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07)
제 555화
141화. 추락(1)
전장엔 두 개의 붉은 하늘, 제피린이 있는 쪽에서도 적색심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제피린을 쫓아온 망령대는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아직까진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이런 괴물이 얼마 전까지 3급 연구원으로 첩자 짓을 하고 있었다니……!’
‘신호탄은 한참 전에 터졌는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저쪽도 전투가 길어지고 있어. 게다가, 저 검은 힘은 영기인 것 같은데…… 12기수가 직접 전투를 치르고 있는 건가?’
‘4, 5, 6조와 본대의 지원이 시급한 것 같군. 느낌이 좋지 않아.’
지플이 정확한 정체를 유추하는 걸 피하기 위해, 또한 단장의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기에 본모습으로 전력을 다 쏟고 있지 않은데도.
제피린은 망령대들을 성공적으로 붙잡아두고 있었다. 흑왕산채에서 장난처럼 어설프게 사용하던 도끼 검술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녀를 루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숙련된 모습이었다.
다만 망령대처럼 제피린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뭐야, 저건 영기가 아니라 혼돈의 힘이잖아. 게다가 요나 룬칸델의 혼돈도 아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진 경?’
로민 숲 끝쪽에서 조슈아가 발악하며 쏘아대고 있는 검기는 거의 영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피린은 단박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보고 있었다.
‘혼돈을 사용하고 있는 게 4기수나 흑기사일 것 같지는 않고. 아마 2기수일 텐데…… 묘하게 그 여자의 힘을 닮아 불쾌하군요.’
불쾌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피린은 뒤쪽, 소타 사막의 전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함선 그르닐이 형성한 뇌우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반면 코젝과 지플의 용들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진 경한테 물건을 빼앗지 못하면 억울해서 잠을 못 잘 것 같단 말이죠. 다시 생각해보니 칼리고가 녀석들이 그 멍청한 머리로 진 경의 물건들을 빼앗기는 영 어려울 것 같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다시 제피린의 시선이 조슈아 쪽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전황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조슈아가 펼친 혼돈의 힘 외에, 영기와 오러, 청화 등의 힘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2기수가 혼자 남아 싸우고 있다……?’
곧장 제피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혼돈의 힘을 사용하면 2기수는 혼자 망령대를 상대한 후 다시 도주하는 룬칸델들에게 합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둘째, 희생.
전자든, 후자든. 중요한 건 조슈아가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차선책이 될 수 있겠군요.’
조슈아를 구출하고, 인질로 붙잡아 차후 물건에 대한 룬칸델과의 협상패로 사용한다. 제피린은 곧 그런 결론에 다다랐다.
퍼걱!
등을 찔러오는 적색심연의 칼날을 쳐내며, 제피린이 품속에서 신호탄을 꺼냈다.
* * *
“으아아, 부단장! 도움! 도움! 도움은 멀었나!”
위대한 칼리고가의 2공녀, 아이나스 칼리고는 함선 그르닐에서 멋지게 출격한 직후부터 계속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아이나스를 보는 비슈켈의 이마에선 진땀이 흘러내렸다.
벌써 그의 머릿속에 여자 마족 부바르로 인식된 아이나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록 모양이 빠져도 너무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의외로 전투에 선방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꽤 시간이 흘렀건만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나스의 능력은 입증된 셈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비슈켈이 아이나스의 무위나 실력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거의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이다. 그것까지 그 역겨운 뚱보와 닮았어.’
아이나스가 지금껏 꽥꽥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적들과 그럴싸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최상위 마족 특유의 초월적인 재생력.
그녀는 몸이 터져도, 머리가 떨어져도, 사지가 분해되어도 순식간에 회복하며 다시 비슈켈과 적들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뭐 저런 게 다 있는지 모르겠군요, 헤도 경.”
옥타비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비슈켈이 아이나스를 부바르와 동일시하고 있다면, 옥타비아는 산드라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 중이었다.
“……나도 아까 나와 전투를 치른 마족과 달라도 너무 달라 의아하기는 하오.”
옥타비아는 헤도의 거짓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헤도는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마족은 좀 우습지만, 그래도 함선 그르닐은 솔직히…… 충격적입니다.”
완전한 상태도 아닌 것 같은 함선 단 한 기와, 재생력만 좋은 덜떨어진 마족 하나.
옥타비아는 고작 그것들이 여태까지 자신이 이끌고 온 본대를 상대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간신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검황의 검을 견뎌낸 전적이 있는 함선이잖소. 놈들 함선의 위용을 보니 그 검이 무뎌지지는 않은 것 같군. 그래도 이제 슬슬 밀리는 눈치요.”
“경이 장갑과 보호막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팽팽했을 겁니다. 경을 다치게 한 마족만 아니었어도 진즉 승기를 잡았을 테지요.”
그 말대로 그르닐은 처음과 달리 곳곳이 파괴된 상태였다. 뇌우를 형성하는 돌기는 절반가량이 기능을 잃었고, 함포는 주포를 제외하면 이제 위협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어쨌든, 어서 결착을 지어야겠습니다. 로민 숲 쪽 전세도 심상치 않은 것 같군요.”
옥타비아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용들도 새로 숨결을 모았고, 마법사들도 대규모 연환 마법을 다시금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한계다. 몇 번만 더 이런 수준의 공격에 노출되면 탈출은 불가능해.’
검황성 때처럼 단장이 그르닐을 원복시켜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피린 님, 어서……!’
비슈켈이 이를 악물며 속으로 그녀를 찾은 순간.
저 멀리, 로민 숲 상공에서 신호탄이 터졌다. 제피린이 터뜨린 신호탄이었다.
지플의 일원들은 즉시 그게 자신들의 신호가 아니라는 걸 알아보았다.
‘됐다!’
아이나스도 신호탄을 보며 대검을 하늘로 추켜세웠다.
“오오, 제피린 대공의 신호다! 뭔진 몰라도 대공께서 해내셨다고! 역시 우리 대공이야! 이제 튀자, 부단장!”
키이이이잉-!
함선 그르닐의 동력원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의 회전음이 시작되었다. 지금껏 두들겨 맞으며 아껴두고 있던 힘이었다.
코젝을 운용해본 이들은 모두 그 소리가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전속 비행을 시작하기 직전의 소리.
“도주를 하겠다고? 그렇게 부서지고도 아직 저런 동력이 남아 있었나!”
옥타비아가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애초에 시간을 버는 게 그르닐의 목표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플은 검황성 테러 당시처럼 단장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한 그르닐을 완파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어, 야, 야! 부단장! 부단장? 나 아직 여기에 있는데!”
비슈켈은 아이나스 칼리고를 구출해서 떠날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단지 그녀가 싫기 때문이 아니라, 탑승에 시간을 소모하며 약점을 드러내는 게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죽으면 어쩔 수 없고, 포로가 되면 협상으로 구출해주마, 아이나스 칼리고. 하지만 부디 운 좋게 자력으로 살아남길 바란다. 쓸데없이 협상패를 소모할 일이 없도록.’
아이나스는 막 선체를 돌리기 시작한 그르닐을 향해 미친 듯이, 허겁지겁 뛰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코젝의 함포와 헤도의 검기, 마법사들의 공격 마법, 용들의 숨결에 이리저리 치이고 터지느라 도저히 그르닐에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부단자아아앙! 나 까먹은 거, 으악! 아니지, 컥! 커덕! 같이, 가!”
로민 숲으로 돌아선 그르닐은 남은 모든 동력을 후방 보호막과 가속에 집중하고 있었다. 코젝은 그보다 빠르지 못했고, 용들은 간신히 따라가며 숨결을 쏘았으나 달리 타격이 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펼친 거대한 결계가 그르닐의 선두에 부딪혀 부서지고 있었다.
그 순간, 헤도가 폭발적으로 몸을 던져 그르닐을 향해 도약했다.
“우왓!”
그 경로에 서 있던 아이나스는 헤도의 가속이 일으킨 충격파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옥타비아는 헤도의 도약에 맞춰 마력으로 돌풍을 일으켜주었다.
싸아아악-!
공중에 떠오른 장검 베일이 이십 줄기의 검도를 폭풍처럼 토해냈다.
옥타비아의 말대로 부상만 아니었다면, 헤도의 검도는 분명 그르닐의 후방 보호막을 깨뜨려 전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냈을 것이다.
‘조금 얕았나.’
검도는 간발의 차이로 후방 보호막을 긁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동시에 그르닐의 동력원이 토해낸 열기와 돌풍이 헤도의 육체와 따라붙던 용들을 덮쳤다.
헤도는 그 와중에도 용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으로 검도를 뿌렸고, 용들은 그 덕에 간신히 하강하며 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아이나스는 또 한 번 그르닐의 충격파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추격한다!”
코젝 선두에 헤도를 받아내며 소리치는 옥타비아의 두 눈이 어두운 살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한편, 로민 숲 너머 루테로 마법 연방 중앙 경계선.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대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선 남자는 온몸에 자상과 절상을 입었고, 왼팔을 잃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칼리고가의 1공녀, 비앙카 칼리고와 흑기사 몬이었다.
‘놈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몬은 건조장을 빠져나와 탈출하는 도중 그녀를 마주쳤다. 그리고 난데없이 공격하는 그녀를 떨쳐내지 못하고 지금껏 전투를 벌였다.
아니, 전투라고 할 수 있을까. 이토록 일방적인 싸움을. 비록 건조장에서 내내 싸운 탓에 체력이 떨어졌다곤 하나 몬은 확신할 수 있었다.
비앙카는 자신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워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지금 몬이 살아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앙카가 돌연 무언가에 홀린 듯 공격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마탑으로 빠진 이들은…… 괜찮은 건가? 어떻게든 저 괴물로부터 도주해서 가문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반드시. 그런데, 대체 뭘 저렇게 빤히 보고 있는 것이지?’
비앙카가 보고 있는 것은 제피린이 쏜 신호탄이었다.
“어, 어, 저거…… 대공의 신호. 가야 하는데. 어쩌지…….”
어눌하면서도 느린 목소리. 비앙카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을 마저 죽이고 가야 하는지, 그냥 최대한 빨리 가야 하는지.
“대공…… 말이 우선일 거야. 안 따르면 혼나. 너 운 좋다, 인간. 그리고 재밌었어.”
비앙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총총 뛰어 로민 숲을 향해 사라졌다.
그토록 중요한 신호라면서, 게다가 자신을 압살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육체 능력을 지녔으면서 도대체 왜…… 총총 느긋하게 뛰어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