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2)
제 333화
118화. 가려도 가릴 수 없는(3)
* *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사람이었다.
붉어진 눈동자에 울음기가 가득한 길리와, 그녀의 어깨를 감싼 채 다독여주고 있는 무라칸.
그 두 사람이 내내 곁에 있었으리라는 확신에, 더는 따뜻할 수 없는 어떤 비단 같은 것에 휩싸인 기분이었다.
“꼬마!”
“도련님!”
길리와 무라칸이 몸을 낮추며 진의 상태를 확인했다.
“길리, 무라칸.”
“도련님, 정말 괜찮아지신 겁니까? 어디 불편하거나 답답한 곳은 없으십니까!”
“그런 거 전혀 없어. 사망자. 사망자는? 내 손에 죽은 기사가 있나?”
쓰러지기 직전까지 걱정했던 문제였다.
가문과 자신의 싸움에 죄 없는 기사들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적’들의 기사라 할지라도 명백히 자신보다 약하고, 가문에 충성해온 이들이었다.
훗날 그런 기사들을 베어야만 할 때에도 이런 식의 ‘습격’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명예로운 싸움이나 합당한 숙청을 통해 처리하고 싶은 것이다. 사밀에서 자신의 뒤를 밟았던 조슈아의 기사들을 처리했을 때처럼.
“없습니다, 도련님.”
“다행이로군.”
-[그리고 기수 이하 가문의 일원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나의 검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수호기사도 죽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그들을 지키시오.]
또한 명왕군림검을 펼치며 했던 말이 지켜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
정말 기수 이하의 일원들이 진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몸을 던졌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모양새가 그렇게 된 셈이니 말이다.
“눈 뜨자마자 기사들부터 걱정하는 게 맞냐, 꼬마? 딸기파이랑 내가 네놈 쓰러진 동안 얼마나…….”
“알아, 걱정시켜서 미안해.”
진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끌어안자 길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라칸은 징그럽다며 바로 빠져나갔지만.
“아닙니다. 저야말로 도련님께서 복귀하시자마자 큰 걱정을 끼쳤습니다.”
“길리가 무슨 걱정을 끼쳐? 가문이 지나친 처우를 내렸을 뿐이지.”
진이 자연스레 무라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라칸, 텔롯 경이 정말로 길리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나?”
“어, 그 인간은 뭘 좀 알더군. 여기서 네놈 뒤치다꺼리할 때보다 편하게 지내도록 해준 것 같았다.”
“호민회장님이야 당연히 그러셨겠지. 다만 사건 이후 조르덴 쪽이나 다른 원로들이 괜히 길리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랬으면 내가 가만히 내버려뒀겠냐?”
“그건 그렇지.”
“게다가 지금 상황에 네 사람을 건들겠다고 섣불리 나서는 놈이 있겠어? 크하하, 난리가 났단 말이다. 네 어미와 3기수는 아직까지 집중 치료 중이고, 원로회 애송이들은 다들 눈치 보느라 정신없는 분위기다.”
여전히 검의 정원은 충격에 빠져있었다. 진이 보여준 무위는 룬칸델 모두의 예상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경지였다.
물론 진이 즉시 의식을 잃었으니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검을 펼쳤다는 걸 지켜본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고작 열아홉이다.
이제 겨우 약관을 눈앞에 둔 나이. 그 나이에, 목숨을 걸었다 할지라도 룬칸델을 한바탕 뒤엎을 수 있는 인간이 또 있을까?
겪어본 이들은 모두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런 인간은 진이 유일하다고, 열아홉의 루나조차 진처럼 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이다.
심지어 마지막엔 로사에게 중상을 입혔다. 로사와 룬티아, 그 두 사람은 아직까지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는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진을 싫어하는 이들조차, 그에게 루나 이상의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볼만하겠군.”
“망할 꼬마 놈, 그거 조금 힘썼다고 대체 며칠을 누워있던 거냐?”
“조금이라니, 나 꽤 대단했거든.”
대단하다.
미적지근하게 흘러가던 검의 정원에, 스스로 그렇게 표현해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오자마자 두 팔이 잘리고, 사경을 헤매기는 했지만.
“그래, 대단했지. 그런데 한 번만 더 대단했다간 그때는 답이 없을 거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거야?”
“열흘.”
“죽을 뻔했다는 뜻이네. 아무래도 최근 라니에게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군.”
“넌 종교쟁이의 신성력으로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꼬마.”
“그럼 누가 날 치료한 거야? 가문 의료진만으로는 어려웠을…….”
별안간 진이 말을 멈추며 제 몸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막 깨어난 것치고는 지나치게 몸 상태가 좋았다.
“……누메루스의 피였나.”
무라칸과 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3분 전까지 맥박은 희미했고, 호흡은 불규칙적이었으며, 의식이 없던 몸이었다. 광심장조차 꺼진 등잔불처럼 빛이 없었다.
그랬던 육체가 소멸된 신이 남긴 피 한 방울을 흡수하고 순식간에 활력을 되찾았다. 그토록 대단했던 싸움이 모두 다 꿈이었다는 듯이.
“대체 누가?”
“네 아비.”
“농담이지?”
저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튀어나왔다.
평생, 단 한 번도.
시론 룬칸델, 아버지가 설마 이런 식으로 자신을 도우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서열 전쟁에 직접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지금껏 그 어떤 형제들도 시론에게 이런 지원을 받은 적은 없었다.
“도련님, 방금 전 집사장께서 직접 가져오셨습니다. 가문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 일러주시더군요.”
“안 어울리게, 왜 그런 멍청한 표정이냐.”
“그냥, 솔직히 좀 놀라서.”
얼떨떨한 마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곧장 떠오르지가 않았다.
“아직 저와 무라칸 님, 집사장님을 제외하면 가문의 그 누구도 도련님께 누메루스의 피가 사용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예.”
가문의 일원들은 하인츠가 진의 방을 찾은 것이 단지 용태를 살펴보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가주가 직접 누메루스의 피를 하사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피식.
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
“왜 웃어?”
“아버지께서 누메루스의 피를 아무도 모르게 하사하신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아버지를 그간 잘못 생각해온 것 같군.”
“이유라면……?”
“감춰 주시겠다는데 굳이 알릴 필요 없지. 오랜만에 한 이틀 정도 셋이 오붓한 시간 좀 보내다 나가면 되겠어. 곧바로 나가면 집사장이 의심을 살 테니.”
“아!”
의미를 알아챈 길리가 손뼉을 쳤다.
“가주께 누메루스의 피를 받은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계획이시군요?”
“그래. 밖에 있는 인간들 중,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최소 절반은 넘을 텐데. 며칠 뒤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그렇게 해도 될까요? 어차피 도련님이 갑자기 깨어났으니, 누메루스의 신물을 사용한 건 금방 밝혀질 겁니다.”
“예비 기수 시절 얻은 물건이었다고 하면 돼. 믿든 안 믿든, 아버지께서 내리신 물건이라는 건 그들도 증명할 수단이 없으니까.”
“하지만 가주께서 직접 하사하신 신물인데…… 행여 가주님의 화를 사게 되진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생색을 내고 싶으셨다면 몰래 주지 않으셨을 거야. 내게 주셨으니, 내 마음대로 처신해도 된다는 뜻이지. 그보다, 가문 분위기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줘. 내게 붙으려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페트로가 기류를 살펴본 바, 대략 수호기사 1진 1할, 극소수의 집행기사들이 도련님께 호의를 품은 것 같다더군요.”
“당장은 피아 식별을 확실히 하기 어려울 테지. 중립과 타 기수들의 기사가 대략 2할 정도라고 하면, 나머진 원로회와 조슈아의 세력이로군.”
“그렇습니다.”
중립 세력까지 모두 규합한다고 해도(그조차 쉽지 않을 테지만) 여전히 원로회와 조슈아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었다.
진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기득권’이란 늘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룬칸델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집단에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휴페스터의 다른 무가들도 대부분 조슈아가 포섭을 완료한 지 오래니까, 조슈아에게 붙어있는 이들이 앞으로도 쉽사리 위치를 바꾸진 않을 거야.”
“하여간 인간이란 것들은 이해가 안 되네. 네놈 혼자 검의 정원을 반파시킨 꼴을 보고도 갈아타지 않는다고?”
“아무도 죽지 않았잖아.”
당시 보호받던 기사들이 아무도 죽지 않은 건 분명 다행인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진이라는 한 개인이 가진 무력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습격이나 다름없이 펼쳐진 그 끔찍한 마검과 뇌검 속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은 건, 이곳이 룬칸델이기 때문이었다.
“예비 기수 시절, 루나 누님조차 나와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가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지. 개인의 무력이 매우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혼자서는 결코 룬칸델을 상대할 수 없어.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조슈아를 계속 지지하는 거야. 안정적이니까.”
“그럼 네게 호의를 품은 듯 보이는 이들이 1할이라 했으니, 그것들부터 확실하게 잡아야겠군. 내가 한 번 만나볼까?”
“네가?”
“내가 그래도 이 빌어먹을 룬칸델에 상당히 상징적인 존재잖냐? 내가 본격적으로 기사들을 포섭하기 시작하면, 꽤나 효과가 좋을…….”
그 모습을 상상한 진과 길리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냐?”
“자존심만 상할 거다, 무라칸. 널 보고 돌아설 작자들이었으면 진즉에 그랬겠지.”
“빨리 힘을 다 되찾든가 해야지, 하!”
“그리고 난 내게 호의를 가진 이들을 만나볼 생각이 없어.”
“뭐? 왜?”
“날 좋아하는 것 같으니 내 편이 되어주세요. 이건 별로 매력적이지가 않거든.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충성을 맹세하겠다며 따라오도록 만들어야지. 필요할 때만 적당히 쇼도 좀 하고. 룬칸델에 한해서는 그런 식으로 세력을 넓힐 거고…….”
진이 두 사람과 눈을 맞추며 뒷말을 이었다.
“우선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는 건 그 외의 세력들이다.”
언제나처럼, 진은 외부에서부터 힘을 키울 생각이었다.
“비먼트와 루테로 마법 연방의 가문들, 아직 포섭의 여지가 있는 휴페스터의 무가, 흑왕단이나 귀신대 같은 초일류 용병단, 그 외의 굵직한 중립세력들. 세력 확장은 그런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진은 우선 그들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강력한 무위에만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