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0)
제 333화
118화. 가려도 가릴 수 없는(1)
1799년 10월 1일.
흑해의 심부.
마물의 시커먼 피와 내장, 살점 같은 것을 온몸에 뒤집어쓴 한 남자가 달리고 있다.
수호기사 칸이다. 그의 품 안에는 흑해의 초입까지 찾아온 집행기사에게 전해 받은 서신이 들어있었다.
벌써 진에 관한 서신을 시론에게 전달해온 것이 어느새 10년을 넘어가고 있었으나. 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서신의 내용을 살펴볼 순 없었으나, 집행기사로부터 본가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한다. 가주께서 흑해 5왕의 영역에 진입하시기 전에……!’
흑해 5왕의 영역.
시론과 그의 기사들은 이제 심부를 넘어 흑해의 왕들이 직접 다스리는 땅으로 진입할 예정이었다.
칸은 그 전에 마지막으로 흑해 초입과 인근을 점검하다가 집행기사를 맞닥뜨린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 저주받은 땅은 늘 그래왔지만, 흑해 5왕의 영역부터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어쩌면 진입 이후부터는 한동안 완전히 외부 세계와 단절될지도 모르는 일.
오늘따라 유난히 들러붙는 마물이 많았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시간과 계기만 있으면 내단 마물이 될 수 있는 놈들로, 칸은 심부에 들어서고도 꼬박 한나절을 더 싸워야만 했다.
후욱, 후우…….
시론의 본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더는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다행히 그들은 아직 흑해 5왕의 구역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시론과 기사들은 마물의 시체를 땔감 삼아 불을 피운 채, 실로 오랜만에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주님.”
칸이 호흡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마물 시체가 타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슨 일이냐, 칸.”
시론은 언제나처럼 정좌한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기사들의 초췌한 얼굴과 그의 깨끗한 얼굴이 대비되고 있었다.
“본가에서 급한 서신이 왔습니다. 12기수에 관한 것입니다.”
찬찬히 눈을 뜨는 시론.
“이리 내라.”
칸이 극히 공손한 몸짓으로 그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지이익!
칸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에겐, 시론이 잔뜩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밀봉을 뜯는 것이 무척이나 생소한 일이었다.
칸은 그 사실에서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가주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1기수 이후 처음이로군.’
‘선배 흑기사들께 몇 번 듣기는 했지만, 가주께서 12기수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야.’
흑기사들이 신기해하는 와중, 슬쩍 자신이 끼어들어도 좋을지 눈치를 살피는 한 마물도 있었다.
[하, 하하. 아이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요, 어르신!]전설의 마물 오즈도크였다.
물론 시론은 오즈도크의 아부 섞인 괜한 목소리에 전혀 반응해주지 않았다.
대신 오즈도크에게 날아든 것은 흑기사들의 싸늘한 눈빛이었다. 그 아가리를 당장 닫고 조용히 구석에 자리하라는 뜻의.
안타깝게도 오즈도크는 그 기류를 읽지 못하고(심지어 시론의 무반응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속 쾌활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쳤기 때문이었다.
대화 한 마디 없이, 날마다 무미건조하게 이어지는 살육과 전투의 나날은 이천 년을 살아온 내단 마물인 그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가벼운 농담이든, 시시콜콜한 잡담이든! 오즈도크는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12기수라면. 그때 저랑 싸웠던 막내아드님이지 않습니까? 제 내단을 좀 떼어갔던. 아, 물론 그게 아깝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치 있는 일에 쓰일 테지요…… 헤헤. 아드님이 참 사람이 멋있었죠. 잘생기기도 했…… 히익! 때, 때리지 마십쇼. 잘못했습니다!]결국 보다 못한 흑기사들이 직접 나서서 오즈도크의 입을 다물게 만들려는 찰나, 시론이 가볍게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내버려둬라.”
“예!”
흑기사들이 내지르려던 주먹을 거두며 묵례하자 오즈도크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요. 저는 단지 어르신께 즐거운 일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요. 음, 음…… 얼른 차나 내오겠습니다!]오즈도크의 말대로 시론의 입가엔 벌써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편지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가주, 12기수가 사고를 쳤습니다.)
“제드로군.”
첫 줄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젊은 시절 한창 서열 전쟁을 할 때, 친형제 중 유일하게 살려둔 동생의 필체였다.
(녀석이 7기수를 통해 초대 가주의 무덤에 대한 정보를 흘렸습니다. 가주께선 아마 이전부터 그에 관한 걸 알고 계셨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가문에 난리가 났었죠.
모두가 녀석이 돌아오면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와중,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아십니까?
복귀하자마자 우선 조르덴 원로장과 기 싸움을 한 판 벌이더군요. 때문에 원로장이 녀석의 두 팔을 잘랐었습니다. 성왕이 와서 치료해주었지만, 하마터면 다시는 예전과 같이 검을 휘두르지 못할 뻔했다고 합니다.)
그 대목에서 일순 시론의 미간이 좁혀지자 오즈도크가 냅다 무릎을 꿇으며 찻잔, 아니. 찻물이 들어있는 마물의 두개골을 내밀었다.
차를 끓인 불은 마물의 시체로 피운 불이니, 실로 끔찍한 차였다. 그러나 그 차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 중 하나라는 것을 세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치료가 끝난 직후엔…… 룬칸델을 마검사들의 이름으로 되돌리겠다는 선언을 하더군요.
그리곤 가로막는 원로들을 제압하고, 3기수는 정면으로 맞서 꺾어버렸습니다.)
시론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모습에 오즈도크와 흑기사들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3기수, 룬티아.
그 아이가 진에게 졌다면 분명 방심했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룬티아가 진에게 패배한 것은 시론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일이었다.
하나 방심했기 때문이든, 진이 또 새로운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벌어진 결과이든.
패배한 것은 패배한 것이다.
(사건이 있던 대련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하마터면 중정과 안채까지 박살이 날 뻔했습니다.
불을 휘두르는 마검에 이어, 미친 듯이 내리치던 번개들…… 이건 설명이 어렵습니다. 직접 보셨어야 하는데.
그 미친놈이 언젠가 한 번 가문을 거하게 뒤집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대형 사고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아래는 12기수를 감당하느라 검의 정원에 발생한 피해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주 대행, 중상.
2기수 경상, 4기수 경상, 5기수 경상, 6기수 경상, 7기수 경상, 8기수 경상, 9기수 경상, 10기수 경상, 11기수 경상.
3기수, 중상.
12기수, 중태.
흑검회장, 호법회장, 호민회장 경상.
원로회 5할 이상 중경상.
수호기사 1진 4할 이상 중경상.
집행기사 12인 중상, 54인 경상.
이외 부상자 다수.
전투 인원 사망자 없음.
비전투 인원 사상자 없음.
본가의 요청으로 휴페스터 국왕령 긴급태세 2단계 발동, 휴페스터 연합국 이동 관문 전체 봉쇄 및 언론 통제 중.
검의 정원은 모든 파견 기사를 복귀시키고, 전시에 준하는 상태를 유지 중.
……정확한 사상자 목록은 마지막 장에 상세 기입되어 있습니다.
가주 대행은 마지막에 녀석의 혼신을 담은 일격을 피하지 않은 탓에 깊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의료진들이 말하기를, 한동안 극도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더군요.
믿어지십니까? 지플 본대의 갑작스러운 습격도 아니고, 비먼트가 쳐들어온 것도 아니며, 반역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게 12기수 개인의 무력으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 맹랑한 놈의 무력으로 인해서!
형님.
가능하다면, 잠시 돌아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문의 일원들에게 큰 힘이 될 겁니다.
녀석이 성장한 모습을 직접 보시는 것도 즐거움일 거고 말입니다.)
크하하하……!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는 시론.
오즈도크는 살살 눈치를 살피며 따라 웃으려 했으나, 얼결에 시론과 눈이 마주치자 입을 꽉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시론이 그 순간에 싹 웃음을 지웠으니 말이다.
이쯤 되니 기사들도 편지의 내용이 궁금해 안달이 났다.
그래서 칸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넌 전부터 12기수에 관한 서신을 담당해왔으니, 한 번 운을 띄워보라고 말이다.
“가주님, 본가의 상황이 제가 들은 것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입니까?”
“넌 무어라 들었느냐?”
“집행기사 크론에게 휴페스터 전체가 봉쇄되었고, 전시에 준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서신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그리한다고 가려질 문제가 아니건만, 다들 충격이 컸던 모양이지.”
“솔직히, 12기수가 걱정됩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저 너머의 땅이다.”
칸과 기사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론의 시선이 심부 저 너머, 흑해 왕들의 시선에 닿고 있었다.
흑해 5왕, 이제 며칠만 더 가면 닿을 구역. 하루 앞쪽 거리엔 루나와 바네사, 투벤이 정찰을 하고 있었다.
그 땅에선 시론조차 전력을 다 쏟아 싸워야 할 날이 많을 것이다.
스르륵, 시론이 다시 편지를 앞장으로 넘겼다. 처음 읽을 때부터 거슬리던 내용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12기수, 중태.
중상과 중태는 엄연히 그 뜻이 다르다. ‘마검사 선언’ 이후, 진은 아직까지 의식 불명 상태로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드가 시론에게 잠시라도 복귀하라고 부탁하듯 편지 말미에 적은 건 다름이 아니었다.
12기수의 불꽃이 이대로 꺼지지 않도록, 직접 조치를 취해달라는 뜻이었다. 가능하다면 힘을 실어주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시론은 제드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부탁하는 것을, 평생을 통틀어 처음 겪었다.
“흑해 왕들과의 일전을 앞에 두고, 집안의 이야깃거리를 신경 쓰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테지.”
제드의 부탁을 받긴 했으나, 시론은 복귀해서 직접 살펴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때를 놓치기 전에, 합당한 보상은 내려주어야겠구나.”
시론이 말하는 보상은 이번에 진이 일으킨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주군께 이 마물의 최초 발견자는 12기수라고 보고하겠습니다. 만일 주군께서 마물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시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투벤이 오즈도크를 데려가며 진에게 남겼던 말.
오즈도크는 시론의 원정대에 참여하게 된 이후 충분한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탓에 좀 헤매기는 했지만, 흑해 왕들의 영역을 찾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왕들의 영역에 진입하고 나서도 쓸모가 많은 마물이었다.
“칸.”
“예, 가주님.”
“속히 본가에 연락해서, 진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