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5)
제 333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1)
1799년 10월 25일.
휴페스터와 비먼트, 그리고 루테로 마법연방의 내로라하는 가문과 세력들이 하이란의 본가로 모여들고 있었다.
검황성의 연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위압적으로 우뚝 솟아 있는 검황성의 사방에 각 세력의 시중들이 펼쳐둔 색색들이 천막이 멀리서 보면 꼭 꽃밭처럼 보였다.
그 시중들이 모셔온 것은, 하나하나가 각 세력의 핵심이자 주축이 되는 인물들이다.
10년에 한 번도 기대하기 어려운 룬칸델에 비해, 하이란은 심심찮게 연회를 여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각 세력의 주요 인물들이 이토록 많이 참석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최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격에 누가 되지 않는 인물이 찾아오는 법.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검황성 연회는 진이 열다섯일 때 열린 룬칸델 연회에 비견될 만한 축제였다. 주최자가 검황 론 하이란이니 말이다.
론이 직접 연회를 연 것은 무려 22년만으로, 그때도 그는 갓 태어난 자신의 손자를 위해 사람들을 모았었다. 하여간 지독한 손자 바보였다.
“와아, 공자! 저 이런 연회는 처음이에요. 다들 저기 좀 봐요. 용왕기사단의 존시나 경이에요! 그리고 그 옆엔 황실 마법대장 세리 경이고, 저분은…….”
“훗훗. 엔야 양, 뭘 그리 신기하게 보는 거야? 다 우리 나리에 비하면 요즘 별로 뜨겁지도 않은 인물들이라고.”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다만 유명인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조금은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 싶어서.”
“웃기는 이야기군, 큭큭.”
엔야와 제트는 여전히 죽이 잘 맞았다. 베리스와 쿠잔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고(율리안은 칼토르를 돌보느라 참석하지 않았다), 길리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으며 무라칸은 혀를 찼다.
알리사와 카시미르는 다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시미르, 알리사. 황제를 마주칠까 봐 신경 쓰는 것이냐?”
퀴칸텔이 물었다. 그녀는 엔야와 함께 여전히 비먼트의 비공식 수배자 신분이지만, 이제 전처럼 극단적으로 숨어 지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진이 기수가 되었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묘하기는 하군요.”
어깨를 으쓱이는 알리사.
“황제는 몰라도, 황실의 일원들은 분명 몇 사람쯤 마주칠 겁니다. 어차피 티칸을 국가로 격상시키려고 하는 이상, 언제까지 피하면서만 지낼 수는 없겠죠.”
일행들은 모두 금설족 제품을 이용해 변장에 가깝도록 화장한 상태였다. 과거 나침반 탈취 작전을 수행했을 때처럼.
그러나 화려한 치장에도 사람들은 일행에게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위명 드높은 이들이 한가득이니, 진과 일행은 그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멋쟁이 귀족들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슬슬 우리 차례군요.”
일행은 꼭두새벽부터 벌써 다섯 시간이나 줄을 서 있었다.
“초대장을 보여주십시오.”
진이 내민 초대장을 살펴본 문지기의 눈썹이 씰룩였다.
“폴 그레이 믹? 처음 보는 이름이로군. 게다가 가주께서 웬만하면 오지 말라고 추신까지 남겼는데, 동행을 동반했단 말이오?”
“꼭 입장해야겠다면, 동행들은 물러가시오.”
“어, 앞에 있던 귀족들은 동행들도 다 들여보내줬잖아요?”
엔야가 묻자 문지기들이 난처한 듯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건 관행상…… 아무튼 아니 되오. 손님은 가주께서 환영하지 않는 분 같으니 어쩔 수 없소. 본인만 입장하는 게 좋겠소.”
“잠깐 귀 좀.”
속닥속닥.
진이 그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자 문지기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당신이 진 룬칸델이라고?”
“론 경께서 내 가명에 초대를 주셨으니, 그에 맞게 가명으로 온 것이오. 그러니 목소리를 조금 낮춰주면 고맙겠군.”
“룬칸델의 12기수라면 증거를 보여주시오!”
돌연 문지기가 소리치자 옆줄에 있던 다른 귀족들의 눈동자가 희번덕였다.
“당신이 정말 진 룬칸델인가!?”
“뭐라고! 진 룬칸델이 왔다고? 어디? 누군데? 저 사람?”
그야말로 순식간에 진과 일행들에게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심지어 어떤 귀족들은 ‘저 화려한 금발’을 벨라도 제후국에서도 본 적이 있다며 그가 진짜 진 룬칸델이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이제 흔히들 ‘막내 선언’이라 명명하고 있는 얼마 전 검의 정원 사태 이후, 진의 행방은 세간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으니. 이슈에 민감한 귀족들이 난리를 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소요가 시작되자마자 쐐기를 박는 사람이 있었다.
“오! 어서 오시오, 진!”
성벽에 서서 손님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단테 하이란이었다. 그 옆엔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는 론 하이란의 모습이 보였다.
또 한 사람.
진 룬칸델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저쪽 귀빈 전용 입장 구역에서 홱 고개를 돌리는 인물이 있었다.
“진? 진이 여기에 있다고? 어디, 어디!”
선량한 얼간이처럼 재빠르게 두리번대는 그 백발의 청년은, 다름 아닌 지플의 차기 가주.
베라딘 지플이었다. 그가 이리저리 목을 빼며 진의 모습을 확인하려 하자, 수행원들이 이마를 짚으며 그를 말렸다.
“도련님, 체통을 지키십시오.”
“적진의 기수입니다. 그리 반가운 듯 행동하시면…….”
수행원들의 만류에도 베라딘은 계속 진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베라딘 공도 왔군!”
단테가 베라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베라딘은 진과 눈이 마주쳐 손을 흔들었고, 진은 자연스레 그의 시선을 피하며 검황성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베라딘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결과 연회에 온 이들은 단테의 몸짓이 자신들을 환영하는 것인 줄 알고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었고, 베라딘 쪽에 있는 귀족들은 베라딘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전하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거 코스모스의 각축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적 있는 것이다.
‘저 녀석도 참석할 줄은 몰랐군. 오늘은 정신이 멀쩡한 건가?’
한편으론 속이 씁쓸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베라딘과 전투를 치렀었다. 그때의 베라딘은 지금처럼 진을 반기기는커녕, 죽이려고 안달이 난 사람처럼 굴었었고 말이다.
아직 속단할 수는 없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지 않는 한.
‘아니,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다 할지라도…… 녀석의 정신이 조종된 상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터였다. 지플의 정신 조작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실한 자료가 없으니까.
그래도 오랜만에 멀쩡한 듯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성내로 들어서자 응접실부터 사람들이 가득했다.
진이 룬칸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또 응접실에서 저녁나절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귀빈들이 다 자리한 후에야 일반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을 테니.
소요 덕분에 진과 일행은 즉시 연회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껏 분장한 게 무용지물이 되었군. 론 경이 내가 오지 않은 줄 알고 흐뭇해하다가 뒷목 잡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연회장에 있는 진짜배기들에게도 이미 소식이 전해진 상태였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일행을 훑어보며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이 연회장에 찾아온 것도 신기하건만, 그가 데려온 동료들은 몇 사람을 제외하면 그들에겐 무척 생소한 인물들이었다.
하이란은 공식적으로 룬칸델 측에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로사가 아직 회복 중인 만큼, 그 상황을 고려한 론의 판단이었다. 론이 룬칸델을 별로 반기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말이다.
시중들이 안내해준 테이블에 앉자마자, 한 사람이 호기로운 걸음걸이로 일행을 찾았다.
“반갑습니다, 진 룬칸델 경!”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새하얀 피부에 진조차 조금 놀랄 만큼 아름다운 얼굴, 가녀린 체격.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무기, ‘도끼검’을 등에 걸어두고 있었다.
‘도끼검……? 루나 누님 말고 이런 걸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
몸이 일부 가리고 있었으나 그게 도끼검이라는 건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뭐냐, 넌?”
진이 도끼검을 살펴보는 사이 무라칸이 다소 껄렁한 말투로 물었다.
“아, 저는 흑왕단의 제피린이라고 합니다. 평소 진 경을 흠모하고 있었기에, 한 번 인사를 올리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누굴 흠모해? 이걸? 대체 왜? 너도 이 녀석 같은 부류냐?”
무라칸이 엔야를 가리키며 말한 순간.
“이봐, 제피린!”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제피린을 불렀다. 그녀의 뒤로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는데, 그는 진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엇, 대장님!”
넙죽-!
제피린이 대답하기 무섭게 흑왕단 3군 대장, 무르카가 그녀의 뒤통수를 눌러 허리를 숙이게 만들었다. 평소 툭하면 말썽을 부리는 학생을 다루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 자주 있는 일인 것 같았다.
“이게 또 눈치 없이 어딜 끼고 있는 거야! 흠, 흠흠! 미안합니다, 진 룬칸델 경. 제가 부하 단속을 못해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녀석인데, 워낙 사고뭉치라. 신입이 운 좋게 단장님 덕에 여길 왔으면 얌전히 좀 있을 것이지……!”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무르카 경. 오랜만이군요.”
무르카는 진이 폭풍성을 떠날 때 호위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때 진을 수행한 흑왕단이 붙여준 ‘어린 제왕’이라는 별명은 최근 사건과 더불어 다시 재조명되는 중이었다.
“대장으로 승격되신 모양입니다.”
“경을 호위하고 얼마 있지 않아 그리되었습니다.”
“아주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축하를 드려야겠군요.”
진은 무르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계속 제피린 쪽이 은근히 신경 쓰였다.
‘도끼검 때문인가?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그 사실을 인지한 무르카가 알겠다는 듯 그녀의 도끼검을 가리켰다.
“이 녀석의 실제 장비는 일반적인 장검입니다. 이 도끼검은 겨우 한두 번 휘두를 정도인데, 루나 경을 존경한다며 늘 등에 메고 다니지요. 너무 나쁘게 생각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르카 역시 진과 대화하는 도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제피린을 혼냈지만, 부하에 대한 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이해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군요. 야, 야! 얼른 인사 안 드리고 뭐하냐?”
“감사합니다!”
또 한 번 제피린이 넙죽 허리를 숙이자 (급하게 허리를 숙이다 도끼검 검신이 뒤통수를 치기도 했다) 무라칸이 기가 찬 듯 고개를 저었다.
“아, 피곤해. 광팬은 하나로 족하다. 얼른 저리 가라.”
“예, 다음에 다시 뵙지요. 그럼 즐거운 연회 되시길.”
무르카와 제피린이 물러가자 일행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크, 우리 나리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런 미인이 알아서 다가오는군요. 역시!”
“저 제피린이라는 여자, 아무래도 좀 수상한데요?”
“네 경쟁자가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그냥 좀 모자란 녀석 같던데.”
제트와 엔야, 무라칸이 한 마디씩 덧붙이는 사이.
진과 퀴칸텔은 미간을 좁힌 채 계속 제피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
“예, 퀴칸텔 님.”
“저 제피린이라는 녀석, 인간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