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40)
제 666화
164화. 흉신의 땅(3)
파들러는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칼날과 더불어 그의 등 뒤에서부터 폭풍처럼 청뇌가 쏟아졌다. 난데없이 파들러로부터 뇌기의 바다가 펼쳐진 것 같았다.
카이오가 재빠르게 신살을 연사해 몰려드는 청뇌를 받아쳤다. 혼돈에 물든 공간이 뒤섞인 푸른 힘들에 환해지고 있었다.
“다시 보니 후손이 아니라 그의 망령인 모양이군. 이름이, 파들러 룬칸델이었던가.”
[그 성은 이제 사용하지 않소.]신살이 꿰뚫은 청뇌 사이로 쇄도하는 파들러. 카이오는 침착하게 거리를 벌렸고, 진이 그들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파들러의 추격을 저지했다.
실루스를 가로막은 검은 브라다만테가 아니라 시그문드였다. 어느새 검을 바꾼 진의 온몸에 뇌기가 서려 있었다.
오러를 기반으로 한 뇌기와 마력에 토대를 둔 청뇌.
세 사람이 방출하는 뇌기는 근본이 전혀 다른데도 완전히 같은 종류처럼 보였다.
“무슨 연유로 망령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살의가 지나치게 짙구나. 비록 테마르에 대한 내 기억이 아주 온전치는 않지만 그는 널 아주 아끼는 것 같았는데.”
[나 또한 많은 걸 잊었소. 그러나 명왕족이 입이나 나불거리는 소인들이라 들은 것 같지는 않군. 긴말이 필요하오? 그저 무기나 맞대면 될 것을.]쾌속, 그리고 정확.
파들러의 검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그것이었다.
초월의 영역에 이른 그 검술의 유일한 단점은 오직 파괴력뿐이나, 그조차 청뇌가 더해져 무마하고 있었다.
카이오는 중장거리에서, 진은 근접해서 전투를 펼쳤다.
때문에 진과 파들러는 둘 다 카이오를 의식하며 싸웠다. 파들러는 카이오를 무너뜨려야 진을 공략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진은 카이오가 무사해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파들러와의 전투가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카이오가 지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신속하게 저 카이오라는 명왕족을 죽여야 진을 처리할 수 있다.’
탐색전은 필요치 않다.
세 사람은 초장부터 전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칼날과 화살, 뇌전이 부딪힐 때마다 지상과 하늘이 뒤집어질 듯 비명을 토했다.
썩은 바다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듯, 세 사람의 뇌기가 검의 정원에 가득한 혼돈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이 모습이, 천 년 전의 선조와 가장 나중에 난 후손의 싸움이 아니라…… 가문을 정화하는 찬란한 빛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진의 내면을 할퀴어댔다. 온몸을 찢을 듯이 찔러대는 청뇌보다도 그 사실이 더욱 진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천 년 전 인물인 만큼, 진은 파들러와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교감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관찰자로서 그의 기록 몇 가지를 엿본 게 전부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제까지 아주 가까이 어울린, 마음을 깊이 나눈 친우를 베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아아아!]파들러의 내면엔 그런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검을 섞기에 앞서 진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 말한 건 분명 진실이다.
그러나 진은 애초에 그의 눈에 멀고 먼 후손이 아니라 그 시절의 룬칸델로, 테마르의 분신으로 보이고 있었다.
너도 한번 모든 것을 잃어봐.
파들러의 어두운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진 형제!”
진의 목에서 핏줄기가 튀었다. 뮬타의 룬은 이제 완전히 부서져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설령 멀쩡했더라도 의미를 지니지는 못했을 것이다. 옛 십대기사를 상대로는.
상처가 깊지는 않다. 그러나 조금만 깊었어도 곧장 죽음에 이르렀을 터.
그 순간이 되어서야, 허공에 흩어지는 핏방울을 보고 나서야, 진은 싸움에 불필요한 감정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정, 연민, 부채감,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파들러는 그런 마음을 가진 채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저 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집념이 필요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진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육신은 인간을 벗어났으나 마음은 아닐 뿐이다. 파들러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가 옛 룬칸델을 위해 전부를 바쳤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그러나 파들러가 한때 어울렸던 마음이 그의 사라진 전부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듯.
한때 가문을 수호했던 마음이 망령이 된 그를 변호할 수는 없다.
사람 대 사람이었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진은 룬칸델의 차기 가주로서 파들러에게 맞서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가문을 파괴하려는 자에게 어수룩한 마음을 갖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파들러 경. 지금이라도 멈출 생각은 없습니까?”
[추호도.]“그렇다면 테마르의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현 룬칸델의 일원으로서 당신을 처단하겠습니다.”
진이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닫히는 찰나의 순간, 파들러를 향하던 마음도 함께 닫혔다.
그가 다시 눈을 뜨기 전, 파들러는 자신이 이룬 마검의 끝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청뇌검 오의, 룬칸델 마검 비기
업뢰業雷– 파들러 룬칸델
염제 사라 룬칸델의 업화와 쌍을 이루는 마검 비기.
진과 카이오는 한눈에 그 기술의 근간이 되는 검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업화와 업뢰가 마침내 완성된 것은, 테마르가 십대기사들에게 명왕검의 묘리를 전해준 다음이었으니까.
카이오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네놈도 평생 무극의 그림자를 쫓은 모양이로구나.”
카이오 역시 그 검에 닿기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 투신의 검을 닮기 위해.
“그러나 그건 원본이 아니라면,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업뢰에 맞서 카이오가 먼저 자신의 투왕 절기, ‘해일’을 개방했다.
파들러와 카이오,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뇌전지대는 같은 기술이라 불러도 될 만큼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정상을 오르려는 자들의 과정은 결국 비슷한 결과들을 낳기 마련이다.
[당신이 원본이라 말하고 싶은 것인가, 명왕족.]“아니. 적이지만 경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명왕에 속한 적 없던 자가, 나와 같은 위치에서 투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카이오와 파들러의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육체’였다.
뇌기, 명왕족을 상징하는 힘은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육체가 필요했다. 룬칸델의 결전기를 사용하려면 축복받은 육체가 필요한 것처럼.
“하지만 버틸 수 있겠나? 그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몸뚱어리로.”
파들러의 옛 동료들이 그를 약골이라 부르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검은 생명을 담보로 태생적 부족함을 가리고 있었다.
[어차피 한 번 죽은 몸,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카이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과 달리 파들러에게 그 어떤 특별한 감정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저 형제를 위해 싸우고자 왔더니 흡족할 만큼 강한 상대가 서 있어 즐거울 뿐.
해일과 업뢰가 포개지고 있었다. 여전히 진은 그 속에서 파들러가 카이오와 거리를 좁히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만 했다.
파들러의 기운이 최대한 많이 소모될 때까지 버티며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파들러는 카이오가 아니라 진을 위주로 압박을 시작했고, 카이오가 전력으로 진을 엄호하는 모양새였다.
때문에 카이오의 몸에 상처가 생겨나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와 같은 합공 형세를 유지했다면, 본격적으로 부상을 입기 시작한 쪽은 파들러였을 터였다.
‘효율적이지 않다.’
겉보기에는 분명 그랬다.
파들러로서는 짐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비효율적인 공세 전환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리라고.
그건 아마도, 지금 진의 광심장에서 빛나고 있는 저 기운이리라고 말이다.
물론 그조차 흠칫할 만큼 광대한 기운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게 전부였다.
카이오가 암시한 것처럼, 저 힘이 ‘원본’으로 승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진은 창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신조차 끝내 밟아보지 못한 정상의 땅을, 천 년 전 오직 테마르만이 닿았다고 여겨진 그 영역을, 진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일과 업뢰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카이오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보여줘라, 진. 형제의 망령된 선조에게.”
진짜 정상의 검을.
카이오가 뒷말을 이었고, 진의 광심장에 맺힌 기운이 사방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명왕검 투신기 제10검
명왕군림검 – 개開
일순, 해일과 업뢰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더 거대한 야수가 나타났을 때, 싸우던 맹수들이 주춤하는 것처럼.
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명왕군림검의 제10검 2형 전戰, 다음 장을 개방했다.
명왕에 맞서는 자들을 말살하겠다는 무거운 의지가 시그문드에 깃들고 있었다.
카이오는 자랑스러운 듯 숨을 골랐고, 파들러는 잠시 굳은 몸으로 진을 응시했다.
그는 진으로부터 이제 테마르 그 자체가 보였고, 이내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자신의 앞에 선 남자는 테마르도, 옛 룬칸델의 일원도 아니다.
진 룬칸델이었다. 자신처럼 천 년 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절세의 룬칸델.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파들러는 그 모습에 감화되지도,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를 없애고 룬칸델의 파멸을 지켜보겠다는 원념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진의 의지를 따라 모여든 검은 구름이 상공을 짓누르고 있는 람을 가렸다.
로사와 예언자, 휴페스터를 공략 중인 거대 세력들도 모두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의 몸과 영혼이 결국 지상과 지옥, 혼돈의 어느 심연에조차 남지 못하더라도. 내 이름과 내가 잃은 것들이 다시금 세상에서 지워지더라도.]다시 요동치기 시작한 업뢰의 빛이 한층 더 찬란한 빛을 뿌렸다.
재개된 업뢰는, 파들러가 살아생전 펼쳤던 모든 검을 초월하고 있었다.
문득 파들러의 뇌리에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어느 날, 방금 내뱉은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나의 육신과 정신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결국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그 끝에 남은 것이 결국 절망과 악몽일 뿐일지라도. 나는 그대들과 함께 룬칸델을 지켜낼 것이오.
어째서인지, 진의 내면에서도 그 시절 파들러가 했던 말이 먼 메아리처럼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뇌기에 젖은 진의 눈동자에선 눈물이 타올랐고, 앞으로 나선 파들러의 눈동자는 끝없는 공허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