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99)
제 666화
156화. 혼돈 정화(4)
“계, 계속 말입니까?”
“그, 오투왕 형제가 기계를 완성했다고…….”
반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몇 초쯤 가만히 있었다. 불처럼 나풀거리는 머리칼과 고요하고 깊은 눈빛에, 투왕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명왕족이 재빠르게 도열하며 고개를 숙였다.
투왕과 일반 전사 사이엔 위계가 없으나, 투신 반은 그야말로 명왕족의 절대자였다.
진은 눈치를 살피며 일반 전사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탄텔과 샤쿠가 진을 한 칸 앞, 투왕들의 자리로 밀었다.
‘형제는 저 앞쪽에 서!’
‘난 투왕이 아닌데?’
‘얼른.’
그리고 투왕들과 나란히 선 다음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형제는 반 형제 옆에 서!’
‘투신 형제의 옆에? 그래도 되는 겁니까?’
‘진 형제는 시그문드를 계승했잖아, 투신 형제의 유일한 후계라고. 서열은 우리보다도 높은 셈이지.’
하는 수 없이 진은 반의 옆에 섰다. 그녀는 그제야 도열이 알맞게 갖춰졌다는 듯 입을 열었고 말이다.
“해이해졌군, 형제들.”
“투신 형제, 우리가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다들 잊은 모양인데.”
진을 가리키는 반.
“여기, 진 형제는 이번에 라프라로사를 찾은 첫날 우리를 바깥으로 꺼내겠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와 형제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지?”
“진 형제의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
고오오오……!
별안간 훈련장 전체가 반의 기운에 공명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투왕들은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고, 평전사들은 주저앉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진은 그녀의 기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이 그가 있는 쪽으로는 기운을 퍼뜨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전성기는 끝났으며, 찬란했던 우리의 시대 또한 반만년 전에 종말을 맞이하였다.”
그녀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기운은 점점 광대해졌다. 그럴수록 오히려 훈련장을 뒤흔드는 진동은 옅어졌으나, 반의 기운은 고요한 폭풍이었다.
고요, 폭풍. 완전히 상반되는 단어가 합쳐진 것처럼, 그녀의 기운은 신적인 위엄을 품고 있었다.
‘위계 때문에 저항하지 않는 게 아니다. 형제들 전부가…… 정말로 기세에 짓눌려 있어.’
진이 아는 한 가장 강한 무인들.
미트라 대사막에서 겪은 테마르와 시론 룬칸델, 그리고 론 하이란이라 할지라도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무려 열두 명의 투왕과 64인의 명왕족을 상대로.
“우리 모두가 나갈 수 있다 할지라도, 진 형제에게 그 시절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미약한 힘을 보탤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고작 그것으로 우리가 진 형제를, 서로를 지킬 수 있겠나?”
이 정도면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진은 조용히 있었다.
반이 기운을 풀었다.
명왕족들은 가쁜 호흡을 고르며 동시에 아니라고 소리쳤다.
“지금부터는 진 형제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죽을힘을 다해 수련하고, 또 수련하라. 옛 영광에 젖어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형제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투신 형제!”
경고에서 진을 제외한 건, 반이 그에게 특혜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음은 누구냐며 대련을 이어가려던 사람은 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신 형제.”
십일투왕 ‘나타’가 말하자 반이 그녀와 눈을 맞췄다.
“말하라.”
“우선, 부족한 모습을 보인 점은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훈련을 이어간다면,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진 형제는 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투신 형제. 저희가 피로감을 느낀 건 맞지만, 사실 진 형제의 상태가 걱정됩니다. 계속 훈련을 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형제들의 마음이 더 해이해진 모양이야, 또 새삼스러운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죄송합니다.”
“훈련은, 원래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줘서 말하는 반의 모습에 명왕족들은 다시 입을 닫았다.
돌아보면, 투신 반은 진이 라프라로사에 처음 왔을 때부터 과격한 방법으로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투신혈을 수혈하는 것부터 죽음을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둔 채로 진행했던 것이다.
수많은 강자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목숨을 걸지 않고는 초월을 이룩할 수 없다고 믿었다.
애초에 명왕족의 수련은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무투 집단보다도 과격하고 위험했다. 그들이 인세의 패자로 군림했던 이유가 단지 타고난 전투 종족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발티록, 루모라, 팔렘, 린파, 보라스, 달피르, 벨리즈, 가르문드, 바바, 카이오, 나타, 테토. 투왕이 된 순서대로 처음부터 다시 진 형제와 대련하도록 하라. 폭주는 내가 제압할 테니, 순번을 기다리는 인원들도 각자 짝을 지어 몸을 풀고 있도록.”
“음, 투신 형제? 나는 아무래도 장치도 손을 좀 더 봐야 할 것 같고…….”
“완성이라고 하지 않았나?”
“훈련이 격해질 테니, 형제들 치료 대기도 해야 할 것 같고. 특수 접합술은 쓸 일이 없겠다만. 내가 빠져야 투왕이 열한 명이니, 한 명이 진 형제하고 대련하면 나머지 열 명이 둘씩 짝을 짓기에도 좋겠고?”
“그럼 보라스 형제를 제외한 나머지만 훈련을 시작하도록. 평전사들도 조를 이뤄.”
보라스는 킬킬 웃으며 형제들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 * *
또다시 나흘이 흘렀다.
진은 마법등이 점멸하는 것처럼 의식이 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중이고, 나머지 명왕족들은 부들거리는 두 다리로 겨우 서서 대련 상대를 찾았다.
“이, 이번엔 십이투왕 형제가 나랑 붙어…….”
“허으어억컥.”
“육투왕 형제는 뭘 뱉는 거야…….”
“히, 히히, 나비다, 나비.”
“정신 차려, 나타 형제! 저건 나비가 아니라 토사물이라고.”
훈련인지 고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처절한 풍경 속, 반과 보라스는 쓰러진 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난 나흘간 10회 미만의 폭주라…… 이만하면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투신 형제가 보기엔 어떤 것 같아?”
“그래야겠군. 슬슬 진 형제를 잠식하고 있는 혼돈도 지쳤을 테니, 준비를 해줘. 훈련 종료! 형제들은 자리에 앉도록.”
드디어 살았다는 듯 명왕족들이 어기적어기적 자리를 잡았고, 보라스는 혼돈 추출 보조기를 진의 앞으로 끌어왔다.
기계는 기둥 같은 형태였는데, 보라스가 단추를 누르자 이음새들이 열리며 의자와 띠 같은 것들이 와장창 튀어나오는 모습.
보라스는 미역처럼 축 늘어진 진을 의자에 앉히고, 띠들을 그의 머리에 묶었다. 훈련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고문의 한 풍경처럼 보였다.
이어 반이 진의 광심장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광심장이 폭포처럼 눈부신 빛을 토해냈고, 진은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후우…….”
“정신이 드나, 진 형제.”
“저승인 줄 알았더니, 다행히 제가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군요. 투신 형제.”
“지금부터 형제의 혼돈을 빼낼 것이다.”
“어떻게…… 어우.”
쑤욱-!
돌연 반의 손이 진의 광심장 속을 파고들었다. 반이 모종의 조치를 해두었기 때문에 광심장은 마치 진흙처럼 부드러운 상태였다.
‘미친…… 추출이란 게,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빼낸다는 뜻이었나. 요나 누님이 아멜라 경의 혼돈을 잠깐 꺼냈을 때보다도 훨씬 험하군.’
통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는 듯, 반은 손을 헤집어 광심장에 숨은 혼돈의 기운을 붙잡았다.
그녀가 혼돈을 붙잡은 감각이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혼돈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시, 예상대로 상태가 좋지 않군.”
“부작용이 투신 형제의 생각보다 심할 것 같습니까?”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콱!
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목덜미를 잡아 짐승을 제압하는 것처럼, 혼돈의 어딘가를 쥔 것이다.
그리고 진이 무언가를 더 물어보려는 찰나.
[케에에엑……!]반이 광심장에 넣은 손을 빼내기 시작했고, 즉시 혼돈의 비명이 들려왔다.
‘마신석, 글리엑의 목소리와 비슷하군. 이 끔찍한 소리를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이야.’
형제들이 곁에 없는 상태였다면, 진은 비명을 듣자마자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검황성전은 진에게도 최악의 악몽이었다.
다만 그때는 마신석과 글리엑이 목소리만으로도 그곳에 있던 모두에게 절망감을 줬으나, 지금은 그 반대였다.
[카악, 케엑!]혼돈의 비명은 위엄보다는 절박한 느낌이 가득했고, 거의 ‘살려달라’는 호소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끼이이, 칵!]이윽고 광심장 속에서 혼돈의 ‘머리’로 보이는 부분이 튀어나왔다. 그 머리는 반의 악력에 볼품없이 구겨진 채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감히 반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조용히 나오거라……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소멸하고 싶다면.”
놀랍게도 혼돈은 그때부터 깨갱대는 소리를 멈추었다. 대신 눈을 질끈 감은 채 고통을 감내하며 완벽히 반에게 굴복한 태도를 보였다. 아멜라의 혼돈이 요나를 두려워한 것처럼 말이다.
이윽고 혼돈이 절반 이상 나왔을 때, 진은 우선 놈의 형태가 너무나 거대하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것이 혼돈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운.
진이 마검사로서 평생 쌓아온 기운 또한 혼돈에 섞여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반 형제! 혼돈에 제 힘이 섞여서……!”
반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혼돈을 완전히 빼내고 말았다.
철푸덕-! 쿵!
반은 고구마 뿌리를 캐듯 뽑았을 뿐이지만, 내동댕이쳐진 혼돈은 거의 본모습이 무라칸에 필적하는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형태도 용과 흡사했다.
그리고 놈은 빠져나오자마자 반을 향해 넙죽 엎드려 자신이 싸울 의지가 없음을 알렸다.
[케켕, 키이이잉…….]“오, 다행히 한 방에 추출됐군. 운 좋게 부작용도 거의 없는 듯 보이니, 저걸 투신 형제가 제압하기만 하면…….”
“장치를 만지느라 진 형제의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군. 부작용은 상실이다, 오투왕 형제.”
힘의 상실, 보라스는 반의 말을 듣자마자 이마를 짚었다.
“상실? 폭주나 잠식, 변형이 아니라?”
“그래.”
“이런.”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혼돈은 계속 눈치를 살폈다.
“그럼 반 형제가 저걸 진 형제 대신 처리해줄 수가 없는데…….”
반이 진과 눈을 맞췄다.
“진 형제가 지금부터 직접 저것과 싸워야겠군.”
“……제 힘은 전부 다 저놈이 가져갔습니다, 투신 형제.”
“그래서 놈을 상대하는 건 오직 진 형제여야 한다. 내가 대신 처리하면 저것과 함께 형제의 기운 또한 같이 소멸할 수밖에 없으니까. 진 형제가 싸우면서 회수를 해야 하는 것이지.”
그 말에 혼돈은 즉시 상황을 파악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진이 반의 ‘약점’이라는 걸 즉시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