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5)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10)
‘어처구니가 없네…… 이게 말이 돼?’
완벽하게 복구된 함선 그르닐을 보고 있으니 절로 말문이 막혔다.
진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인들도 저 끔찍한 함선이 되돌아왔다는 사실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지플조차 함선 코젝의 정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손상 정도에 따라 최소 몇 달, 길게는 년 단위로 수리에 들어서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러나 단장이 그르닐을 수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십여 초 남짓이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 이런 걸 과연 ‘수리’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건가?
진과 무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파즈즈즉……!
함선 그르닐은 벌써 새로운 뇌운을 형성하며 지상에 불길한 어둠을 드리웠다.
그 앞에 선 킨젤로 단장의 손아귀엔 쇳조각들이 모여 한 자루의 검을 형성하는 모습.
과거 오테리엄에서 대마법사 수잔 릴리스타와 추콘 톨더러를 끝장낸 검이다.
“리올의 유산을 도둑맞았다? 그건 적절치 않은 표현인 것 같은데. 애초에 네놈들의 물건이 아니잖아.”
[우리가 보관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물건이지.]“그 논리대로라면 이제 내가 갖고 있으니 내 물건이군.”
[큭큭,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는군.]단장이 웃음을 흘렸다.
킨젤로 일당들과는 꾸준히 마주쳐왔으나, 단장을 직접 보는 것은 예비 기수 이후 처음이었다.
문득 테마르의 두 번째 무덤에 담긴 기록에서 놈을 본 순간이 떠올랐다.
-[무슨 개수작이냐.]
-[개수작이라니. 유복이 지나쳐 온몸이 짓눌릴 지경인 행운아로서, 불쌍한 고아들에게 선의를 베풀고자 할 뿐.]
-[집어치우고 꺼져라. 네놈까지 죽이기 전에.]
-[그렇게 날카롭게 굴지 말고, 내 제안을 한 번 들어보게. 내 오랜 벗이여. 이 몸이 모두에게 좋은 미래를 준비해뒀다네.]
기록 속에서 단장은 흑해에 있는 ‘탑’에서 전투 중인 테마르와 십대기사들, 그리고 무라칸의 앞에 나타났었다.
줄곧 궁금했었다.
단장과 무라칸은 대체 무슨 관계인지, 두 번째 기록 속에서 단장이 ‘제안’한 모두에게 좋은 미래는 무엇인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단장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마어마한 권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천 년 전에 무라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고, 현시대에 ‘순간 이동’을 사용하며 함선을 단숨에 복구시킬 수 있는 인물은 단장이 유일했다.
게다가 단장의 권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 단장이 힘을 쓰게 만드는군…….”
대전사 베락트, 그의 온몸을 뒤덮고 있던 크고 작은 상처들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론과 린파는 다시 그를 압박하는 대신, 전황을 살피며 신중을 가하는 형세였다.
정적이 흘렀다.
단장의 등장과 동시에 연달아 충격적인 광경이 이어진 결과였다. 드디어 테러범들을 수세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했건만, 다시 원점이 된 것이다.
아니, 원점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단장이 지닌 재생 능력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킨젤로 단장, 저건 볼 때마다 그냥 기분이 나빠. 야, 야. 어디서 전지전능한 척이야? 한낱 마족 새끼가. 하여간 뒤질 때까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후우욱, 콰아아아……!
무라칸이 단장에게 검은 숨결을 내뱉었다. 시커먼 영기가 단장을 없애버릴 듯 쇄도했으나, 그는 검을 휘둘러 어렵지 않게 숨결을 베어냈다.
[무라칸.] [또 아는 척 이름을 부르네, 미쳐가지고. 오늘은 곱게 돌아갈 생각 마라.]진은 한껏 투기를 드러내는 무라칸을 말리지 않았다. 단장을 처음 마주쳤을 때와 달리 이성을 잃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싸움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무라칸이 단장에게 쇄도하자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함선 그르닐은 뇌운을 퍼뜨렸고, 베락트는 완전히 회복된 몸으로 난동을 부려댔다.
하지만 부상을 씻은 듯이 털어냈다고 한들 전세는 비슷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론과 린파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베락트의 무위로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백랑족… 내가… 맡는다.”
베락트는 내버려두고 단장과 함선 그르닐을 상대하러 가라는 의미, 린파의 말에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겠소.”
물론 베락트는 론이 떠나는 모습에 눈을 부라리며 검을 휘둘렀으나, 린파의 공세에 짓눌려 막을 수가 없었다.
“똥개… 나는, 네 천적이다. 상황… 파악해.”
함선 그르닐도 아직 처음처럼 마구잡이로 우레를 내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진의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최종형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진은 여전히 외벽 위에서 대마법을 이어가는 중이고, 불의 사슬들이 함선 그르닐을 옥죄는 중이었다.
‘킨젤로 단장…… 무라칸을 꽤나 여유롭게 상대하는군.’
무라칸도 계속 지상을 지키느라 많은 힘을 사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단장은 확실히 무라칸을 넘어서는 실력자였다.
특히 검을 다루는 솜씨가 압권이었다. 단장의 검은 이제껏 진이 본 그 어떤 검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깊이를 품고 있었다.
무라칸은 인간 변신과 본모습을 쉴 새 없이 변환해가며 단장과 공중에서 근접전을 펼쳤다.
단장은 허공에 마치 땅이 있는 듯 움직였는데, 공중전이 익숙한 모양새였다.
[그때도 느꼈지만, 내가 알던 무라칸이 맞나 싶군. 왜 이렇게 약해졌나, 친구? 위엄 넘치던 그 시절의 자네를 떠올리니 눈물이 다 날 것 같군.] [그러냐? 약해졌다, 이거지. 인정해. 조금 힘을 되찾았는데도 아직 옛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래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거든.]무라칸은 의외로 발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눈치.
[갈수록 놀라워. 천하의 무라칸이 배움이라니? 무엇인가?] [인간들은 내가 배운 걸, 다구리를 놓다, 혹은 다구리를 깐다. 그렇게 표현하더라고.]스아악-!
바람이 단장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론의 무형 검기를 품고 있는 바람이었다. 무형 검기가 단장의 강철 뼈를 긁자 고막을 찢는 마찰음이 번졌다.
“철이라, 불쾌한 감각이로고.”
도약한 론의 검이 단장의 몸통을 가로로 베었다.
강철 뼈는 무형 검기에 허무할 만큼 쉽게 끊어졌으나, 다시 붙는 것 또한 그만큼 쉬운 모양이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살과 근육이 있어야 할, 흐릿한 부분은 그저 연기처럼 흔들리기만 할 뿐 베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론의 검은 그저 물을 지나친 것 같았으나, 단장에게 실제로 아무런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 이 또한 재생에 불과할 터, 무한할 수는 없다. 다시 재생하지 못할 때까지 베어주마…….”
진과 무라칸도 론과 같은 판단이었다.
그들은 도무지 속내를 알아볼 수 없는 단장이 아니라, 베락트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 걸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단장이 등장해서 권능을 부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베락트가 급격히 조급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단장의 권능은 상상 이상의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
베락트 정도의 인물이 ‘평정심’을 잃을 정도의 대가.
‘단장 본인의 생명력, 혹은 킨젤로에 매우 중요한 무언가.’
무라칸이 앞발을 휘둘러 틈을 만들자, 또 한 번 론이 단장의 척추를 베었다. 그의 강철검도 무라칸의 이마를 스쳤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지상에선 린파가 베락트를 압박했고, 나머지 무인들은 부상자들을 후송했다.
그중 하이란의 기사들만이 대열을 정비하고, 진을 펼치며 대마법에 묶인 함선 그르닐에 검기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전황이 빠르게 안정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나 진 혼자 함선 그르닐을 붙잡아두고 있는 게 문제였다.
진이 그르닐을 놓치면 다시 지상에 공격이 시작될 거고, 굵직한 무인들에겐 별다른 피해가 없을 테지만.
아직까지 전장을 떠나지 못한 일반인들, 그리고 하위 무인들은 죽음을 맞이할 터.
“큽……!”
입술을 비집고 한 줄기 핏물이 새어나왔다. 마력 역류가 시작되려는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다른 누군가의 공격이 있는 상황이라면 역류를 억제하면서 대마법을 유지할 수 없겠지만, 일단은 온전히 마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
‘단장의 권능이 먼저 소진될지, 내 역류가 먼저 터질지 모르겠군. 아마 전자일 것 같은데.’
이제 슬슬 그들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진이 핏물을 뱉으며 하늘 저 멀리로 시선을 옮겼다. 어차피 이 싸움은 그들이 도착하는 순간 하이란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다.
‘용기사.’
룬칸델엔 흑기사가, 지플엔 백야와 망령대가, 비먼트엔 친위대와 특임대가 있다.
그리고 하이란 또한 세계 3대 가문에 걸맞은 최정예 기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용기사라 불리는 하이란 최강의 기사들을.
진은 그들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되었다.
애초에 지금 당장 진이 전장을 떠난다 할지라도 아무도 손가락질을 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이미 진은 외인으로서 하지 않아도 될 싸움에서 최대 수준의 공을 세우고 있었다.
카아아아……!
시커먼 새벽하늘 저 너머에서부터 무언가 울부짖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린 직후 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론과 다른 무인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용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조룡鳥龍들이 유성처럼 빠르게 검황성에 가까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서른 기였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용기사들이 대열을 넓게 펼쳐 전장을 포위했다.
고작 서른밖에 되지 않으니 ‘포위’ 한다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하이란 최고의 검이다.
온 전장이 한순간에 용기사들의 살기로 물들고 있었다.
“용기사단장!”
론이 소리치자 가장 큰 조룡을 탄 사내가 검을 치켜들었다.
“충! 명하십시오!”
“반은 지상을 수습하고, 반은 나를 따르라. 적들을 섬멸하겠다.”
따로 지휘할 필요 없이 용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나뉘었다. 절반은 하강하고, 절반은 상승하며 론과 무라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 순간 진은 함선 그르닐을 붙들고 있던 마력을 풀었다.
하늘을 어지러이 휘젓고 있던 불의 사슬들이 일제히 화염옥으로 모여들었고, 진은 손가락으로 함선 그르닐을 가리켰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검은 하늘이 아가리를 벌려 거대한 화염옥을 토해내는 모습이 이어졌다.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최종형의 마지막 형태.
그르닐은 재빨리 동력을 올려 화염옥을 벗어나려 했으나, 용기사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윽고 화염옥이 선체를 두들겼을 때, 그르닐은 한 번 더 반파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단장은 이미 론과 무라칸, 그리고 용기사들의 검기에 파묻혀 아예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