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43)
제 666화
164화. 흉신의 땅(6)
어찌 치명상을 모면하기는 했으나 탈라리스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내상이 도졌고, 내뱉는 숨에는 핏기가 서려 있었다.
시론에게 가장 많이 도전한 무인의 격, 그것이 없었다면 탈라리스는 벌써 광란에 온몸이 찢겼을 것이다.
“룬칸델의 주적이 검의 정원을 치고 있건만, 그걸 내버려 두고 굳이 탈라리스 님에게 오다니. 내게 그리 원한이 깊은지 몰랐군요.”
검의 정원과 칼론, 람을 보호하던 혼돈의 기운이 약해졌다.
그 혼기는 모조리 로사에게 수렴되었다.
달리 말하면 그 전부는 이제 로사 개인의 힘이 되었다는 뜻.
진은 그녀가 풍기는 거대한 혼기로부터, 검황성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었다.
로사는 진의 말이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너였어도 이리하지 않았겠느냐?]로사 룬칸델은 반드시 나보다 탈라리스 님을 먼저 처리하려 할 것이다.
처음 탈라리스의 냉기가 희미하게 느껴진 순간, 진은 곧장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확신할 이유가 없었다.
따져볼 것도 없이 탈라리스 한 사람을 처리하는 것보다, 지플과 킨젤로의 거대 세력을 계속 압도하는 쪽이 로사의 입장에선 훨씬 효율적이었다.
람과 도시의 혼기가 옅어진 후 각 세력의 포격은 이전보다 수월하게 검의 정원 상공을 뚫고 있었다.
진이 대답하지 않자 로사는 미소를 지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너는 나를 많이 닮았다.]타앙-!
신살에서 폭음이 울렸다.
로사는 카이오의 화살을 가볍게 쳐냈다.
초장거리 지원을 하느라 기력이 떨어졌다곤 하나, 지치기 전의 진조차 그토록 쉽게 받을 수 있는 위력은 아니었다.
“닮기는 무엇이 닮았다는 것인가? 위대한 명왕족의 십삼투왕을 너 같은 괴물과 동일시하지 마라.”
[명왕족,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군. 그런데 첫인상이 썩 아쉽구나. 저 아이를 구하고 싶어 나를 자극하는 꼴이라니…… 막내가 종종 보여준 명왕검은 이런 비굴한 느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패륜을 통해 얻은 힘, 그걸 믿고 이리도 오만한 것이냐.”
[패륜이라…… 나는 그런 애매모호한 인간적인 기준을 경계해본 적이 없다. 이 몸이 혼돈이 되기 이전에도.]스거걱-!
별안간 한 줄기의 검은 칼날이 카이오의 등을 쓸고 지나갔다. 카이오의 반응이 늦었다면 그대로 몸이 갈라졌을 것이다.
로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카이오를 벤 건 로사의 의지를 따라 그의 발밑에 형성된 혼돈의 칼날이었다.
어느새, 그런 검이 수십 자루나 형성되어 있었다. 무참히 썰린 신살의 빛기둥들이 빛나는 잔흔을 남겼다.
그 잔흔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검은 칼날들은 소용돌이치며 진과 카이오, 탈라리스를 노려댔다.
“진 형제! 난 신경 쓰지 말고 동료를 구해라!”
카이오가 산시를 난사해 혼돈의 검들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진은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공격에 맞춰 펼친 탈라리스와 모트의 냉기 보호막이 너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반면 로사의 칼날은 눈을 껌뻑일 때마다 그 수가 늘어갔다. 백, 이백, 삼백…… 로사가 처음으로 움직인 건, 진이 탈라리스에게 돌진한 순간이었다.
[가문의 가치는 패륜과 패악이 아닌 패도. 네가 자주 하던 말이지. 아까도 그랬고. 종종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더구나.]광란에 가로막힌 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룬칸델은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정복과 약탈을 즐겨왔다. 이 또한 누군가에겐 패륜일 터. 너의 기준은 무엇이냐?]진은 대답을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검가에서 태어난 인간이자 마검의 적자이지, 혼돈의 노리개가 아닙니다. 단지 그뿐.”
진은 한 걸음 물러나며 광란을 받아쳤다.
단 한 번의 공방에서 느낀 로사의 힘은, 명백히 자신을 상회하고 있었다.
앞선 전투에서 피로와 부상이 축적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게다가 부딪힌 검을 타고 육체를 파고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독처럼, 혼돈이 몸을……!’
혼돈, 인간을 마성에 빠뜨리는 어두운 힘.
로사는 그 자체로 거대한 혼돈이자, 가장 강력한 감염원이다. 평범한 무인들은 그녀의 근처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혼돈에 잠식될 것이다.
어쩌면 9성 이상의 무인들조차 감당하지 못할 것이며, 초인들마저 그녀와 오랜 시간 직접 전투를 펼치는 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단지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투신혈과 광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로사로부터 전해지는 혼돈을 밀어내는 게 느껴졌다.
‘처음 검의 정원에서 마주했을 땐 없던 현상이다……. 나와 이야기가 틀어진 후 예언자로부터 무언가를 더 받아들인 결과인가, 아니면 감추고 있던 건가.’
어느 쪽이든, 로사의 전염력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현재, 인세에서 로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인간은 오직 진뿐이라는 사실.
[명왕족은 혼기에 면역이라던 일리나의 말이 사실이었군. 그렇다면 너 또한 인간을 벗어난 셈이로구나.]“계속 당신과 나를 같은 선상에 두고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인데, 이유가 뭡니까? 선을 넘은 게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가짜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 겁니까?”
[너도 자식을, 만족스러운 자식을 낳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자식이 나를 닮은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되는지. 나 또한 단지 그뿐이지.]“완전히 미쳤군요. 혼돈에 굴복한 주제에 같은 취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글쎄, 그랬다면 네가 오기 전에 룬칸델은 끝장이 났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계속 이 어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광기, 혹은 마성.
미쳤다고 말하긴 했으나, 로사는 운명을 거스르기 직전의 론이나 귀곡새성의 스마리온과는 달랐다.
이만한 혼돈을 받아들였다면 진즉 이성을 잃었어야 하는데, 진은 로사로부터 전혀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로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그간 진의 기억 속 가주 대행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던 것이다. 특히 즐거움이나 만족감 같은 감정은 더욱.
지금의 로사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또한 슬퍼 보이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자식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일에.
진의 시선이 로사의 후방에 닿았다. 탈라리스와 모트가 혼돈의 칼날 속을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모습이 보였다.
[비궁주를 구하고 싶더냐? 하긴, 너는 나보다 그녀를 더 어미처럼 여겨왔을 테지.]광란의 검첨이 진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가까스로 브라다만테로 올려쳐 막아냈으나, 진은 일순 중심을 잃고 뒤쪽으로 튕겨졌다.
질투가 나는구나…….
그렇게 말한 로사는 후속타를 막으려는 진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 탈라리스를 쳐다보았다.
잠시 탈라리스에 대한 생각들이 로사의 뇌리에 들끓었다. 돌이켜보면, 지금뿐만이 아니라 자신은 늘 비궁주를 질투해온 것 같았다.
시론은 늘 자신보다 그녀와 더욱 가까웠었다.
[첫째가 너를 구한 검으로 비궁주의 목숨을 취하면 어떨까 싶군. 그리하면, 네게 조금은 상처가 되겠느냐?]유성우.
룬칸델의 제3결전기이자, 처음으로 진을 구한 혈육의 검. 높이 추켜들어진 광란이 검은 유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날 섬을 통째로 지워버린 루나의 심검 적월을 상회하는 위력이, 지상을 강타하기도 전에 온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검은 유성은 쏟아지지 못한 채 한동안 하늘에 묶여 있었다.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영검 궁극기 제1식
첫 번째 밤
감각 차단, 영검 궁극기의 첫 번째 징조.
일순 로사의 시야가 닫혔다.
그러나 3초가 지나기도 전에.
로사는 닫혔던 감각을 모두 되찾으며 다시금 유성우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유성우를 붙잡고 있는 첫 번째 밤의 영기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어 진과 로사가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밤의 영기와 유성우의 혼기가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현재 완성한 최고의 검인가?]전장 일대를 잠식한 듯 우글거리던 천여 개의 검은 칼날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로사가 유성우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한 결과였다.
덕분에 카이오와 탈라리스, 모트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동할 수 없었다. 움직임을 멈춘 칼날들이 감옥의 창살처럼 그들을 가로막았다.
카이오에겐 그걸 부수는 시도를 할 만한 여력이 남아 있었으나, 탈라리스 쪽은 아니었다.
모트가 짧은 차원 이동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지친 데다 이계설원의 차원문을 가로막는 혼기가 너무 짙었다.
전장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유성우와 첫 번째 밤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진의 궁극기가 밀리는 형세였다. 겹겹이 펼쳐진 영기의 장막이, 유성우에 소리 없이 찢겨가고 있었다.
로사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아주…… 훌륭한 검이군.]그녀가 실망한 이유는 진의 궁극기가 우습기 때문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와 달리, 로사는 자신의 유성우가 첫 번째 밤에 완벽히 가로막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검으로 탈라리스를 죽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운 것이다.
크드드득……!
로사가 말을 끝내자마자, 유성우가 첫 번째 밤 속으로 흡수되듯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진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았고, 로사도 조금은 타격을 받은 듯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하나 그게 전부였다. 로사는 곧장 다음 검을 펼쳐 탈라리스를 끝장낼 것이다.
진에겐, 이제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진은 앞으로 몸을 던졌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명왕군림검을 다시 펼치면……!’
그다음은?
거기까진 생각할 수 없었다. 탈라리스를 죽게 둬서는 안 된다는 일념만이 진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한순간에 마음이 이성을 완전히 지배한 것이다.
탈라리스는 진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동료란, 진에게 늘 그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카이오도 정확히 그때 혼돈의 칼날들을 부수며 진과 함께 나아갔고, 탈라리스는 소리를 내지르려 했다. 오지 말라고, 도망쳐서 살아남으라고.
그녀도 진이 오기 전에 로사의 검을 받아보았다. 그렇기에 진이 로사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이 여기서 자신을 구하려다 죽으면, 세상은 더 이상 로사에 맞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탈라리스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전.
진은, 자신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탈라리스의 머리 위로, 한 용이 하강하고 있었다.
구원처럼 검은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꼬마.]흑룡 무라칸.
진의 수호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