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1)
제 333화
118화. 가려도 가릴 수 없는(2)
* * *
시론의 말대로, 가린다고 가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휴페스터 전체를 봉쇄하고, 모든 언론을 통제했으며, ‘마검사 선언’ 당시 가문에 대기 중이던 인원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으나.
검의 정원 한가운데서 업화에 이어 명왕군림검의 개와 전, 그리고 십여 개의 결전기가 한꺼번에 펼쳐졌다.
도시 칼론의 중심에서 벌어진 그 싸움을 거주민들이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규모의 싸움이 아니었다는 뜻.
이미 거주민들 사이에 섞인 각 세력의 정보원들을 통해, 진이 일으킨 파란은 순식간에 검의 정원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었다.
소문이 확장되는 속도가 우레처럼 빠르고 강렬했다.
막아도, 가려도 파도는 치는 법이다.
“……세상에, 설마 반역을 저지를 건 아니냐고 물어봤었는데,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이게 반역이 아니면 무엇이지?”
반켈라 성국, 성왕 집무실.
성국의 첩보부대라 할 수 있는 새벽마차회 신관들에게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라니는 심란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가, 새벽에 몰래 빠져나와 치료해주자마자 이런 대형 사고를…….
“팔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느니 어쩌느니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후,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진 경이 현재 무사한 상태일 것 같소?”
신관들이 고개를 저었다.
“경계가 너무 삼엄해 직접 알아보진 못했으나, 현재 도시 칼론의 거주민들과 각 세력 정보원들로부터 유출된 내용들에 의하면. 썩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태에 빠졌다는 설은 물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습니다.”
“뭐라, 사망!?”
“……사건 이후 어느 세력도 진 룬칸델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
한 신관이 결심한 듯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폐하, 신관으로서, 아율라의 은혜를 받은 자녀로서. 감히 한 말씀 올리자면…… 구국의 은인을 위해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성국 사건 이후, ‘진 룬칸델’이라는 이름이 성국 내에서 갖는 상징은 가히 성왕과 어깨를 견줄 정도였다.
게다가 알 만한 이들은 이후로도 진이 성국에 천문학적인 후원을 하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니, 이런 직언이 나오는 것이다.
라니는 한동안 진중한 얼굴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좋소. 휴페스터가 긴급태세 2단계를 발령했다지만, 내가 정식으로 방문을 요청하면 응할 수밖에 없을 터. 내 직접 가서 그의 상태를 살펴보고, 치료하도록 조치를 하겠소. 하지만.”
라니가 결의에 찬 신관들을 보며 뒷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언제나 계획이 있는 사람이오. 결코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은 아닐 터. 괜히 내가 나섰다가 후일 그의 적들에게 묘한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게다가 진 경이나 그의 수호룡이 아직 내게 직접 부탁을 하지 않았지. 우선 소식을 더 기다려보겠소!”
라니의 결정에 신관들이 고개를 숙였다.
만일 진의 생사에 심대한 문제가 생긴다면, 성국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도울 예정이었다.
* * *
“조부님!”
같은 시각, 비먼트의 검황성에서도 진에 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단테가 다급한 얼굴로 론을 찾은 순간, 론도 하이란의 기사들에게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라니와 똑같이 이마를 짚었다.
진 때문에 심란해서는 아니었다. 분명 당장이라도 검의 정원으로 달려가겠다고 소리칠 손자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앞이 캄캄한 것이다.
“우리 손자 왔느냐?”
“소자, 감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자는 어쩌면 오늘이 조부님을 뵙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이라니, 시작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한 론 하이란이었다.
“……우리 손자가 갑자기 왜 이럴꼬. 무얼 잘못 먹은 게냐? 크흠흠.”
“소자는 즉시 검의 정원으로 향할 생각입니다.”
“음, 단테야.”
“말리셔도 반드시 갈 것입니다. 조부님과 가문 모두가 절 힐난하더라도 결단코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염치없게도, 마지막으로 조부님께 한 가지 청을 올리고자 합니다.”
“그, 허허…… 일단 말해보아라.”
“제 벗을 구하는 일을 도와주십시오. 또한 만약에라도. 정말 만약에, 벗이 이미 생을 마감했다면. 그때 제 선택이 무엇이든 존중하여 주십시오.”
진이 죽었다면 검의 정원에서 홀로 깽판을 치겠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 끝엔 죽음 아니면 불구의 삶, 혹은 단테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는 하이란 전체의 굴욕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먹이 아니라 악.
론은 순수한 손자를 꾀어낸 그 잡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니. 손자가 각축장에 다녀와서 벗을 만났다며 잔뜩 신이 났을 때부터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었다.
‘이러다 자칫하면 손자에게 가주를 물려주어도, 결과적으로 검황성이 그 악마 놈의 손아귀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로다.’
생각만으로도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냥 진이 이미 죽어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과일 것 같았다. 손자에게 주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가꿔온 가문인데!
“단테 하이란, 사랑하는 나의 손자야.”
“예, 조부님.”
“우선 진정하거라. 이 할아비는 너를 그리 가르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소자는 가문과 벗, 둘 중 어느 쪽도 더 중히 여길 수가 없습니다. 소자는 가주가 되기에 부족한 인간입니다.”
단테라면 충분히, 차기 가주 자리를 포기하고 모든 권리를 잃더라도, 홀로 검의 정원으로 갈 인물이었다. 그게 론이 알고 있는 손자였다.
당연히 그 꼴을 눈 뜨고 볼 수는 없는 일.
“내 말뜻은 그게 아니다. 넌 벗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그러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단테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걸려들었어, 론은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다.
“내가 아는 바, 그 죽일…… 아니, 네 벗 진 룬칸델은. 이토록 허무하게 갈 녀석이 아니다. 언제나 뒤가 있는 더러운 모략가지. 녀석은 분명 아무 일 없이 나타날 것이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대형 사고를 쳤으니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마음이었으나, 우선 손자를 말려야 하니 거짓을 섞을 필요가 있었다.
그저 그 단순함이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겨우 그 한 마디에 단테는 무척 감명을 받은 얼굴이었다.
“조부님……!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옵니다! 아니, 맞습니다. 그라면 분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자가 섣불리 생각했습니다!”
“허허, 그래. 그러니 얌전히 수련이나 하며 기다리거라. 그럴 땐 폐관 수련보다 좋은 게 없느니라. 벗이라면, 벗을 믿어줘야 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임이 알려지면, 이 할아비가 직접 나서주겠다.”
단테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조부님! 당장 수련장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검을 다잡으며 머리를 식히도록.”
호다닥, 단테는 기쁜 마음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조부가 직접 나서준다는 약조는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와 주니 체증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단테가 수련장에 들어서자마자 론은 기사들을 불러,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진 룬칸델이 불구가 되었거나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는 즉시, 소가주의 폐관 수련이 10년 동안 계속되도록 조치를 취하라. 절대로 나올 수 없게 꽉 틀어막아. 그 안에서 슬픔도, 절망도, 분노도. 모두 검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존명!”
그게 진이 잘못되었을 경우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10년이나 손자를 보지 못하는 건 그 어떤 고문보다 괴로운 일이나, 진 때문에 손자를 죽게 두거나 룬칸델과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것이다.
* * *
“흐응, 우리 사위…… 어쩌지?”
비궁.
탈라리스가 얼음으로 빚은 침대에 옆으로 드러누운 채 말했다.
금팽이 상단의 행수들이 그녀의 손발톱을 쉴 새 없이 다듬었고, 물꼬리족은 느릿느릿한 손길로 그녀의 두피를 안마하고 있었다.
“딸아, 네 남편감. 죽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진. 죽는다. 안.”
“야, 어둠불꽃. 어순을 좀 바꿔. 재수 없게 들리잖아!”
팽이가 어둠불꽃을 째려보았다.
“안, 진, 죽는다.”
“아, 그렇게 말고!”
“죽는다, 진, 안.”
“하, 됐다. 기대한 내가 나빠. 그럴 거면 그냥 네가 가서 죽이지 그러냐.”
“시끄러, 하고 있는 거나 집중해. 응? 곧 애인들이 온단다. 그때 손톱이든 발톱이든 마음에 안 들면 너흰 다 쫓겨나는 거야. 들짐승 같은 것에 잡아먹혀도 난 모르는 척할 거고.”
스삭스삭, 꾹꾹!
작은 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탈라리스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으흐응, 걱정되면 한 번 가보지 그러니?”
“어머니 반응을 보아하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가봐야 박대만 당할 테고요.”
“오호, 걱정되기는 한다는 말이네?”
탁!
시리스가 주먹으로 가볍게 얼음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다.
“어머니, 절 바보로 아십니까?”
“아, 깜짝이야. 갑자기 왜 화를 내고 난리인데?”
“해저 창고에서 한 가지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그걸 룬칸델의 1등 집사가 직접 와서 가져간 사실을,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시리스가 분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해저 창고는 또 언제 뒤져본 거야?”
“어머니께서 해저 창고 관리를 그만두신 지가 벌써 10년입니다. 저는 비궁에 대기 중일 땐 어머니를 대신해 단 하루도 빠짐없이 확인해왔고요.”
비궁 지하에 오랜 시간 고이 모셔져 있던 신물 한 가지.
누메루스의 피.
그녀는 집사 하인츠가 찾아간 그 핏방울이 지금껏 비궁의 소유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룬칸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가져갔으니, 심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거참, 내가 언제 너한테 그게 우리 물건이라고 말했…….”
“해저 창고가 누구의 것입니까. 비궁의 것입니다. 룬칸델이 함부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건 내가 시론하고 오래전 약조한 게 좀 있어서, 아무튼. 맡아준 동안 은근슬쩍 소유권을 가져오려다 실패한 거거든?”
“어쨌거나 전 룬칸델이 우릴 창고 취급하는 꼴에 심사가 뒤틀리는군요.”
“그렇다면 뭐라도 대가를 받지 그러니? 진, 그 녀석한테. 어미한테 괜히 역정 부리지 말고.”
“안 그래도 그럴 계획입니다.”
시리스가 홱 돌아서 대전을 빠져나가자 고개를 젓는 탈라리스.
“쟨 내 딸이지만 가끔 버거워. 어쨌거나 원래 룬칸델의 물건이고, 지 남편감 살리는 일에 쓰는 건데. 뭐가 저렇게 짜증난다는 거야?”
“그건, 그거, 다.”
돌연 어둠불꽃이 입을 열자 탈라리스와 작은 수인들의 시선이 모였다.
“애, 정의, 잘, 못된, 표, 현. 혹, 은. 우정, 의. 어, 긋난. 표현.”
“으흥, 그래. 돌려주더라도 자기 손으로 주고 싶었다는 건가? 일리 있네.”
그 대목에서 팽이는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 이. 이! 이것 봐. 바른 순서대로 말할 수 있잖아! 야, 아까는 왜 그랬는데!”
“했다, 노력.”
“아악! 열 받아!”
“이젠 이것들까지 내 앞에서 화를 내고 있네. 진짜 쫓겨나고 싶어? 손발톱 다 다듬었으면 특제 향유나 준비해.”
금설족 수인들이 부랴부랴 향유를 준비하러 간 사이.
탈라리스는 켈리악 지플이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를 생각했다. 진의 ‘마검사 선언’에 대해서.
‘시론은 이제 곧 흑해 5왕의 영역에 들어선다…… 부디 켈리악이 그 사실을 모르기를 바라야겠군.’
알고 있다면.
지플이 룬칸델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