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60)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5)
‘그런데 목소리는 부바르의 것이 아니다.’
부바르 특유의 기름덩어리가 끼어서 막힌 듯 답답해 옹졸한 느낌을 주는 음성과 그에 걸맞은 신경질적인 어조도 아니었다.
청아하지만 분노로 낮아진 여성의 목소리였다.
‘마르지엘라의 목소리도 아니었어. 그렇다면 누구지?’
킨젤로의 다른 누군가? 아니면, 아멜라?
의문이 든 찰나 거대하고 탁한 구체가 부바르의 형상이 벌린 입으로 모여들었다.
갑작스레 형성된 부바르와 숨결에도 거대 세력의 인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모종의 정신 공격도 통하지 않는 정예들인 만큼, 처음 겪는 일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우웅-!
부바르의 숨결이 급격히 팽창하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강렬한 소음을 일으켰다.
대충 가늠해보아도 어마어마한 기운이 쏘아지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숨결이 터지기 직전, 거대 세력들의 보호막이 번쩍 빛을 발했다. 쏘아진 숨결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룬칸델의 인원들이 자리한 곳이었다.
“하아아아!”
룬칸델 진영의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쩌렁쩌렁한 기합을 내질렀다.
기합만으로 숨결을 반으로 가른 것 같았다. 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숨결이 양단되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남자의 검이 내리쳐진 것이었다.
그는 룬칸델치고 특이하게도 검과 방패를 주 무장으로 사용했고, 악을 쓸 때마다 엄청난 기운을 분출하고 있었다.
‘룬칸델은 뷔고 형님이 왔었군.’
뷔고 룬칸델, 시론의 넷째 아들이자 가문의 6기수. 그의 뒤로는 수호기사들과 두 명의 집행기사가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조슈아가 직접 올 줄 알았는데, 놈은 다른 일이 있는 건가?’
아멜라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굵직한 중립 세력인 만큼, 진은 가문 최상위 기수들이 오리라 예상했었다.
1기수에서 4기수 사이, 이를테면 상위 기수 중 누군가가 오리라고 말이다.
뷔고도 결코 부족한 인물은 아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적들도 분명 룬칸델 상위 기수에 상응할 수 있는 인물을 보냈을 터.
그러나 시선을 지플 진영 쪽으로 돌리자 진은 그들 역시 상위 기수가 나오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도르 엘너……?’
가장 먼저 그의 얼굴이 확인되었다. 룬칸델을 치고 있던 숨결이 급격히 지플 쪽으로 꺾인 탓에 다른 인원들은 가려졌으나, 그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은 없는 듯했다.
켈리악 지플의 사생아이자, 콜론 원주민 학살 당시 뮤론 지플을 구하러 온 인물. 그에겐 빚이 있었다.
당시 그가 보여준 켈리악의 권능 ‘공간 폭발’ 때문에 하마터면 콜론에서 끝장이 날 뻔한 것이다.
까득!
그날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이가 갈렸다.
하나 굉장히 애를 먹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미도르는 진에게 오히려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켈리악이 공간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킨젤로와 황실의 전력도 살펴보았다.
거대 형상이 된 부바르를 제외하면 킨젤로 또한 진이 알고 있는 간부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황실은 전원 얼굴을 가리고 있으나 특임대와 친위대로만 구성된 듯했다.
하이란은 최근 테러와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참전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최소한 제국 최고 가문들의 수장이나 그에 준하는 인원은 왔어야 하건만 대원들만 온 것이다.
물론 지금 가이파 군도에 있는 각 세력의 일원들은 세상 어디서도 위세를 떨칠 수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4대 세력이 제대로 알력다툼 하는 자리에 ‘대표’로 오기에는 분명 부족한 감이 있었다.
[야, 꼬마. 내 후광이 필요할 거라고 하지 않았었냐?]무라칸이 말했다.
이제 부바르의 숨결은 킨젤로를 때린 후 황실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무라칸은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얼씨구. 무슨 장난감 회전 인형이야? 숨결을 저 따위로 토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어디 부딪힐 때마다 점점 약해지는 것도 웃기고. 아무튼, 내 후광 같은 건 필요 없는 녀석들밖에 없는 것 같다. 재수 없기는 하지만, 솔직히 네가 저것들보다는 잘나가잖아?]“감히 주군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인 이들입니다.”
“감사합니다, 무라칸 님. 그런데, 제 생각엔…… 원래 여길 왔어야 하는 인물들은 왠지 다른 곳에 모여 있을 것 같군요.”
라타의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 똑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던 것이다.
‘아멜라보다 훨씬 큰, 내가 모르는 다른 건수가 있다……!’
아니라면 지금 이곳에 뷔고 정도의 인물들만이 모여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아멜라를 포기하면서까지 쟁취해야 하는 다른 건수가 무엇인지, 얼른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도 들었다.
[엉? 여기 있을 놈들이 어디 모여 있다는 거야?]“아멜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현재로서는 그게 뭔지 짐작 가는 바도 없고.”
[그럼 한 방 먹은 셈인 건가? 여기 가이파 군도에서 뭘 시작하기도 전에?]그사이 거대 부바르는 또다시 숨결을 모으고 있었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더 낮은 체급의 경쟁자들이 왔으니, 여길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되니까.”
[그때까지 아멜라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다른 놈도 쟁취하지 못한 상태라면 말이지.]“그건 운의 영역이야. 그런데 요즘 우리 나쁘지 않았잖아? 운.”
첫 번째 숨결을 쏠 때도, 그리고 새로운 숨결을 준비하는 지금도. 거대 부바르는 매우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세력은 거대 부바르의 행동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격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인들은 제자리에서 검기를 쏘았고, 마법사들은 원거리 공격 마법을 퍼부었으나 수준에 비해 위력이 낮은 종류가 대다수였다.
대부분 무언가 방해를 받아 제 실력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그중 뷔고나 집행기사처럼 특히 빼어난 자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세력들은 하늘에 떠 있는 무라칸과 일행을 아직 알아보지도 못했다.
탁한 기운과 숨결과 보호막이 부딪히며 미친 듯이 먼지구름이 피어올랐고, 뛰어난 이들은 보호 인원을 사수하느라 여념이 전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주군, 소수 인원을 제외하면 다들 꼭 신경계 독에 취한 것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 증식하고 있는 검은 기운에 의한 것이 분명합니다. 앞에서 본 섬에 있던 놈들처럼, 7성 이하는 완전히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고요.”
라타와 페이가 말했다.
“라타 경. 여전히 독이나 환각제는 아닌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주군. 아까는 잔향이 없다는 것만으로 판단했으나 규모와 색깔을 봤을 때, 독이라면 반드시 풍겨야 하는 냄새가 있습니다. 이런 색을 띠는 독초들은 한정적입니다.”
무라칸은 검은 기운을 돌아 비행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아직도 진 일행은 다른 세력들에게 노출되지 않았으니, 이왕이면 최대한 길게 존재감을 감추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거대 부바르를 중심으로 뻗어지는 탁기에 점점 가까워지자, 프로치 남매에게 무언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으윽!”
“주군……!”
라타와 페이가 돌연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라칸의 등 비늘을 잡고 있던 손까지 떼며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낸 것이다.
탁기에 가까워질 때 만약을 대비해 보호막을 둘렀건만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라타 경!? 페이?”
진이 추락할 뻔한 두 사람을 붙잡았다.
탁기와 가까워지고 고작 몇 초가 지났을 뿐이건만, 프로치 남매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비 오듯 땀을 쏟고 있었다.
“정신 차려요!”
[야, 야. 너네 갑자기 왜 그래?]“무라칸! 일단 탁기를 빠져나…… 흡!”
휘익! 핏-!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진의 코트 칼라를 스쳤다.
진이 반응해서 황급히 피했기 때문에 칼라 앞쪽을 조금 베고 만 것이었다. 본래는 목을 노리고 날아든 손톱이었다.
페이의 손톱이고 말이다.
휘둥그렇게 커진 진의 눈동자엔 페이의 피부색이 변화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어느새 변한 그녀의 피부는 거대 부바르의 탁기와 흡사한 색감이었다.
그리고 페이는 마지막으로 한 차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제 의지가 아닙니다, 그 말을 전하고자 한 행동이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페이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캬악!”
페이가 재차 공격한 순간, 진은 그녀를 기절시키기 위해 주먹을 내질렀다.
뻐걱, 내지른 주먹에 턱이 돌아가는 감각이 전해졌건만 페이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계속 공격해왔다.
그리고 그 옆에선 라타가 몸을 굽힌 채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무라칸의 등 비늘을 계속 붙잡지 못했다.
자신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는 탁기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페이보다 라타의 성취가 높은 만큼 조금 더 저항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큭… 주, 주군……!”
“라타 경!”
“무언가, 제 머리를!”
그 순간 무라칸이 상승하며 탁기를 빠져나갔다.
[하! 별. 뭐야? 꼬마, 그것들 정신 좀 드는 것 같냐?]동시에 라타와 페이의 눈빛과 피부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이 이어졌으나, 충격이 가시질 않는 듯 남매는 숨을 몰아쉬었다.
‘저 탁기, 정체가 뭐야? 왜 라타 경과 페이에게만 영향을 주는 거지? 보호막도 완벽하게 무시했다.’
프로치 남매의 말대로 독은 아니었다. 몸속의 만독주가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탁기는 독, 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력한 마약이나 환각제와 거의 비슷한 작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 세력의 일원들도 탁기에 애를 먹고 있으니, 프로치 남매에게만 특별히 반응하는 것도 아니었다. 각 세력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도 탁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고.
말하자면 가이파 군도에서 탁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건 진과 무라칸, 두 사람이 전부인 것이다.
‘세상 모두에게 영향을 주나, 나와 무라칸에겐 피해를 줄 수 없는 것.’
번뜩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다.
‘저주!’
정확했다.
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 탁기는 저주의 기운이었다. 그게 솔더렛의 계약자이자 흑룡인 진과 무라칸만이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였다.
‘라타 경과 페이를 피신시키고, 혼자 움직여도 모든 세력들 중 내가 가장 유리하다. 이 상황 속에선.’
때문에 무라칸에게 다른 섬으로 비행하자고 말하려는 찰나.
[아오, 뭔데! 갑자기.]돌연 부바르에게서 촉수처럼 탁기가 뻗어지고 있었다. 무라칸은 어렵지 않게 그 탁기를 피했으나.
라타 남매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탁기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촉수처럼 뻗어진 탁기가 마치 요람처럼 변해, 남매를 감싸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