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26)
제 555화
144화. 친구를 위해(5)
도처에 적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게 느껴졌다. 경계를 서는 기사들이 쉴 새 없이 적의 규모와 동태를 보고하며 악을 쓰고 있었다.
“방어 장비 가동합니다!”
“헬터가, 검을 뽑아라!”
“로페르모가, 후방을 지원한다. 집결하라!”
우우웅-!
검황성에 설치된 방어 아티팩트들이 작동하며 진동과 공명음이 일었다. 아티팩트의 푸른 보호막과 기사들이 펼친 새하얀 검막이 순식간에 검황성 전체를 감싸는 모양새였다.
단테는 정문에 나타난 지원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게 잡아도 오천 이상의 기사와 마법사, 스물가량의 용. 그리고 황룡급 이상의 포 오십 문 이상.
비록 ‘제국’을 칭하면서도 룬칸델과 지플에 밀리고, 이제는 킨젤로보다도 뒤처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비먼트가 4대 세력의 한 축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병력의 질을 떠나, 단시간에 이토록 많은 인원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은 제국이 유일했다.
황제군을 바라보는 단테의 눈동자가 살기로 어둡게 물들었다.
만 단위를 훌쩍 넘는 군대가 검황성을 포위하고 있음에도, 단테와 하이란의 기사들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기사와 마법사라는 존재들이 세상에 나타난 이래, 인류의 전쟁은 한 번도 머릿수가 가장 중요했던 적이 없다.
한 사람의 초인 앞에서 5성 이하의 평기사들은 그 수가 얼마나 많든, 낙엽과 하등 다르지 않다.
비록 단테는 아직 초인이 아니나, 그에 준하는 검을 갖고 있었다. 다섯 검성을 비롯한 하이란의 다른 기사들과 함께라면 저 수많은 평기사들을 제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적장들이다. 홀로 전장을 뒤흔들 수 있는 기사와 마법사들을 모두 베면, 숫자가 밀려도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단테는 그런 인물이 백여 명쯤 되리라 예상했다.
정문의 황제군 본대가 평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엔, 다섯 마리의 용과 백여 명의 기사들이 이끄는 거대한 포가 하나 있었다.
“소가주, 저건……!”
황실친위대의 주포主砲.
제국에 단 한 기밖에 존재하지 않는 황제 전용 전쟁 장비, ‘용창龍槍’이었다. 본래 황제궁 중앙에 설치된 그 포는 지플의 결전병기 코젝의 함포에 버금가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황제궁에서 탈거된 상태인 만큼 용창은 본래의 위력을 다 낼 수 없다.
그러나 용창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곧, 황제가 직접 나섰다는 의미였다.
“용창 장전 확인!”
용창을 보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황룡급 포만 되어도 복구가 덜 된 현재 검황성의 방어 아티팩트를 뚫는 건 시간문제건만, 용창은 완전히 수준이 다른 것이다.
단테는 가만히 용창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평야 저 너머 어딘가, 가마에 앉아 탐욕과 오만에 젖은 얼굴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을 황제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소가주! 곧 용창이……! 피하셔야 합니다!”
“저들에게.”
단테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치이이잉……!
단테의 검이 광휘에 휘감긴 순간, 용창의 불길한 소음이 전장을 뒤덮었다. 일대 전체에 미약한 지진이 일었고, 싸우던 이들은 일순 용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이란의 위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소.”
콰아아아-!
용창이 거대한 마력탄을 토해냈다. 포탄이 날아드는 곳은 정확히 단테가 서 있는 성벽 위였다.
겹겹이 둘러진 아티팩트의 보호막들이 유리처럼 터져나갔다.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이 빠른 속도, 용창의 포탄은 일격에 검황성을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단테는 피하지 않았다.
그가 검을 휘두른 것은, 용창의 포탄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이었다.
제왕검 비기
천공일섬 – 단테 하이란
용창의 탄환이 반으로 갈렸다.
바로 옆에 서 있던 기사들조차 단테가 검을 휘두른 순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반으로 갈린 포탄이 단테가 검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 하늘로 치솟으며 소멸하는 모습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비기의 이름처럼, 어둡게 물들기 시작한 천공에 길고 빛나는 검흔이 남았다.
전장의 모두가 잠시 그 빛을 올려다보았다.
제국의 모두가 우러러보던 하이란의 검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몇 초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전장에 선 이들은 자신의 맥박이 뛰는 것만을 느꼈다.
경외.
제국에서 하이란이 상징하는 두 글자를 떠올리며.
와아아아-!
하이란의 깃발 아래 모인 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이어 단테가 성벽을 뛰어 평야로 나서자, 다가오던 적들이 주춤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명예를 잊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소. 그러니 두렵다면, 도망치시오. 하이란은 물러선 자들을 쫓지 않을 것이니.”
단테의 뒤로 기사들이 모였다.
“소가주…… 괜찮습니까?”
돌격대장이 단테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푸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 단테는 오히려 가뿐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부께서 내게 맞춰 개량해준 비기인데도, 고작 한 번 펼친 것에 이 지경이 되다니.’
다들 경외하고 있으나, 단테는 천공일섬의 진짜 위력은 자신이 펼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아쉬웠다.
더 좋은 검을 펼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이제는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조부와, 하이란의 기사들과, 권속들과 정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아쉬웠다.
‘왜인지 몸이 가벼워지는군…….’
죽음을 각오한 채 조상과 조부가 일구고 지켜온 모든 것을 등에 지고 있기 때문일까, 단테는 이제 일종의 각성 상태에 접어들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숨을 담보로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검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용창을 파괴하겠소. 선두로 돌파할 테니, 돌격대는 나를 따르시오.”
하이란의 기사들이 돌진을 시작한 그 시각, 황제는 전장 최후방에서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오, 오오……! 역시 론 경의 후계란 말인가, 과연 대단하군!”
황제의 옆엔 황제군의 용왕기사단장이자 황제군의 총사령관, 존시나 페럴이 서 있었다. 그는 잔뜩 신이 난 황제와 달리 어두운 얼굴이었다.
케빈 페럴, 황제가 그를 선봉군 사령관으로 기용한 이유가 바로 존시나 페럴이었다.
이 강직한 사내, 제국제이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혈육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대도 방금 보고를 들었을 테지, 존시나 페럴 경. 단테 하이란이 그대의 동생을 죽이고, 하이란에 신의를 지키려던 평기사들까지 몰살했다는…….”
존시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황제가 자신의 동생을 선봉에 세운 이유도, 단테가 평기사들을 죽였을 리 없다는 사실도, 이 숙청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도. 존시나는 결코 모르지 않았다.
“짐은 분명 하이란에게 기회를 주었소.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그대 동생의 목과 신의의 배반이니, 오늘 끝장내지 못하면 저 독 오른 늑대는 제국 전체를 죽음과 공포에 밀어 넣을 테지.”
그럼에도 존시나가 황제를 따르는 것은 그게 제국을 위한, 아니. 정확히는 제국의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폐하.”
“말해보시오, 존시나 경.”
“약속을 지키십시오. 또한, 반드시 그들이 약속을 지키게 만들어주십시오…….”
그 말에 황제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반드시 그리하지!”
존시나가 일어서서 전장으로 향하자, 황제는 그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존시나가 사라짐과 동시에 표정을 지웠다.
단테와 하이란의 기사들은 벌써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용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피는 모두 그들을 가로막고자 몸을 던진 평기사들의 것이었다.
선봉군을 제외한, 본대의 기사들은 모두 단테가 하이란과의 신의를 지키려던 기사들을 죽였다고 믿고 있었다.
잔혹하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전투 속에서, 오해를 정정하고 진실을 밝힐 시간 따위는 없었다.
구출된 백여 명의 기사들은 결국 빗발치는 검기와 마법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본대가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새로운 전투에서, 하이란의 기사들은 그들을 모두 안고 갈 여력이 없었다. 예상보다 본대가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황제군 본대의 눈엔 마치 하이란이 선봉군을 무차별하게 몰살한 것처럼 보였다.
황제의 명을 어기는 것도 죽음, 하이란에 맞서 싸우는 것도 죽음이라면 차라리 후자가 나았다. 후에 역적으로 몰려 혈육까지 모두 처형당하는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는.
피와 전쟁은, 그렇게 광기를 만든다. 그저 단칼에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단테의 앞을 가로막는 평기사들은 공포 대신 광기를 택했을 뿐이었다.
그들을 베고 있는 단테도 마찬가지였다.
정도正道.
단테라는 인물의 인간성을 요약하는 단어가 붉고 어둡게 물들고 있었다.
‘벌써 몇이나 베었지?’
불현듯 의문이 드는 순간에도 단테의 검은 달려드는 이들의 목을 떨궜다. 피보다 무거운 죄책감이 등을 짓누르고 있으나, 도저히 자각할 수가 없었다.
전쟁에 떠밀려진 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단테는 자연스레 그 거대한 죄책감을 증오로 치환하고 있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나와 나의 가문과 조부께서는, 제국을 배신한 적이 없건만. 네놈들은 어째서 우리에게 칼을 꽂으려 한다는 말이냐……!’
서걱-!
단테가 한 차례 멈춰 호흡을 고른 것은, 용창과의 거리가 오백여 걸음이 남았을 때였다. 그때까지는 단테를 뒤따른 돌격대도 전원 무사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시 전진하려는 순간, 누군가 그들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컥!”
“막아!”
금빛 갑옷, 황실친위대였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후미에 있던 하이란의 기사 두 사람을 베었다.
단테는 잠시 멍하게 죽은 하이란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악마가 따로 없군, 단테 하이란. 그간의 모습은 모두 가식이었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이토록 익숙할 줄은 몰랐…… 흡!”
단테가 쏜살같이 그에게 달려들어 검을 내질렀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단테가 속도를 높이자마자 팔이 잘리고 말았다.
기세 좋게 등장했던 황실친위대의 기사들은 그 대목에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단테가 불과 몇 초 만에 불구로 만든 기사는, 그들의 3조장이었던 것이다.
“닥쳐라. 너 같은 쓰레기와 할 말은 없다.”
단테가 3조장의 목을 떨구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 커헉!”
“소가주, 여긴 우리가 맡겠습니다. 용창으로 가십시오!”
단테는 망설이지 않고 하이란의 기사들을 등진 채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그만큼 하이란의 기사들이 더 빨리 죽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또한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계속 베면서 나아가야, 미치기 직전인 정신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