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58)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3)
길리가 진의 여행 준비를 시작하러 나가자 이번엔 무라칸이 방을 찾았다.
그는 들어오는 길에 마주친 길리를 보며 제 얼굴을 억지로 구기고(웃기기 위해) 눈알을 돌려댔지만 그녀는 꾸벅 인사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흠, 오늘은 딸기파이의 반응을 보아하니 2할의 언짢음과 3할의 슬픔, 5할의 씁쓸함이 느껴지는군. 이 계산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꼬마. 알고 있나?”
“뭔 헛소리야, 또.”
“하긴, 네가 뭘 알겠냐. 쯧. 딸기파이 부려먹을 줄이나 알지.”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그러는 위대한 흑룡께선 허접한 추파나 던질 줄 아시지 않습니까?”
“추파는 무슨 추파?”
“싸구려 농담도 섞어서.”
“그 농담에 딸기파이가 얼마나 많이 웃는지는 모르고 하는 소리로군.”
“응, 나는 그런 농담도 필요 없어. 길리는 그냥 내 얼굴만 봐도 웃어.”
“하! 말하는 본새 좀 보소, 천 년의 계약자라고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지, 없어.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예전에 춘화집 없애겠다고 협박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래? 무라칸, 지금이라도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 텐데. 안 그래도 답답한데 왜 너까지 와서 오랜만에 긁고 있는 거냐, 신경을.”
“얼씨구.”
“왜냐하면 난 너한테 명분을 줄 수 있거든.”
그러자 무라칸이 아차, 전형적인 헛기침을 해댔다.
“콜록, 콜록, 콜록, 큼.”
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가서 너도 딸기파, 아니. 길리 좀 도와.”
바로 그게 명분이었다.
이 명분이 없이 길리에게 자신도 돕겠다 말을 하면 괜찮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대답만이 들려오는 것이다.
반면 명분을 가져가면 ‘아, 도련님께서요?’라며 자연스러운 협업이 가능했다.
“큭큭큭, 좋다. 애송이, 꼬마. 듣기 아주 흡족한 이야기로군. 그렇다면 네놈이 아멜라인지 카멜라인지를 찾으러 간 동안, 난 딸기파이랑 밀린 집안일이나 같이…….”
“너도 같이 갈 건데. 그리고 집안일은 밀린 적이 없어.”
“그래, 나도 같이…… 왜, 왜?”
“너 수호룡이지 않냐?”
“아니, 그건 그런데. 사생활이라는 것도 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고.”
“웬만하면 네 기대감을 지켜주고 싶은데, 이번엔 무조건 같이 가야 해. 꽤 위험할 수 있거든.”
“제피린 같은 놈이라도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무라칸 님은 티칸이나 지키고 있는 게 낫지 않겠냐?”
“제피린이 또 튀어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리고 가이파 군도에서는 적당한 후광도 필요해.”
후광이라는 말에 무라칸의 미간이 씰룩였다.
“후광? 이 몸을 후광으로 쓰겠다는 말이냐?”
“그래. 가이파 군도에 가면 4대 세력이 모두 모여 있을 거다. 굵직한 인물들이 대표로 와 있을 거고.”
“그러니 그들 사이에서 꿀리고 싶지가 않다, 이 말이로군.”
사실 무라칸도, 라타와 페이도 없이 혼자 가도 진이 누군가에게 우습게 보일 일은 없었다.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 봤자 12기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을 테지만.
이제 진은 진짜 거물의 반열에 올랐다.
이전까지는 세상을 뒤흔들며 파란을 일으키는 대단한 신예였으나, 귀신대와 흑왕단을 삼킨 뒤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거물이 된 것이다.
그러니 무라칸이 없더라도 위세가 밀리진 않을 테지만 다다익선이라는 마음이었다.
가이파 군도라는 작은 우리에 세상의 맹수들이 모였다.
작은 불씨만 튀어도 미친 듯이 싸움판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 그때는 진과 프로치 남매만으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높았다. 적들은 휘하 병력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맞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도 있고.”
“뭐, 한바탕 할 수는 있겠네.”
“아무튼, 그럼 가는 거다? 길리 도와주고 오면 네가 가이파 군도에서 각종 상황에 맞춰 사용할 멘트들 준비해놓고 있을게.”
“멘트? 멘트는 무슨 멘트?”
“있어, 그런 게.”
* * *
투명한 바다는 잔잔하고, 사시사철 따뜻한 바람이 불고, 바다가 보이는 숲이 가득하고, 그 숲을 채운 나무들엔 탐스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에, 이름 모를 야생동물이 가득한 이곳, 가이파 군도는.
참으로 쓸모가 없는 지역이었다.
인근 바다는 잔잔하지만 군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끔찍한 해류와 정체불명의 소용돌이들이 펼쳐지니 정상적인 뱃길이 날 수가 없고.
매일 부는 따뜻한 바람은 툭하면 마른 모래와 물방울을 품은 채 섬을 뒤덮어 이동 관문을 설치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으며.
예쁜 빛깔을 띤 땅들은 파봐야 무의미한 수준의 자원만이 나왔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기에는 해마다 원인 모를 풍토병이 도는지라, 가끔 정착하러 오는 이들도 오랜 시간을 버티지는 못했다.
이 최악의 여건에 방점을 찍는 것은 마물이었다. 가이파 군도는 미보호구역이었다. 특급 위험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는 아니지만, 주에 두어 번 정도는 오크 따위의 마물이 한두 마리씩 섬을 배회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이파 군도는 관광지로도, 주거지로도, 하다못해 부유한 자들의 쉼터로서도 사용될 수 없었다.
가끔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섬에 투자를 시도하거나, 개인적인 공간을 마련한 이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삼십여 년 전, 대용병 아멜라가 이 거대하고 쓸모없는 군도에 터를 잡은 이후론 모두 사라졌다.
찰방, 차르릉…….
노가 부드럽게 안개 낀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준 것은 군도까지 오는 내내 혼자 노를 저은 라타 프로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선 여러 소문이 돌았었습니다, 주군.”
“아멜라가 온 뒤로 가이파 군도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 말입니까?”
“아멜라가 가이파 군도에 뭔가를 숨겨놓고 찾아오는 사람을 모두 죽였다는 소문이었죠. 애인을 숨겼다, 납치한 애들을 숨겼다, 그런 것들 있잖습니까.”
“당연히 보물을 숨겼다는 이야기도 있었겠군요.”
“예. 그래서 꽤 많은 용병과 해적들이 가이파 군도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이었고…… 그 누구도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었죠.”
한둘이 사라진 것이라면 모를까, 집단이 사라졌다면 그건 아멜라가 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가끔 운 좋게 살아서 돌아온 놈들은 넋이 나가 아멜라의 아만 나와도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멜라가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다거나, 식인을 한다는 헛소문은 바로 그런 현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군요. 아멜라는 군도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아주 싫어한다.”
안개 지역을 벗어나니 가이파 군도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가이파 군도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손님들이 모였다.
라타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멜라는 손님들을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만약 만나준다면, 그건 환대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것이 분명하리라고 말이다.
“그나저나 아멜라가, 음…… 라타 경과 페이에게 호감이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발카스 경이 말했다고 해도 개의치 않으니 저희 기분 따윌 살피지 마십시오, 진 경.”
페이가 말했다. 출발 전에 발카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어 그녀는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호감…… 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발카스 경은 우연히 다 같이 전장에서 식사를 할 때를 생각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오라버니와 저는 그날 외에도 아멜라를 종종 보았습니다.”
“호감이 아니라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저흴 장난감이나 놀이 상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말은 심심하다고 하면서 손은 칼을 휘두르고 있다던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 번은 그런 기습에 이마를 베인 적도 있습니다.”
그 대목에서.
진은 아멜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묘한 기시감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며 장난이랍시고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행동을 하는 것.
진이 사랑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다.
‘요나 누님.’
지금까지 들은 바로, 아멜라는 요나와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 한 가지.
혼돈.
‘어쩌면 아멜라도 요나 누님처럼, 혼돈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단지 뒤틀린 성격의 소유자일 수도 있지만, 다른 정황들도 잘 들어맞았다.
전쟁에서 단신으로 흑왕단 전체를 압도한다는 대목도 그랬다.
발카스는 아멜라가 10성 후반 이상의 초월적 무위의 소유자가 아니라. 특수한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한 것이다.
-아멜라는 평생 세상을 유랑하고 탐험하고 있소. 전투가 끝난 후, 같이 밥을 먹을 때 넌지시 물어보니 굉장한 열망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던데…… 정확히 뭔지는 알려주지 않더군.
발카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날카로운 직감이 사방에서 날아들어 머리를 찌르는 것 같았다.
‘아멜라가 찾고 있는 것은, 혼돈과 관련한 무언가다.’
본인이 가진 혼돈의 근원, 이유, 혹은 통제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방법.
‘만일 아멜라가 찾는 게 그것이라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
‘혼돈’이라는 정보에 대해서 진은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전 탈라리스가 이야기해준 내용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면 적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황실은 몰라도, 킨젤로와 지플은 왠지 자신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듯했다. 특히 킨젤로의 단장은 마신급 존재로 추정되는 인물이니까.
‘정말 아멜라의 목표가 혼돈에 대한 정보일 경우. 나는 상당히 불리한 위치로군. 애초에 군도에도 가장 늦게 도착한 것 같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든 찰나.
진과 일행의 눈동자에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저 앞쪽, 가이파 군도 한가운데에서부터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투가 벌어졌음을 의미하는 연기였다. 그리고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전개되는 모습이었다.
“주군.”
“어떻게 할까요?”
라타와 페이가 묻자, 진은 즉시 결론을 내렸다.
가이파 군도를 찾은 거대 세력이 단 하나뿐이었다면 당장 달려가 보았을 것이다.
그건 아멜라와 거대 세력의 싸움일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거대 세력들의 싸움일 수도 있고, 아멜라가 낀 싸움일 수도 있고, 아멜라와 일부 거대 세력의 싸움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아멜라를 원하고 있으니.
4대 세력이 합심해서 아멜라를 족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아멜라는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안전했다. 누구라도 그녀를 구하려 할 테니 말이다.
“더 천천히 진입하도록 하죠. 그리고 가능하다면 적당한 곳에 숨어서 어떻게 치고받고들 있는지 한번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