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91)
제 555화
154화. 남매, 그리고 친구들
“오랜만이다, 진!”
베라딘이 해맑게 소리쳤다.
“자기, 우리 진 씨!”
그 옆에 있는 산드라는 입에 잔뜩 쿠키 가루를 묻힌 채 오른손을 대신하는 황금 의수를 흔들었다. 진은 황금 의수에 새겨진 자신의 얼굴 그림을 보며 일순 흠칫했고 말이다.
“지난번 보낸 편지의 답장은 잘 받았어요! 어쩜 어디서 그렇게 낭만적인 언어를 익힌 거예요?”
“……답장? 낭만적인?”
물론 답변을 보낸 기억은 없었다.
다만 산드라는 진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신호를 통해 자신에게 답을 주었다고 굳게 믿는 중이었다.
“다음에 라딘이 별장에 가서 같이 놀자고 했잖아요.”
“아니, 내가 언제.”
“오오, 진. 정말로 산드라 누나랑 사귀는 거냐!? 그럼 이제 네가 내…… 매형인가!?”
“라딘아, 몇 번이나 말해야겠어? 이제 매형이 아니라, 애초에 네 매형이라고.”
“내 친구가 내 매형이라니, 기분이 좀!”
“좋지?”
“묘해!”
“남의 영업장, 그것도 휴일에 이게 무슨 행패들이야?”
남매는 티칸에 도착하자마자 리트라 다과점을 찾았다. 그러고는 오늘이 휴일임을 알리는 라트리에게 ‘우리는 지플이다!’라며 막무가내로 다과점에 들어선 상태였다.
대신 리트라 다과점이 1년을 꼬박 쉬지 않고 일해도 만질 수 없는 거금을 결제하기는 했다.
문제는, 지금 리트라 다과점을 강제로 영업시키고 있는 불청객이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베라딘과 산드라가 차지하고 있는 중앙 테이블 저 뒤쪽 구석에는, 후드를 푹 눌러쓴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발레리아!? 스승이 왜 여기에 있어?’
불과 며칠 전 하이란 제2성에서 만났던 발레리아였다. 진은 카시미르로부터 그녀도 리트라 다과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어차피 앞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보게 될 테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너와 공유해야 할 것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일도 더 많아졌으니. 앞으로는 지플의 추적으로부터 몸을 피할 때 종종 티칸을 이용할 생각이다.
그때 발레리아는 분명 검황성의 영지 근처에 들러 론에게 감사를 전하고, 전승지를 찾아갈 것처럼 말했었으나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리트라 다과점에 들른 것이다. 검황성 영지 인근의 혼돈을 감당하느라 피로해졌기 때문이었다.
진에게 발레리아는 언제나 반가운 사람이다. 최근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콰울을 찾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안 그래도 발레리아와 다시 연락을 취할 참이었다.
다만 지금은 조금 곤란했다. 순혈 지플 두 사람과 그녀를 같이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베라딘과 산드라는 아직 구석에 앉은 발레리아에게 달리 호기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전 여기가 좋아요!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진 씨랑 차 한 잔 마시는 게 꿈이었거든요.”
“더 좋은…… 곳이 있다.”
“어딘데요?”
“티칸 왕국 회의실.”
잠시 정적이 일었다.
“혹시 저기 앉아 있는 히스터가 사람 때문에 그래요?”
그 대목에서 화들짝 놀란 것은 진뿐이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걱정을 하는 거예요. 로브를 쓰고 있다지만 붉은 머리에 은소나무지팡이, 그래도 나랑 라딘이가 순혈 지플인데 그걸 못 알아보겠어요?”
발레리아도 이미 그들이 자신을 알아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의 긴 추적 과정에서 그녀의 붉은 머리와 은소나무지팡이는 이미 오래전 밝혀진 상태였다.
발레리아는 자신이 그들에게 잡힐 리가 없으니 잠자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이 걱정하는 것은, 발레리아가 잡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진은 오히려 그녀가 두 사람을 죽이거나 사로잡아서 이용하는 게 걱정되었다.
발레리아에게 지플이란, 가문을 멸망시키고 회색부엉이 용병단을 몰살한 불구대천의 원수니까.
‘나와 동료들에게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지켜보기로 한 건가?’
두 사람, 그중 특히 베라딘에 대해 발레리아는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그가 티칸 사람들의 말대로 지플의 정화에 앞설 수 있는 인간인지.
하는 수 없이 진은 두 사람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진과 베라딘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잔뜩 신이 난 산드라가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진이 마지막으로 베라딘을 만난 것은 검황성 테러 당시였다.
그날, 진은 단테와 함께 베라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하이란이 피아 구분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지플이 본격적으로 압박하는 그림을 만들어달라 했던 것이다.
한 달 전, 그 결과가 나왔다.
모두가 아는 씁쓸하고 슬픈 결말이다. 황실은 하이란이 아니라 지플과 하얀 돌을 택했고, 그 결과 글리엑이 깨어났으며 세상은 오염되었으니까.
베라딘이 친구들의 부탁을 받지 않았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던 사건이지만, 그는 형벌처럼 무거운 죄책감을 떠안고 있었다.
“잘 지냈냐?”
“그럭저럭.”
“아니, 잘 못 지냈지! 라딘아, 어서 얘기해. 네가 강제로 폭주 상태에 돌입하지 않았으면, 카둔 아저씨랑 헤도까지 검황성전에 참전했을 것 아니야.”
베라딘이 단테를 위해 무언가를 했으리라는 것은 전장에서부터 예견한 바였다.
“폭주? 벤티카 임무 때 같은 상태가 됐던 거냐?”
흑기사 바르톤 비체나 살해 임무 당시, 베라딘은 이성을 잃은 채 진을 공격했었다.
“비슷해.”
“그때 보여준 마력이 대단한 수준이긴 했지만, 카둔과 헤도가 없으면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벤티카 때랑 비교할 수 없이 마력이 강해진 상태였거든. 이제 이런 것 정도는 놀랍지도 않지? 어제까지 유지 장치 속에서 꼼짝도 못 하는 신세였다. 뭐, 덕분에 당분간 가문이 내 정신을 조작할 수 없게 되기는 했어.”
지금껏 지플은 어둠계 마법과 마신석을 비롯한 특수한 방식을 통해 베라딘의 정신을 조작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마신석이 부서진 데다 켈리악이 유지 장치에 묶였고, 폭주로 인해 베라딘의 몸과 육신이 상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과거 베라딘이 처음으로 자신의 정신 조작에 대해 고백했을 때, 진은 그 이유가 단지 지플이 베라딘을 입맛에 맞는 후계로 기르기 위함이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마력을 다 잃은 모양이군.”
진은 베라딘에게서 마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의 베라딘은, 마법사라고 할 수 없는 몸이었다.
“마력뿐만이 아니라 기억에도 좀 문제가 생겼어. 내 형제들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고, 마법도 엄청나게 까먹었지. 폭주의 부작용이다. 마력은 반드시 돌아오겠지만, 기억은 확신할 수 없어. 마법도 뭐, 다시 배우면 그만이긴 하지.”
지금의 베라딘은 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그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두 사람, 진과 단테와 했던 이야기들은 똑똑히 남아 있었다.
“대체 지플은 네 정신을 조작하고, 마력을 강화시켜서 뭘 하려는 거야?”
“글쎄, 확실한 건 산드라 누나와 내가 일종의 실험체라는 사실뿐이다. 너도 알다시피 누나는 생체 골렘 쪽이고, 나는…… 아직은 짚이는 게 없어. 예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후계자로 키우기 위함은 아닐 거다. 그러기엔 아버지가 영생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켈리악이 마신석의 힘을 통해 젊어지는 모습은 검황성전에 참여한 모두가 확인한 일이었다. 그런 켈리악 지플이 베라딘에게 가주 자리를 넘길 것 같지는 않았다.
불현듯.
진은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가이파 군도에서 보여준 산드라 지플의 신체 능력은 일반적인 마법사를 한참 상회했었다. 그리고 베라딘은 정신 조작과 더불어 마력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초재생 능력을 갖춘 강력한 육체와 인위적인 마력 강화.
지플의 목적이 그 두 가지를 합쳐 생체 병기를 만드는 것이라면? 마치 옛 룬칸델에 있던 궁극의 마검사들과 같은…….
게다가 베라딘은 동시에 둘 이상의 신과 계약한 상태다. 그 역시 단지 베라딘이 축복받은 마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역겨워서 구토감이 치솟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미안하다. 내 가문 때문에 너와 단테가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네 잘못은 없다.”
“난 지플이다.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출신 자체가 원죄인 셈이지.”
“그런 칙칙한 소리는 네놈하고 안 어울리니까 치워. 단테는 여전히 너와 싸울 생각이 없고, 네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기는 우리 라딘이를 버릴 거예요?”
“고민을 좀 해봐야 될 문제 같은데.”
“그래요, 라딘이는 버리고 나랑만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랍니다.”
진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베라딘, 검황성 테러 때 했던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냐?”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 셋만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지 장치에서 의식을 잃은 동안, 검황성에서 진이 했던 그 말은 베라딘의 무의식 속 유일한 이정표나 다름이 없던 것이다. 마치 검황성전 때 혼돈에 물들었던 론과 단테, 진이 서로를 비춰 끝내 길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물론. 그 말이 없었다면 여길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됐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나도 좀 껴줘요.”
“지플을 배신하라는 이야기인데.”
“정식으로 나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맹세하면, 얼마든지?”
사실상 산드라는 결과적으로 진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베라딘과 함께 지플을 정화하는 일에 이미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오로지 진이 그쪽을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이유로 말이다. 당연하게도 진은 산드라까지 신뢰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도 그녀가 자의로 진을 해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단테 부를 테니, 술이나 한잔 마시고 돌아가. 복귀해서는 여기 히스터의 생존자가 있었다고 말하고. 그거면 지플 수뇌부도 아무 수확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심증을 확증으로 바꾼 셈이니.”
“아니지, 아니지. 진 씨는 나랑 데이트를 해야죠. 약속했잖아요?”
“넷이 함께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해주면 고맙겠군, 산드라 지플. 약속한 적은 없지만.”
이내 한 시간 후 단테가 리트라 다과점을 찾았다. 단테는 베라딘을 보자마자 말없이, 오랫동안 그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고 다시 리트라 다과점이 조용해졌을 때, 진은 발레리아와 둘이 남아 함께 기록 창을 살펴보았다.
“정신이 조작되지 않은 상태였다던 베라딘 지플의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는 기록 마법으로 확인할 수 없어.”
발레리아가 말했다.
대신 기록 창은, 오늘 리트라 다과점에 남은 한 가지 기록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