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59)
제 666화
167화. 테마르의 다섯 번째 무덤(4)
푸욱-!
두 사람의 얼굴로 혼돈에 물든 검은 피가 튀었다.
내내 육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면서도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던 룬티아가,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큽…….]룬티아의 뒤편으로 언뜻언뜻 실처럼 끊어진 연결점들이 보였다.
연결점들은 다시 룬티아에게 수렴하려 했으나 명왕군림검이 남긴 뇌흔에 가로막히는 모습이었다.
아공간의 균열들 사이에서 검은 비처럼 혼돈의 입자가 떨어지고 있었다.
속으로 동질감을 느끼던 형제를 찔렀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나 무언가 부서진 듯 가슴 속이 아릿했다.
[내가…… 졌군.]룬티아의 쉰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진은 그녀의 가슴을 찌른 검을 비틀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마지막으로 누이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죽음을 앞에 둔 룬티아가, 조금이라도 광기를 떨쳐낼 수 있다면.
“룬티아 누님.”
[후우.]“정신이 좀 드십니까?”
[막내…….]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룬티아의 이성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브라다만테의 칼날을 붙잡는 룬티아.
칼날과 진을 번갈아 쳐다보는 룬티아의 눈동자는, 혼돈에 물든 검은빛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밀려드는 충격적인 감정들에, 룬티아는 한 차례 질끈 눈을 감았다.
[내가 네게 너무 모진 일을 했구나…….]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제 몸에서 칼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반격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진은 조심스럽게 그녀가 몸에서 검을 빼내는 걸 도와주었다.
그녀가 움직이거나 힘을 쓸 때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살점들이 떨어졌다.
이내 검이 뽑히자 룬티아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진은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를 수가 없었다.
[네가 나를 찌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혼돈에 완전히 잠식된 인간이 이성을 찾는 걸, 진은 이제껏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론 하이란이 창성에 들어섰을 때였는데, 룬티아가 이성을 되찾은 건 그와 이유가 다른 듯했다.
그녀는 론처럼 창성을 이룬 게 아니었다.
[이보다 더 나은 수가 없기도 했을 것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어두운 공간과 혼돈에 지배된 채 무의미한 세월을 견뎌야 했을 테니.]“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그 말에 룬티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가족 때문이지.]가족.
그녀가 말하는 가족이 로사나 다른 형제들을 말하는 바는 아닐 터였다.
룬칸델이 아주 소중한 것을 말하듯 가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건 대개 혈육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뜻했다.
부모보다 더 진짜 부모 같은 역할을 해주는 유모라든가, 성장 과정에 형성된 동료들이라든가, 마음을 준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무척이나 특수한 경우로 가까워진 형제라든가.
그래서 진은 즉시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리샴 유모. 로사와 예언자가 리샴을 인질로 잡은 겁니까?”
리샴, 그녀는 룬티아 룬칸델의 유모다.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이 룬티아에게 약점을 잡혔느냐고 물어본 것도, 처음부터 리샴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룬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모가 내게 부탁을 했어.]“리샴 유모가, 누님께 혼돈을 받아들여달라는 부탁을 했다고요……?”
진이 그간 보아온 룬칸델의 유모들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유모들에게 개인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철저히 맡은 자녀만을 위해 존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해가 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루나를 속여온 타이뮨 마리우스는 결국 조슈아의 개가 되었었으나, 그 본질은 결국 루나를 향한 비틀린 사랑이었다.
길리는 물론이고, 타이뮨조차도 자신의 아이에게 혼돈을 받아들이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 아는 한 리샴도 그런 사람이었다.
룬티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죽음, 혹은 그보다 더 혹독한 대가도 불사할 수 있는.
“리샴 유모가 이미 세뇌되어 있던 건 아닙니까?”
[아니, 유모는 멀쩡했어. 단지…….]룬티아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딸이 있었다더군.]“리샴 유모에게, 딸이.”
룬칸델의 유모는 자식을 가질 수 없다.
타이뮨이 고아원에서 육성한 양자들조차 언제든 쓰고 버릴 병기들이었을 뿐이다.
만일 그들이 타이뮨의 친자였다면, 룬칸델은 타이뮨을 유모로 선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리샴에게는 친자가 존재한다.
듣지 않아도, 진은 다음에 이어질 불쾌한 사정들을 알 것 같았다.
[내가 폭풍성에 있던 때, 유모가 1년쯤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그때 딸을 낳았었다고 했어…….]리샴은 본래 유모로서의 법도를 어긴 대가로 잔인한 대가를 치를 위기에 놓여 있었다.
막 낳은 친자를 비롯해 삼족, 삼족의 친인들까지 몰살당할 뻔한 것이다.
그러나 리샴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께서, 그 일을 직접 덮어주셨다더라.]당시 시론은 단 한 마디로 리샴의 죄를 덮어주고, 그녀의 친자와 삼족을 살려주었다.
시론의 시대에 유모가 가문의 법도를 어긴 것도, 그걸 덮어준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신 리샴은 낳은 이후 두 번 다시 딸과 삼족을 볼 수 없었고, 그들은 모두 휴페스터에서 추방되어 루테로 마법 연방의 어느 소도시로 터전을 옮겼다.
-……당시 가주께서 저를 용서해주신 이유는, 아마 아가씨 때문이었겠지요.
-나 때문이라고?
-아가씨께서는 어린 시절 저를 아주 아끼셨죠.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아버지라면,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이 의지와 투쟁심이 부족하다 여기셨을 거야. 그러니 유모와 유모의 핏줄들을 살려뒀을 없어.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아가씨. 그리고 저는 이제 늙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딸아이는 가족을 이룬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더군요.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하…….
-로사 경은, 이제 그 아이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주께서 직접 무마한 일인지라, 본래 로사 경조차 그 아이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셨다는데…… 일리나 아가씨가 찾아냈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일어나. 유모. 왜 이래.
-평생을 아가씨께 헌신해왔습니다. 청춘과 삶 전부를 바쳤습니다. 그러니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 이 못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어머니를 말려볼게. 일어나, 이러지 말고!
-그것만으로는 제 딸과 손주들이 살 수 없습니다…….
로사가 내민 조건은, 룬티아가 이 아공간의 주인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본래 이 아공간의 주인이었던 자를 대신해서.
룬티아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룬티아가 이러한 내용들을 설명하는 동안, 진은 가슴 속에 차오르는 로사에 대한 증오를 다스리느라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1년이라고 하더군. 딱 1년만 본래 이 아공간의 주인이었던 존재를 대신하면 된다고 하였다. 옛 십대기사 파들러 룬칸델, 그분이 본래 이곳의 주인이었어.]예언자가 파들러를 무덤에서 꺼냈다는 건 예상한 바였으나, 룬티아가 그녀를 대신하게 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빌어먹을…….”
[하지만 일리나의 능력을 통해 파들러 경을 대신하자마자, 나는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1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겠더군. 예언자에겐 또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아공간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으니.]그게 룬티아가 혼돈에 잠식되고도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 룬티아 룬칸델이 아니라, 아공간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아공간의 혼기가 소모된 만큼, 그녀를 잠식한 혼돈도 옅어지게 되었다.
그건 곧 아공간이 무너지는 순간 룬티아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도, 아공간은 실시간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혼돈의 검은 비를 떨구며.
진의 시선이 연결점에 닿았다.
“저것들을 다시 누님께 연결하면, 살 수 있는 겁니까?”
[그렇겠지, 아직 아공간 전체가 완전히 박살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난 그걸 별로 원하지 않는다, 막내. 이대로 끝나는 게 나을 것 같구나. 그나마 이성이 돌아왔고, 내가 나로 죽을 수 있을 때 말이다.]“누님은 여길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예언자는 누님을 파들러 경의 대체자로 만들 수 있을지언정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 어차피 나를 대신해 여기 있던 파들러 경을 전력으로 사용하는 게 목적이었을 텐데 말이다.]“저는 여길 들어올 수 있는 확실한 수단 한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누님이 살아만 계시면, 언젠가 누님을 구할 수 있을 때, 제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완전 잠식이나 누님 같은 경우를 치유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혼돈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것에 다시 연결되면, 난 다시 미치게 될 것이다.]“누님을 이렇게 잃고 싶지 않습니다. 버텨만 주시면, 제가 반드시 정화가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이대로 누님이 사라지면 그들에게 복수할 수 없습니다, 누님. 그들이 지금 리샴 유모의 딸을 살려줬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 보장은 없지. 어머니의 약속만 있었을 뿐. 유모가 가족이 인질로 잡히기 전에 내게 먼저 말해주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달리 수가 없었다. 유모를 외면할 수 없었어, 나는.]“저였어도 길리를 외면하지 못했을 겁니다. 리샴 유모의 가족들은 제가 확인하고 보호할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룬티아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어차피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니…… 그런데,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냥 여기서 날 죽여도 네게는 그리 나쁠 게 없을 것이다.]“그러면 더 나은 가족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님과 제가.”
진이 연결점들을 붙잡았다.
[진, 지금 내가 다시 아공간의 힘을 받으면.]“히스터를 찾은 후 연결하겠습니다. 움직일 정도의 기운이 있다면, 도와주십시오. 히스터가 이 아공간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하셨으니.”
[그렇게 하마.]