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98)
제 555화
156화. 혼돈 정화(3)
‘마성화에 빠진 론 경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글리엑의 심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그때, 진은 혼돈과 영기가 뒤섞이면서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걸 느꼈었다.
그 힘은 마성화에 빠진 론과의 싸움이 끝난 후 사라진 듯 보였으나, 잠식이라는 형태의 반점으로 남아 진을 괴롭히는 중이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방망이질하고 있었다.
자신과 테토를 둘러싼 형제들의 목소리를, 진은 듣지 못하고 있었다. 물속에 잠긴 듯 머릿속이 웅웅댔고, 그 와중에도 이상하리만치 한껏 날카로워진 감각은 원치 않는 투기를 형성했다.
방금 형제에게 치명상을 입힐 뻔했음에도 계속 싸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니.
강력한 마약에라도 취한 것처럼 그 마음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형제가 아니라 타인이었다면, 검을 멈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검황성전이 끝난 이후 진은 마성을 깨울 만큼 강한 상대와 겨룬 적이 없었다. 콰울과의 전투는 몸풀기도 되지 않았으니 지금 같은 상태를 겪지 않았을 뿐이다.
선과 악, 정도와 사도, 빛과 어둠.
그렇게 대립하는 성질의 욕망들이 진의 내면에 거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까스로 억제한 줄 알았건만, 사나운 뱀처럼 계속 마성의 기운이 꿈틀대는 것이다.
‘이 힘을 사용하면 단숨에 초월적인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
무인으로서 그보다 달콤한 이야기는 없을 터.
그저 단 한 번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대해처럼 헤아릴 수 없는 힘이 온몸에 차오를 것 같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축복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마성화 특유의 통제 불가한 성질조차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사라질 것 같았다.
‘왜 거부해야 하는가?’
의식의 흐름이 거기까지 이르자 진의 마성화가 한 단계 더 증폭되었다.
형제들의 목소리는 이제 뭉개진 느낌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형제들의 모습이 검은 형체로 보였다.
일순 검을 내던진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검은 형체로 보이기 시작한 형제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저 악령 같은 존재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크아악……!”
진이 괴성을 지르며 형제 한 사람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벨리즈의 손이었다.
전력으로 할퀴었으니 명왕족 투왕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손이 잘리거나 뽑혀나갔을 것이다. 벨리즈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진을 붙잡았다.
벨리즈의 완력은 투왕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진의 팔을 붙잡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정도였다.
“진 형제를 붙잡아!”
나머지 투왕들도 제압에 동참하고 있었다. 괴력이 담긴 주먹과 발길질을 맞으면서도 진을 꿋꿋이 제압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명왕족 투왕이기 때문이었다.
“형제, 정신 차려!”
제압은 몹시 거친 형세로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팔다리를 꺾는 것은 물론,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제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진은 컥컥 피와 괴성을 토하면서도 순식간에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회복할 때마다 완력이 더욱 강해지기까지 했다.
거친 제압이 계속되면서 일반 형제들 몇몇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질끈 눈을 감는 모습을 보였다. 형제의 몸이 형제들에 의해 부서지는 걸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진 스스로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투왕들의 제압은 한계가 있었다. 진의 몸이 어디까지 버텨줄지 알 수가 없으니까.
“진 형제!”
“커헉, 큭……!”
이내 진이 검은 피를 토하며 폭주를 멈췄다. 마성화가 극으로 치닫는 마지막 순간, 또 한 번 투신혈이 진을 붙잡아준 것이다.
그 후에도 투왕들은 한동안 진을 붙잡고 있는 손을 놓지 못했다. 다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괘, 괜찮아?”
진은 엎어진 채 형제들의 근심 어린 얼굴을 올려보았다. 그때서야 형제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진은 미안한 마음에 가슴속이 다 부서지는 것 같았다.
“형제들…….”
“케케케, 진 형제.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
형제들이 말을 고르는 사이 가장 먼저 테토가 소리쳤다.
“그건 독이라고. 진 형제의 내면? 마음? 아무튼 그런 건 지금 상태가 썩 좋지 않은데, 죄책감에 휩싸이면 아무래도 더 약해지겠지? 그럼 자연스레 혼돈의 잠식을 밀어낼 의지가 약해질 거고. 그러니까 효율을 생각해서라도 그딴 감정은 치워야 해.”
“오, 십이투왕 형제가 웬일로 그럴싸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이투왕 형제의 고생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가?”
“십이투왕 형제의 말이 옳아. 심적인 안정을 취해야 해, 진 형제.”
진은 몇 초쯤 형제들과 눈을 맞추다 고개를 끄덕였다.
죄책감 대신, 고마운 마음만을 갖기로 했다. 형제를 죽일 뻔하고, 폐를 끼치고도 그토록 쉽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형제끼리는 은원을 계산하지 않는다.
진 또한 명왕족의 질서를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신이 해할 뻔한 대상이 다른 동료들이었다면 진으로서도 마음을 가볍게 먹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후, 고맙습니다. 형제들.”
“여기 차가운 물 한 잔 들이켜고.”
“좋아, 담백하게 생각하자고, 담백하게. 우리나 되니까 진 형제를 이렇게 감당하지, 인세였으면 어쩔 뻔했어?”
“팔다리가 몇 번이나 부러졌는지 모르겠군요.”
“뭐, 처음 왔을 땐 수십 번이나 잘리기도 했잖아. 어찌 보면 그때보다는 나은 셈이지.”
진과 명왕족은 심각해지는 대신 분위기를 가볍게 이끌어갔다. 그러자 진은 마성화의 잔재가 빠르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명왕족은 진과 같은 경우를 처음 겪는 게 아니다. 그들은 정신적인 부분이 마성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진 형제.”
“예, 일투왕 형제.”
“형제는 이를테면 지금 재활 훈련을 하는 거야. 그러다가 한 번 넘어진 거고, 앞으로도 몇 번이고 넘어질 수 있다.”
발티록이 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때마다 형제가 해야 할 일은, 지금처럼 그냥 빠르게 털고 일어나는 것이야. 왜 넘어졌는지, 넘어지면서 혹시 누굴 다치게 했는지, 그런 걸 신경 써서는 안 돼.”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형제가 넘어질 때마다 계속 손을 내밀어주고, 일으켜주는 것이지.”
“신기하네, 테토 형제가 계속 맞는 말을 하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진.
정겹고 든든한 형제들이, 고향이 있다는 건 이처럼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아.”
테토를 찌를 뻔한 게 불과 몇 분 전이다. 형제들은 그 사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또 폭주할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 투신 형제는 분명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거고, 그럼에도 우리에게 형제의 실력과 상태를 점검하라 일렀다.”
“그건 곧 투신 형제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진 형제를 믿는다는 거고, 아마 계속 폭주해도 별일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겠지……?”
“아마, 라고요?”
형제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사실이나, 진은 때로 명왕족의 이런 무감한 모습에 당황하고는 했다.
“탄텔 형제! 형제가 얼른 달려가서 투신 형제한테 물어봐. 사태가 이러이러한데 계속 진행해도 되겠냐고.”
가르문드의 말에 탄텔이 훈련장을 떠났다. 탄텔은 금방 돌아와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계속 하시랍니다!”
“그럼 그렇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좀 호들갑을 떨기는 했어. 투신 형제가 하라고 한 건데.”
“맞아, 맞아. 투신 형제가 하라고 했으니까 별일 없을걸?”
“그, 다들 확신은 없는 듯 말하고 있는데. 정말 괜찮은 겁니까?”
“다음 순서 누구였지? 아까 가위바위보 이긴 사람? 아, 나였다!”
“가르문드 형제, 어디서 거짓말을. 십이투왕 형제 다음은 이투왕 형제였어. 그다음이 발티록 형제였고, 나머진…… 젠장, 순서가 어떻게 됐더라?”
“어차피 다 기억도 못하는 거, 무효로 하고 다시 가위바위보로 정해.”
“우린 계속 안 껴줍니까? 투왕 형제들.”
“어허, 사태를 보고도 그러나! 평전사 형제들은 진 형제의 혼돈이 정화될 때까지는 계속 구경만 하자고. 대신, 관객들도 좀 더 가까이서 구경하자고. 진 형제가 또 폭주를 일으키면 다 같이 빠르게 제압해야 하니까.”
거부할 새도 없었다. 진은 다시 시그문드를 쥔 채 계속 대련을 이어갔다.
* * *
대련은 이후 나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진은 그 기간 동안 잠잘 때를 제외하면(그조차 폭주 난동에 대비하기 위해 훈련장에서 다 같이 잤다) 계속 투왕들과 무기를 섞었다.
그리고 무려 스무 번이 넘는 폭주를 겪었다.
그중 가장 심한 폭주에 빠졌을 땐 훈련장을 반파할 정도로 난동을 부렸고, 제일 약하게 빠졌을 땐 턱을 두 대 얻어맞는 것으로 끝이 났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어찌나 격한 대련을 이어왔는지, 혼돈조차 기력이 빠진 듯 느껴질 정도였다. 폭주할 힘조차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진짜로 마성화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단테가 글리엑의 유혹에 문을 열었던 것처럼, 진의 마음속에도 언제나 열 수 있는 창살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열어젖히기만 하면 편해질 수 있고, 강해질 수 있다고 확신을 주는 유혹의 문이 말이다.
투왕들에게서도 조금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단지 대련만 한 게 아니라 폭주할 때마다 진을 붙잡았으니 그들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단테 녀석에게 혼돈의 유혹에 대해 듣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 처절했던 검황성의 비극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걸 열었을지도 모른다.’
떨리며 부딪히는 이에서 딱딱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진은 부들거리는 손을 뻗어 다시 검을 쥐고 있었다.
“다음…… 다음은 누굽니까.”
투왕들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진의 시선을 피했다. 먼저 싸우겠다며 그렇게 난리를 치던 투왕들은 이제 은근히 서로에게 순번을 떠넘기고 있었다. 평전사들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어서 한 명 나서라고 투왕들을 닦달했고 말이다.
결국 투왕의 막내 격인 테토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훈련장 저편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돈 추출 보조기가 완성되었다네, 형제들!”
오투왕 보라스의 목소리였다. 대체 추출 보조기를 만드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역시 온몸의 털이 다 까맣게 탄 모습.
투왕들은 드디어 쉴 수 있겠다는 마음에 보라스를 반기려 했으나, 그 옆에 선 투신 반의 단단한 눈빛을 보곤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그리고 반은, 이렇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하던 거 계속해, 형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