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25)
제 555화
144화. 친구를 위해(4)
퍽!
케빈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히며 둔탁한 소음이 일었다. 떨어진 그는 몇 차례 경련하다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황제의 칙서를 받으라는 최후통첩은 케빈의 유언이 되었다.
단 일검에 검황성을 치러 온 선봉사령관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황제의 선봉군들은 케빈의 시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눈으로 보고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평소 케빈을 존경하는 이들이 많았다거나, 깊은 친분이 있었다거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선봉군의 9할 이상은 케빈이 왜 죽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사령관님이 죽었어? 진짜로……?’
평기사들이 의문을 가진 찰나, 재차 검황성의 성벽 위에서 두 줄기의 빛이 번쩍였다.
두 번째로 쏜 검기는 처음보다 넓게 퍼지며 적룡의 양 날개를 베고 창공에 빛나는 흔적을 남겼다.
[캬아아악-!]이윽고 적룡까지 날개를 잃고 바닥에 처박힌 다음에야, 선봉군들은 모두 케빈을 죽인 것이 단테의 검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용께서는 나의 말을 듣지 못하셨는가. 감히 검황성을 내려다보지 말라 하였소.”
나지막이 말하는 듯했으나 기운이 담긴 목소리는 평야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제 검황성을 내려다보는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단테는 성벽 위에서 선봉군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선봉군들은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치겠다고 찾아온 곳은 바로 검황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섬뜩한 자각에 평기사들은 일순 몸이 굳어버렸다. ‘하이란’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어떤 본능적인 공포가 그들의 뇌리를 찌르고 있었다.
“저 거리에서…… 검기를 쐈다고? 이런 속도와 위력으로?”
중앙기사단의 스캇 할로우가 말하자 다른 주요 기사들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장난이 아니군, 과연 검황의 후계라는 건가.”
“단테 하이란. 늘 품위 있고 부드러웠던 모습만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맹수가 따로 없군…….”
평기사들뿐만이 아니라 지휘관들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단테는 일찍부터 세대를 건너뛰고 하이란의 소가주로 확정된 탓에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다.
소가주가 된 순간부터 단테에겐 늘 온갖 소문이 뒤따랐다. 도무지 타고난 무골처럼은 보이지 않는 작은 체구, 허약한 체력, 곱상한 얼굴 같은 요소는 사람들이 단테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단테는 제국 내의 검술 대회에 그리 자주 출전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비공개 대련이 대부분이니 단테의 진짜 실력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단테의 검을, 그가 성장하는 속도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차기 세계제일검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싸늘한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떨어진 적룡이 내지르는 비명만이 평야에 가득했다.
마법사들이 다급히 치유 마법을 펼쳐 날개를 붙여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하이란의 소가주이자 검황성주 대행, 단테 하이란이오. 황제군은 다시 예의를 갖춰 검황성을 찾아온 이유를 밝히시오.”
스캇 할로우가 앞으로 나섰다.
“중앙기사단의 스캇 할로우요! 단테 경, 이러지 마시오. 그대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소. 폐하께선 하이란이 하얀 돌을 반환하는 즉시 전쟁을 멈추라 명하셨소!”
“그런 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소, 스캇 할로우 경. 설령 있다 할지라도 황제가 하이란을 이렇게 대할 수는 없소.”
“단테 경! 아직 기회가 있소. 나는 평소 하이란을 동경했던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부디 검황성이 다시 백성과 폐하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라오!”
“기회? 그대들은 정녕 황제가 권력에 눈이 멀어 제국의 기둥을 꺾으려는 의도를 모른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마지막 기회를 주겠소. 즉시 검을 버리고 투항하시오. 그러면 모두 살려드리지. 그러나 황제의 저의를 알고도 동참하는 것이라면…….”
단테가 기운을 끌어올리며 뒷말을 이었다.
“하이란에 칼을 들이민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그저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를 뿐이라는 사실 또한 어떤 참작도 될 수 없소. 그대들은 모두…… 기사잖소.”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천 명에 달하는 기사를 상대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몰살해야 다음 전투가 덜 버거워지는 것이다.
황제의 숙청이 시작된 순간부터 단테는 각오를 했다.
자신의 죽음도,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에도. 천, 만, 혹은 그 이상의 인간을 죽이게 되더라도 단테는 황제보다 먼저 멈출 마음이 없었다.
‘젠장, 론 경은 몰라도 단테 하이란이라면 조금이라도 대화의 여지를 줄 줄 알았는데. 이래서는 답이 없겠군. 결국 멸망을 택하는가…….’
그때였다.
대열에 서 있던 평기사 중 한 사람이 바닥에 검을 떨어뜨린 것은.
쩔그렁-!
일순 모든 이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저는 하이란과 싸울 수 없습니다. 슈, 슈카 전투에 하이란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우리 가문은 모두 몰살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짓……!”
쩔그렁, 철커덕!
그를 시작으로 기름 먹은 종이에 불이 붙은 것처럼, 평기사들이 바닥에 검을 떨구고 있었다.
“저도 하이란과 싸울 수 없습니다. 고아인 제가 기사가 될 수 있던 건, 하이란의 기사 장학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하이란의 장학 지원을…….”
“저도 하이란에게 은혜를…….”
평기사 중 절반 이상이 그렇게 검을 떨궜다. 불과 1분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장 검을 다시 들어라!”
“이 미친놈들, 폐하의 명을 거역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선봉군의 지휘관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검을 버린 평기사들은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단테는 단 일검으로 사령관을 처리하고, 몇 마디의 말로 선봉군의 사기를 완전히 떨어뜨린 셈이었다.
스캇과 마빈, 글로리아, 로야 등의 지휘관들은 이런 경우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검을 버린 기사들과 검황성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미치겠군!’
스캇이 이를 악물었다.
본대가 도착했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평기사들은 물론이고 지휘관들까지 단순 처벌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써걱-!
스캇이 검을 떨군 한 평기사의 목을 쳤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반역자들을 앞에 두고 이 무슨 추태냐, 검을 버린 자들은 모두 즉결 처분하겠다!”
검황성의 기사들은 아직 검을 뽑지도 않았건만, 황제 선봉군의 진영 곳곳에서 피분수가 퍼지고 있었다.
검을 버린 기사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을 죽이는 선봉군의 검들은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이 멍청이들아, 네놈들이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 같더냐? 본대가 도착하면, 검황성은 어차피 끝장이란 말이다……!”
사실, 선봉군 지휘관들은 이곳을 찾을 때부터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안한 상태였다.
용왕기사단의 케빈은 사령관 역할을 맡기에 실력과 덕망이 부족했고, 천 명의 평기사들은 대부분 하이란의 은혜를 입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케빈 페럴은 천둥벌거숭이처럼 나서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평기사들은 싸우지 않겠다며 목을 내놓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니, 지휘관들은 애초부터 병력 구성과 사령관 선정에 황제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검을 들라고……!”
벌써 오십여 명에 달하는 평기사들의 목이 떨어졌다.
선봉군 지휘관과 검을 버리지 않은 조장들은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검황성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것 같았다.
“검황성!”
단테가 소리치자 성내에 대기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성벽으로 올랐다.
“하이란의 은혜를 잊지 않은 자들을 구출합니다. 가로막는 이들은, 모두 베도록 하십시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성벽의 기사들이 평야로 몸을 내던졌다.
동시에 성문이 열리며 그곳에서도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문에서 나온 이들은 돌파를, 뛰어내린 이들은 포위를 담당하는 모양새로 순식간에 진형이 형성되었다.
단테도 나서려는 찰나, 슈라스 헬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경은 나서지 마시오. 머잖아 본대가 도착할 테니, 그때까지 체력을 아껴두어야 하오. 다섯 검성을 제외하면, 본대의 최고 기사들을 감당할 수 있는 건 경뿐이오.”
몸도, 마음도.
단테는 간신히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하이란의 은혜를 기억하는 이들이 죽는 모습에 당장 달려들려고 했으나, 태생적으로 허약한 그는 이미 회의 때부터 지쳐 있던 것이다.
그리고 단테는 현재 론의 심복인 하이란의 다섯 검성과 더불어 가장 강한 기사이자 검황성주 대행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이란의 다섯 검성은 현재 검황성에 있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고 단테가 최고의 상태로 싸울 수만 있다면, 희망이 있다. 검황성의 기사들은 모두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단테 대신 삼십 가문의 가주들 절반이 지상으로 몸을 던졌다.
선봉군과의 전투는 하이란의 일방적인 승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용과 마법사, 전쟁 장비들이 있다곤 하나 기사 숫자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다만 하이란의 기사들은 섬멸이 아니라 검을 버린 평기사들을 구출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움직이고 있으니, 제압이 아주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하이란엔 전장을 압도하며 휘저을 특출한 기사가 없기에 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다. 단테가 그 역할을 해주면 순식간일 테지만, 본대를 생각하면 슈라스의 판단이 백번 옳았다.
“하이란에 영광을!”
“황제의 개들은 감히 명예를 입에 담지 말라!”
저녁놀이 다 질 무렵, 제압이 끝나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주요 기사 몇 사람과 한 마리의 용, 그리고 로야를 비롯한 마법사 열 명 정도가 전부였다.
반면 하이란의 기사는 다섯 사람의 손실만 있었다. 검을 버린 평기사는 백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구출되었고, 선봉군과의 전투는 그야말로 완승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쯤 검황성의 측문과 후문을 경계하던 기사들은,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황제군의 본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황제군 본대가 도달하고 있습니다!”
“황룡급 포 이십여 문 확인됩니다! 방어 장비 가동하겠습니다!”
또한 측, 후문뿐만이 아니라 정문 저 너머에도 황제군 본대의 지원이 당도하고 있었다.
앞서 본대는 최소 선봉군의 열 배 이상이리라는 지휘관들의 보고는, 과연 사실이었다.
검황성에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기사의 숫자는 얼핏 보기에도 일만을 훌쩍 넘고 있었다.
“……구출 작전 종료, 지금부터는 섬멸 작전을 개시하겠소.”
단테가 새로이 나타난 적들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