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6)
제 333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2)
퀴칸텔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무르카와 제피린의 뒷모습에 닿았다.
무르카는 흑왕단의 테이블로 돌아가는 내내 제피린을 혼내고 있었다.
“으잉? 퀴칸텔 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퀴칸텔, 인마. 너 저렇게 모자란 애들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겠다는 거냐? 이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제트와 무라칸이 의문을 표하자 퀴칸텔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라칸, 넌 용이란 놈이 어쩜 이렇게 둔하냐? 아, 하긴. 원래 무신경한 놈이기는 하지, 네놈이.”
“너한테 그런 소릴 들을 정돈 아니거든.”
“그 인간에게서 뭔가 냄새가 나지는 않던?”
“무슨 냄새? 이상한 향수 냄새밖에 안 나던데. 이런 연회 처음 오는 애들은 꼭 그렇게 향수를 진하게 뿌려대더라고. 평소에 잘 안 씻는 건지…….”
무라칸의 말에 엔야와 제트가 동시에 제 옷깃에 코를 대고 킁킁댔다. 그들도 연회가 처음인지라 향수를 많이 뿌린 것이다.
“그, 꼭 그런 사람들이 평소에 잘 안 씻는 건 아닐 거예요……?”
“마, 맞습니다요. 하하, 저는 아침에 향수병을 만지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물론 퀴칸텔이 말하는 냄새는 향수 향이 아니었다.
“동족들의 피 냄새였다, 무라칸.”
흠칫하며 퀴칸텔을 바라보는 동료들.
“……뭐라고?”
“향수에 덮여 있었지만 확실해. 저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는 동족들의 피, 그것도 여러 종의 피가 뒤섞였을 때 나는 것이다.”
숱하게 전쟁터를 누벼온 전문 용병들에게 피 냄새를 감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게 짙게 밴 피 냄새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만큼이나 진하고 강렬한 냄새였다.
그러나 용의 피는 인간의 것과 전혀 달랐다.
용들은 종마다 피 냄새가 다른 데다,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특유의 기묘한 향이 있었다.
“안테 산맥의 공포. 그 인간에게서 나던 것보다도 진했어.”
“흐미, 세상에. 그럼 퀴칸텔 님은. 저 제피린이라는 처자가 용 사냥꾼이라도 된다는 이야기입니까요?”
“용 사냥꾼? 그딴 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어, 이 자식아. 그나마 그 바네사 올슨이 비슷하긴 했겠군. 흠, 동족들의 피 냄새라…… 그럼 향수는 그 냄새를 가리기 위해 일부러 덮어둔 건가?”
“가능성이 있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 저건 마족이나 악마룡 둘 중 하나겠네. 그런데 내가 알기론 마족 중에 완벽한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이 가능한 자는 없으니, 악마룡 쪽일 가능성이 높고.”
악마룡.
그들은 마신이나 마왕을 섬기는 용들을 뜻했다. 처음부터 마신이 빚은 경우도, 다른 신을 섬기다가 마계로 이적한 경우에도 같은 이름이 붙었다.
“악마룡이 마지막으로 인세에 모습을 드러낸 건 성국수호전 때야. 그 전에는 천이백 년 전, 헬루람이 마신을 강림시켰을 때고.”
“마신강림 이전에는 종종 찾아볼 수 있던 것들이긴 한데 말이지. 그럼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온다. 너 악마룡이냐고.”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건데?”
“족쳐야지.”
“응,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 무라칸.”
진이 제지하자 무라칸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아니라고 잡아떼면 증명할 수단이 없잖아. 진짜로 아닐 수도 있고. 무엇보다, 만약 정체가 탄로 났다며 갑자기 난동을 부리기라도 하면 답이 없어. 여긴 론 경의 연회장이라고.”
만일 무라칸의 행동이 연회를 망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진의 몫이었다.
“진의 말이 맞아, 무라칸. 넌 도대체 머리라는 걸 왜 달고 있는 거냐? 게다가 어쩌면 동족들의 피 냄새가 무기에 밴 것일 수도 있어. 가능성은 낮지만, 그런 경우라면 평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무기만 악마룡이나 바네사 같은 자의 소유였던 거고.”
다 혼이 났는지, 제피린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진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야, 나처럼 강하면 머리 쓸 일이 별로 없어. 너희가 뭘 알겠냐. 허, 참. 저 제피린인지 뭔지 하는 놈, 저렇게 보면 영락없는 바보인데 말이지.”
“그런데 퀴칸텔 님. 저자가 정말 악마룡이라면, 절 찾아온 건 아마 이유가 있을 것 같군요. 제 생각엔…… 그 마도서겠네요. 론텔기우스의.”
론텔기우스의 마도서.
몇 달 전 조슈아의 비밀 별장을 습격하고 얻은 그 물건이 떠올랐다. 악마룡이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면, 그것밖에 없을 터였다.
“내 생각도 그렇다, 진. 연회가 끝나면 제피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어차피 흑왕단에도 볼일이 있습니다. 연회 끝난 다음에 흑왕단의 본채를 찾아가봐야겠군요. 기회가 된다면 연회장에서 흑왕단장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고요.”
세계 최고의 용병대, 흑왕단은 진이 포섭해야 할 중립 세력 중에 가장 중요한 축에 속하는 집단이었다.
룬칸델조차 무시하지 못할 저력을 가진 용병단인 것이다.
“게다가 제피린이 론텔기우스와 연관이 있는 게 밝혀지면, 조슈아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기대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공자.”
“응, 엔야.”
“공자께 마도서가 있다는 걸 제피린이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마족이나 악마룡 특유의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엔야. 우린 지난 몇 달 동안 그 불길한 물건을 곁에 두고 지냈으니까, 몸에 배었을 테지.”
퀴칸텔이 진을 대신해 대답해주었다.
“오, 그렇다면 악마룡은 엄청난 개코네요…….”
마도서를 찾은 이후, 티칸은 줄곧 론텔기우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아무런 소득이 없었으니, 제피린의 등장은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악마룡이라는 존재가 인세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는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제피린의 정체와 목적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평범한 인간일 경우엔 문제될 게 없지만 말이다.
일행이 제피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 또 다른 인물이 그들의 테이블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제피린과 달리, 명백한 살의와 악의로 가득한 표정을 한 채 다가왔다.
기운을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아서, 그의 살기를 읽은 다른 이들도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후, 저건 또 뭐야? 저렇게 맘에 안 드는 눈깔은 오랜만인데.”
그 태도에 대번에 불쾌해진 무라칸이 미간을 좁혔다. 다른 동료들은 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진 룬칸델.”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는 진.
진은 즉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라타 프로치. 얼마 전 진이 포로로 붙잡은 페이 프로치의 혈육이자, 귀신대를 이끄는 젊은 수장.
“꼬마. 이 겁 없는 새끼한테 내 말 좀 전해줘라. 눈깔 예쁘게 안 뜨면 다신 앞을 못 보게 해주겠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라타 님. 프로치의 악마들, 그 장자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무라칸의 발언과 진의 태연한 목소리에도 라타의 감정엔 달리 기복이 없었다.
다만 평정심을 되찾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왔으니 더 꼭지가 돌 것도 없기 때문인 듯했다.
“그 녀석을 죽였나?”
페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살려뒀습니다.”
“두 번은 묻지 않겠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해라.”
주위가 술렁이고 있었다. 이곳은 룬칸델의 연회, 외나무다리 파티와는 성향이 명백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서로 원한이 있다고 하여 함부로 싸울 수 있는 연회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기대하는 눈치이기는 했다.
단신으로 검의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룬칸델의 12기수와 스마리온의 재림이라 평가받는 귀신대장.
그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룬칸델의 12기수가 또 세상에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라타 프로치 또한 괴물 중의 괴물이다. 12기수가 그를 꺾는다면, 룬칸델의 상위 기수들은 또 한 번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겠군.’
지켜보는 이들은 잔뜩 기대하고 있었으나.
진은 라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귀신대 역시 흑왕단과 마찬가지로, 아군으로 영입해야 할 중요 중립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귀신대는 본진이 비먼트에 위치한 만큼, 포섭할 수만 있다면 차후 제국을 견제하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룬칸델, 지플, 비먼트 같은 거대 세력들이 이들을 아군으로 영입하기 위해 오랜 세월 공을 들여왔음에도. 흑왕단과 귀신대 같은 세력이 지금껏 ‘중립’인 것엔 마땅한 이유가 있다.
당연하게도, 어느 한쪽에 잘못 붙었다간 집단의 존망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규모가 있는 중립 세력들은 때로는 룬칸델에, 때로는 지플에, 때로는 비먼트에 줄을 대고, 때로는 어느 곳과도 거래하지 않으며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립 세력이 모두 모여야 한다. 내가 룬칸델의 왕좌에 오르는 걸 넘어서, 지플을 무너뜨리려면. 반드시.’
지플이 마신석을 완성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시작하면.
그때는 룬칸델뿐만이 아니라 회색지대에 서 있던 자들도 끝장이 날 것이다.
조작된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것조차 불가할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걸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얻어가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진이 잠시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도 라타는 점점 더 강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왠지 아군으로 만들기까지 정말 피곤할 것 같은 인간이긴 하군. 아마 내가 페이를 죽였다고 답했으면, 망설이지 않고 검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건 분명 악명 드높은 귀신대장이었다.
그러나 진에겐 그저 심한 사춘기를 앓고 있는 반항아 정도로만 느껴졌다.
잘 어르고 달래서 바른 길로 인도해줘야 할 대상인 것이다.
“아직 생각해둔 게 없군요.”
“그럼 당장 생각해.”
“싫다면 어쩔 겁니까?”
“두 번은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협상은 없는 거고, 넌 영원히 나와 적이 된다.”
“룬칸델 전체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가문을 믿고 설치는 부류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뭐, 원한다면 그렇게 해석해도 좋다. 여기 베라딘 지플도 와 있던데, 난 그자와도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있거든.”
조심성 없이 적의를 드러내고 있으나, 라타는 과연 귀신대의 수장이라 할 만한 자였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른 상태에서도 무엇이 진을 가장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고민하는 와중.
라타의 뒤쪽에 서서 헛기침을 하는 베라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진을 보며 씨익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라타 님. 전 당신하고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만. 두 분 분위기 좋아 보이는데, 대체 귀신대와 룬칸델이 언제 동맹을 맺은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