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
제 44화
17화. 안팎으로 적(2)
로사의 부름을 받고 안채로 달려온 기수는 다섯.
셋째 아들 란과 넷째 아들 뷔고, 넷째 딸 뮤와 다섯째 딸 앤. 그리고 둘째 딸 룬티아.
로사는 그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무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방금까지 한바탕 몰아친 폭풍은 조금 가라앉은 상태.
그러나 진이 안채로 들어서자 로사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기수라는 것들이 일 처리를 어찌 이따위로 할 수 있단 말이냐!”
로사가 일갈하자 탁자에 놓여 있던 문서 더미와 펜대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심지어 펜대는 쩍 금이 가며 부서졌는데, 목소리에 담긴 기운 때문이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진을 바라보는 로사.
“……왔느냐.”
“예, 어머니.”
형제들의 시선이 진에게 집중되었다.
란과 뷔고의 눈빛엔 살짝 짜증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그들은 이번 임무 배정에 관여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뮤와 앤은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입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형형했다. 마치 언제든 죽이겠다고 경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룬티아는 담담한 표정. 그녀는 오랜만에 본 막냇동생이 정말 5성에 이른 것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네 다음 임무지가 콜론 유적지라는 것을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그 임무는 취소다. 네가 콜론으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
뮤와 앤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네년들은 어떻게든 막내를 죽일 생각만 하고 있구나. 그래, 기수가 되어 알량한 권력을 휘둘러보니 이 어미가 우습게 보이는 것이냐?”
로사가 싸늘한 시선으로 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두 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머니, 저희가 막내를 죽이려고 하는 게 이상한 일입니까?”
“뭐라……?”
“솔직히, 저는 어머니께서 막내를 감싸 주시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뮤가 로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계속 주둥이를 놀려보아라. 미친 것이냐?”
“어머니께선 지금까지 아버지와 함께, 침묵이라는 방법으로 오히려 형제간에 싸우는 걸 종용하셨죠. 그건, 우리 가문에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어머니.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오라버니, 언니들에게 얼마나 많은 견제를 당하면서 자랐는지 잘 아실 텐데요. 당장 저도 중급반 때 형제들 덕에 버거운 임무에 배정된 적! 많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뮤와 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서열 전쟁과 암투는 룬칸델에게는 평생의 숙제나 다름없는 일이고, 시론과 로사는 딱히 관여한 적이 없었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경쟁은 필요하고,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지.”
로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뮤와 앤은 속내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희가 열다섯에 5성의 성취를 이룬 적이 있느냐?”
“네?”
“막내와 너희들은 다르다는 것이다. 너희도 어릴 때 막내와 같은 성취를 이뤘었다면, 내가 보호해 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니지 않느냐.”
대놓고 차별의 이유를 밝혔다.
“즉, 너희 둘은 내가 챙겨줄 가치가 없었다는 뜻이다. 기수가 되었다고 감히 내게 따지는 꼬락서니를 보니, 그 점이 후회되지도 않는군.”
뮤와 앤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동자만 끔뻑였다.
아무리 혹독한 가문의 냉혹한 형제들이라지만, 부모의 차별을 겪고도 상처받지 않을 자식은 없다.
“……하. 맞네요, 어머니. 제 생각이 짧았군요.”
“어머니의 뜻, 잘 알겠습니다.”
두 여인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돌아선 자매의 마음속엔 증오가 끈적끈적 피어나고 있었다.
“룬티아, 란, 뷔고.”
“예, 어머니.”
“뮤와 앤이 이 사달을 일으킨 것엔 같은 기수인 너희의 책임도 없지 않다. 특히 룬티아, 네게 실망이 커. 너는 당분간 자숙하는 시간을 갖고, 란과 뷔고는 검을 한 자루씩 반납해라.”
룬티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수긍했으나, 란과 뷔고는 반발심이 일었다.
“어, 어머니. 검 반납이라니요?”
“왜? 한 자루씩만 반납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마음 같아선 네놈들이 가문 무기고에서 가져간 명검을 전부 몰수하고 싶으니까.”
형제들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란과 뷔고는 애꿎은 신세가 된 마음이었고, 그 분노는 자연스레 진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콩가루로군. 그리고 꽤 피곤하게 됐어.’
이 모든 걸 지켜본 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로사 룬칸델.
어머니가 정말 날 사랑하고 아껴서 기수들을 나무라는 것일까?
진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형제들과 더 치열하고 격렬하게 싸우길 바라고 있다. 이번 일과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형님들과 룬티아 누님마저 내게 적개심을 갖도록, 일부러 유도하고 있어.’
정답이었다.
로사가 굳이 뮤와 앤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수들까지 부른 건, 진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정확히 말하면 진을 포함한 모든 형제들을 시험하려는 의도다.
그들이 과연 서로를 물어뜯는 일에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에, 이만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막내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하군. 똑똑한 아이니까, 내가 정말 자기만 편애하는 줄 알고 마냥 우쭐하진 않을 것 같은데…….’
로사가 생각했다. 궁금하고 흥미로웠지만, 여전히 진노한 기색을 표하고 있다.
만약 진이 형님 누님들을 변호하며 차라리 저를 벌하라고 가식을 떨거나.
어머니의 편애가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낸다면 거기서 끝. 열다섯에 5성을 이룬 희대의 천재라 할지라도, 고작 그 정도 반응이라면 로사는 단박에 진에 대한 관심을 끊을 것이다.
물론 실망을 안겨 줘도 사랑하는 막내아들이라는 건 변함이 없겠지만, ‘후계 구도’에서만큼은 완전히 탈락이었다.
치마폭을 내어 줬을 때 생각 없이 만족하는 자식이라면, 결코 룬칸델을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말해라, 아들아.”
로사가 기대감을 감춘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누님들이 지정해 준 임무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콜론 유적지가 어딘지는 알고 하는 말이더냐?”
코웃음을 치는 로사.
“예. 지플의 땅으로, 한때 룬칸델이 점령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곳이죠.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요.”
“잘 알고 있구나. 당시 텔롯 원로께서 수호기사 서른과 출정을 갔다가 낭패를 보셨다. 지금은 관광지에 불과하지만, 왜인지 지플이 신경 쓰는 땅이지. 그곳에 네가 가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진에게 배정된 임무는 ‘탈취’다.
지플이 콜론 유적지에서 캐내고 있는 고대 유물 일부를 빼앗아 오는 것이다. 아직 탈취해야 할 유물 목록은 확인하지 못했으나, 최소 3점 이상일 터였다.
“그건 해 봐야 알겠지요. 위험한 땅인 건 사실이지만, 딱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누님들께서도 제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하달한 것 아니겠습니까?”
“만용을 부리는구나. 아니면 이 어미를 떠보고 있거나.”
만용이라.
나쁘진 않지만, 로사가 기대한 반응은 아니었다.
“또한, 임무 배정이 갑자기 바뀐다면 그건 그것대로. 가문의 권속들에게 우리의 체계가 허술하다는 걸 보여 주는 꼴입니다.”
“겨우 그 정도로 룬칸델을 의심하는 권속은 없다. 네 누이들은 그저 너를 해하고 싶을 뿐이지. 직접 싸울 순 없는 노릇이니, 기수의 권한을 이용해서 말이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어머니.”
진이 빙긋 웃었다.
“저는 이 싸움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당장 누님들과 직접 결투를 펼친다면 절대적으로 패배할 테지만,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크게 한 방 먹이는 셈이니까요.”
로사가 눈동자를 빛냈다.
“다시 말해 제게는 가망이 있는 싸움입니다. 이번엔 몸을 숙이고 차후 실력을 키워 직접 겨루는 방법이 더 현명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누님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콜론 유적지는 까딱 잘못하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곳이다. 자신 있느냐?”
“예. 그리고 제가 임무를 성공하고 돌아온다면, 형님들께서 반납한 검은 제 몫으로 내어 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위험하다고 판단한 임무인 만큼, 그 정도는 받고 싶습니다.”
“뭐라고?”
란과 뷔고가 반사적으로 진을 노려보았고, 로사는 흡족한 마음을 감췄다.
막내가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형제들을 제대로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아. 우리가 반납한 검을 대체 네가 왜 갖는다는…….”
“좋다. 허락하지.”
로사가 뷔고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란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막내야. 검이 탐나는 것이라면 그냥 내가 가진 것 중 한 자루를 따로 내어 주겠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포기해. 이미 네 성취가 온 세상에 알려졌다.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는 네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한 달 후 시론이 검의 정원으로 왔을 때 진이 없다면. 룬칸델을 찾은 모두가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룬칸델이 열다섯에 5성이라는 거짓 소문을 만들고, 죽음으로 덮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터.
란은 그걸 경계한다는 의도였으나, 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이야길 하시는군요, 란 형님. 그게 중요한 문제였다면, 누님들이 임무를 배정할 때 말리셔야 했을 텐데요.”
란이 선심 쓰듯 말해도 진이 날을 세우는 건, 그 역시 방관자이기 때문이었다. 란도, 뷔고도. 뮤와 앤이 콜론 유적지로 진을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반대하지 않은 것이다.
진에겐 란이 차라리 대범한 모습을 보여 어머니께 점수를 따려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하하하… 이건 꽤 민망하겠구나, 란. 차라리 네 누이처럼 가만히 있지 그랬느냐.”
란은 뜨거워진 귓불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막내가 형들의 검을 빼앗을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도발로 끝날 것인지, 현실이 될 것인지 내 유심히 지켜보겠다. 다들 이만 나가 보아라.”
자식들이 나가자 로사가 턱을 괴었다.
‘……막내가 혹시라도 루나처럼 될까 봐 다른 녀석들의 자존심을 짓밟긴 했는데. 노파심이었군.’
막내는 그야말로 싸움에 목이 마른 모습이다. 오늘은 검이 아니라 말로 싸웠지만, 나이 차도 많이 나는 형제들을 완전히 농락했다.
‘시론이 돌아와서 막내를 보면 잘 크고 있다며 기뻐하겠어.’
진이 콜론 유적지에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면, 그것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안채를 빠져나가자마자 란과 뷔고는 제 방으로 향했다. 룬티아는 막내에게 말을 붙여 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 귀찮다는 마음이 들어 그냥 돌아갔다.
“이번에도 행운이 따를 것 같니?”
안채 바깥에서 진을 기다리고 있던 뮤가 말했다. 그녀들은 벽을 등진 채 진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글쎄요, 누님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운이 없는 편이라.”
“여유를 부리는 것도 마지막이야. 단독 임무는 아니니까, 가는 길이 쓸쓸하진 않겠구나.”
“하하,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누님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두 여인은 성큼성큼 자신을 지나쳐 간 진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