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94)
제 555화
155화. 다시, 라프라로사로(3)
3년 내에 로사 룬칸델의 시간은 끝이 난다.
그것이 죽음일지, 스마리온 프로치처럼 괴물이 되는 것일지, 혹은 다른 형태의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마성화’를 끝내 극복해내면 그녀 또한 론처럼 창성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은 로사가 창성에 오르는 경우는 배제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사가 ‘버틸 수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진의 생각대로 로사는 마성화를 본인의 힘으로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미 창성에 오른 시론조차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다. 로사는 누구보다도 그의 상태를 잘 알았다.
“오히려 네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지플의 회복이다. 켈리악 지플, 그자는 현재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아마 나보다는 빠르게 힘을 되찾을 것이다.”
가문에 마성화에 빠진 건 로사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흑기사들과 최정예 기사들 역시 크고 작은 혼돈에 피폭되어 있었다. 지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언제 힘을 되찾더라도, 협정 기간 안에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겠죠.”
“그렇겠지. 하나,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네가 모를 리는 없을 테지. 휴전이 끝났을 때, 그들이 우리보다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면. 그날이 바로 멸문의 시작이다.”
공식 휴전 기간은 5년이었다.
군중들은 휴전이 영원하길 바라나, 양대 가문은 이것이 기나긴 천 년 전쟁의 마지막 휴식이자, 폭풍 전야라는 걸 알고 있었다.
휴전이 끝난 다음엔 반드시 최후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니 네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이용해 네가 옳았음을 증명하라. 성공하면, 가문의 모든 것을 갖게 될 터이니.”
‘그들의 마성화를 멈추고, 기계 장치와 함대를 완성하고, 천 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확신을 준다면.’
가주가 될 것이다. 로사는 그런 말을 하는 중이었다.
진은, 룬칸델의 권좌에 오르는 마지막 여정에 이른 것이다. 하나 기분이 조금 묘할 뿐, 진은 로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막내.”
“말씀하십시오.”
“예언자는 이미 네가 하려는 모든 걸 당장 실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내가 네게 기회를 주려는 건, 시론이 너를 믿기 때문이고…… 네가 나를 조금은 감화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 농담을 듣게 되는 날이 다 오는군요. 그저 저와 예언자 사이를 저울질하고 계신 걸 모르지 않습니다.”
로사는 살기 어린 진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 저울이 네 쪽으로 기울기를 기대하마.”
“어머니도, 예언자도. 그리고 지하 감옥에 처박혀 있는 전 2기수 조슈아 룬칸델도.”
돌아선 진이 잠시 말을 멈췄다.
“반드시 제 손으로 직접 끝장낼 것이니, 그때까지 안녕하시길 빌겠습니다.”
“눈물겹도록 대견한 말이로군. 이야기는 끝난 것 같으니, 나가보자꾸나.”
진은 자연스레 로사를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문득 생각해보니, 로사와 나란히 검의 정원을 걷는 건 이번이 처음 같았다.
심지어 로사는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경쾌한 걸음걸이였다.
로사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대기 중인 가문의 모든 일원은 정원에 도열하도록 하라.”
따로 사람을 부른 것도 아니고,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다. 그저 허공에 읊조렸을 뿐인데 로사의 명령은 순식간에 전파되었다.
비록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지만, 그녀가 닿은 경지는 여전히 위엄을 빛내고 있었다.
기수, 기사, 원로, 집사와 문사, 하인들이 정원으로 모이기까지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로사가 걸음을 멈췄고 진은 한동안 그녀와 함께 가문의 일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늘로 12기수는 폐관 수련을 시작한다. 이를 알리기 위해 그대들을 모았음이니, 모두 무운을 빌어주도록.”
가문이 위태롭고, 모두가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건만 폐관 수련이라니.
대부분 충격받았으나 감히 아무도 내색하지 못했다.
로사가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12기수가 돌아왔을 때, 여기 있는 모두도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껏 12기수가 늘 그래왔듯이.”
사실상 지금 로사의 행동은 현세대 기수들의 서열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선포나 다름이 없었다.
수련을 끝내고 돌아오면 즉시 진이 가주가 될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루나, 룬티아, 조슈아. 세 사람을 제외한 모든 기수가 모인 상태였다.
‘막내가…… 가주가 된다고?’
‘폐관 수련이 끝난 다음에!?’
토나 형제는 얼떨떨한 마음을 겨우 감췄다.
란과 뷔고는 일순 흠칫했으나, 곧장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애초에 그들은 가주 경쟁에 적극적이었던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
뮤와 앤도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변했다는 건 이제 가문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디푸스와 메리는, 집무실에서 진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끝이 아니리라 확신했다.
특히 디푸스는 조슈아가 추락한 직후 진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어머니는 예언자를 속박하며 차후 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 조슈아를 복권시킬 생각이시다, 이거냐?
-그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는 조슈아를 추락시킴으로써 당신의 권위를 다시 한번 세우셨습니다. 이번 일로 추방자 사건 때문에 난 흠집은 사라질 테죠. 본인이 그토록 지지하던 2기수를 직접 꺾는 강단을 보였으니. 내막이 어떻든, 가문의 일원들은 앞으로 어머니를 더욱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힘을 한계까지 드높인 후, 조슈아를 다시 지상으로 끌어올려 모든 권력을 이양시킨다…… 죄와 명분은 모두 예언자가 짊어지고.
‘어머니와 조슈아, 그리고 예언자가 죽기 전까지 서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뮤와 앤은 예언자와 모종의 관계를 맺었다. 아직 확증을 발견하진 못했으나, 디푸스와 메리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할 일은 진이 돌아오기 전까지 예언자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진이 이렇게 떠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과 룬티아를 향한 믿음이었다.
룬티아는 둘과 달리 명백한 우호 관계라 할 수 없으나, 그녀가 가진 순수한 투쟁심은 결코 예언자의 간계에 쉽게 물들지 않을 터였다.
“가거라.”
로사가 말하자 기사들이 양쪽으로 나뉘며 검의 정원 바깥으로 이어지는 길을 형성했다.
예비 기수 시절, 1796년에 있던 첫 번째 라프라로사행은 나침반을 가진 지플과 킨젤로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1798년의 두 번째 라프라로사행은 룬칸델과 지플의 수배령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라프라로사행은.
처음으로 도망자 신세가 아니라 온전한 성취를 위해 당당히 떠나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문 모두의 전송을 받으며 말이다.
진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그가 지나칠 때마다 기사들이 검을 올려 예를 표했다.
로사는 서서히 멀어지는 막내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네스토’라는 이름과 가문의 운명, 그리고 시론을 떠올렸다.
* * *
검황성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론의 원정대도 키알과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전투는 원정대의 승리로 끝났고, 사망자는 아무도 없었다.
원정대의 무력이 초월적인 것은 사실이나, 본래 시론은 몇 명 정도의 기사를 잃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전투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글리엑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 키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글리엑의 소멸을 인식하자마자 키알은 광분하며 이성을 잃은 것이다.
물론 사망자가 없을 뿐, 원정대가 받은 피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전투가 끝나고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건만 원정대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모두 혼돈에 피폭되었기 때문이었다.
[하, 하하. 어르신!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요…… 다들 자리에 앉아 계시면, 이 오즈도크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오즈도크가 혼돈의 잔재로 만든 요리를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내내 전장 저 먼 곳까지 튕겨 기절해 있던 오즈도크에게도 미약한 혼돈이 깃들었다. 하나 아직은 정신에 전혀 타격을 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원정대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상태였다.
그리고 기사들은 그에게서 의외의 면을 발견했다. 전투가 끝나고 기사들이 거의 빈사에 놓였을 때, 오즈도크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던 것이다.
오즈도크는 그때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기사들의 회복을 도왔다.
도망쳤다간 원정을 끝내고 돌아온 시론의 손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원정대의 일원으로서 의리가 생겼고, 또한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기사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고맙다…… 오즈도크.”
“고맙군.”
루나와 기사들의 목소리에 오즈도크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아프기도 했다. 죽지만 않았을 뿐, 기사들 대부분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혼돈에 피폭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는, 원정 도중 괴물이 되거나 죽음에 이르는 것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며 오즈도크도 옛 기억을 조금 더 되찾은 상태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혼돈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마녀 헬루람만이 가지고 있었다.
‘천 년 전에, 헬루람이 흑해 어딘가로 잠적했다는 이야길 들은 것도 같은데. 으, 기억이 조금 돌아오긴 했어도 아직 오락가락해. 어르신 상태가 저러니 혹시 관련된 걸 아시느냐 여쭐 수도 없고…….’
당연하게도 시론은 혼돈에 가장 많이 피폭되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줄곧, 가좌를 튼 채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즈도크.”
[에구, 에구머니나!]오즈도크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고개를 들었다.
한 달 동안 석상이나 다름없던 시론이 갑자기 자신을 부르니 간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고,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깨어나셨군요!]“가주!”
오즈도크는 잽싸게, 루나와 기사들은 거의 기어서 시론에게 다가갔다.
시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향해 자신의 기운을 퍼뜨렸다.
창성의 오러와 더불어 마력이 섞인 기운이었다. 그의 기운은, 순식간에 딸과 기사들의 몸에 들러붙은 혼돈을 털어내는 모습이었다.
잠식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다만 원정대는 그것만으로도 살겠다는 듯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매번 그렇게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경박한 모습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요! 어르신께서 드디어 털고 일어나신 게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만…….]시론은 그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즈도크는 물론이고, 기사들 역시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키알의 혼돈에 잠식되기 전보다 시론의 상태가 더 좋아진 것이다. 모두 그의 기운이 한층 더 깨끗해진 걸 느끼고 있었다.
“오늘부터 혼돈의 잔재로 만든 식량은 내게만 가져와라. 내가 그것을 기운으로 정제해서 다시 나눠주겠다.”
[예이! 그리하겠습니다, 어르신!]오즈도크가 거의 방방 뛰며 기사들의 음식을 회수하는 사이 시론은 인세 쪽을 돌아보며 바리사다를 추켜세웠다.
끝내 인세에서 글리엑을 막아내고 전사했을, 론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문득, 막내를 향한 궁금증과 믿음이 일었다.
‘지금도 희미하게 남은 론의 기운에서 영기가 느껴지는 걸 보아…… 막내가 그의 마지막 깨달음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 테지. 결국 가문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분명 녀석의 몫일 것이다.’
기운을 차린 루나도 마력을 일으켜 자연스레 시론의 기운에 도움을 주었다. 그녀 또한, 시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