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08)
제 555화
141화. 추락(2)
털썩!
몬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몇 번만 더 공방을 나눴어도 자신은 그 괴물 같은 마족의 검에 죽음을 맞이했을 터였다.
‘……현재까지 활동하는 마족 중에도 엄청난 강자들이 몇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저런 게 킨젤로 소속일 줄은 몰랐군. 1기수가 과거에 벤 마족도 저런 놈이었나.’
이토록 무력하게 패배하고 무시를 당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잘린 왼팔을 챙기기는 했으나, 당장 성왕 수준의 치료를 받지 않으면 흑기사로서 계속 임무를 수행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좌절감 따위에 취할 때가 아니었다.
‘마족은 로민 숲의 신호로 향했다. 함선 그르닐도 로민 숲으로 비행하고, 코젝이 뒤따르는 걸 보니…… 제인과 기수들도 저곳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
몬은 로민 숲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지플과 킨젤로의 병력이 총집결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고,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2마탑 금고의 물건들이었다.
‘2기수가 탈취에 성공한 건가? 아니면 킨젤로가 얻고 전투가 심화된 건가…… 어느 쪽이든, 내가 해야 할 일은 지원 요청이다.’
비앙카를 못 가게 붙잡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의 적선이라 할지라도 살아남았으니 어떻게든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지혈과 응급처치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삼엄하다.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긴 석벽 위 망루마다 불빛이 빛났다. 다섯 자치구와 여덟 자치 국가의 경계병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짝 독기가 오른 채 담당 구역과 로민 숲, 소타 사막의 전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함선 그르닐과 옥타비아의 병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로민 숲으로 가까워졌다.
점점 격해지는 전투에, 경계병들은 어쩌면 로민 숲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계선의 지휘관들은 몬과 비앙카가 전투를 펼친 쪽으로 수색조를 풀었다. 개인과 개인의 전투인 만큼 로민 숲과 소타 사막의 소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경계병들이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몬은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경계선의 허점을 찾아 나아갔다.
‘젠장, 몸이 굳기 시작하는군.’
출혈이 너무 심했다. 그 역시 아까의 제인과 마찬가지로, 흑기사 수준의 정신력과 의지가 아니라면 이미 의식을 잃었을 만큼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하아, 하…….
잠시 나무에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고열에 눈앞은 하얬고 몸을 떨 때마다 뼈마디가 부서질 듯 덜그럭거렸다.
고통에 감각이 옅어진 와중, 돌연 몬이 자세를 바꾸며 수풀 너머로 검을 겨눴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걸 느낀 것이다.
‘경계병인가……!’
7성 이하 몇 명 정도라면 이 몸으로도 어렵지 않게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이라면 신호탄을 쏘기 전에 전원 사살하는 건 불가능했다.
잠시 후 인기척의 주인들이 나타난 순간, 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몬 경!”
수풀에서 나타난 건 진 일행이었다.
경계선의 감시를 피하며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진 일행도 몬과 같은 동선으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 그의 혈흔을 확인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들이 만난 건 우연보다 필연에 가까웠다.
“12기수.”
“이게 어떻게 된…… 경, 젠장. 팔이.”
“임무는, 어떻게 되었소. 왜 그대들만 있는 것이오. 제인과 2기수는.”
거기까지 말하던 몬은 멈칫하며 진 일행의 어둡고 무거운 눈빛을 마주했다.
“……우린 제인 경의 희생으로 로민 숲을 벗어났습니다.”
몬은 몇 초쯤 말이 없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연인이 죽음을 맞이했을, 로민 숲 쪽을.
흑기사가 된 후 개인의 삶은 완전히 포기했으나, 몬과 제인은 언제나 자신들의 마음이 이어져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 무사히 은퇴하게 된다면 여생은 함께하기로 했었다.
그 소망은 끝이 났다.
“그렇군.”
몬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인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연인에게 남길 말을 고르는 대신 가문과 임무를 우선했듯, 그도 마찬가지였다.
사사로운 슬픔은 가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흑기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룬칸델의 검은 투구였다.
“2기수도 함께 남았소?”
“그렇습니다.”
왜 다른 기수가 아닌 차기 가주가 남게 되었는지, 그게 자의인지 타의인지, 흑검 카이너는 어째서 진이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게 없다면 2기수는 무엇으로 싸우고 있는지.
몬은 묻지 않았다. 조슈아가 남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탈취는 성공했소?”
진이 품속에서 물건들을 꺼내 보였다.
“무사히 탈출하기만 하면 임무는 성공이로군. 내 부상과 요나 룬칸델, 산드라 지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탈출 이후에 나누는 게 좋겠소. 일단 내가 쓰러지기 전에 움직이도록 하지.”
몬의 시선이 산드라에게 닿았다. 그녀는 이번에도 코트 주머니를 뒤져 주섬주섬 진통제를 찾는 중이었다.
“아, 다행히 남았다. 이거 삼켜요, 아까 그 언니한테도 효과 직방이었거든요. 아프면 뛰기 힘들잖아요?”
“……언니? 설마 제인을 말하는 것인가, 산드라 지플.”
“네, 고맙다던데요.”
몬은 말없이 진통제를 받아 삼켰다. 그리곤 산드라의 어깨를 툭툭 가볍게 쳐주었다.
몬은 연인 관계를 밝히지 않았으나, 일행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산드라의 어깨를 쳤는지 왠지 알 것 같았다.
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
‘무력 충돌 없이 그냥 지나가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어.’
루테로 마법 연방의 중심부인 데다 평소보다 몇 배는 촘촘한 감시망이 펼쳐진 상태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쪽을 뚫는 게 가장 효율적일지 고민하는 사이, 산드라가 입을 열었다.
“하아, 아무래도 우리 첫 데이트를 끝낼 시간이 온 것 같네요.”
일행의 시선이 산드라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나서야 진 씨가 탈출할 수 있겠죠. 앞으로는 내가 보고 싶어도 이렇게 찾아오면 안 돼요. 오늘 진 씨, 정말로 끝장날 뻔했다고요?”
진과 산드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경계병들의 시선을 끌어줄게요. 그사이 들키지 말고 빠져나가요. 대신, 아까 했던 말 기억나죠?”
-그러나 네 덕에 형제들과 흑기사가 목숨을 건진 것은 사실이니,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고 싶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요구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탈출한 후 실행하도록 하겠다.
진과 산드라는 동시에 그 말을 떠올렸다.
“무엇이 필요하지?”
산드라가 황금 의수를 진에게 내밀었다. 팔뚝 안쪽에 새겨진 그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말이다.
“여기 그림 아래에 진 씨 이름을 새겨주면 좋겠어요.”
“와…… 진짜 너는, 너는 진짜 최고다. 그, 엔야라고 있어. 꼬마 팬클럽 회장인데 걔도 너한테는 안 되겠다. 삼천 년을 더 살아도 너 같은 인간은 또 못 볼 것 같군.”
“공식 팬클럽 회장은 전데요? 금팽이 상단 광고 이후 온갖 잡스러운 팬클럽이 쏟아졌는데, 저는 팬 활동 관련 법안도 만들어서 통과시키고 공식 등록까지 해놨다, 이 말이죠. 몇 번 관련 기사도 났을 텐데요, 휴페스터 쪽에도.”
“어, 본 것 같은데. 노다브 사르생이었나, 그런 이름을 쓰는 인간이었지, 아마.”
“제 가명이랍니다. 그러니 그 엔야라는 애가 하는 건 그냥 혼자 하는 팬 놀이, 저는 공식 팬 활동. 격이 다르다고요.”
진은 묵묵히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요구대로 의수의 그림 아래 서명을 해주었다.
산드라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해 입을 틀어막았다.
“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길 거예요!”
자신이 벤 팔이 황금 의수로 바뀌고, 그 의수엔 자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그 아래 서명까지 하는 기분은, 심지어 그걸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겠다고 말하는 걸 듣는 기분은…… 어떻게 표현할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서명을 끝낸 순간.
쿠르르르……!
별안간 로민 숲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중앙 경계선에서도 지진이 느껴질 만큼 거대한 폭발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은 킨젤로나 지플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룬칸델의 결전기가 일으킨 폭발이었다. 일행은 모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문 유일의 자폭기, 최후의 최후를 생각해 만든 검.
제7결전기 화산이었다. 청새 군도에서 진과 가르문드를 상대로 그랬던 것처럼, 조슈아는 복제를 이용한 마지막 발악으로 화산을 택한 것이다.
당시 조슈아의 화산은 청새 군도의 32번 섬을 그대로 없애버리는 위력을 보였다. 탁기로 강화된 지금의 조슈아가 펼친 화산은 그때의 위력을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탁기 섞인 오러가 지상으로 낙하하며 로민 숲을 파괴해갔다. 문자 그대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이었다.
일행이 서 있는 곳에서도 그 충격에 로민 숲 일대의 공간과 하늘이 일그러지고 부서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함선들은 긴급히 보호막을 최대로 전개했고 강자들은 폭발을 견딜 수 없는 아군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쪽에서도 제 보물 1호 탄생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아주네요!”
산드라는 화산이 부수고 있는 게 자기 가문의 영토라는 사실 따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해맑게 소리칠 뿐이었다.
“이제 가요, 진 씨. 저 폭발 덕분에 경계병들도 잠깐 얼이 나간 것 같으니, 내가 조금만 당황하게 해도 감시에 구멍이 생기겠네요.”
“산드라 지플.”
“네!”
-그건 그렇지만, 진. 난 나대로 책임감이 있다. 가문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나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어? 내가 모든 걸 정상화시킬 거다. 지플을 내가 알고 있던 자랑스러운 가문으로 되돌릴 거라고.
-그거야말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야.
-너희들이 도와준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친구인 것과 별개로, 아닌 건 아닌 거야. 룬칸델이 지플을 돕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현듯.
진은 일순 그녀로부터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베라딘의 별장에서 그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가문을 떠나, 지플이라는 이름을 버려. 그렇게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베라딘에게 안부를 전해주면 좋겠군.”
“에이, 난 또 손이라도 잡아줄 줄…… 안 그래도 라딘이 만나서 진 씨 이야기를 좀 할 생각이었어요.”
진이 손을 내밀자 산드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물론 산드라의 요구에 응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번 일에 큰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악수를 청한 것이었다.
“그럼 또 만나요, 진 씨.”
“잘 가라, 산드라.”
이내 뒤돌아서 수풀을 빠져나간 산드라는, 경계병들과 마주치자마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난 백야의 탑 마탑주 대행 산드라 지플이다. 침입자들이 16초소 쪽으로 도주하고 있으니, 신속히 추적하라!”
경계병들이 산드라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이.
룬칸델은 마침내 경계선을 넘고 서해를 통해 루테로 마법 연방의 중심을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