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53)
제 444화
130화. 새해, 헛소문, 대공사(3)
* * *
180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티칸의 식구들은 리트라 다과점에 모여 소박하게 서로의 한 해를 축복해주고 있었다.
오도독, 오도독, 아이들이 이빨로 과자를 깨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고 곳곳에 켠 초들이 다채로운 빛깔을 흘렸다.
빵과 쿠키가 구워지는 냄새는 또 어떠한가, 라트리가 주방에서 부리고 있는 마법의 향내는 애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목가적이면서도 세련된 새해 첫날의 풍경, 늙은 개 푸피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애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푸피가 방금까지 앉아 있던 자리 근처의 탁자들엔, 이 따뜻한 분위기와 전혀 상반되는 어두운 얼굴의 투박한 사내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 묻은 옷은 아직 갈아입지도 않았고, 산발이 된 머리 또한 빗지 않았다.
내내 인상을 찡그린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기며 매우, 몹시 언짢은 기분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흑왕단의 대장과 간부들이었다. 굳이 옷을 갈아입지 않은 건, 자신들이 아직 혼수상태를 헤매고 있는 발카스와 함께 싸우고 있다는, 나름대로 의리를 표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새해 첫날 비세 왕국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본인들이 무너진 흑왕산채를 수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은 그 권리를 강탈당했다.
룬칸델 때문이었다.
1800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가운데 룬칸델 12기수의 별이 가장 먼저 빛을 드러내다.
세계 최고의 용병대, 흑왕단! 그들이 12기수의 예하로 편입된 이유.
흑왕단장 발카스 크란, 극비리에 티칸 자유도시에서 12기수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밝혀져…….
그 어떤 거대 세력도 품을 수 없던 비세 왕국의 흑진주, 그 주인이 된 룬칸델에 관하여.
사실상 진 룬칸델의 해였던 1799년, 올해도 그 기세가 이어질 것인가?
12기수와 흑왕단의 전쟁은 이전 세기 최고의 사건 중 하나, 승자는 12기수와 룬칸델.
하늘의 제왕, 위대한 흑룡! 무라칸, 다시금 세상에 그 두려운 포효를 내지르다.
용 중의 용, 창공의 지배자. 지플조차 두려워하는 그 이름! 무.라.칸.
“후……!”
“하!”
흑왕단들이 탁자에 놓인 소식지들을 보며 한숨과 탄식을 내뱉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어찌 이리 억울하고 열 뻗치는 내용으로만 가득한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선 룬칸델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우릴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짓을 하는 것이며, 대체 우리가 언제 12기수의 밑으로 들어가겠다 말했느냐고 말이다.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 후.
룬칸델은 흑왕단이 흑왕산채를 수습하는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기사와 사람들을 보냈다.
대외적으로는 마치 룬칸델이 ‘정신없는 흑왕단’을 대신해, 군주의 가문으로서 대신 일을 해주는 것처럼 표방하고 있으나.
실상 그것은 이제 흑왕단은 룬칸델의 소속이니, 우리의 통제를 따르라는 의미였다. 한 번 더 외부 세력과 세인들이 보기에 흑왕단의 소속을 분명히 하려는 행위이기도 하고.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한순간에 터전을 잃은 것도 납득이 되질 않건만, 이런 수치와 모욕이라니……!
오도독!
으드득!
애들이 과자를 깨는 소리와 흑왕단들이 이를 악무는 소리가 대비되고 있었다.
마치 도화지 한가운데 선을 긋고 각 면에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 것 같았다. 티칸 식구들이 있는 쪽과 흑왕단들이 앉아 있는 쪽은.
“표정들 좀 푸는 게 어떤가, 친구들.”
한 사람이 티칸 쪽에서 흑왕단들의 탁자로 넘어와 앉으며 말했다.
“주군께서 이토록 훌륭한 자리를 마련해주셨는데, 계속 그렇게 벌레 씹은 얼굴로 앉아 있어도 되겠어? 너희들, 용병 생활하면서 이런 쿠키는 먹어본 적이나 있냐? 난 처음이다.”
귀신대장 라타 프로치였다. 그는 새해 첫날을 맞아 진에게 인사를 올리러 온 상태였다.
라타의 동생, 페이 프로치도 그 옆으로 와서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래, 애들도 있는데 그렇게 험악한 얼굴 하고 있지 말라고. 확 다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귀신대와 흑왕단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라타는 3대 용병 중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니, 언제든 그 이야길 역전시킬 기회만을 기다려 왔었다.
이제는 진의 심복이 된 만큼 예전처럼 그런 열망이 강하진 않지만, 흑왕단이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라고?”
“뭐라고는 반말이고, 친구. 발카스 경을 제외하면 너희 중 나보다 격이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으로 한솥밥 먹게 될 텐데, 서열은 확실해야지?”
“한솥밥? 누가 네놈과 한솥밥을 먹는다는 거냐!”
한 간부가 그리 소리치자 라타의 눈동자에 귀기 어린 살의가 깃들었다.
그러자 간부가 움찔했고, 대장들은 눈에 힘을 주었다. 라타는 참아준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말이다.
“기분은 알겠는데, 너희들. 지금 이럴 때가 아니거든. 상황 돌아가는 걸 왜 이렇게 못 읽어? 발카스 경이 깨어나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 같나? 정말 다시 중립 세력이 되겠다고 말할 것 같아?”
라타와 흑왕단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라타의 말처럼, 발카스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흑왕단 사태가 끝난 직후 진은 발카스와 흑기사를 데리고 곧장 성국으로 향했다.
성왕 라니, 그녀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제피린의 독을 해독할 수 없으리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만큼은 라니도 순수 신성력만으로 그들을 완치시킬 수 없었다.
그녀는 치료에 필요한 약 오백 가지의 약재를 요청했고, 그중엔 룬칸델조차 1급 임무로 분류해야 얻을 수 있는 진귀한 물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진과 일부 동료들은 새해가 밝은 오늘까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세계 각국의 오지를 탐사하고, 위험지역과 미보호구역을 돌아다니며 약재를 구한 것이다.
그중 가장 고생한 것이 바로 라타와 그의 귀신대, 그리고 쿠잔이었다.
하나 라타는 부들부들 화를 억누르고 있는 흑왕단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그 고생을 한 게 흑왕단을 위해서였다기보다는, 주군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라타 경, 당신은 우리 단장이 정말 12기수의 밑으로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오?”
“그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발카스 경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다. 무력, 처세, 판단력, 경험 등등. 아, 성질 하나는 내가 더 지랄 같을 것 같군. 간덩이도 내가 더 클 것 같고.”
“인물도 더 낫기는 하지, 오라버니가.”
페이는 우습게도 그렇게 말하면서 토악질을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들 남매는 평소 매우 우애가 좋은 편이나 서로를 미인이라 여기지는 않는 듯했다. 다만 남 앞이니 추켜세워주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런 발카스 경이. 나도 본 것을, 나도 읽은 것을 놓칠까? 지금은 주군의 세력이 되는 게 최고이자 유일한 선택이다. 흑왕단은 괜히 성깔을 부리다 룬칸델로부터도, 지플로부터도 외면당할 거라고. 그건 곧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그건 단장님이 깨어난 다음에 알아서 정하실 문제요. 그대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좋아, 근데 이 새끼들이 아까부터 말투가 도를 지나치게 아니꼽…….”
“거기, 용병 나부랭이들. 여기 네놈들만 있어? 적당히 좀 하지. 비궁이 우습다면, 교훈을 좀 줄까?”
탈라리스의 명을 받아 티칸에 상주 중인 비궁 7검의 류와 히텐이었다. 그들은 티칸 식구들 쪽에 앉아 차와 쿠키를 즐기고 있었다.
“하! 뭐라고? 다시 지껄……!”
끼익!
라타와 흑왕단이 욱한 순간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뭐야! 새해 첫날부터 뭐 이리 칙칙한 놈들이 가득하냐고. 어? 이 새끼들, 싸워? 설마 싸웠냐, 너희? 저기 애들 놀고 있는데?”
무라칸이었다. 그 목소리에 라타와 페이는 즉시 예를 표했고, 흑왕단들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퀴칸텔, 이것들 한마디 하지 그랬냐. 새해 첫날부터 싸우고들 난리야, 난리는.”
“패다보면 죽일까 봐 내버려뒀다.”
“어, 그래. 잘했다. 라트리, 쿠키 좀 내와라. 빨리. 냄새가 아주 훌륭하구만.”
“어디까지 까부나 궁금하기도 했고.”
무라칸의 옆엔 진과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발카스와 마찬가지로 붕대에 싸여 들것에 실려 있는 흑기사, 후드를 눌러쓴 성왕 라니가 있었다.
흑기사는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라니가 후드를 벗자 깊고 신성한 기운이 과자점 내부를 환히 감싸는 듯했다.
그 묘한 위엄에 용병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자신들의 단장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욱 고개가 조아려질 수밖에 없었다.
“성왕을 뵙습니다!”
“오늘은 티칸의 친구로서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부담스러우니 용병들께선 어서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이어 라니가 진과 발카스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앞으로 고생 좀 하실 것 같네요, 두 분. 아무튼, 나도 얼른 쿠키 좀 줘요. 먹고 다시 신년 축성식 진행하러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녀는 축성식의 휴식 시간에 짬을 내어 몰래 티칸을 찾은 것이었다. 이어 라니가 자연스레 티칸 식구들 쪽에 섞여 덕담을 나누자, 흑왕단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마라. 그리고 다들 엄한 짓 하지 말고 태도를 가다듬어.”
발카스의 말에 흑왕단들이 일제히 정렬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발카스 경께서 말씀하시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며 진이 말했다.
이미 진과 발카스는, 티칸으로 오기 전에 흑왕단의 미래에 대해 논의를 끝낸 상태였다.
“내가 말하도록 하지. 지금이 내가 흑왕단의 독립적인 우두머리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소.”
그 말에 흑왕단들은 눈동자를 휘둥그렇게 떴고, 라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왕단들은 설마 발카스가 이 강요된 선택을 받아들일 줄 몰랐던 것이다.
발카스는, 라타가 예견한 대로 그게 흑왕단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오늘부로 흑왕단은 12기수를 주군으로 모신다. 이는 단지 돈과 돈으로 엮인 용병 세계의 질서를 따르는 의미를 가진 대장이 아니라, 신의와 충의로 맺어진 혈맹의 군주로 모신다는 것을 뜻한다.”
라타가 일부 원로를 제외한 귀신대를 완전히 휘어잡고 있던 것보다 흑왕단은 발카스에게 더욱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단원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당혹스럽긴 했으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단장님!”
“그리고 지금부터. 흑왕산채에 있던 모든 장비를 이곳, 티칸 자유도시로 옮기도록 하겠다. 티칸 자유도시가 통째로 개조되는 작업이 될 테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장비 챙겨올 준비를 하도록.”
티칸 최대의 방위 체계가 정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