로브를 입고 평범한 여행자처럼 분장한 채 쟌 왕국 남부의 국경지대에 있는 숲길을 걷고 있었다.
‘이젠 이쪽도 길을 다 외운 것 같군.’
여름이 시작되었는데도 숲길은 마냥 서늘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귀엽고 순박한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진이 돌연 멈춰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생선 굽는 냄새가 났다. 쟌 왕국 남부의 숲에서 느닷없이 생선이 구워지는 노릇한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근처에서 물꼬리족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터벅, 터벅.
물꼬리족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진이 다가온 줄도 모르는 채 자기들끼리 구워진 생선 앞에서 춤을 추며 흥겨운 모습이었다.
물꼬리족은 총 세 명이었고, 모두 진이 아는 얼굴이었다.
“어둠불꽃.”
“엇, 목소리, 이, 는.”
춤을 추던 물꼬리족들이 홱 진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왕코, 왕눈이로군.”
“진, 룬칸델. 어어, 맨날. 우리, 찾나. 어떻게?”
“그야 너희 도움을 자주 받았었으니. 이번엔 선물도 있다. 그때처럼 도망자 신세가 아니거든.”
진이 품속에서 미리 준비한 최고급 장어포를 꺼내자, 일시에 세 물꼬리족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이거, 장어. 말린 것. 귀한, 물고기.”
“주나, 우리?”
“말, 정?”
군침을 질질 흘리는 물꼬리족들.
“말정이 아니라 정말. 아니, 금설족 애들이 돈 안 나눠줬어? 고급 음식이긴 한데, 너희 정도 재력이면 이거 삼시 세끼 사먹어도 문제없을 텐데.”
물꼬리족들은 장어포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진이 장어포를 내밀자 그들은 거의 걸신이 들린 것처럼 달려들어 허겁지겁 장어포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질겅, 질겅, 냠!
진은 잠시 그들이 식사하는 것을 기다려주다가, 금설족을 만나거든 한소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마음을 가졌다.
“아, 미안, 하다, 너무, 보여서, 맛, 있어.”
순식간에 장어포를 끝장낸 물꼬리족들이 엄지를 척 치켜들며 말했다.
“괜찮아.”
“갈, 거지? 동굴.”
“응.”
물꼬리족을 따라 그들의 비밀 동굴로 향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이 동굴은 정말 미로가 따로 없군.’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헷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
금설족과 물꼬리족들이 지내는 동굴 끄트머리의 공간도 길잡이가 동행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지만, 묘인족의 거처는 아예 탐색이 불가능했다. 그들의 공간을 알고 있는 길잡이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 만약 이 동굴에 묘인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래서 그들을 찾으려고 한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동굴 전체를 다 무너뜨리는 것.
심지어 그렇게 하더라도 묘인족을 만날 수는 없었다. 파괴자들은 묘인족이 머물렀던 흔적만을 겨우 볼 수 있을 것이다. 묘인족은 더 깊은 곳으로 숨을 테고.
물꼬리족과 금설족의 공간에 다다르자, 안쪽에서부터 은은한 노란빛이 번졌다.
“어, 왔군! 우리 힘세고 강한 파트너!”
“요즘 우리 지부마다 네 앞으로 편지가 얼마나 많이 오는 줄 알아? 아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는 고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인간들이란 참 이상해.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도 다 사랑스러운 고객들 아닌가. 기대하라고, 진 룬칸델. 네 얼굴로 광고 시작하고 매출은 말 그대로 폭발을 해버렸어. 생산 일정이 늦어지니 최상품인 금설을 열 배 값을 주고 사겠다는 귀족들이 줄을 섰단 말이야!”
순이와 돌이, 송이가 진을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며 속사포로 말을 쏟았다.
“……이게 다 뭐야? 황금? 설마 동굴을 전부 황금으로 꾸민 거냐?”
금설족들이 앉아있는 동굴 내부가 온통 황금으로 물들어있었다. 멀리서부터 느껴진 은은한 노란빛의 정체였다.
“그럼! 순금으로 한 번 도배를 해봤지. 어때? 죽이지?”
금화 위에 걸터앉아 있던 팽이가 진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순금에서 흐르는 빛 때문에 앞니가 반짝이고 있었다.
촤르르륵!
팽이가 아래로 내려서며 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널 이용한 홍보 덕에 우리 금팽이 상단은 아주 순항 중이다, 진 룬칸델. 사업 보고를 좀 해주도록 하지. 의논할 것도 있고 말이야.”
“의논?”
“얼마 전 우리 연구원이 기가 막히는 화장품을 하나 더 개발했어. 그런데 재료가 좀 특이해서 수급이 곤란한 상황이거든.”
“뭐 얼마나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는 거야?”
“비궁에서만 나는 꽃들이 있어. 그 성분에 미백 효과가 어마어마해서, 이건 될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아예 비궁 쪽하고 거래를 터볼까 하는데…… 들려오는 풍문으로는 네가, 음. 비궁의 사위가 되네 마네 하더라고?”
“그런 이야긴 또 어디서 들었어?”
“우리가 사업하면서 만나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 얘기, 사실이야?”
“헛소문이다.”
“흠,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았을 것 아니야. 비궁하고 라인 만드는 거 가능해?”
라인이라는 단어에 문득 비궁주와 루카스의 핫라인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장담은 못 해. 나도 염치라는 게 있는 인간이거든.”
“염치?”
“비궁에 신세 진 일이 많은데, 또 신세를 지긴 뭣하다는 이야기다. 일단 사업에 대해선 보고서 작성해서 티칸으로 보내.”
“누가 룬칸델 기수 아니랄까 봐 보고서 참 좋아하시는군.”
“그런데 팽이. 동굴 내부에 순금덩이를 가득 쌓아놓을 돈은 있으면서, 물꼬리족 녀석들에겐 장어포도 안 사주는 거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장어포를 선물해줬더니 애들이 며칠 굶은 것처럼 먹더라. 설마 브라다만테를 판매한 돈을 물꼬리족에게 나눠주지 않았다거나.”
진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금설족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눠줬어. 분명히.”
“그런데 왜 저 친구들은 아직도 가난하게 지내고 있지?”
“낸들 알아? 돈을 쌓아서 줬더니 어떻게 쓸 줄도 모르고, 대충 동굴 한쪽에 쌓아두고만 있으니 답답해서 은행에 직접 맡겨줬어. 장어포를 매일 잔뜩 사먹을 수 있다고 여러 번 이야기도 해줬다고. 그런데도 저것들은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물꼬리족을 돌아보는 진.
그들은 저들끼리 어눌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며 또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다 도금이야. 진짜 금덩이를 갖다 놓은 건 아니라고. 지금은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할 시기인데, 쓸데없이 돈 낭비할 틈은 없지. 우리가 설마 저 어수룩한 놈들 돈을 떼어먹겠어? 정이 있는데.”
“오해가 있었군. 미안하다.”
“미안할 것까진 없어. 우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인간이니 말이야. 뭐, 우리가 얼핏 보면 속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 속물이 맞긴 하지. 하지만 계산은 그 누구보다도 확실하거든.”
팽이가 흐뭇한 시선으로 물꼬리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왔나? 이렇게 아무 기별도 없이. 분위기 보아하니 사업 관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묘인족을 만나러 왔다.”
진의 대답에 금팽이 상단의 행수들은 물론이고, 동굴에 있는 작은 수인족들 모두가 쫑긋 귀를 세웠다.
“갑자기 묘인족을? 꼭 만나야 해?”
“그래.”
“흠, 곤란하게 됐군. 묘인족이 너를 우리 작은 수인들을 지켜줄 사람으로 판단했던 건 기억나지만, 그것과 별개로. 걔들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야.”
“맞아. 우리도 정말 운이 좋아야 마주칠 수 있…… 이런.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었군.”
송이가 손가락으로 진의 뒤편을 가리켰다.
“엇!, 어, 어어?”
“햐, 신기하네. 이거,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상황이 있지 않았나?”
“맞아, 진 룬칸델이 현상 수배자 신세가 돼서 쫓기던 시절에도 딱 이랬어.”
눈처럼 새하얀 털 속에 보랏빛 눈동자가 도드라지는 신비로운 종족.
묘인족은 어느새 진과 작은 수인들로부터 스무 걸음쯤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네가 정말 특별하긴 한가 보다. 설마, 약속이라도 하고 온 건가?”
팽이가 진과 묘인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실 묘인족의 등장에 진도 내심 놀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올망고 님.
-[응?]
-세 번째 무덤의 열쇠는 누가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두 번째 무덤을 떠나며 올망고와 나눴던 이야기.
당시 올망고는 세 번째 무덤의 열쇠를 ‘묘인족’이 가지고 있다고 답해주었었다.
‘묘인족이 만나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쉽게?’
예비 기수 시절 추격을 피해 라프라로사로 도망쳤던 그때처럼, 갑자기 묘인족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문득 걱정이 되었으나.
진은 곧 묘인족이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가볍게 손짓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서 가봐! 묘인족은 변덕이 심한 편이라, 잠깐만 지체해도 그냥 사라질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묘인족에게 다가가는 진.
묘인족이 뒤돌아 걸음을 옮기기 직전, 진은 그가 저번에 한 번 본 묘인족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묘하게 그의 표정이 무척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저번에 봤을 때와 느낌이 전혀 다르군.’
묘인족은 진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그 뒤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무슨 장치를 해둔 것인지, 아니면 마법을 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 현실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만 그게 불쾌하거나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와중.
별안간 시야가 확 트이며 보라색 별이 가득 떠 있는 해변이 드러났다.
‘해변!? 게다가 보랏빛 별빛이라.’
쟌 왕국 남부 국경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결코 단시간에 걸어서 이동할 수 없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5분 정도밖에 걷지 않은 것 같았는데. 눈두꺼비 모트를 타고 이계 설원을 처음 이동할 때도 이런 느낌이었지.’
주위를 둘러보자 멀찍이 떨어져 나뭇가지로 모래사장에 무언가를 그리는 묘인족의 모습이 보였다.
[내 이름은 네루야. 천 년의 계약자, 진 룬칸델. 우리, 저번에 한 번 본 적 있지?]“예, 그때 도와줘서 고마웠습니다. 이제야 인사를 하는군요.”
[여긴 동굴과 이어진 우리만의 공간이야. 인간이 들어온 건 네가 처음이지.]“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 없을 테니, 많이 봐두도록 해. 테마르의 무덤을 열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진은 당연히 그게 다시 이 공간에 묘인족이 자신을 초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네루가 이은 뒷말은 이것이었다.
[곧 너의 적들이 이곳을 찾아 부수고, 작은 수인들을 학살하려고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