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95)
제 555화
155화. 다시, 라프라로사로(4)
* * *
묘인족의 가호. 과거 라프라로사를 찾았을 때 진은 처음으로 그들의 가호를 받아 수인들의 땅을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다.
여전히 그 가호는 유효한 모양이었다. 간단한 변장만 하고 다시 수인들의 땅을 찾았건만, 이번에도 순찰을 도는 적호족과 백랑족들은 단 한 차례도 진을 검문하지 않았다.
‘아니면 킨젤로의 본진 경계망이 내 생각보다 허술한 건가? 대사막에 들어서는 모습이 외부에 알려져도 이제 딱히 상관은 없다만, 킨젤로가 조금 귀찮게 할 수도 있지 않나 싶기는 했는데.’
로사가 직접 전송한 폐관 수련이다. 룬칸델의 기자들은 벌써 진의 폐관 수련과 관련한 기사들을 배포하고 있었다.
진이 검의 왕좌에 오르는 마지막 길에 오른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호사가들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유카유카 시장을 지나 미트라 대사막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도착한 무렵, 진은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곤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진 룬칸델.]깨끗한 눈처럼 새하얀 털에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자, 고양이 같은 얼굴.
묘인족 ‘네루’였다. 진에게 묘인의 가호를 내리고, 그를 테마르의 세 번째 무덤으로 인도한 인물.
이번에도 진이 수인들의 땅에서 킨젤로의 눈에 띄지 않은 건, 그녀의 도움이 있던 덕분이었다.
“완타라모 숲에서 루루와 미루 님에게 그날 망령대로부터 무사히 도주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드디어 직접 만나 뵙고 감사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왔군요.”
[우리와 넌 서로가 고마운 사이니 너무 그럴 것 없어. 보아하니 대사막을 찾아온 모양인데, 조금 같이 걸을까?]네루는 라프라로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나, 대사막에 솔더렛이 진을 위해 남긴 안배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대사막으로 들어선 다음엔 슈리를 소환했다.
네루와 슈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반가운 듯 먀먀 소리를 내며 인사를 나눴다.
[슈리가 그 마녀를 벗어나 너 같은 사람을 만난 건 큰 축복이야.] [먀!] [진.]“예, 네루 님.”
[내가 널 찾아온 건,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생겼기 때문이야.]혼돈 오염 지역.
네루는 한동안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글리엑의 혼돈은 인간 사회뿐만이 아니라 작은 수인들의 세계에도 침투하고 있었다.
[우리 묘인족은 작은 수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염 지역 정화에 동참하려고 해. 그리고 인간들 중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너와 히스터의 계약자뿐이야.]네루의 설명에 의하면 묘인족은 특유의 결계 능력을 통해 오염 지역의 혼돈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현, 전대 고양이의 신들이 부재한 까닭에 그 힘이 미약하니, 발레리아의 기록 마법을 통해 그들의 ‘잊힌 신전’을 찾아 능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진은 흔쾌히 네루의 제안을 수락하며 종이와 펜을 꺼냈다.
“티칸으로 가서 이 편지를 보여주십시오. 아마 발레리아는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응, 루루와 미루가 그녀 또한 너처럼 세상을 위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표현하더라.]“들을 때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과찬이군요.”
발레리아는 완타라모 숲의 일화 덕에 루루와 미루를 비롯한 묘인족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녀 덕에 우리 신들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되면, 작은 수인들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을게.]이후 네루는 함께 슈리를 타고 진을 라프라로사의 입구 근처까지 배웅해주었다.
[이만 나는 돌아갈게.]“정말 반가웠습니다, 미루와 루루 님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네루가 떠나자 언제나처럼, 명왕족 탄텔이 진을 반겼다.
“진 형제! 오, 그리고 슈리! 오랜만이다!”
[먀먕!]“탄텔 형제. 잘 지냈냐?”
“우리가 하는 일이라야 뭐 널 기다리는 것밖에 더 있겠나? 아, 걱정하는 것도 있군. 행여 형제가 바깥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우린 소식도 들을 수 없다고. 형제가 충분히 강하다면,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말이야.”
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탄텔은 진이 강해진 사실을 단번에 알아보았으나, 명왕족의 기준에서 진은 아직 초월적인 강자가 아니었다.
진을 ‘전도유망한 전사’ 정도로 취급할 수 있는 집단은, 세상에 오직 명왕족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오래 머물며 수련할 생각이야.”
“좋은 생각이군!”
탄텔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라프라로사로 향하는 차원문이 열렸다.
황금 도로에 온갖 보석이 가득 장식된 건물들, 그리고 집집마다 대문 앞에 내걸린 죽은 형제들의 광심장.
이토록 찬란한 죽은 세계는, 이제 진에게 제2의 고향이었다. 어쩌면 이 풍경을 바깥으로 꺼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황금 도로와 단정한 돌길, 죽은 명왕족 전사들을 기리는 거대한 석상을 지나 투신전에 다다랐다.
대문을 열기 전, 진은 투신전 외벽에 박힌 명왕족 전사들의 심장을 몇 차례 어루만졌다.
쿠그그그……!
펑-! 퍼펑!
대문이 열림과 동시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명왕족 형제들이 축포를 쏘았다.
“진 형제다!”
“슈리야아!”
진은 형제들의 요란한 환영에 또 한 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탄텔을 제외한 63인의 일반 전사는 물론, 12명의 투왕과 투신 반까지 대문 너머에서 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진은 가장 먼저 반에게 예를 갖췄다.
반에게선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위엄이 풍겼으나, 진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다소 수척해진 사실을 알아보았다.
‘저번 수련 때 내게 수혈을 해주신 영향인가…….’
반은 수혈할 때마다 진에게 ‘진기’를 넘기는 셈이었다. 론이 마지막 순간 단테에게 진기를 넘긴 것처럼 말이다.
“드릴 이야기가 많습니다, 반 형제.”
슈리는 반을 보자마자 골골대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덩치가 훨씬 크기 때문에 모양새가 잘 나오지는 않았으나, 지난번 이후 반의 손길이 무척 그리웠던 것이다.
슈리는 테스나 반처럼 초월적 존재들의 손길을 무척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럴 테지. 여기 오래 있어야 할 테니, 오늘은 천천히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군.”
“엇, 투신 형제. 진 형제가 오래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만 들은 내용이라, 형제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텔 형제. 진 형제는 지금 죽을 날을 받아놓은 상태나 다름이 없으니.”
반의 대답에 다른 명왕족들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허! 투신 형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 형제가 죽는다니요……!”
“진 형제, 아까는 그냥 수련 때문에 오래 있겠다고 했잖아, 사실 뭔가 몸에 문제가 있는 거야?”
놀란 것은 명왕족뿐만이 아니었다.
‘반 형제라면 내 몸에 혼돈이 깃든 것쯤이야 단박에 알아볼 거라 생각했지만…… 시한부라고?’
진은 자신의 상태가 로사나 켈리악을 비롯해 혼돈에 물든 다른 이들과 입장이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마가 내면을 조금씩 압박하고는 있으나 글리엑의 아공간에서 겪은 것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심해질 수 있으니 라프라로사를 찾았다. 투신혈이 혼돈에 저항하던 것을 단서로 삼아서 말이다.
말하자면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만약 반에게 로사와 켈리악, 그리고 진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진이 가장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짧으면 한 달, 길어야 두 달. 만일 라프라로사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진 형제는 그 안에 괴물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제가 그렇게나 심각한 상태였습니까?”
천운.
진이 자신의 상태를 모른 채 지금 시점에 라프라로사를 찾은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콰울을 찾는 일이 조금이라도 늦어졌거나, 로사가 생각을 바꿔 폐관 수련을 떠나겠다는 진을 방해했다면 한두 달 정도로는 바깥 정리가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다른 명왕족 형제들도 진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깨달았다. 칠투왕 벨리즈, 그녀는 덥석 진의 손목을 붙잡으며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이건 혼돈의 흔적이잖아!”
“혼돈의 흔적이라고? 우린 혼돈에 면역이잖아?”
“진 형제는 우리랑 종이 다릅니다, 십이투왕 형제.”
“그렇긴 한데, 투신 형제의 피를 수혈받았고 광심장까지 있으니 면역일걸!?”
“낙인의 형태가…… 이거. 최초의 혼돈이 남긴 거다!”
“빌어먹을, 맞아, 그것만 면역이 아닌데! 하필 최초의 혼돈이라고? 그게 아직도 바깥세상에 남아 있어?”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거냐!? 마녀라도 만났어? 응?”
명왕족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혼돈의 왕과 마녀 헬루람은 명왕족의 시대에도 존재했었다. 그때의 헬루람은 이름 없이 그저 마녀라고만 불렸지만 말이다.
“흥분을 거둬, 형제들.”
반이 가만히 손을 들자 명왕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닫았다.
“그런 이야기들은 진 형제를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아주 늦지는 않았으니 준비를 갖춰서 정화를 시작하면 될 일.”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담담한 목소리다.
하지만 진은 반의 태도를 보고도 안심할 수 없었다. 분명 ‘정화’의 방법을 알고 있을 다른 형제들 모두가 계속 안절부절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이 진을 걱정하는 이유가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쩝…… 힘을 내자고, 진 형제.”
“괴롭겠지만 어쩌겠나. 형제가 언제나 그래온 것처럼, 잘 견뎌내는 수밖에…….”
“그, 뭐든 도와줄 테니까.”
“그래, 그래. 우린 진 형제가 어떤 상태, 어떤 모습이어도 영원히 형제로 생각할 거야.”
“진 형제가 우릴 잊어도, 우린 형제를 잊지 않아. 암, 그렇고말고.”
진은 명왕족의 극한 수련을 이미 두 번이나 견뎌낸 바가 있었다.
그런데도 명왕족들은 진이 견디기 힘들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니, 진으로서도 가슴이 조금은 철렁할 수밖에.
“예? 어떤 상태, 모습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게다가 제가 형제들을 잊게 될 수도 있다니요?”
“이, 일단 오늘을 즐겨. 당분간 좋은 기분으로 지내기 어려울 테니.”
명왕족은 진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그를 번쩍 들어 올려서 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은 황당한 얼굴로 계속 질문을 던지는 진과, 그를 위로해주는 형제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연하게도, 반 또한 진이 걱정되기는 했다. 다만 이번에도 진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