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0)
제 66화
21화. 테싱 지하 경매(4)
‘지금쯤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있겠지. 내가 진짜 베라딘이라고 믿는 건 둘째 치고, 과연 지플 본가가 이번 일을 알고 있을지 궁금해 미칠 거야.’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사람이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내가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서도, 함부로 나를 칠 순 없다.’
진짜 베라딘 지플도, 그를 사칭하는 진 룬칸델도. 세기의 마법 천재라고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진 애송이에 불과하다.
테싱의 미등록 마법사가 한 무리만 달라붙어도 위기를 면치 못한다는 뜻. 굳이 미등록 마법사들을 부를 것도 없이 알루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루가 의식해야 할 사람은 베라딘뿐만이 아니다.
‘베라딘 지플의 호위들은 실력이 어느 정도지?’
아까부터 삐딱한 눈빛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 하나와, 덤덤한 얼굴의 여인. 베라딘을 제거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위험한 건 저 둘이었다.
쉽게 가늠이 되질 않았다. 둘 다 오러가 느껴지질 않는 걸 보아 마법사 같긴 한데, 힘을 완전히 감출 수 있는 수준의 고수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제트, 넌 이리 와라. 거기 계속 엎어져있지 말고.”
“예이! 나리.”
“쯧, 얼굴이 난리가 났군. 내 이름을 댔다가 이렇게 맞은 모양이지?”
“아이구, 나리. 저는 괜찮습니다. 저 같은 놈은 신경 쓰지 마시고… 가문의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래? 알겠다. 그렇게 하지.”
제트는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따질 만한 상대가 아니다.
“뭐 해? 알루. 얼른 장부랑 명부 가져오라고.”
“예, 베라딘 님. 야! 다들 베라딘 님 말씀 못 들었어? 얼른 뛰어!”
가장자리에 있던 테싱 조직원들이 개미들처럼 사사삭 흩어졌다. 잠시 후 그들이 가져온 장부와 명부는 10권이 넘었으나, 모두 겉핥기식 기록뿐이었다.
“일단 경매장에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베라딘 님. 진짜 중요한 문서들은 제 사택의 마법 금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말끝을 흐린 알루가 잠시 눈치를 살폈다.
“제가 직접 가서 가져와도 되겠습니까? 잠깐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하하…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상황 파악이 안 돼?”
“베라딘 님. 그게 아니라.”
“뻔한 속셈으로 누굴 능멸하려 드는 것이냐? 장부를 찾겠답시고 혼자 보내면 중요 문서는 파기하고, 겸사겸사 네놈 동아줄들 연락 돌려서 내가 진짜인지, 왜 여기 왔는지 확인해 보려고?”
정곡이었다.
알루 역시 이게 뻔한 속셈이란 걸 알면서도 던져 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귀까지 빨개진 알루는 고개를 숙인 채 진의 발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푸하하… 알루. 네놈도 민망한 줄은 아나 보구나. 좋다, 그렇게 해라. 혼자 가 봐. 갔다 오는 동안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그래 봐야 지플의 손바닥 안이라는 걸 명심해라.”
그 말을 듣자마자 알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알루의 입장에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기 때문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바깥에 이미 지플의 마법사들이 싹 깔려 있는 거야……!’
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알루가 이렇게 오해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미소였다.
“제,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베라딘 님께서 붙여 주시는 사람과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썩 꺼져. 지금부터라도 현명하게 행동하길 기대해 보마, 거미손 알루. 나는 그사이 창고나 확인하고 있어야겠군.”
알루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웠다. 지금부터라도 베라딘에게 잘 보이면,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두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베라딘 님. 너희들은 나 없는 동안 베라딘 님께 창고 안내를 해 드려라.”
알루가 비장한 얼굴로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장내에 남은 것은 테싱의 조직원들과 진 일행뿐이었다.
눈치 좋은 간부 몇이 다가와 곧장 진을 창고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보스의 사택과 별장에 있는 물건도 꽤 되지만, 저희 테싱 경매장의 공식적인 창고는 딱 하나뿐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웃긴 놈이었다. 보스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마자, 그의 ‘사택과 별장에 있는 물건’을 운운하며 은근히 횡령죄를 알리는 모습.
이들 모두가 자신이 가짜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일까? 헛웃음이 나왔다.
테싱의 지하 경매장 창고를 보는 건 진도 처음이었다. 경매장에서 한 층을 더 내려가면 곧장 창고가 시작되었는데,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1층엔 노예, 2층엔 마법서, 3층엔 아티팩트가 정리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체계적으로 분류된 모습이라, 진 일행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노예들은 낯선 사람을 보고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경매대에 오르기 전이라 약에 취하진 않았으나, 딱히 희망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는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할 때 부르십시오.”
테싱 간부가 나가자마자 제트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비범한 분인 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만! 지플가의 자제분일 줄이야. 나리, 앞으로도 제가 충심을 보일 기회를 주십시오. 뭐든 받들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그럼 지금부터 1층에 있는 노예들. 싹 출신지와 실명을 조사해. 차후 가문에서 사람이 나와 그들을 데려갈 것이다.”
“아! 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요.”
지플은 대외적으로 노예 거래를 엄격히 금한다. 물론 실상은 이렇게 사람을 사고파는 놈들이 수두룩하지만, 재수 없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밑바닥 권속들도 콩고물 먹는 재미를 알아야 하니 말이다.
“꼬마, 어쩔 셈이야? 내가 볼 땐 그 알루라는 놈, 분명 네가 가짜라는 걸 확인해서 돌아올 것 같은데.”
“맞아, 아마 그렇게 될 거야.”
바깥엔 알루가 상상하는 지플의 마법사들이 없다. 알루는 내내 그들이 자신을 어디서 지켜보는지 주의하다가, 결국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고 슬쩍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릴 것이다.
베라딘 지플의 생김새와, 그의 현 소재지를 알고 있을 만한 지인들에게. 진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걸 아는 놈이 제트한테 노예 호구 조사는 왜 시켰어? 우리야 도망치면 그만이지만, 저놈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아니, 노예들의 출신과 실명이 적힌 종이가 제트를 살릴 거야. 노예 명단을 지플 본가에 투서하고, 제국 소식지에도 살짝 흘려주면 테싱은 결국 끝장날 수밖에 없어. 우리가 가짜여도 말이야.”
여론이 움직이면 지플로서도 더 이상 이곳을 묵인할 수 없다.
직접 정예 마법사들을 파견해 노예들을 구출하고, 테싱을 깡그리 말살한 다음 썩을 대로 썩은 아킨을 바로잡기 시작할 터.
가문 말석들의 뇌물 가방보다 지플이란 이름의 빛나는 이미지를 우선해야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위선이 놈들을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진은 투서자의 이름을 제트로 적을 생각이다. 그래야 지플이 증인 보호를 해 줄 테니까.
물론 그 과정에 제트 또한 제국 수사 기관과 지플의 조사에 시달리겠지만, 생존 본능이 강한 인물이니 본인에게 유리한 증언만 뱉을 확률이 높다.
가령, ‘아킨에 베라딘 사칭범 같은 건 없었고, 나는 그저 노예 거래를 하는 테싱에게 환멸을 느껴 투서를 넣었다’라든가.
결코 제트가 예뻐서 챙겨 주는 건 아니다. 아직 두 살밖에 안 된 그의 어린 아들을 생각한 처사였다.
증인 보호가 시작되면 제트는 자연스레 뒷골목 생활을 청산하고, 이름 모를 한적한 땅에서 아들과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들 부자에겐 결코 나쁘지 않은 미래였다. 아니, 회귀 전을 떠올려 보아도 그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었다. 제트가 아니라 아이에게 말이다.
순하고 착하기 이를 데 없던 그 꼬마는,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뭐, 좋아. 상황이 네놈 가정대로 굴러간다고 치고. 그다음은?”
“다음은 뭐겠어. 알루가 돌아오기 전까지 공짜 쇼핑하다 튀어야지. 뒷일은 지플이 알아서 할 일이고. 너는 2층에서 쓸 만한 마법서를 골라. 나와 길리는 3층에서 아티팩트를 추릴 테니까.”
“와… 도련님. 혹시 앞으로도 우리 매번 이렇게 무모한 행동만 골라서 하는 건가요? 이 유모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네요.”
“칭찬으로 들을게, 길리. 시작하자고.”
루테로 마법 연방에서 아티팩트는 기본적으로 마법서보다 더 귀한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경매장에서 운 좋게 훌륭한 고대 마법서를 건지는 일은 종종 있어도, 고급 아티팩트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
3층 아티팩트 창고는 진이 보기에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줘도 안 가질 조악한 아티팩트 사이에,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반지 아티팩트, ‘마왕의 투구’를 찾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창고 구석의 해묵은 재고들 사이, 가장 작은 상자만 골라서 열어 본 덕이다.
‘이거다!’
질 낮은 은반지에 작은 루비가 박힌 형상.
환호를 억누르며 왼손 검지에 끼우자, 손가락을 타고 반지의 마력이 춤을 추는 게 느껴졌다.
그 마력은 일반적인 것과 달리 무형無形이다. 마치 수십 마리의 실뱀이 손가락을 휘감은 것 같았고, 서서히 이동한 마력들이 진의 머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완전히 스며들었다.
‘평범한 마법사들은 이 효과를 단지 극미한 마력 증진이라고만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이게 지금껏 별 볼 일 없는 물건 취급을 당한 거고.’
이제 진이 원할 때마다 머리로 스며든 마력이 칠흑처럼 검은 투구를 형성할 것이다.
이만한 아티팩트를 써 보지 못했거나, 진 정도의 마력 감응력이 없으면 한 번에 눈치 챌 수 없는 힘이었다.
‘투구 개방.’
화르륵!
시험 삼아 개방해 보니 순식간에 검은 마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력이 저 혼자 선과 면을 만들어 얼굴에 밀착되었다.
투구가 완성되기까지 채 1초가 필요하지 않다. 완성된 투구는 숨구멍과 눈만 드러날 뿐 얼굴을 완전히 가렸고, 목까지 이어지는 구조였다.
양 귀에서부터 날카롭고 얇은 멋스러운 뿔이 돋은 모양이다.
길리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기 전에 투구를 해제한 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반신반의했는데, 시작부터 이걸 구하게 될 줄이야.’
반지를 찾았으니 3층에서 시간을 버릴 필요가 없다.
“길리, 여기 아무래도 쓰레기밖에 없는 것 같아. 우리도 무라칸한테 가자.”
“으음, 마법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썩 눈에 띄는 게 없긴 하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환금성 좋아 보이는 장신구 아티팩트나 몇 개 챙기겠습니다.”
마법서 창고 쪽도 상황이 비슷했다. 혹시나 오 헨서크의 유산이 없을까 샅샅이 뒤졌지만, 제트가 노예들의 출신지와 본명을 모두 알아 올 때까지도 쓸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꼬마, 어차피 첸미의 마법서를 건졌으니 더 욕심 부릴 필요 없다. 슬슬 가자.”
알루가 떠나고 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시 경매장으로 올라오니 조직원들이 깍듯이 진 일행을 맞이했다.
“제트, 이제 그만 너는 가 봐라.”
“예이, 나리.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흐흐, 이 제트의 공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공은 무슨, 우릴 팔아먹으려고 했던 놈이.”
“아이고, 지나간 과거는 잊어 주십시오. 베라딘 님을 만난 덕에, 이 제트! 완전히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요.”
진이 싱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지나간 과거는 잊자고, 아킨의 거물 제트. 잠깐 귀 이리.”
“옛.”
제트가 귀를 바짝 붙이자, 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베라딘 지플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아들 데리고 부지런히 도망쳐. 이왕이면 비먼트 제국으로. 장담하지, 그렇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제트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