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83)
제 555화
151화. 상황 정리(4)
* * *
이야기의 탑.
“제국 한가운데에 연구소가 있었단 말이지…….”
으드득, 옥타비아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녀는 전쟁의 여파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마력 붕대로 온몸을 감았고, 등으로는 각종 유지 장치의 관이 이어져 있었다.
붕대 사이로 보이는 검은 반점들이 진했다. 그녀는 혼돈의 잠식과 더불어 마신석에 의한 초재생까지 겪었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매일 유지 장치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황실, 그 간악한 새끼들의 간덩이가 생각보다 컸군. 제국의 수도는 우리 마법사들이 매일 들락날락하던 곳이 아닌가.”
그녀의 옆에 있는 카둔도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헤도는 덤덤한 얼굴로 담배를 피웠다.
그는 정말로 별생각이 없기에 평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나, 옥타비아와 카둔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상황을 냉철하게 따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되는 것이다.
“괘씸하긴 하지만, 차라리 황실에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는 게 다행인 일입니다. 그러니 진정하십시오, 카둔 님. 그리고 망령대장.”
헤도의 말에 카둔과 옥타비아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헤도 경의 말이 옳기는 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그래…… 그 잡것들은 궁지에 몰려 있으니, 염치도 없이 우리에게 또 손을 뻗을 테지.”
검황성전 이후 세계의 정세에는 대격변이 일어났다.
이제는 지플이 홀로 정상에 서 있는 가문이라고 확언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1인자 가문의 지위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나, 세계의 거대 세력들은 각자의 정확한 피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상상 이상이라고만 짐작할 뿐.
따라서 양대 가문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한시라도 빨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력을 보강해야 했다.
심지어 룬칸델은 아직 시론이 건재하다.
그가 흑해 5왕의 영역에 들어선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나 지플로서는 그가 언제든 대륙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상정해야만 하며, 예언자의 존재도 신경이 쓰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플은 황실이 가진 마인화 기술이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황실은 룬칸델과 야합할 수 없다. 진이 있기 때문이며, 설령 로사가 그를 무시하고 먼저 동맹을 요청한다 한들 황실로서는 아무런 매력이 없는 제안이었다. 룬칸델은 마법 공학 기술력이 전혀 없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황실은 그간 룬칸델보다 지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비록 검황성전으로 한 번씩 뒤통수를 친 모양새가 되기는 했으나, 지금의 그들에겐 서로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맞습니다. 룬칸델 12기수로 인해 황실의 꼬리 자르기가 실패했으니, 그들은 우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떤 협상을 하더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분노할 게 아니라 오히려 반겨야 할 일입니다.”
지플은 현재 마인의 힘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진 쪽의 언론에서 뿌린 9성 기사 이상에 초재생 능력을 가졌다는 내용은 과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황실이 감히 자신들을 속여가면서까지 매달린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전투력은 협상 때 직접 표본을 살펴보면 그만이고 말이다.
“처벌은 놈들의 기술을 빼내고, 가문이 회복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대체 룬칸델의 12기수가 어떻게 연구소의 위치를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가문이 그보다 낮은 정보력을 지녔을 리는 없는데 말입니다.”
헤도의 말에 옥타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엔, 히스터의 생존자가 12기수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군요. 전쟁에서 12기수가 가주의 대마법을 파훼한 순간부터, 그와 기록 마법사가 함께하고 있다는 건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2형, 검황성전에서 진은 그 마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간단히 깨버리는 모습을 보였었다.
옥타비아의 시선이 뒤에 있는 또 다른 유지 장치에 닿았다.
그곳엔 폭주를 시도했던 베라딘 지플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는 검황성전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그렇게 유지 장치의 도움을 받는 게 옥타비아와 베라딘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탑 최상층에 있는 유지 장치에는 켈리악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플은, 천 년 만에 최악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켈리악이 드디어 직접 히스터의 생존자를 찾겠다고 선언한 시점이었는데 흑룡 미샤도, 히스터의 생존자도 빌어먹을 만큼 운이 좋군.”
“우선 황실의 연락을 기다려야겠군요. 그리고 저 아이가 깨어나면…… 한번 룬칸델의 12기수와 만나보라고 해야겠습니다.”
“옥타비아, 룬칸델의 12기수가 베라딘 녀석과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설마 히스터에 대한 정보를 뱉어내겠어?”
“해봐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카둔 님. 어차피 12기수도 베라딘의 상태가 궁금할 테니, 결코 만남을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화가 그렇게 흘러가자 헤도는 다소 난처한 마음이 되었다. 이 회의에 참석하기 전, 산드라 지플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모는 분명 베라딘이 깨어나면 진을 만나게 할 거야. 그때 나도 같이 가겠다고 헤도가 말해줘.
-안 됩니다, 아가씨.
-돼.
-아가씨는 12기수를 만날 때마다 사실상 이적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가주께서 눈을 감아주고 있지만, 계속되면.
-아! 나도 생각이 있어. 기록 마법사가 우리 자기랑 함께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고모는 라딘이의 정신을 조작한 상태로 보낼 수 없을 거고, 그래서 조금은 불안감이 있을 거라고. 라딘이가 무슨 소리를 할지 알 수 없으니까! 내가 그 감시 역할을 맡겠다는 거지.
-제가 볼 때는 아가씨의 입이 더 문제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꼭 그렇게 전해. 이야기 끝.
후우…….
헤도가 담배 연기와 함께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결국 운을 띄웠다.
“망령대장, 산드라 아가씨를 베라딘 공자와 함께 보내는 건 어떻겠소?”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옥타비아는 들을 가치도 없다 여겼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헤도 경.”
“베라딘 공자를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소. 이번 폭주 시도로 인해 그가 어떤 기억들을 되찾았는지, 또 잃었는지. 우리로서는 빠르게 파악할 수 없고, 히스터의 생존자가 베라딘 공자의 정신 조작 여부를 확인할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오.”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그런 역할이라면 산드라 같은 폭탄이 아니라 좀 더 믿음직한 인물을…….”
“제대로 된 인물을 보내면 12기수의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오. 자연스레 두 사람이 나눌 이야기의 범위도 좁아질 테지.”
헤도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뭔가 당위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으나, 추후 산드라의 난동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옥타비아와 카둔은 흔쾌히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자네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군. 룬칸델 12기수와 산드라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한다며? 그게 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그리고 기록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12기수에겐 아즈 밀의 계약자가 있다. 정신 조작을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야.”
묘한 기류는 산드라의 일방적인 애정 공세일 뿐이며 12기수가 그런 것에 냉철을 잃을 리는 전혀 없다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헤도는 그냥 조용히 있었다.
“알겠습니다, 헤도 경. 베라딘이 깨어나는 대로 산드라에게도 준비를 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차라리 거절을 당했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헤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물론, 탈라리스는 자신의 30년 전 일흔일곱 번째 애인이 여전히 페일린 왕국 오지의 통나무집에 살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모트를 내어준 건, 그저 딸과 사위가 정말로 데이트나 한번 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젊은 남녀, 외국의 오지, 어쩌면 아직 남아 있기는 할지도 모르는 오래된 통나무집. 그보다 사랑이 발생하기에 좋은 조건은 드물 테니까.
보옹-!
순백의 차원문이 열리자 보이는 풍경은, 탈라리스의 기대대로 참 낭만적이기는 했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울창한 숲은 꺾인 나무들이 반구 형태의 공간을 형성했고, 그 한가운데 그림처럼 멋들어지게 낡은 통나무집이 서 있는 것이다.
“오지는 오지인가 보군요. 탈라리스 님이 말씀하신 통나무집이 정말로 있을 줄이야.”
“후, 모트. 어머니의 편력엔 네 책임도 적지 않아. 네 차원 이동 능력만 없었어도 어머니의 애인이 절반은 줄었을걸.”
[보오, 보오옹…….]“아무튼, 여긴 딱히 훼손된 곳이 보이지 않으니 금방 살펴보고 돌아갈 수 있겠군.”
“예, 시리스 님.”
하나 탈라리스의 기대와 달리 두 사람은 그야말로 ‘일’을 하러 온 사람들처럼 곧장 용건부터 살피는 모습이었다.
‘콰울 가네스토에 대한 단서를 이렇게 쉽게 얻을 줄 알았으면, 발레리아에게 여기까지만 동행해 달라고 했을 텐데.’
기록 마법이 있다면 직접 이 오지를 구석구석 뒤져볼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콰울이 이곳에 남긴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달리 정보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추후 발레리아와 한번 다시 찾아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통나무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이 살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식사를 한 듯 연한 음식 냄새와 더불어 짙은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바닥에 꽁초와 빈 술병이 얼마나 많은지,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설마, 그 콰울 가네스토라는 자는 아닐 테지.”
“콰울 가네스토라면 좋기야 하겠다만, 너무 잘 풀려서 오히려 불안할 것 같군요.”
“얼마 전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도 지플의 공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일 수 있으니 설마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을 리는 없겠지. 호위도 없이.”
“그래도 한번 누구인지 기다려 보도록 하죠.”
“모트, 너는 주변을 한번 둘러봐. 잘 숨어서 움직…….”
창문 너머로 모트에게 말하던 시리스가 돌연 말을 멈췄다. 모트의 뒤편, 저 너머로 한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척 보기에도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는 산발에 전형적인 산적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시리스는 그가 콰울일 것이란 기대를 버렸다. 외모 어느 곳에도 어머니의 취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순간, 두 사람에게 대뜸 이렇게 소리를 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소형 마력포?’
끼익, 키리릭-!
그가 꺼내든 마력포는 처음엔 소형처럼 보였으나, 부품이 움직이며 순식간에 중형 이상의 크기로 변모하는 모습이었다.
“뭐냐, 네놈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