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59)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4)
암초에 배를 묶어두고 섬으로 올랐다.
“조금 전까지 경계병들이 서 있던 것 같군요. 음…… 보폭을 보니 특임대 놈들 냄새가 납니다.”
라타가 근처에 찍힌 발자국들을 보며 말했다.
“특임대? 그걸 발자국만 보고 알아볼 수 있습니까?”
“일종의 감과 경험입니다, 주군. 직업 특성상 종종 놈들하고 얽힐 일이 있었다 보니.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패턴이 있습니다.”
“오라버니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히 특임대일 겁니다.”
“이것들은 무슨 짐승도 아니고, 별걸 다 알아보네. 안 그러냐, 꼬마.”
발자국만 보고 그렇게 확신하는 프로치 남매의 모습이 신기했다.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이었다. 정말 특임대가 존재하는 게 밝혀졌을 때의 이야기긴 하지만 말이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전투는 섬 중심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줄지어 모여 있는 크고 작은 섬들 곳곳에서 연기와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를테면, 곳곳에서 국지전이 발발하는 중이었다.
섬들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 수영이나 도약만으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군도를 돌아다니며 전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으아아아……! 우어억!
이동할 때마다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화창한 날씨,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섬들, 따뜻한 바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일행은 묘한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야, 꼬마.”
“어.”
“이 비명 소리들, 뭔가 이상하지 않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겁에 질려 내지르는 비명 같군.”
“제가 듣기에도 그렇습니다, 주군.”
섬 거주민이나 다른 일반인의 비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최소 6성 이상을 이룬 무인 특유의 기력이 실려 있는 것이다.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전쟁에 익숙하다고 해서 비명까지 멋지게 지르라는 법은 물론 없다.
하지만 현재 가이파 군도를 찾은 이들은, 4대 세력의 병력이다. 그것도 4대 세력 모두가 서로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상태로 데려온.
최소로 잡아도 모두 정예라고 할 만한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원들이 이토록 공포에 젖어 비명을 지르는 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새로이 다다른 섬은 야트막한 언덕처럼 되어 있었다. 비교적 고도가 높은 덕에 꼭대기에 다다르자 앞에 있는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일행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으히익, 이이익!”
“우악!”
마치 겁에 질려 도망치는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마구잡이로 뛰어다니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 것이다.
“허, 뭐야. 저게 뭔 상황이냐?”
“황실…… 군입니다, 무라칸 님.”
뛰고 있는 이들은 황실정예군이었다.
심지어 바닥엔 비먼트 황가를 상징하는 깃발들이 찢어진 채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황실정예군은 그 위를 밟으며 뛰고 있었다.
황실정예군쯤 되는 이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일까.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도 않아 알 수 있었다. 황실정예군을 미치게 만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주군, 이건 아무래도…….”
“다른 누군가와 전투를 펼친 게 아니로군요.”
일행이 보고 있는 황실정예군은,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도저히 정예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엉성한 무기술과 몸짓으로.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또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듯. 그들은 쉴 새 없이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휘둘러댔다.
푹! 스걱! 어어억……! 한동안 일행은 바위에 엎드려 숨은 채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대체 군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환각제에 의한 현상이라기엔 냄새가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넋이 나갈 만큼 강한 환각제라면 향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약류도 아닙니다.”
프로치 남매가 말했다.
그들이 냄새를 파악하는 사이 진은 혹시 그들에게 마력의 흔적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혹 진이 모르는 어둠계 마법이나 정신계 마법의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엔 지플도 있으니까.
하지만 황실정예군이 아수라장을 그리고 있는 작은 섬은 어디에서도 마력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약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떤 술수가 황실정예군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몸을 돌려 다른 섬들로 시선을 옮겼다. 폭음과 불길, 검은 연기들이 보였다.
‘라타 경이 말한 발자국은 황실정예군이 아니라 특임대의 것이다. 그리고 그 발자국들은 저들과 달리 일정한 보폭으로 남아 있었어. 그래서 특임대들은 경계를 서다가, 황실정예군에 이상이 생긴 걸 파악하고 이동을 시작한 거다.’
빠르게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정 수준 이상의 인물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동해보죠.”
확인하기 그리 어려운 가설이 아니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다른 섬들만 비교해보면 될 일이니까.
바로 다음에 찾은 섬에선 지플의 마법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우우욱!”
“카악!”
그들도 황실정예군처럼 미친 채 서로를 공격하고 있으나,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쯧, 좀 역하긴 하네.”
무라칸이 인상을 구겼다.
지플의 마법사들은 마법이 아니라 지팡이와 맨손으로 싸우고 있었다.
황실정예군은 정신이 나갔어도 무인의 완력이 남아 있으니 서로를 보통 한칼에 죽이는 반면, 마법사들은 마법 없이 서로를 죽이기까지 처참한 과정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사태가 지플의 소행이 아닌 것도 확실해졌고 말이지. 다음 섬을 찾아보자고. 킨젤로 놈들도 왔을 테니까.”
킨젤로가 자리하고 있는 섬을 찾는 건 특히 쉬운 일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섬에서부터 짐승이 우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킨젤로의 수인들이 내는 소리였다.
섬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적호족들이었다.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으며 눈이 벌게진 수인들까지 확인되었으니, 킨젤로 또한 이 사태의 주범이 아니었다.
“언제였더라, 한 천오백 년 전이었나? 그보다 전이었나. 헬루람이 이상한 역병을 퍼뜨렸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다들 완전히 맛이 갔구만.”
“그 마녀가 관여했을 가능성은 없겠지?”
“내가 볼 땐 없다. 헬루람의 역병은 저주에서 시작된 건데, 그렇다면 여기 뱀눈깔 친구들도 영향을 받았어야 해. 여기 헬루람이 있다면, 그 저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너랑 나뿐이다, 꼬마.”
전투의 낌새가 보이는 섬들을 몇 개 더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앞서 본 섬들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어떤 섬에선 각 세력들이 얽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황실정예군과 적호족이 함께 미쳐서 싸우는 곳도 있었고, 적호족과 지플, 아니면 셋이 다 같이 모여서 싸우는 섬도 존재했다.
미친 이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다 공격하는 습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 본 세 섬에서 아군끼리만 싸우고 있던 건, 단지 그들이 그곳에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설이 옳았다.
진은 이제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7성인 것 같군. 이 사태는 아마 높은 확률로 아멜라의 소행인 것 같고.”
진이 말하자 일행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꼬마, 무슨 소리냐?”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기준은 7성이다. 7성부터는 영향을 안 받거나 저항할 수 있는 거야.”
황실정예군은 기사가 아니라 병사 중 최고만을 선별한 집단이었다. 따라서 지휘관을 제외하면 전원 6성 이하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서로를 죽이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백야나 망령대, 혹은 각 마탑의 1군들이 아니라 6성 이하의 마법사들이었다.
적호족도 모두 6성 이하로, 지휘관은 보이지 않았다.
“3세력들이 싸우던 섬 전부에 6성 이상 지휘관들의 시체는 없었어. 문제가 발생한 다음 지휘관들은 피신을 했다는 뜻이지. 라타 경이 말한 특임대 역시 그런 식으로 움직인 것이고.”
7성이라는 결론을 내린 이유는 모두 6성 이하로 추정되기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리고 미친 룬칸델은 보이지 않아.”
룬칸델은 휴페스터 외부 임무에 6성 수호기사를 내보내지 않는다. 즉 이곳에 온 모든 수호기사는 최소 7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3세력이 모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룬칸델 또한 인근에 야영지를 만들었을 터였다. 한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들이 모두 무사히 피신했다는 의미.
우선 룬칸델이 있는 섬과 타 세력의 지휘관들을 찾아야 했다.
“무라칸.”
[어.]“아무래도 그냥 비행을 하는 게 낫겠다.”
굳이 여기까지 오는 데 불편한 배를 사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가이파 군도는 아멜라의 거처고, 일행은 그녀를 영입하고자 찾아왔다. 그런데 다짜고짜 남의 영역 상공에서 비행을 하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결례라는 판단이었다.
어차피 거대 세력들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병력을 끌고 왔을 테니, 차별성을 두자는 의의이기도 했다.
후우웅……!
무라칸이 본모습으로 변하며 날개를 펄럭였다. 그 위에 올라타 하늘로 오르자 일행은 가이파 군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곧장 군도 정중앙에 있는, 가장 큰 섬이 도드라졌다. 그곳은 마치 섬 전체가 곰팡이에 잠식된 것처럼 시커먼 색을 띠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영기와 유사한 듯 보이기도 했으나 훨씬 탁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 그 기운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검은 기운의 사방엔 각 세력들의 ‘미치지 않은’ 이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들은 검은 기운이 증식하는 걸 막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는데, 이윽고 일행은 마치 찰흙이 빚어지듯 기운의 모양새가 변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꾸물, 꾸물꾸물-!
‘저건 또 뭐야? 인간?’
섬을 뒤덮은 검은 기운이 형성한 것은, 한 인간의 형태였다.
제피린보다는 작지만, 무라칸보다도 훨씬 거대한 형상.
그리고 그 형상은 묘하게, 진이 상당히 혐오하는 인간을 닮아 있었다.
‘부바르…… 가스톤!?’
진이 놈의 이름을 떠올린 순간, 막 빚어진 검은 형상이 입을 열었다.
[너흰, 날 너무 귀찮게 했어.]그 직후, 검은 형상은 용처럼 숨결을 토하려는 듯 호흡을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