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76)
제 333화
115화. 요나의 경고(1)
한동안 밀려드는 감정을 정리하느라 발레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다 한들 그녀는 여전히 혼자였다. 그러나 그야말로 영문도 모른 채 혼자였던 지난날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히스터의 역사를 되찾는 일, 그 삭막한 맹목으로만 가득하던 사명에 가슴 뜨거운 이유가 더해진 것이다. 옛 요정과 히스터, 그리고 회색부엉이들의 원수를 갚는 일에도.
[솔더렛의 전언을 지킨 것과 더불어, 널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쉴라 님은 이제 어쩔 생각이십니까?”
발레리아의 묻자 쉴라가 눈을 감았다.
마일라는 죽었으나 완타라모 숲엔 아직 저주받은 요정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난 계속 이 숲에 있을 것이며, 동족들과 함께 가왕주를 빚을 것이다. 그게 저주받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존재 의의니까.]쉴라의 두 날개에 강렬한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진 룬칸델과 너의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다시 숲의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마일라의 죽음 이후 숲의 통제권은 짧은 시간 동안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쉴라가 발레리아를 통해 옛 기억을 되찾은 순간, 숲을 다루는 힘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다시 저주받은 요정들의 왕이 되었다.
또한 강해졌다. 발레리아를 통해 잊힌 기억을 일부 되찾은 것만으로도, 그녀가 다른 저주받은 이들보다 진짜 요정에 조금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쉴라 님.”
[말하거라, 진 룬칸델.]“숲을 떠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섯 번째 무덤의 위치를 물으려는 것 같구나.]“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비밀은 그게 전부였다. 다섯 번째 무덤으로 이르는 길은 너희가 직접 찾아야 해.]솔더렛이 남긴, 무덤으로 이르는 단서는 완타라모 숲까지가 마지막이었다.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맨바닥부터 시작해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플도, 비먼트도 계속 테마르의 무덤을 찾을 거다. 킨젤로도 마찬가지. 그리고 메리 누님이 무덤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했을 테니, 룬칸델에서도 찾아나서는 이들이 생기겠지.’
4대 세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진이라 할지라도 무덤의 위치를 은밀하게 찾아보는 건 불가능했다.
또한 4대 세력에 비하면 진이 가진 세력은 한없이 미약하다. 칠색조가 유능하다 한들 제대로 인력을 투입한 4대 세력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스승이 없었다면 4대 세력과 경쟁조차 되지 않았겠지.’
묘인족을 찾은 것처럼, 발레리아는 앞으로 히스터의 전승지와 더불어 테마르의 무덤을 찾을 터였다.
그러니 진은 발레리아나 룬칸델의 ‘잠정적 아군들’이 무덤의 위치를 찾아올 때까지,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스승이 4대 세력보다 먼저 무덤을 찾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스승에겐 내가 준 솔더렛의 기록 장치들과 오늘 얻은 네 번째 무덤의 파편들이 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너희가 이 숲을 찾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루루, 미루.] [예, 쉴라 님.] [자네들도 고생이 많았어. 고맙네.] [어차피 저희도 쉴라 님과 같은 입장이지 않았습니까. 천 년의 계약자를 위한 약속들이 있었지요. 그 일환이었을 뿐입니다.] [네루에게 안부 전해주게.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겠네.]진과 발레리아가 묘인족들과 짧은 포옹을 나눴다.
[우리 묘인족은 언제나 널 축복한다, 진 룬칸델. 아, 작은 수인들은 잘 지내나? 화장품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긴 하다만.]“모두 비궁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일족들과 함께 놀러 오십시오.”
[좋아. 돌아가면 비궁 근처에도 우리 은신처를 하나 만들자고 건의해볼게. 당분간은 우리 일족에게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이어서 루루가 발레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사과할게. 처음엔 네가 진과 관련이 없는 인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해하려고도 했었어.]“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거야. 또 언젠가 만나겠지만. 네가 아껴준 신물은 언젠가 세상에 좋은 일을 보탤 수 있을 때 사용하도록 할게. 너와 진 룬칸델이 세상을 위한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세상을 위한 운명을 타고났다.
루루가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진과 발레리아. 루루는 솔더렛과 옛 요정들이 남긴 그 작은 불씨들이 결국 지플을 불사르고 세상의 역사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리라 기대했다.
작별의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주며 진, 발레리아와 묘인족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완타라모 숲을 떠나기 시작했다.
발레리아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뒤돌아 쉴라를 바라보며 묵례했다.
“……네 기록에서 요정과 히스터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걸 엿본 후, 설마 이렇게 빨리 답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발레리아가 뒷말을 잇자 진이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발레리아 히스터.”
“……손수건?”
“눈물 자국이 남았어.”
“아.”
발레리아의 당황한 표정을 보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물론 순식간에 평소의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얼굴을 닦았지만 말이다.
“곧 녹장미 씨를 만날 거거든. 그대로 만나면 민망할 수 있잖아.”
“지플의 지원군을 막아준, 아주 친해서 다행이라던 그 사람. 누구지?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자칫 일이 제대로 꼬일 수도 있었어.”
“누이.”
“누이?”
요나, 친애하는 막냇누이. 그녀와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설마 스승을 죽이겠다며 난리를 치진 않겠지. 스승은 사밀의 은인이기도 하니까…….’
“히, 무슨 생각해? 우리 막내!”
반사적으로, 꽉!
이를 악물었다.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요나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검을 내지를 뻔했다. 발레리아도 마찬가지인 듯, 급격히 눈동자가 왼쪽으로 치우친 모습.
요나는 두 사람의 뒤에 서서 잔뜩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누님.”
진심이었다.
요나를 만날 걸 미리 예상해 심안을 개방하고 있었음에도 다가온 순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충격적이기도 했다. 진의 무위는 이제 곧 9성을 바라보는 정도. 그건 곧 감각을 완전히 깨운 상태에선 사밀의 최고 살수에게도 쉽게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이런 숲에서 요나 누님 정도의 암살자는 죽음의 신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 애초에 요나 누님이니까 이렇게 접근할 수 있던 건가.’
진이 성장을 이룬 동안 요나 또한 새로운 경지에 닿았다. 요나는 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암살자가 되어있었다.
“우리 막내, 옆에 있는 애 때문인가? 한 30초 전부터 네 뒤를 따라 걷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니! 그러다 내가 푹, 찌르면 어쩌려고?”
“그런 무서운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면 안 됩니다.”
“히히, 농담 아닌데. 막내는 몰라도, 옆에 걔는 찌를 수도 있지.”
성큼성큼!
요나가 반쯤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를 한 채 발레리아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자, 진은 기겁하며 그 앞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었다.
“누님!”
“비켜 봐.”
“제 동료입니다. 이러실 겁…….”
쉬잇-!
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요나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발레리아의 이마를 향해 던졌다.
스걱!
성취가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진은 요나의 암기를 베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겨우 쳐낸 것도 다행이었다. 요나가 정확히 무엇을 던졌는지 확실하게 알아보지는 못했다.
“무슨 짓……!”
눈을 부라리며 요나를 밀어내려던 진은, 이내 곧 무언가 찬찬히 발레리아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핑그르를…….
그건 진이 벤 요나의 암기, 두 개의 강아지풀이었다.
‘미친, 강아지풀?’
줄기가 잘린 강아지풀들은 마치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처럼(실제로 요나는 이렇게 될 것을 완벽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사뿐히 발레리아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토끼 귀처럼 말이다.
“히히히, 오랜만이야. 라일린 해저드!”
요나는 발레리아가 사용하는 가명 중 하나를 익숙하게 부르며 손을 흔들어댔다.
“……여전하시군요, 요나 님. 오랜만입니다.”
두 여인은 구면이었다.
“방금 진짜 부러웠어. 나도 위험에 처했을 때 막내가 이렇게 지켜주면 좋겠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야 내가 위험에 빠지지?”
“……잘 지내신 것 같네요.”
“그것도 막내랑 같이 있을 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데. 라일린, 넌 똑똑하니까 방법을 한 번 얘기해봐.”
요나는 발레리아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발레리아는 개의치 않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요나의 화법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것이다.
“후, 이번 장난은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누님.”
“내가 설마 막내의 친인을 죽이겠어. 그랬다간 엄청나게 미움을 살 텐데. 라일린은 사밀의 은인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고 정말 못 죽일 건 없지만 네가 싫어할 테니까…….
어쩐지 그런 뒷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군요, 누님.”
“히히, 그치. 나 잘했지?”
“예.”
“그럼 얼른 칭찬해봐.”
“어떻게요?”
“음, 사인 같은 걸 해준다거나?”
문득 엔야의 모습이 보여 풋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다소 과격하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누이였다.
“누님께서 지플의 지원군을 막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잘했지?”
“누님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응, 그랬을지도 몰라. 꽤 대단한 놈들이었거든. 혹시 오울 님이 난처해질 수도 있으니까 살려서 보냈는데, 생각해보니 그냥 죽일 걸 그랬어. 너한테 후환이 될 수도 있는데.”
“아뇨. 오울 님의 입장을 생각하시다니, 이건 정말 감격스럽네요. 누님은 방금 꽃집 주인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겁니다. 그런 사회성, 아주 좋습니다.”
“그럼,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 나도!”
한동안 진과 요나가 재잘대는 걸 보며, 발레리아는 무심코 보기 좋은 남매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녀 역시 요나처럼, 진을 만나고 조금씩 타인에 대한 경계가 알게 모르게 누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님, 어떻게 절 지켜주게 된 겁니까?”
“언제부터 뒤를 밟았냐고 묻는 거지?”
“그런 셈이죠.”
그러자 요나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설명해주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는 눈치였다.
“최근 거물 하나를 불구로 만들어서 휴가를 받았거든. 그래서 널 보러 본가에 찾아갔는데, 가문 분위기가 말이 아니더라고. 히, 막내. 폭탄을 터뜨렸던데?”
“메리 누님에 대한 이야기군요.”
“응. 네가 메리 언니에게 알려준 이야기 때문에 검의 정원이 발칵 뒤집혔어. 그리고 메리 언니는 회의 때 장본인이 쏙 빠져서 꽤 곤란했던 모양이더라. 널 혼내주겠다고 길길이 날뛰더라.”
“음.”
“잘 달래줘야 할 거야. 그런데 말이야, 진짜로 재밌는 얘긴 따로 있다? 히, 그거 알려주려고 널 찾다보니 자연스레 널 지켜주게 됐지.”
“재밌는 얘기라고요?”
요나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웃음 속에 깊고 어두운 살기가 함께 묻어났다.
“원로회 일부가 막내, 너를 진짜로 죽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