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3)
제 333화
118화. 가려도 가릴 수 없는(4)
* * *
삼엄한 와중 온 룬칸델이 ‘마검사 선언’에 이리저리 들끓고 있었다.
기수들도, 원로들도, 그들을 따르는 기사들도 모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진이 과연 깨어날 수 있을 것인가, 깨어난다면 어떤 처벌이 있을 것인가, 검귀들 중 그에게 붙는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그중 룬칸델들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한 가지뿐이었다.
약 1할 정도의 기사들이 진을 지지하리라는 사실. 그렇기에 룬칸델들은 판도가 바뀔지언정, 완전한 역전이 일어나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란 말이죠. 그러니까 언니. 이참에 언니가 이전보다 조금 더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뮤와 앤은 룬티아를 찾아와 아까부터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30분이 넘도록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막내가 송곳니를 드러냈으니, 조슈아가 피곤하지 않도록 제대로 힘을 실어주라는 내용이었다.
조슈아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들은 이 기회에 차기 가주에 대한 자신들의 충성심을 재차 증명하려는 것이다.
‘조슈아 오라버니가 차기 가주가 되면, 동부 5지역의 통치권은 우리 몫이다.’
‘굳이 히스터라는 인간을 찾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그녀들은 오래전 조슈아의 사람이 되기로 한 이후, 단 한 번도 가주가 되기를 꿈꾼 적이 없었다. 오로지 조슈아를 통해 동부 5지역이나 기타 영토의 통치권과, 생존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녀들은 조슈아가 가주가 되면, 다른 형제들을 대부분 숙청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룬티아 언니?”
룬티아는 유백색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룬 강체의 특성 때문에 완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테지만, 중요한 치료는 이미 며칠 전에 끝난 상태였다.
“우리 말 듣고 있어요?”
룬티아는 두 사람이 떠드는 동안 단 한 번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진 것인가…….
치료가 끝난 이후,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오직 그것이 전부였다.
지난 12일 동안, 그녀는 누가 찾아오더라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언니, 막내한테 중상을 입은 게 충격적인 건 이해해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있어봐야 언니만 우스워질 뿐입니다.”
뮤와 앤은 ‘패배’라는 단어를 피했다. 대신 중상을 입었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녀들은 룬티아가 진에게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룬티아가 쓰러진 것은 어디까지나 사고일 뿐이며, 정식으로 다시 붙으면 반드시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확신했다.
뮤와 앤뿐만이 아니라 룬칸델에 있는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룬티아 본인은 아니었다.
룬티아는 단지 충격을 받아 침상을 떠나지 않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복기, 그녀는 줄곧 진과의 싸움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12일 동안, 단 1분도 쉬는 법이 없이.
다시 싸운다 할지라도,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 쏟는다 할지라도.
싸움의 결과를 바꿀 수 있을지, 룬티아로서는 아직까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여주지 못한 것도 많으나, 그만큼 진 또한 꺼내지 않은 패가 많을 터였다.
룬티아의 공허한 눈빛 속에 묘한 열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아직 뮤와 앤이 이룬 경지로는 느낄 수 없는 열기였다.
뮤와 앤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 아무튼 우리가 한 말들 좀 생각해봐요. 어차피 언니도 조슈아 오라버니가 가주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요.”
“이럴 때 언니가 도와주면 정말 큰 힘이 될 겁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괜찮아지면 아무 때나 연락 줘요.”
뮤와 앤이 떠나자 이번엔 한 노부인이 방으로 들어섰다. 룬티아의 유모, ‘리샴’이었다.
“아가씨.”
룬티아는 고개만 살짝 돌려 리샴을 마주 보았다.
“방금 전에 막내 도련님이 깨어난 모양이더군요.”
벌떡!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룬티아를 보며 리샴이 미소를 지었다. 리샴은 룬티아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근 20년 만에 보았다.
“어떻대? 다시 검을 쥘 수 있대?”
룬칸델은 아직 진이 누메루스의 피를 사용한 사실을 몰랐다. 때문에 룬티아가 이런 질문부터 던진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멀쩡하다고 합니다. 당장이라도 그 싸움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내 검이랑 기수 코트…….”
“찾으실 줄 알았죠.”
리샴이 미리 챙겨둔 룬티아의 애검 샤를과 고이 접어둔 기수 정복을 건넸다.
리샴은 허겁지겁 옷을 입는 룬티아를 보며, 그녀의 소녀 시절을 떠올렸다.
가문 최강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어린 룬티아를 말이다.
‘돌아보면 1기수께서 모든 것을 포기한 후, 아가씨는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처럼 지내오셨다…….’
눈시울을 붉히는 리샴.
그녀 또한 가문의 다른 유모들 모두가 그러했듯이,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나의 아가씨가 언젠가 이 가문의 정점에 우뚝 서는 모습을, 세상을 호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그러나 룬티아는 너무 일찍 목표를 잃어버렸다. 정상에 올라 루나라는 거대한 별을 마주하고, 자신이 그보다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 룬티아를 자극하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별이 사라진 후부터 권태가 시작되었다. 고요와 의미 없는 내면의 평화만이 가득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리샴은 직감했다.
12기수의 검이 룬티아의 가슴팍을 베어냈을 때, 끝내 그 창백한 칼날 앞에 목숨보다 소중한 자신의 아가씨가 쓰러졌을 때.
마침내 아가씨의 가슴 속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는 사실을.
“막내는 어디에 있지? 어머니를 뵈러 가고 있나?”
“아뇨, 영묘로 향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룬티아가 방을 나서려는 찰나 리샴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응.”
“건투를 빕니다. 이제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선 룬티아는 한동안 리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출정에 나서는 장군과 같은 모습으로.
더 이상 그녀의 눈빛에선 무거운 권태를 찾을 수 없었다. 뮤와 앤이 발견하지 못했던 열망이 점점 더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기수와 원로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기사들이 진의 깨어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영묘를 찾은 상태였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영묘를 찾는 것은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영묘를 가득 채운 사람들 틈에서, 룬티아에겐 진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우뚝 서 있는 막내를 보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엊그제까지 혼수상태에 놓여 있던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 멀쩡한 모습이군.”
“대체 어떻게 깨어난 것이냐?”
“깨어났으면 가주 대행을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다. 어째서 영묘부터 찾은 것인가, 12기수.”
원로들의 목소리에 진은 대답 없이 주위를 둘러보기만 했다.
그러다 조슈아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고정하는 모습.
“뒤처리를 하느라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2기수. 미리 기사들을 소집했다던데, 아주 훌륭하군요.”
조슈아는 진의 두 팔이 잘렸을 때 미리 소집해둔 기사들을 이용해 마검사 선언 이후 빠르게 검의 정원을 안정시켰다. 차기 가주다운 모습을 보인 셈.
조슈아가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기사들을 그대로 뒀었다면, 최소 며칠은 더 혼란한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사태를 파악한 외부 세력의 침략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상을 입은 로사와 룬티아를 비롯해 전투 인원 대다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니, 적들이 룬칸델을 침공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12기수가 2기수를 평가하듯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함부로 진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당사자인 조슈아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수란 가문을 어지럽히는 게 아니라, 정돈하고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겸손한 듯 말하고 있으나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였다. 나는 당연한 일을 한 반면, 너는 가문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의미.
“고여 썩어가는 물에 길을 냈을 뿐. 그 사실을 알기에 가주 대행께서도 나를 벌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서 널 처벌하지 않는 것은, 네가 쓸모가 있다고 여기시기 때문이다. 네가 깨어나자마자 영묘를 찾은 이유와도 관련이 있지.”
테마르와 옛 룬칸델의 유산.
모두가 똑똑히 그 힘을 지켜보았다. 12기수에 불과한 진이 단신으로 검의 정원을 엎어버리는 그 힘을.
탐욕에 젖은 눈동자들이 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시 영묘에 옛 룬칸델의 기사들을 모실 수 있게 된다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2기수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원로들이 지금 진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한 가지였다.
당장 자신들을 ‘마검사’로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는가.
진으로서는 분수령이었다. 나를 따르는 자들에겐 즉시 그 비밀을 공유해주겠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상당한 수의 원로들이 진에게 호감을 드러낼 터였다.
“초대 가주와 선조들을 어떻게 이 영묘로 모실 것인지, 계획해둔 것이 있을 테지.”
“온통 머저리 같은 자들밖에 없는 것 같군.”
별안간 진이 불쾌한 듯 표정을 구겼다.
“그게 알고 싶다면 밖으로 뛰십시오. 내게 도전하고, 투쟁하고, 쟁취하십시오. 내가 그날 보여준 것을 따라 하란 말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은 죽을 때까지 역사에 이름 한 줄 새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너만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 12기수.”
“2기수께서 예언자라는 존재를 통해 온갖 괴악한 일들을 저지르는 걸, 나와 격이 같다 여기지 마십시오.”
예언자. 진이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했는데도 조슈아는 놀라지 않는 기색이었다.
원로들 중 극소수, 이미 예언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은 그 반응에서 조슈아 또한 조만간 예언자를 전면에 드러낼 계획을 끝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옛 룬칸델의 유산에, 지플의 힘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겠지. 킨젤로와 비먼트도 머잖아 골렘들을 본격적으로 병기화하기 시작할 테니. 조슈아도 그 정도 정보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생에서 지플이 ‘양산 마법사’를 대량으로 보유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세계 권력의 판도가 확 기울었었다.
하나 킨젤로와 비먼트가 제작 중인 명인과 마인은 양산 마법사 따위완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룬칸델이 본색을 드러낸 그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화륵-.
영묘 중앙에 마력으로 불씨를 올린 뒤, 진이 조슈아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영묘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룬티아가 앞을 가로막았다.
진과 룬티아는 몇 초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가주가 될 것이다.”
룬티아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영묘에 모인 이들은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슈아조차 이번만큼은 감정을 숨기기 어려운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
피식, 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머저리만 있는 줄 알았더니, 진짜가 있기는 했군요. 잘 해봅시다,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