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30)
제 666화
162화. 스마리온 프로치(3)
약 오백 개의 오러 방해기.
지난 2년 6개월 동안 콰울은 방해기와 관련 아티팩트들의 성능을 한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판단했고, 그 결론이 도출되기까지는 수많은 테스트들이 있었다.
현재까지 오백 개의 방해기를 견뎌낸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오백까지 갈 것도 없이, 발카스나 퀴칸텔조차 이백 이상의 방해기를 감당하면서는 제대로 오러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진은 방해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방해기가 개방되자마자, 어마어마한 오러를 퍼뜨려 전장 외부에 대기 중인 전원에게 새로 보호막을 씌우기까지 한 것이다.
꼭 검황성전에서 론 하이란이 혼돈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던 것처럼.
‘방해기를 모두 무시하며 수백 명에게 개인 단위의 보호막을 부여하는 건, 단지 10성 이상의 기운을 가진 것만으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 괴물이 되어 돌아왔구나, 진.’
퀴칸텔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무라칸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그녀에게도 지금 진이 보여주는 무위는 충분히 충격적인 경지였다.
어떤 면에서는 진이 이미 그때의 무라칸보다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성장세라면 전투력마저 머잖아 무라칸에 닿을 텐데, 판단력과 통찰력은 이미 옛적부터 도저히 어린 인간의 것이 아니었으니.
프즈즈즛-!
별안간 전장에 시퍼런 광휘가 번졌다.
전투가 시작된 후 내내 진을 상회하던 스마리온의 기운이, 오러와 뇌기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이 몸을 한낱 짐승 정도로 취급하고 있구나. 싸움이 아니라 사냥이라는 것인가?]스마리온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동료들 쪽으로 검기를 쏘았다.
그러나 그 검기는 동료들의 보호막에 도달하기도 전에 허공에서 분해되는 모습이었다.
겹겹이 퍼진 진의 기운에 그대로 상쇄된 것이다.
“내게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오. 바깥에 있는 이들을 통해 날 위협하는 시도는 오히려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테니.”
눈을 부릅뜨는 스마리온.
이제 그에게선 초장에 보여준 여유가 보이지 않았고, 진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담담한 얼굴이었다.
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장 진을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동료들을 인질로 삼는 건, 그가 귀곡새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유효한 방법이었다.
진은 스마리온이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단지 시론, 혹은 그 같은 부류의 인간과 싸우는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말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스마리온이 마성에 저항한 결과일지도 모르지. 내가 도착할 때까지 동료들이 죽지 않은 것은.’
그에 대해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동료들이 무사한 게 스마리온이 마성에 저항한 결과든, 아니든. 그를 토벌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도 했다.
전자라 할지라도 마성 속에 남아 있는 스마리온의 마지막 인간성이 간절히 바란 결과일 테니까.
[내가 세상에 오랜만에 나온 터라 너를 너무 얕본 모양이구나.]스컥-!
진이 서 있던 자리에 잔상이 남았다. 동시에 스마리온의 쌍검이 또다시 부러졌고, 그는 품으로 파고드는 진의 검을 맨주먹으로 쳐냈다.
부딪힌 브라다만테와 스마리온의 주먹에서 굉음이 번졌다.
동료들은 형제수호자와 용화차단막, 시간의 권능과 각종 보호막 너머로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에 전율하고 있었다.
서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자, 스마리온의 몸에 빠른 속도로 잔상처가 늘어갔다.
진은 방해기가 펼쳐진 이후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락하고 있지 않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스마리온은 전법을 바꾸었다.
‘모든 공격이 무거워졌군. 시간을 끌면 이길 수 없으니, 어떻게든 한 번만 베려는 것인가.’
초일류들의 공방은 섬세하고 정확할 수밖에 없다.
스마리온이 귀신대장 시절에 얻은 무인으로서의 깨달음 대부분이 마성에 젖어 탁해진 상태라 할지라도, 그의 검엔 여전히 초월자 특유의 묘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마리온은 그 남은 묘리마저 스스로 깨부수는 중이다.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하자마자 동귀어진의 검을 택한 것이다.
[크하아악!]브라다만테가 스마리온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동시에 스마리온 또한 오른손에 쥔 검을 뻗어 진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칼날이 영기 갑옷을 관통해 진의 가슴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파고들었다.
그 칼날에는 스마리온이 쌓아온 수십 년간의 혼돈이 맺혀 있다.
세상 그 어떤 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한 기운이 순식간에 진의 몸으로 퍼졌다.
스마리온으로서는 당연히 진이 기겁하며 물러나리라 예상했다.
피를 토하고, 허리를 꺾으며 어떻게든 몸속에 들어선 혼돈을 방출하려 발버둥을 칠 줄 알았다.
하지만 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대로 스마리온의 어깨에 꽂힌 검을 폭파시켰다.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는 채로.
진은 명왕족이다. 이번 수련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형제라는 개념을 넘어, 체질적으로도 그들과 거의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
헬루람이 직접 사용하는 최초의 혼돈,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이 아닌 이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일반적인 혼돈’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거대하고 짙다고 할지라도.
[어이가 없군…….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마지막 남은 노림수가 통하지 않았다.
거리를 벌린 스마리온은 왼쪽 팔을 떨군 채 숨을 헐떡였다. 영기 갑옷을 뚫자마자 모든 기운을 집중시켰건만, 진은 다치기는커녕 지친 기색조차 없었다.
어떻게든 진만 처리한다면, 남은 힘이 1할 수준이어도 도망쳐서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싸움은 이미 끝이 났다.
스마리온으로서는 진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을 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동료들을 인질로 잡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도주 또한 답이 없었다.
“당신은 나를 보고 나의 아버지를 찾았었소.”
스마리온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진.
스마리온은 발악하며 검기를 뿌렸으나, 진은 전부 가볍게 흘리거나 쳐내는 모습으로 격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귀신대장 시절의 당신은 분명 지금보다도 훨씬 강했을 테지만, 아버지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을 테지.”
귀신대장 스마리온 프로치가 마성에 젖은 지금보다 강했다는 건, 어디까지나 진이기에 가능한 평가였다.
진 정도의 초월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절대적인 평정을 대신해 마성을 내면에 가득 채우고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힘은 훨씬 더 커진다고 할지라도.
“그런데 어째서 시론 룬칸델, 나의 아버지께서. 어째서 그 시절에 당신을 살려두었는지 궁금하더군.”
-아마 주군께선 제 아비가 시론 경과 겨룬 적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실 겁니다.
-제 아버지와 전대 귀신대장이……?
-저도 직접 보진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죠. 다만 그 싸움은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결국 승리는 시론 경의 몫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제 아비의 목은 취하지 않았다더군요.
비록 귀신대장 스마리온이 그때의 시론과 ‘하루’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는 하나 마성이 통제되지 않았고, 싸움에서 패한 이후에도 귀신대는 룬칸델에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그런데 시론은 오히려 종종 귀곡새성을 찾아 스마리온의 안부를 살피기까지 했다.
“당신과 검을 섞다 보니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어렴풋이 짐작 가는 바가 생겼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아버지는 당신이 혼돈에 저항하고 있는 사실을 존중했을 것이오.”
혼돈을 향한 저항과 그에 대한 존중.
생각해보면 진과 스마리온의 싸움은 처음부터 이상한 지점이 많았다.
스마리온은 진이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봉인을 언제든 열고 나올 수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스마리온은 진이 오기 전까지는, 언제든 자신을 에워싼 인간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 티칸의 강자 대부분이 대기하고 있었어도 그들은 스마리온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스마리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시론 같은 자를 기다렸다고 말하면서.
몇 번쯤 스마리온의 혼돈이 폭발하며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티칸 측에 결정적인 피해는 없었다.
스마리온은 진이 나타난 다음에야 일대에 마구잡이로 퍼져 있던 자신의 모든 혼돈과 살의를 그에게 집중시켰다.
진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해도 스마리온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단 하나의 가정, ‘스마리온이 사람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마성에 저항했다’는 전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당신이 내가 오기 전까지 혼돈에 저항했다고 판단하기로 하였소. 내내 당신의 검이 이토록 무뎠던 것도, 프로치 남매와 내 사람들이 죽지 않은 것도 모두 그 덕분일 것이오.”
말하자면, 진은 스마리온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자마자 저항의 마지막 끈을 놓았으리라 추정했다.
[시론의 핏줄이라 그런가, 오만한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그러니 싸움을 끝내기 전에 경의를 표하고 싶소.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혼돈의 괴물이 아니라, 어제까지 혼돈으로부터 홀로 귀곡새성을 수성했던 인간 스마리온 프로치에게.”
후우욱……!
별안간 전장을 뒤덮고 있던 오러와 뇌기가 사라졌다.
그것들이 묶어두고 있던 스마리온의 탁기 또한 함께 자취를 감췄다.
힘들이 뒤섞여 어지럽던 전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다시 그 공간들을 채우기 시작한 것은 바로 진의 영기였다.
그 속에서 혼돈이 몇 번쯤 송곳처럼 솟구쳤으나, 바다에 던져진 돌처럼 맥없이 영기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이었다.
[빌어먹을…….]걸음을 멈춘 진이 스마리온에게 브라다만테를 겨눴다.
영검 궁극기를 펼칠 필요는 없었다.
죽은 사람의 눈을 감겨주듯 부드럽게, 브라다만테가 스마리온의 가슴을 관통했다.
스마리온은 한 차례 움찔하며 칼날을 붙잡았고, 진은 가만히 꺼져가는 그의 붉은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스마리온의 눈동자는, 자신을 찌른 진이 아니라 영기로 물든 저 너머의 어둠을 향하고 있었다.
광기와 혼돈으로 얼룩진 삶 속에서, 그나마 뜨끈했던 기억이라고는 라타와 페이를 안았던 때뿐이었다. 그조차 결국 서로에게 학대와 폭력의 세월이 되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스마리온이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감상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진의 예상대로 그가 도착한 순간 스마리온은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의 의지를 잃었다.
단지 스마리온이 자식들에게 시선을 둔 것은 그저 우연, 혹은 인간 스마리온의 사후경직 같은 것이었다.
다만 진의 눈에는, 그것이 스마리온이 혼돈에 저항해온 일의 운명적인 결과처럼 보였다.
“잘 가시오, 스마리온 경.”
이윽고 쓰러진 스마리온은 입자가 되어 전장을 가득 채운 영기 사이로 흩어졌고, 진은 잠시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묵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