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35)
제 666화
163화. 가문 복귀(5)
태양과 청화로 빛나던 검의 정원이 한순간에 어둑해졌다.
혼돈이 자아내는 특유의 기형적인 어둠, 진은 미간을 좁히며 검게 물든 하늘과 검의 정원을 쳐다보았다.
곳곳에 붉게 빛나는 눈동자들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모두 진과 대치하던 기사들의 시선이었다.
‘어둠이 짙어지자마자 기사들이 풍기는 기운이 강해졌다…… 예언자가 검의 정원에 산재해 있던 혼돈을 증폭시킨 결과인가.’
앞에 있던 예언자와 로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진은 혼기가 증폭된 이유가 두 사람이 모종의 수단을 사용한 것이라 짐작했다. 예언자가 로사의 힘을 매개로 술수를 부렸으리라고 말이다.
‘아니면 가주 대행은 외부 공격 방어를 대비하기 위해 움직인 것인가?’
킨젤로와 지플.
진은 여전히 두 세력이 이번 싸움의 양상을 지켜보며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타당한 판단이나, 나를 더 견제하지 않고 간 건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부 공격 견제를 위해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
진은 로사가 지금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또한 그녀가 지금껏 행한 모든 선택들까지도.
어디선가 계속해서 새로운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몸을 낮추고 있다가 먹이를 보고 우글우글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벌레들처럼, 그 먹이에는 감당할 수 없는 독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벌써 그 수는 어림잡아 천을 넘어섰고, 계속 이 속도로 증식된다면 한 시간 이내에 만에 다다를 터.
그 모든 기사는 하나하나가 8성 이상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래 봤자 그 힘에 마땅한 격조차 없는 전투 인형일 뿐.’
진에게는 그들이 인세로 복귀한 첫날 마주한 미트라 대사막의 괴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진의 기준이었다. 혼돈에 물든 기사들은 분명 한 무리만 있어도 어지간한 왕국은 하루 이틀 내에 없앨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긴장하며 상대해야 할 것들은 저 중 몇 되지 않는 진짜배기들. 혼돈에 물들고도 격을 잃지 않은 배신자들뿐이다.’
화아아악……!
업화의 불길이 한층 더 짙어졌다.
“가문의 지향점은 패도지, 패륜과 패악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그 지경이 되도록 모를 수가 있었단 말이냐…….”
순간적으로 청화가 진의 위치를 감췄다. 타점을 잃은 시커먼 검기들이 청화의 장벽을 허망하게 두들겨댔다.
룬칸델 제5비기
광속 찌르기- 명왕
동시에 쏟아진 다섯 줄기의 광속 찌르기가 전장을 조각내었다.
선두 대열에 서 있던 기사들의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그 뒤로 퍼진 후폭풍에 혼돈이 한 무더기씩 지워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기사들이 반응하며 무너진 대열을 새로 채우기도 전에, 진은 이미 가운데로 펼친 광속 찌르기가 도달한 지점에 닿아 있었다.
그 자리는 토나 형제를 비롯해 끝까지 혼돈에 저항하던 이들이 서 있는 위치였다.
또한 진이 자리를 잡자마자 근처에 있던 기사들은 바람에 휩쓸린 먼지처럼, 브라다만테에 베이고 흩어져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 어! 막내야!”
“뒤, 뒤!”
토나 형제는 활로를 열어주러 온 진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으나, 일단 다급히 뒤를 보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등 뒤로 흑기사 한 사람이 검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달려들어 자신 대신 몸을 대려는 토나 형제를 끌어안았다.
“형님들, 고생 많았어…….”
형제들이 상봉한 순간, 후방을 덮친 흑기사의 검은 진에게 닿지 못했다.
업화가 그의 몸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린 것이다.
텅, 죽은 흑기사의 투구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공허한 소리를 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지하에 갇혔던 자들을 처음 본 순간, 진은 그들 중 상당수가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라 예상했다.
토나 형제는 그렇기에 소리를 질렀다. 자신들은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려는 일을 하라고.
다행히도, 상황이 바뀌었다.
‘가주 대행이 없다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기사들을 살릴 수 있다.’
어째서 로사는 저들을 살려두었나. 또 어째서 저들을 죽이지 않고 자리를 비웠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예언자는 단지 마지막 배려라고 설명했다. 그것뿐이라면, 진은 더더욱 그녀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감히 룬칸델을 더럽힌 자가 룬칸델을 배려할 수는 없으므로.
물론 아직 저항자들을 구하는 일에 방해가 될 변수는 많았다.
로사가 다시 자신이 있는 전장으로 복귀할 수도 있고, 배신자들이 어디까지 증식할지도 알 수 없으며, 그중 진조차 감당키 어려운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으리라고는 결코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진은 그 안에 우선 이들부터 대피를 시켜야 했다.
“그런데, 당신이 이쪽에 남은 건 의외군요. 조르덴 원로장.”
조르덴 룬칸델.
진이 그와 눈을 맞췄다.
“……심지어 분위기를 보아하니 당신이 저항자들의 수장 격이었던 것 같군요.”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에도 배신자들은 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르덴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업화와 진을 번갈아 쳐다보며, 허허 웃음을 내뱉었다.
“잊고 있던 가문의 본질을 떠올렸을 뿐이다. 어떤 미친 괴물 같은 놈 덕분에.”
-모든 걸 잃으니 자신감을 되찾으신 겁니까? 잘도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십니다.
-잊고 있던 가문의 본질을 떠올렸을 뿐이오.
그건 조르덴이 과거 조슈아가 추락했을 때, 로사를 상대로도 똑같이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저항자들의 수장은 본래 내가 아니라 4기수였지.”
“디푸스 형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메리 누님은?”
“알 수 없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디푸스는 여전히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으나, 다른 저항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따로 수감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군.”
“원로장이 미안할 일은 아닙니다. 그럼, 확인된 생존자들은 지금 여기에 있는 이들이 전부입니까?”
“그래.”
저항했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조르덴의 몸에는 지하 감옥에서 겪은 고통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반송장처럼 거의 뼈만 남은 데다 전신을 좀먹은 혼돈의 기운까지.
그럼에도 진은 조르덴에게서 어떤 초월적인 격을 느꼈다. 육신이 아무리 약해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격을.
“원로장의 폐관 수련도 성공적이었던 모양이군요.”
“자네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군.”
“내가 혼자서 끝까지 탈출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배신자들의 발악이 겨우 이 정도일 것 같지는 않군요. 내가 활로를 뚫으면, 원로장이 책임지고 저들을 대피시키십시오. 티칸으로.”
“푸흐흐…… 흥미롭군. 우리는 늘 적대 관계였건만, 나를 믿겠다는 것인가?”
“아니, 늙은 뱀 같이 비열했던 흑검회장 조르덴이 아니라…… 가문의 기사 조르덴 룬칸델을 믿는 것입니다.”
조르덴의 눈동자가 커졌다.
“……받들도록 하지, 12기수.”
진이 조르덴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조르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은 결국 ‘투쟁’이라는 룬칸델의 가치를 끝내 함께 공유하게 된 것일 뿐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원한을 덮어두고 룬칸델을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이유로는.
“그런데, 12기수. 방금 네가 예상한 것처럼 로사 룬칸델과 예언자의 힘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아는 대로 다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배신자들이 강화된 것은 검의 정원에 맺힌 혼돈이 개방된 결과지. 지하 감옥에 갇힌 날, 우리도 이와 똑같은 상황을 겪었었다.”
당시 저항자들은 혼돈에 물든 배신자들을 상대로 꽤 분전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진만큼은 아니지만, 강화된 기사들을 수도 없이 베었던 것이다.
폐관 수련 후 경지에 이른 조르덴과 디푸스, 메리와 같은 무인들이 있던 덕이었다.
그날 그들을 완전히 절망시킨 것은 끝없이 부활하고 증식하는 혼돈의 기사, 그저 파괴력만 높을 뿐인 전투 인형들이 아니었다.
“……곧 영묘에 안치되었던 기사들이 나타날 것이네.”
“영묘에 있던 기사들이라고요?”
“우리가 직접 확인한 건 과거의 기수들과 흑기사들이다. 하지만 내가 예언자라면, 자네를 상대로는 그보다 더 많고 강한 존재들을 부를…….”
조르덴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별안간 진이 열 줄기의 광속 찌르기를 펼쳐 주변을 정리했다. 게다가 계속 증폭되고 있던 업화의 기운은, 지금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커져 가고만 있었다.
개미가 아무리 많아도 사자를 죽일 수는 없다.
진이 혼돈의 기사들을 사막의 괴물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처럼, 조르덴에게도 그 사실이 보였다.
“……텐데,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조르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진이 지금껏 자신이 가진 무위의 3할조차 되지 않는 힘을 사용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진이 주변을 정리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배신자들 사이, 진짜배기 중의 진짜배기가 본격적으로 기운을 드러내기 시작한 걸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흑기사대장, 스탐.
그가 서서히 진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십시오, 원로장.”
저항자들이 검의 정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혼돈에 젖은 땅이 어지러웠으나, 그들은 업화가 형성한 푸른 길을 이정표로 삼았다.
몰려드는 혼돈의 기사들을 상대로 저항자들은 검을 뻗을 필요조차 없었다. 방벽처럼 둘러진 업화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탈출전은 업화의 영역을 빠져나간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터였다.
“저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전 룬칸델 흑기사대장 스탐. 당신이라면 내 불에 충분히 흠을 낼 수 있을 텐데. 마지막 남은 양심 같은 것인가?”
스탐은 대답하지 않고 진을 노려보았다.
그로부터 막대한 오러와 혼돈이 방출되고 있었다.
“아니, 전 12기수 진 룬칸델. 자네를 상대하기 위해선 한 치의 힘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같잖은 양심 따위는 아니었군.”
진은 잠시 스탐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검황성전에서는 생명의 은인이자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던 룬칸델의 흑기사대장이, 이제는 적이 되어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온전히 내게 집중하기로 한 것은 분명 훌륭한 선택이다. 그런 판단력을 갖고도 로사 룬칸델의 패악을 저지하지 않은 것은 개탄스럽지만 말이다.”
“가문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는 정당성은,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의 몫일 터. 자네는 아직 로사 경이 틀렸는지 판단할 자격이 없어.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직은 자네가 틀렸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건 자네가 죽은 다음에야 확정할 수 있는 문제지.”
“검이 아니라 개소리에도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군…….”
스탐에게 돌진하려는 찰나.
진은 등 뒤에서부터 또 다른 진짜배기가 나타난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흑기사대장, 자네가 지금껏 날 기다린 이유를 알겠군. 순간 저놈이 현 가주라는 시론 룬칸델인 줄 알았단 말이지.]돌아보니 그는 진이 처음 보는 기사였으며, 영묘에서 막 빠져나온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