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57)
제 666화
167화. 테마르의 다섯 번째 무덤(2)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룬티아…… 누님?”
설마 여기서 발레리아가 아니라 룬티아를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침내 발레리아의 흔적을 찾은 것에서 비롯된 두근거림이, 순식간에 썩은 기름처럼 불쾌한 불안으로 변했다.
“어째서 누님이 여기에 계십니까?”
룬티아의 애검, 세검 샤를이 검은 혼돈을 머금은 채 번들거리고 있었다. 진은 몇 초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둘째 누이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룬티아 또한 한동안 말없이 진을 바라보았다. 검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읽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룬티아는 진의 감정을 뚜렷하게 알아보고 있었다.
[싫은 모양이구나, 지금 네 앞에 내가 나타난 것이.]진은 룬티아의 말을 되뇌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전 생애를 통틀어 몇 번 경험하지 못한, 아주 낯설고 끔찍한 고통 한 가지가 진의 내면을 할퀴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
바로 그런 고통이.
룬티아가 혼돈에 물들었으리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했던 바다. 다만 진은 완전 잠식만은 끝나지 않았기를 바랐었다.
다시 고개를 든 진은 누이의 이마에 난 검은 뿔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나는 누님을 믿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그 정도의 신뢰가 존재했더냐?]룬티아는 형제들 중 그 누구와도 가까이 지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오직 루나만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어 왔다. 언니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 끝내 패배해도 좋으니 평생 언니를 좇고 싶었다.
그래서 루나가 열아홉에 차기 가주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은 후부터, 룬티아의 세상은 그저 의미 없는 무채색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런 룬티아가 다시 가슴 속에 불을 품기 시작한 순간은, 바로 1799년.
진이 가주 선언을 한 바로 그날이었다.
당시 진과 룬티아 사이에 있던 사건은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는 행위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싸웠을 뿐이니까.
게다가 사건 이후 두 사람은 달리 긴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나 또한, 가주가 될 것이다.
-머저리만 있는 줄 알았더니, 진짜가 있기는 했군요. 잘해 봅시다, 누님.
그게 전부였으나, 진은 그 순간 자신과 룬티아 사이에 어떤 깊은 유대감이 형성된 것을 느꼈었다.
평생을 남처럼 지내왔으나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비로소 같은 꿈을 가진 형제가 되었다는 마음이었다.
룬티아 또한, 그랬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진은 세 번째 라프라로사 행을 가기 전, 룬티아라면 예언자를 잘 견제해 주리라 믿기도 했었다.
“로사와 예언자에게 약점이라도 잡혔던 겁니까?”
룬티아가 자의로 혼돈을 받아들였을 리는 없다. 진은 로사와 예언자의 간계가 그녀를 꺾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 말에 룬티아는 초승달처럼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뿔을 매만졌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제가 누님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하하…… 내가 알던 12기수가 맞나 싶군. 물러 터진 소리를 하는구나. 정신 차려라, 진 룬칸델. 내 막냇동생아. 나는 지금 너의 적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다.]룬티아가 천천히 세검 샤를을 들어 올려 진을 겨누었다.
[네가 할 일은 오직 맞서 싸우는 것뿐이라는 뜻이지.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순간을 기다려 오기도 하였다. 너와 다시 승부를 낼 수 있는 순간을.]내내 읽기 힘들었던 룬티아의 검은 눈동자가 희번덕이는 살기를 품고 있었다.
심마의 광기.
이성이 있는 듯 대화가 가능하기는 했으나, 룬티아는 완벽하게 혼돈에 잠식되어 있다. 깊고 맹렬한 살의가 샤를의 검첨을 타고 벌써 진을 찔러 대고 있었다.
진은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슬픔이나 괴로움, 어떤 죄책감 같은 것에 휘둘리는 채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룬티아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끝을 내는 게 옳았다. 아마 룬티아에게 당했을 발레리아를 구하기 위해서도.
차츰, 진의 눈동자가 단단해졌다. 룬티아는 그런 진의 모습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런데 막내, 너…… 꽤 지친 상태로구나.]처엉-!
별안간 룬티아가 검을 내질렀고, 진은 옆으로 보법을 밟았다.
가주 선언 당시, 일격부터 진을 죽음의 위협에 빠뜨렸던 찌르기다. 룬티아의 검은 그때보다도 훨씬 높은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또 불가사의할 만큼 강해졌어. 덕분에 내 지루한 운명이 조금이나마 더 즐거워지겠군. 과거 너와 처음 싸웠을 때, 나 역시 많은 제한을 가진 채였다. 네가 지친 채 내게 도달한 건 그때의 값이라고 생각하마.]룬티아는 혼돈에 물들고도 초월에 다다른 무인의 격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 스탐이나 파들러, 로사 같은 인물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시작 양상은 룬티아가 진을 몰아붙이는 형세였다. 그녀의 검기가 어두운 아공간 곳곳에 균열과 날카로운 잔상을 남기며 진을 에워싸고 있었다.
‘강하다. 라이오넬 룬칸델보다도.’
심지어 어떤 면에선 라이오넬과 스탐이 협공을 했을 때보다도 더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힘의 크기나 격을 넘어, 그녀가 이 아공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샤를의 공격 궤도는 직선이 아니다. 샤를이 움직일 때마다 아공간이 뒤틀리며 룬티아의 의지를 따라 마구잡이로 궤도를 바꾸고 있었다.
룬티아가 아니라 아공간 전체를 상대하고 있는 셈, 진은 그 사실을 빠르게 알아보았다.
‘그래서 처음 이곳으로 들어섰을 때, 다른 무덤과 달리 영기가 나를 인도하는 듯한 감각이 없던 건가. 룬티아 누님이 무덤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너댓쯤 생긴 잔상처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나마 진이기에 그 정도 상처만 입고 룬티아와 아공간의 특성을 알아본 것이었다.
프즈즛!
시그문드에서 번진 한 줄기 푸른 뇌전이 몰려드는 혼돈의 검기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가문의 비기를 펼쳤다.
뇌기와 혼돈, 각자의 능력으로 강화시킨 제5비기 광속 찌르기. 맞서 뻗어진 두 개의 검기가 서로의 가슴팍을 꿰뚫는 듯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리 서로의 검을 예측한 채였고, 그에 맞춰 각자의 반대편으로 보법을 밟고 있었다.
일순 아공간 전체가 절반으로 나뉘었다. 서로를 지나쳐 뻗어진 두 개의 검기가 아공간의 저 끝을 허망하게 두들겼다.
룬티아는 잠시 그 끝을 쳐다보았고, 진은 쳐다보지 않았다.
[기억하느냐? 네 뇌기를 처음 마주한 날, 나는 너로부터 수많은 기사들을 지켰었다. 지금도 너로부터 가문을 지키는 역할이 되었구나.]“……여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뻔한 이야기지 않느냐?]“예언자가 모종의 술수를 부렸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은 본래 나를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어째서 솔더렛의 아공간이 마치 누님을 주인인 듯 대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그 또한 마찬가지다. 한데, 네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따로 있을 것 같구나.]“히스터는 누님을 꺾은 다음에 제가 알아서 찾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그 붉은 머리의 여자가 살아 있으리라 짐작하는군.]“공간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건 아닌 모양이군요, 룬티아 누님. 아공간 내에 히스터의 마법이 남아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까?”
그 말에 룬티아가 미간을 좁혔다.
[호오, 그게 사실이라면 꽤 흥미롭구나. 마법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술자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 그 여자가 이곳 어딘가에 숨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당연히 죽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을 뿐.]“그건 누님이 히스터에게 큰 부상을 입혔기 때문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룬티아.
[그랬지. 그 여자가 살아 있다면, 아마 혼돈을 받아들인 결과일 가능성이 높겠구나. 그 정도 재생력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진은 그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누님. 그랬다면 내가 본 마법에 이미 혼기가 묻어났어야 할 테니까. 어쨌거나 감사하군요. 덕분에 히스터가 생존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나를 꺾고 그 여자를 구하는 것이더냐?]그렇게 말한 룬티아는 처음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나 루나 언니는 늘 그런 식이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당연하게 상대를 꺾고 원하는 걸 쟁취할 수 있다고 착각한단 말이다.]“실제로 항상 그래 왔습니다. 이번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겁니다.”
룬티아의 분노에 맞춰 아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은 그녀가 갑자기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유가 단지 광기에 의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평정을 되찾기로 한 이후부터.
룬티아가 내뱉는 말들은 진에게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았다. 어떤 말도 ‘진짜 룬티아 룬칸델’이 하는 것이 아니니까.
론 하이란조차 글리엑의 심연 속에서 진을 원망했었다.
“곧 멈춰 드리겠습니다, 누님을 잠식한 광기를.”
진의 광심장에 오러가 모여들었다.
‘전투를 오래 끄는 건 불리하다.’
애초에 진은 잔뜩 지친 채로 전투를 시작한 반면 룬티아는 완벽한 상태였다. 또한 그녀는 아공간 전체를 자신의 기운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상처를 입어도 혼기를 통해 곧장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단번에 끝내야 했다.
‘아공간을 빠져나간 후에 있을 전투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그 문제는 지플과 킨젤로 쪽을 믿어 보는 쪽이 좋겠군.’
어설프게 힘을 아끼려다간 중상을 피할 수 없을 터.
[가주 선언을 한 그날의 검을 펼치려고 하는구나…….]“그때와 달리, 지금은 누님이 지킬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처럼, 이번에도 누님은 이 검을 받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진이 뒷말을 이으며 명왕군림검을 펼치기 시작하자, 룬티아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